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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44화 (44/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44.

가슴께를 생경한 눈으로 바라보다 류수윤을 밀어냈다.

“뭐야, 나 주호현 아니야.”

류수윤을 세게 밀쳐 낼 수 없었다. 그는 내 중얼거림마저 들리지 않는 건지 해맑게 웃으며 동문서답이었다.

‘미안하긴. 잘하고 왔어? 다친 곳은 없지?’

“…….”

‘우리 호현이 다 컸네. 대견하다.’

키도 작은 게 발을 높여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표정을 구기면서도 그 팔을 내치지 않은 건 주호현의 몸이 그걸 좋아하고 있어서였다. 그냥 느껴졌다. 설레고 행복해하는 주호현의 감정이.

‘누가 머리 만지는 건 기분 좆같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나도 모르게 머리가 그에게 기울었다. 그리고 그 순간 류수윤이 사라졌다.

“어?”

갑자기 사라진 류수윤을 찾으려 고개를 돌리는 사이 머리와 등 뒤에 푹신한 감촉이 닿았다.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자 어느새 나는 침대 위였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따듯한 햇살이 방 안을 환히 비추고 그 아래엔 방금 사라졌던 류수윤이 웃고 있었다.

‘……좋은 아침.’

“너, 환영이야 꿈이야.”

‘하하, 그렇게 졸려? 이제 일어나야 하는데.’

“…….”

‘어리광이 늘었다니까. 그럼 조금만 더 자. 깨워 줄 테니까.’

날 친근히 바라보며 다정하게 구는 류수윤을 말없이 바라보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가 뭘 하든 류수윤은 주호현의 기억 속 모습대로 움직일 테니.

내가 잠들었던 곳보다 몇 배는 널찍한 이곳은 눈에 익은 물건들로 보건대 주호현의 방 같았다. 그리 많지 않은 물건들이 각 잡혀 정리된 방식은 같았지만 삭막한 다락과는 달리 따듯함이 온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내 관심을 받지 못한 광경들은 그렇게 몇 번이고 사라지고 바뀌었다. 류수윤은 그 모든 장면에 함께했다.

슬슬 이것도 지루하다 느낄 때쯤, 눈앞에 게이트가 펼쳐졌다. 물결 지어 아른아른 움직이는 게이트의 파동을 응시하다 습관적으로 옆을 돌아봤다. 류수윤은 역시나 내 옆에 있었으나 이제까지와는 다른 그의 상태에 놀라 이게 꿈이라는 사실도 잊고 손을 뻗었다.

“야…… 너 괜찮아?”

벽에 기대 몸을 겨우 가누던 류수윤이 마치 내 말을 들은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파리하게 질린 낯으로도 눈이 마주치자 다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 잠깐 현기증이 나서.’

“…….”

‘무리하는 거 아니래도……. 알겠어. 이번 임무 끝나면 바로 휴가계 내고 검진받을게.’

주호현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설핏 웃음을 터트린 류수윤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바르게 섰다.

‘호현아……. 그러다 네가 다치면 나는 얼마나 속상하겠어? 말했잖아. 위험한 일 있으면 에스퍼들에게 맡기고 너는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으라고. 저번처럼 앞뒤 안 보고 달려오면 화낼 거야.’

‘알겠어. 우리 둘 다 다치지 않는 걸로 하고, 너도 조심하는 걸로. 자, 약속.’

류수윤이 내민 새끼손가락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미 류수윤과 주호현 둘 다 죽은 것을 알아 그런지 가벼운 마음으로도 장단 맞춰 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국 주호현이 새끼손가락을 걸어 준 건지 기쁘게 웃는 류수윤의 뒤로 장소가 바뀌기 시작했다. 점점 뚜렷해지는 광경에 기시감이 느껴졌다. 곧 이곳이 어딘지 알아챈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잠깐, 여긴……!”

처음 주호현과 동기화하며 시스템이 보여 줬던 장소였다. 류수윤이 죽었던 현장.

갑자기 팔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에 놀라 시선을 내리자 내 품에 쓰러진 류수윤이 안겨 있었다.

‘호, 현아, 나는……. 너는 꼭…….’

이미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데도 서서히 숨이 멎는 류수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주호현 역시 그랬는지 주변의 다른 모든 것들은 흐리고 오롯이 시야에는 류수윤의 얼굴만이 뚜렷하게 남았다.

이후는 같았다. 또 그때와 똑같은 장면의 반복이었다. 팀원들이 달려와 소리 지르고 고함치고, 내 품에서 류수윤을 빼앗으려 했다.

‘수윤 형!!’

‘히익……. 어, 어떡해…….’

‘주호현! 이 미친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살려 내! 우리 형 살려 내란 말이야!’

빠른 속도로 혈색이 사라지는 류수윤의 얼굴이 마치 시체 같았다.

“…….”

착잡한 마음으로 류수윤을 잡고 있던 손을 놓으려는 때였다, 다신 열리지 않을 듯 굳게 감겨 있던 류수윤의 두 눈이 떠졌다.

“왁! 씨발!”

놀라 펄쩍 뛰는데 허공을 바라보던 무기질적인 동공이 움직여 나를 향했다. 버석버석 메말라 갈라진 파란 입술이 천천히 열리며 긁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때문이야.’

내게 하는 말이 아닐 텐데도 심장이 쿵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류수윤을 놓치고 뒷걸음질 쳤다.

‘호현아, 호현아. 나 아파……. 아파!’

류수윤은 지금껏 보이던 그 부드럽고 다정한 웃음은 찾아보기도 힘들 만큼 매섭고 악독한 표정으로 소리지르며 내 다리를 붙잡았다.

‘왜 날 죽였어? 왜!!’

“씨발 진짜…….”

몸이 가누기 힘들 정도로 흔들렸다. 그저 허상임을 알면서도 일말의 망설임에 차마 발로 차 버리지도 못하고 다리를 흔들어 털어 내자 류수윤이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거친 바닥에 쓰러진 류수윤은 둥글게 몸을 만 채 벌벌 떨었다. 눈에서 원통한 눈물이 끊임없이 샘솟았다.

‘추워, 호현아. 나 추워…….’

‘나랑 같이 있자. 응? 항상 함께하기로 했잖아. 우리 둘이 함께…….’

이 좆같은 꿈은 왜 깨지 않는 건지, 팔을 때리고 꼬집어 봐도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주위는 그저 흔하고 황량한 던전 내부.

‘꿈이라면, 깨기 위해선 어디서 뛰어내리기라도 해야 하나?’

예성우가 온 후 꾸게 된 꿈이라 그런지 더 찜찜했다.

깨어날 방법을 궁리하는데 앞에서 꾸룩 하는 소리가 들려와 돌아보자 류수윤의 몸이 이상하게 변형되고 있었다.

검게 변한 피부와 팽창하는 신체들. 전의 봐 줄 만한 외모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흉측한 모습이었다.

“가지가지 한다…….”

‘끼에에엑!!’

류수윤이었던 괴물이 검은 입을 벌리고 내게 돌진했다. 별다른 수도 없고 어쩌면 저놈에게 잡아먹히면 꿈에서 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만히 서서 그를 바라봤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괴물은 어느새 나보다 몇 배는 더 커져 있었다. 괴물의 입이 벌어지며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검은 기운에 살짝 닿자마자 닿아서는 안 될 것에 닿은 느낌이 들어 꿈인데도 불구하고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도망갈 걸 그랬나.’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코앞까지 다다른 괴물의 모습에 눈을 질끈 감는데 갑자기 왼쪽 발목이 뭔가에 데인 듯이 뜨거워졌다.

“윽, 뭐야.”

아래를 내려다보자 내 다리 옆에는 하얀 새끼 양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어? 양, 너!!”

시스템의 환영 이후 조금 잊고 있었는데. 양은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뚜렷해진 상태였다.

새끼 양은 곧바로 괴물에게 돌진했다.

“어? 어어?”

괴물이 좀 끔찍하게 생겼어야지, 혹시 양이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야! 이리 와!! 야, 양!!”

하얗고 몽실몽실한 양은 예쁘게 생긴 겉모습과 달리 매우 포악한 기세로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급히 그 뒤를 따라갔지만 내가 잡기도 전에 새끼 양은 괴물에게 달려가 머리를 박았다.

‘끼야아아아악!!’

괴물에 비해 한 줌도 안 되는 크기인데도, 양과 닿은 괴물의 신체 일부분이 녹아내려 탁한 연기로 기화했다. 고통스러워하는 괴물의 끔찍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

괴물은 어떻게든 양을 피하려 기괴하게 몸을 비틀며 도망갔다. 하지만 양은 펄쩍펄쩍 뛰며 괴물을 통과했고 괴물의 크기가 야금야금 줄어들었다.

더 이상 아무 위협도 되지 않을 정도로 녹아 사라진 괴물의 모습에 양에게 다가가려는데 발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어?”

당황해 몸을 들썩였다. 몸이 점점 떠오르며 뒤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난 꿈에서 깨어나는 중이라는 것을.

“안 돼, 잠깐만…….”

새끼 양이 내 쪽을 돌아봤다. 뒤로 끌려가는 날 보고는 곧바로 달려오는 새끼 양을 향해 나도 손을 뻗었다.

손이 털에 닿을락 말락 하는 순간 의식이 아래로 추락했다.

“허억!”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는 던전이 아닌 다락방의 낡은 매트리스 위였다. 창밖으로 새벽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곧바로 정신이 들지 않아 눈을 끔뻑이며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봤다. 예성우는 먼저 나갔는지 방에는 나 혼자였다. 흐리던 정신이 점차 뚜렷해졌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역시 새끼 양이었다.

“양…….”

뒤늦게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저 환영일 뿐인 양이 현실에 보일 리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뜨거웠던 발목을 매만지며 열린 문밖으로 내다보이는 복도를 멍하니 응시했다.

밤에 몰래 방에 찾아온 예성우. 그리고 그 이후에 꾸게 된 이상한 꿈.

분명 예성우의 농간이었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대체 뭘 위해서? 주호현이 어떻게 되길 원한 거지?’

어떤 스킬이나 아이템을 썼던 게 확실한데, 그렇게까지 해서 꾸민 짓이 겨우 악몽을 꾸게 하는 거라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류수윤이 좀 끔찍하고 마음 불편하게 나오긴 했대도 어차피 꿈인데.

“……주호현이 충격이라도 받길 바란 건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말했지만 말도 안 되는 가정이 우스워 견딜 수 없었다.

“푸학, 말도 안 되지. 둘이 각별하기야 했다만 겨우 꿈 가지고? 뭐 류수윤이 원망한다고 주호현이 못 견디고 따라가기라도 할까 봐? 웃기네. 차라리 그냥 독약을 먹여 죽이는 게 낫겠다. 예성우가 꿈을 조작해 주호현의 죄책감을 건드려 자살하게 만들었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헛소리…….”

띠링!

귓가에 울리는 청량한 알림 소리에 몸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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