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45.
황금빛 시스템창이 어두운 방 안을 밝히며 눈앞에 드리웠다.
퀘스트 성공!
“뭐?”
보상을 지급합니다.
+명성이 400 올랐습니다!
(현재 명성 : -1)
+칭호
{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소 }
를 획득합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오릅니다.
[중급 연금술이 열렸습니다!]
[중급 연금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중급 채집이 열렸습니다!]
[중급 채집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중급 제작이 열렸습니다!]
[중급 제작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중급 용해가 열렸습니다!]
[중급 용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지금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미친 듯이 떠오르는 상태창을 멍하니 바라봤다.
메인 퀘스트#1 클리어.
시스템창이 화려하게 빛나며 퀘스트 클리어를 알렸다.
“미친, 퀘스트 성공이라니! 그럼 설마 아까 그게…….”
하지만 퀘스트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시스템창은 곧바로 연계 퀘스트를 진행했다.
띠링!
{ 메인 퀘스트 }
#2. 하말♈의 유지를 찾아라.
난이도 : A+
제한 시간 : 9일 24시간
보상 : ??? 스킬 회복
실패 시 퀘스트 영구 삭제
※거부 불가능
“하말? 하말이 뭐야.”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시스템창이 울렸다.
퀘스트 달성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하말♈의 유지 (1/1)
퀘스트 성공!
“뭐야? 갑자기 성공이라니 이게 무슨…….”
보상을 지급합니다.
+명성이 900 올랐습니다!
(현재 명성 : 899)
+칭호
{ 하말♈의 임시 보호자 }
를 획득합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오릅니다.
또다시 발목이 타오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이불을 들춰 살피자 복숭아뼈 아래에 손톱만큼 작은 문양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 시스템창에 나온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이게 뭐야. 언제부터…….”
손끝이 닿자 옅게 빛나던 문양이 번쩍이더니 여기 있어선 안 될 것이 튀어나왔다.
“야, 너……!”
“미에에에에!”
돌연 4층 전체에 울려 퍼지는 양 울음소리에 황급히 일어나 문을 닫았다. 내가 저를 두고 어딜 간다고 생각했는지 새끼 양은 메메 울어 대며 내 뒤를 따라왔다.
“쉿, 쉿!! 닥쳐!”
“므에에…….”
다행히 말을 알아듣긴 하는지 새끼 양이 목소리를 죽이고 귀를 펄럭댔다.
아직도 눈앞에 떠 있는 시스템창과 새끼 양을 번갈아 보다 설마 하며 물었다.
“네가……. 하말의 유지냐?”
“미에.”
씨발, 하말이 뭔지를 알아야 이해를 하든 말든 하지. 새끼 양은 실제 양과는 다르게 조금 더 작고, 몸 전체에 은은한 광휘를 두르고 있었다.
“아이템 정보, 몬스터 정보.”
혹시나 하고 말해 봤지만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새끼 양은 저를 그런 것들로 취급한 게 불만인지 쿵쿵 발을 굴렀다.
“어어? 발 구르지 마. 그때 예성우가 찾던 것도 너지? 들키면 우리 둘 다 좆 되는 거야.”
“메.”
순순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갸웃대는 양을 보며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저거 귀찮게 계속 따라다닐 것 같은데…….
“이름을 지어 줘야 하나?”
내 중얼거림에 양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마음에 든다는 듯 꼬리가 좌우로 크게 펄럭였다.
“새끼 양이니까……. 쉽 새끼?”
“메에에에!”
양이 달려와 머리로 내 다리를 마구 박았다. 작은 덩치에 비해 꽤나 타격감이 커 펄쩍펄쩍 뛰며 새끼 양을 피해 다녔다.
“아, 아! 알았어. 그냥 하말은 어때, 뭐? 이것도 싫어? 이런 양아치 같은 새……. 아야, 알겠다고! 구름! 구름이 어때!”
양의 공격은 그제야 멈췄다.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뱉었다. 발밑에는 양이 돌아다니고 머리 위에는 시스템창이 둥둥 떠다녔다.
퀘스트를 마저 잇기 전에 저 양부터 집어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왼 다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야, 구름이. 너 다시 들어갈 수 있지? 얼른 들어가.”
“미에에.”
“빨리. 다른 사람 있을 땐 절대 나오면 안 돼. 여기서 튀면 그때 꺼내 줄 테니까.”
쉽 새……. 아니 구름이는 미적대며 내게 다가왔다. 문양이 있는 곳에 머리를 쿵 하고 박자 빨려 들 듯 몸이 사라졌다.
한숨을 내쉬고는 보상을 받겠느냐며 깜빡이는 시스템창을 바라봤다.
이런 식으로 상급 연계 퀘스트를 두 개나 통과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긴 한데.
“보상이나 줘.”
수락하자 시스템창에는 내가 전에 가지고 있던 스킬들이 등급순으로 쭉 리스트 업되었다.
활성화할 스킬을 선택해 주세요.
►의신(醫神)의 손길 (S)
►황금 솥 (SS)
►Born to be Star (S)
►선산의 주인 (S)
►플라멜의 현안 (S)
►천지보감 (S)
►정신 방비 (S)
.
.
“미친!”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상에 등급 제한이 없을 줄이야! 전부 보통 스킬이 아닌 만큼 굉장한 기회였다.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게 아쉬웠다.
“이거야 고민할 것도 없이 당연히…….”
단 하나 고르라면 포션 제조의 기본이며 날 마스터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게 만들었던 ‘황금 솥’을 선택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곧바로 황금 솥을 선택하려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손을 뻗어 리스트를 아래로 내리자 그닥 간절해 본 적 없던 하위 등급의 스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장 필요한 건…….’
센터에서 SS급 스킬인 황금 솥을 얻어 봤자 걸리면 잡혀서 국가에 종신 계약이나 하게 되겠지. 지금 내 최우선 과제는 여기서 도망가는 거다.
내 손이 멈춘 건, 별 볼 일 없는 B급인 데다 하물며 리스크가 커 평소엔 쳐다도 보지 않던 스킬이었다.
“내가 원하는 스킬은…….”
퀘스트가 클리어됐다는 시스템창이 떴다. 곧바로 이어진 세 번째 연계 퀘스트는 내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역시.”
{ 메인 퀘스트 }
#3. 자유의 몸을 되찾아라
***
한서진의 방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은 자연히 무산됐다. 약을 먹고 자는 척하는 내게 예성우가 매일 밤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가 다녀가면 나는 무력하게 잠에 들고 꿈속에서 류수윤을 만났다.
‘호현아.’
‘나랑 같이 편해지자…….’
하도 많이 봐서 이젠 류수윤의 얼굴은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을 지경이었다. 주호현이 가지고 있던 지갑 역시 류수윤의 선물이었다. 꿈속에서 주호현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나도 당장 따라 살 뻔했다.
다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게, 괴물화된 놈에겐 절대 먹혀서는 안 됐다. 두 번째 날에 이미 꿈속을 한번 겪어 보기도 했고 빨리 깨고 싶다는 생각에 한번 먹혀 봤는데…….
-할 수 있어요! 거의 다 성공했어요. 만들 수 있으니까…….
-사람은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는 거야.
-열어 줘! 열어 주세요!!
좆같은 기억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행히 양이 튀어나와 몇 번 뛰어다니니 금방 사라지긴 했지만.
그 이후로 류수윤이 괴물화될 기미만 보이면 쉽 새끼를 소환해 서둘러 없애 버렸다.
“가라! 쉽……. 구름이!”
“미에에에!”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꿈을 통해 주호현의 기억을 엿보다 그와 류수윤이 그저 각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 버린 것이다.
꿈속의 장면이 바뀌는 것을 알고 귀찮게 누워 있는 사이 볼에 촉촉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닿았다. 뭔가 하고 눈을 뜨자 바로 앞에 크게 보이는 류수윤의 얼굴에 기겁해 뒤로 몸을 뺐다.
“우왁, 씨발!! 너, 너. 방금! 뭐, 뭐…….”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니 기뻐.’
주호현 이 게이 새끼가!!
***
“익월 우리 팀의 스케줄과 인포다. 모두 빠짐없이 숙지하도록.”
각자에게 두꺼운 책자가 배포됐다. 다음 달에 가게 될 던전의 지리와 몬스터 특성에 대한 정보들이 세세히 적혀 있었다.
이걸 언제 다 봐……. 귀찮은 표정으로 휙휙 넘기던 나는 어느 한곳에서 손을 멈췄다.
“잠깐, 여긴…….”
“뭐라고요?”
“아니. 아무것도.”
아무렇지 않게 고갤 저으며 책자로 시선을 내렸다. 오이도 폐선착장에 있는 중급 던전이라면 내가 가 본 적 있는 곳이었다.
‘여기라면…… 도망갈 수 있어.’
드디어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왔다.
팀 회의가 끝난 후 나는 부러 부엌을 기웃댔다. 언제나처럼 팀장의 방에서 나온 예성우가 물을 마시러 들어오다 날 발견하곤 발을 멈칫했다.
“아, 호현아?”
“형. 마침 잘 만났다.”
형 소리에 예성우가 눈을 크게 떴다.
“왜? 무슨 일로…….”
“혹시 약 더 가지고 있어?”
“약이라니? 무슨 약을 말하는 건지…….”
“그때 형이 준 보조제 있잖아. 거의 다 먹었는데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몰라서. 기억이 나질 않더라고.”
“아아. 보조제……. 그런데 벌써 다 먹었어? 그럴 만한 양이 아니었을 텐데.”
매일같이 몰래 들어와 약을 먹고 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까지 확인하는 주제에 전혀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요 며칠 빨리 소진하려고 여러 개씩 털어 버린 게 다행이지.
못마땅해 퉁명스러워지는 표정을 감추려 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떨궜다.
“사실 요즘 잠이…….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시선을 떨군 걸로는 부족해 결국 손으로 얼굴을 덮어 표정을 감췄다.
“보조제 먹으면 조금 몸이 편해지기도 하고……. 그런 용도가 아니라는 거 아는데 어쩔 수 없었어.”
“호현아…….”
“혹시 구하기 힘든 거야? 그럼 그냥 내가 구해 볼게. 한서진한테라도 부탁해서…….”
거실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예성우가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내가 구해 줄게! 굳이 서진이한테까지 부탁할 필요 없어.”
“정말? 고마워. 형.”
부엌문 뒤에 숨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우리 얘기를 듣고 있을 우한세의 그림자를 보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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