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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46화 (46/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46.

가이딩 수치는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늘었다. 주호현과 동기화된 몸이 익숙해져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현장에서 C급 가이드의 몫은 충분히 해낸다고 할 수 있었다.

가이딩 총량 (379rp)

타겟 [김태현]에게 [___]rp로 가이딩한다.

타겟 [한서진]에게 [___]rp로 가이딩한다.

타겟 [우하윤]에게 [___]rp로 가이딩한다.

타겟 [우한세]에게 [___]rp로 가이딩한다.

타겟 [최재희]에게 [___]rp로 가이딩한다.

‘김태현에게 100rp, 우한세에게 18rp, 나머지 균등 분배.’

요즘은 일부러 팀장에게 조금 더 몰아주곤 했다. 임무가 끝나고 팀원들끼리 모여 이동하던 중 나와 눈이 마주친 팀장이 지나가듯 말했다.

“점점 느는군.”

옆에서 우한세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일방적인 방사 가이딩과 달리 나는 대상이 받는 가이딩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니 각자 다르게 느끼는 게 당연했다.

“시간 내서 가이딩 재검진받아 봐. 전보다 rp가 높아진 것 같으니.”

“감사합니다. 보조제가 잘 들어서 그런가 봐요.”

겸손한 척 답하자 팀장이 눈썹을 찌푸렸다.

“보조제?”

“아, 네 성우 형이 챙겨 준 게 있어서.”

제 이름이 나오자 최재희 옆에 앉아 있던 예성우가 힐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저 안정제라는 것을 아는지 별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일주일간은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소문을 냈다.

-누나도 성우 형한테 보조제 달라고 해 봐. 먹으니까 좋던데.

-안녕하세요. 정기 검진받으러 왔는데……. rp 늘은 거? 그냥 보조제 먹어서……. 저희 팀 메인 가이드 형이 줬어요.

-괜찮아? 힘들면 보조제 먹을래? ……뭐? 의심스러운 걸 어떻게 먹냐고? 뒈질래. 너 우리 팀 메인 가이드 의심하냐?

결국 예성우가 날 불러냈다.

“나 불렀어?”

“호현아…….”

“응. 왜?”

“너……. 하아.”

피곤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예성우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데에 보조제……. 너무 말하고 다니고 그러면 안 돼.”

“뭐? 형이 나한테 보조제 준 거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 왜?”

“…….”

“여튼 미안. 난 효과가 너무 좋길래 나만 쓰기 아쉬워서……. 그럼 나 이제 보조제 못 받아?”

눈치 보며 묻자 예성우가 한숨 쉬며 뒤에서 약통을 꺼냈다.

“다른 데에다 말하고 다니지 않기로 약속하면 줄게.”

“약속할게. 어서 줘.”

예성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약통을 건넸다.

이번 약통은 다락이 아닌 한서진 방에 딸린 곁방에 가져다 놨다. 눈에 아주 잘 보이는 곳으로. 뿌듯하게 바라보는데 전화가 울렸다.

“어.”

[호현 님. 저 승연입니다. 준비가 다 되어서요. 혹시 시간 되실 때 제 작업실로 와 주실 수 있으신가요?]

“지금 갈게.”

[……네!]

마침 연달은 임무가 끝나고 며칠간 휴식이 주어진 터였다. 곧바로 검진 센터로 가자 연승연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호현 님!”

“조금 걸린다며. 준비는 다 된 거야?”

“네. 저 때문에 늦어지면 안 되니까 조금 서둘러서…….”

“잘했어.”

머리를 쓰다듬자 연승연이 환히 웃었다. 함께 연승연의 작업실로 들어가자 텅 빈 내부가 펼쳐졌다. 몇 가지 필수 집기를 제외하고는 책이며 연승연의 개인적인 물건들이 모두 정리된 상태였다.

“물건 다 뺐네?”

“조금씩 정리했어요. 곧 퇴사라서 미리 해야…….”

“사직서 냈어? 언제까지 다니는 거야?”

“퇴사 의사는 밝혔고 현재 공동 작업 중인 연구 끝날 때까지만 다니기로 결정됐어요.”

“음. 좋아.”

내가 나가서 작업실을 차리면 조수로 들어와야 했기에 연승연도 슬슬 센터 일을 정리할 때였다.

“호현 님, 작업실 부지를 구하기 전에 잠시 머물 집으로는 여기를 선택했습니다. 방은 세 개, 욕실은 하나며 근처에 위험 지대가 없고 침구는 호현 님 말씀대로 xx호텔 납품 침구를 구매했고 옷들은 취향을 말씀해 주시면 그에 맞춰 준비하겠습니다. 자금의 경우 말씀하신 대로 첫 번째 계좌는 건들지 않고 두 번째 계좌에서만 일정 주기로 금과 마정석을 사 모았습니다.”

연승연의 보고를 흡족하게 들었다. 작업실을 구하기 전 잠시 머물 집도 구했고 주호현이 모아 둔 돈도 반수 이상을 현금화시켰다.

‘대충 그 정도면 기본 재료들은 살 수 있겠지.’

돈의 경우 처음엔 고민이 많았다. 천애 고아인 주호현이 사망한다면 자연스레 센터로 재산이 귀속될 텐데 사고로 죽기 직전에 큰 돈을 출금하는 것은 이상해 보일 테니까. 아깝긴 했지만 의심받을 바에야 빈손으로 나가는 게 나았다. 근데 어느 날 셔틀버스 기사와 대화하다 요즘 재테크로 금과 마정석을 사 모으는 헌터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곧바로 연승연에게 통장을 주며 금과 마정석을 사라 지시했다.

모든 준비가 순조로웠다. 이제 정말 센터에서 도망가는 일이 목전에 다가왔다.

“승연아. 내가 부탁한 건?”

내 말에 연승연이 연구실 한쪽 구석에 놓인 종이 가방을 들고 왔다.

“고맙다.”

“저, 호현 님! 혹시 그게 왜 필요한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거?”

종이 가방 안에는 작은 선물 상자와 주먹만 한 유리단지가 들어 있었다.

하나는 한서진의 선물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재료 아이템? 센터 나갈 때 필요해.”

“그, 저…….”

“왜. 뭔데.”

망설이는 연승연을 의아히 바라봤다. 자세히 설명 안 해 줬다고 이러나?

주춤대던 연승연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옆의 선…… 아, 아닙니다. 호현 님께서 어떻게 나가실지 그게 궁금해서, 또 언제인지도…….”

“그때 되면 바로 알게 될 거야.”

“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연승연에게 그런 게 있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

“아…….”

머리를 짚으며 휘청거리자 함께 걷던 한서진이 곧바로 어깨를 잡아챘다.

“형. 괜찮아요?”

“좀 어지러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갤 젓자 한서진이 잡은 어깨를 추스르며 팀장에게 말했다.

“잠깐 병동 좀 다녀오겠습니다.”

“……요즘따라 아픈 게 잦군. 다녀와.”

던전에 들어가는 디데이가 가까워지며, 나는 틈날 때마다 아픈 척 빌빌댔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 좀 하고 계단에서 눈앞이 안 보인다며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졌다.

‘오늘은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할당량을 다 채운 기분으로 병동에서 조금 뻐기다 들어갈 생각이었다.

“지금은 어때. 괜찮아요?”

“어. 지금은 괜찮아.”

침대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은 한서진의 표정이 심각했다.

“안 되겠어. 휴가계 내자.”

“뭐?”

“한 달 정도만 입원해서 치료받아요.”

미친 이게 무슨 헛소리야? 던전 진입이 코앞인데 한 달을 쉬라니 절대 그럴 순 없었다.

“무슨 휴가야? 그럴 필요 없어.”

“형 좀 쉬어야 해. 애초에 무리인 일정이었어. 회복도 안 된 사람한테.”

“됐어. 휴가계 안 낸다고.”

“그럼 던전 일정이라도 줄이든가.”

“아니, 야…….”

예성우 엿 먹이려다 계획이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 벌떡 일어나 난 멀쩡하다고 팔굽혀펴기를 하며 내 건강함을 과시했다.

“야, 이거 봐. 나 멀쩡해.”

“미친, 환자가 뭐 하는 거예요?”

“아니 봐 봐. 나 정말 멀쩡하다니까? 훕, 후으. 이 정도는 누워서도…….”

“형!!”

결국 채 스무 개도 하기 전에 강제로 일으켜졌다. 머리를 부여잡은 한서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정말 안 아파서 그래. 괜히 쉬어서 흐름 끊기게 하고 싶지 않고.”

“…….”

“더 조심할 테니까 표정 풀어. 여하튼 휴가는 없는 거다?”

“……봐서요.”

한서진은 퉁명스럽게 답했지만 결국 내 뜻을 들어줄 걸 알았다.

***

드디어 내일이 디데이다.

나가서 지낼 준비도, 예성우를 엿 먹일 준비도 모두 끝냈다.

마지막 날마저 다락에서 고생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오늘은 한서진의 방으로 돌아왔다. 처음 이곳에서 깨어난 날이 생생한데 벌써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니. 괜히 감회가 새로웠다.

푹신한 침구에 누워 뒹굴뒹굴하는데 한서진이 뭔가를 들고 왔다. 불쑥 내게 내밀어지는 상자에 의아하게 몸을 일으켰다.

“뭐야?”

“받아요. 포션이에요.”

“웬 포션?”

“힐러 불러 봤자 힐은 안 받겠다고 할 거잖아.”

상자를 열자 붉은 융단에 감싸인 일곱 개의 포션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식과 금장이 덕지덕지 붙은 화려한 포션 병을 보자마자 이걸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챘다.

‘프랑수아 새끼 물약 아니야?’

역시나 한서진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이상한 거 아니에요. 알트론 길드에 프랑수아란 포션 메이커가 있어요. 활력 포션의 대가라고, 효과는 보증한다니까 먹어 둬요. 잘 맞으면 더 구해 올게.”

말을 잇는 한서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 새끼가 하고 다니는 꼴이나, ‘아름다움도 포션의 가치 중 하나’란 관점이 한심해 싫어했을 뿐이지 한서진의 말대로 활력 포션에 있어서는 꽤나 능력 있는 놈이긴 했다. 그만큼 헌터들에게, 특히 늙은 재력가들에게 인기가 많아 돈만 준다고 구할 수 있는 포션은 아닐 텐데.

‘한서진이 어떻게 구했지?’

어쨌거나 난 꾀병이라 나을 것도 없었다. 앞으로 던전에서 구를 한서진에게나 더 필요하겠지.

상자를 덮어 다시 한서진에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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