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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47화 (47/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47.

“고맙긴 한데, 필요 없어. 활력 하면 바로 나 주호현인데 무슨 포션이냐? 너 먹으면 딱이겠네. 요즘 존나 바쁘잖아.”

“형 때문에 구해 온 거야. 어디 아픈 것도 아닌데 매번 픽픽 쓰러지잖아.”

“어제랑 그제는 멀쩡했잖아. 난 필요 없다니까.”

“그냥 주면 좀 받아요.”

“너야말로 어른이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그냥 힐러 부를까?”

“아… 진짜……. 그럼 너도 먹어.”

저게 뭐라고. 쉽게 물러서지 않는 한서진에 결국 두 개를 한번에 까 그중 하나를 건넸다. 한서진이 불퉁한 표정으로 입을 대는 것을 보며 나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온몸에 상쾌한 기운이 감돕니다.

모든 상태 이상이 회복됩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이동 관련 스킬이 향상됩니다.

.

.

확실히 몸이 가벼워지는 게 효과가 뛰어나긴 했다. 맛도 괜찮네. 금세 사라진 포션에 입맛을 다시다, 나도 한서진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게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요?”

“있어 봐. 나도 줄 거 있어.”

곁방에 들어가 서랍 안에 넣어 두었던 선물 상자를 꺼냈다. 그것을 들고 다가가자 한서진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게 뭐예요?”

“서진아.”

이름을 부르자 한서진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선물 포장이 된 케이스를 내미니 한서진의 얼굴에 경계심이 어리는 것을 보고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굳은 손목을 잡아 올려 한서진의 손 위에 케이스를 척 올렸다.

“자.”

“……형? 지금 뭐 하는……. 뭔데요, 이게.”

“뭐긴, 선물이지. 시계야. 그거 마정석 들어간 거다? 나중에 대장간에 의뢰하면 작은 스킬 하나쯤 넣을 수 있을 거야.”

“……뭔지 알아요. 형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걸 사.”

물론 주호현의 자금 사정으로 사기엔 매우 무리인 금액이긴 했으나 어차피 센터를 나갈 때 두고 가야 할 돈이라 그냥 긁었다.

“선물은 마음이지 인마. 안 풀어 봐?”

“마, 마음은 무슨……!”

얼굴이 새빨개진 한서진이 한발 뒤로 물러났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제 손에 들린 케이스와 나만 번갈아 보는 시선이 생각했던 반응과 조금 달랐다.

‘뭐지? 마음에 안 드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랜드에 한서진과 어울리는 시계가 있어 고른 건데.

머쓱하게 목덜미를 매만지며 나도 모르게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너랑 어울릴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면 보증서 들고 가서 바꾸든가. 환불은 안, 엇!”

말을 채 다 잇기도 전에 달려들어 껴안는 한서진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힐끔 돌아보자 내 어깨에 얼굴을 박은 한서진의 귀가 터질 것처럼 빨갰다.

‘훗. 마음에 드나 본데. 하긴 저게 얼마짜린데.’

평범한 헌터라면 출금된 금액을 보고 세 달 밤낮을 앓아누울 가격이었다.

아무리 감동 타임이라지만 남자끼리 포옹까진 영 간질거리고 불편했다. 슬쩍 몸을 비틀어 떨어지려는데 등을 가로지른 팔에 힘이 들어가 외려 더 깊게 안겼다. 푹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의민데 이거.”

“……뭐가.”

“대답 안 하면 내 마음대로 생각할 거예요.”

“그러든가?”

대수롭지 않게 답하자 한서진이 그제야 환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선물 상자를 묶고 있던 리본을 풀어낸 한서진은 모습을 드러낸 시계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형이 준…… 이 감정, 잊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

빨리 나오라는 듯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다급히 외쳤다.

“금방 끝나!”

내 앞에는 라벨 없는 하얀색 약통이 놓여 있었다. 한 손에 약통을 잡고 스킬을 쓰자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수상한 합성물]에 <악법도 법이고, 독약도 약이다>를 사용합니다.

퀘스트의 보상으로 선택한 스킬, ‘악법도 법이고, 독약도 약이다.’는 말 그대로 약은 독으로, 독은 약으로 바꾸는 스킬이었다. 결과물이 대상과 비슷한 수치의 것으로 고정인 데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딜레이 한 달이라는 리스크까지 달려 있어 지금까진 쓸 일이 없었다. 필요한 게 있다면 그냥 만들면 되니까!

하지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수상한 합성물]이 [조용한 암살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약을 독으로 만들었습니다. 악법이 작용해 부작용이 커집니다.]

[<악법도 법이고, 독약도 약이다>의 사용 대기 시간이 29일 23시간 59분 남았습니다.]

[손이 무뎌집니다. 포션 제작의 성공률이 10% 떨어집니다.]

[독에 대한 내성이 하락합니다.]

[눈이 침침해 재료를 분간할 수 없습니다. 감정 성공률이 15% 떨어집니다.]

이래서 싫다. 이래서. 별것도 안 했는데 종알종알 따라오는 제약들이란. 손을 휘저어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들을 날려 버리고 바뀐 약을 확인했다.

<조용한 암살자>

미약한 독성이지만 꾸준히 섭취하면 체내에 쌓여 마나를 공격한다.

중독 상태에서 힘을 사용하면 부작용을 유발한다.

“좋아.”

원료가 보조제였던 만큼 역시나 결과물도 점차 독성이 쌓이는 류의 독극물로 변했다.

난 살아서 도망갈 거지만, 어쨌거나 예성우가 주호현을 죽인 건 맞으니까 대가는 치러야지.

“형!!”

“어- 나간다!”

한서진의 재촉에 약통을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두고 서둘러 뛰어나갔다.

***

“게이트의 파동이 평소와 다르니 최대한 빨리 끝내고 복귀한다!”

“예! 알겠습니다.”

던전 게이트 앞에 도착하니 예전에 방문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몇 년이나 지났는데 주위는 그대로네.’

포션 메이커가 좋은 길드와 계약하거나 유명세를 알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만의 포션을 만들어야 한다. 길드가 없어 지원받기가 힘든 포션 메이커들은 이를 위해 던전에 직접 들어가 재료들을 채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녹스에서 재료를 지원받으며 시작했기에 그럴 일이 없었지만, 가끔 포션에 필요한 재료 중 타인에게 양도 불가한 ‘귀속 아이템’이 존재했다. 나의 몇 번 안 되는 던전 탐험은 모두 귀속 아이템 때문이었고 이 던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땐 태제헌과 함께 와서 짜증 났는데 이젠 그 새끼가 알려 준 것에 도움을 받을 줄이야.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새삼스러운 감상에 주위를 둘러보며 가슴팍을 더듬자 깊숙이 넣어 놓은 유리병이 만져졌다.

앞선 팀들이 하나씩 게이트에 입장하고 우리 팀 차례가 됐다.

이번 작전엔 한서진이 진압조로 들어가게 되어서 가이드 보호는 우한세가 대신하게 되었다. 한서진은 영 떨떠름한 눈으로 우한세를 바라보다 내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오늘 임무 끝나고 잠깐 놀다 갈래요?”

“뭐? 복귀 안 하고?”

“그냥. 간만에 바다니까.”

“아…….”

차마 그렇게 하자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말을 얼버무리며 안을 턱짓했다.

“얼른 들어가. 안에서 기다리겠다.”

“형도 조심해요.”

빨리 들어가라는 재촉에 한서진이 게이트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갔다.

“그동안 고마웠다.”

한서진이 급히 뒤를 돌아봤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표정에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치지 말고!!”

한서진이 다급하게 손을 뻗으며 뭔가 소리쳤지만 게이트의 파동이 그를 덮쳤다. 뒤이어 남은 에스퍼들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 게이트가 완전히 닫혔다.

“워프 위치 변경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선 관리자가 조작부를 매만졌다. 안전지대로 향하는 게이트가 다시 열리며 푸르른 파장이 가이드들 앞에 펼쳐졌다.

가장 먼저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

“앞에 몬스터 떼가 지나갈 때까지 잠시 여기서 대기할게요. 야, 주호현. 개인행동 할 생각 말고 기다려.”

우한세가 굳이 날 지목해 말했다. 하지만 이미 머리엔 개인행동 할 생각이 만만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평소 맡지 않던 역할을 맡아서 그런지 우한세의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팀 가이드들과도 함께 움직였는데 우한세에 반해 그쪽을 통솔하는 에스퍼는 딱 봐도 훨씬 익숙하고 노련해 보였다.

약이 바짝 오른 우한세가 다른 팀을 의식하며 허세를 부리는 꼴은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보니까 금방 갈 것 같네. 공격해도 되는 거면 금방 태워 죽이고 갈 수 있는데.”

“형. 너무 걱정 말아요. 저 정도 등급은 몰려와도 한 방 컷이야.”

쉴 새 없이 입을 나불대는 모습에 예성우와 박가인이 어색하게 웃음 지으며 맞장구쳤다. 한 발짝 떨어져 방관하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저 멀리 떨어진 강가를 바라봤다.

‘빨리 가야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들이 다 지나가고 길이 열렸다. 우한세가 떨어져 있던 내게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빨리 안 와?”

“간다. 가.”

미리 정해졌던 대로 안전지대는 강가 상류에 위치했다.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경계하기 쉽고 던전 입구와 가까워 습격 시 도망치기도 수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내가 가야 할 곳은 강 하류였다. 어떻게 가야 할지 아래를 힐끔댔다. 예전에 상공을 통해 이동하며 지리를 본 적이 있어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래에 내려와 나무와 바위, 수풀로 가득한 길을 마주하니 뚫고 갈 방법이 잘 가늠이 가질 않았다.

“우리가 좌측에서 대기할게.”

“뭐, 괜찮네. 다들 이쪽으로 와요!!”

무리에 합류해 박가인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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