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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51화 (51/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51.

“아- 씨발, 좆 됐다.”

방금 전까지 있던 게이트가 눈앞에서 사라지다니.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황당함에 현실을 부정하기도 잠시, 어둠만 마주하고 있으려니 점점 숨이 막혀 왔다.

‘아니야. 누가 날 가둔 것도 아니고 어둡…. 완전히 어둡지도 않고.’

갇힌 게 아니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어 봐도, 아니긴 개뿔. 누가 봐도 갇혔다.

눈앞의 형태만 겨우 보일 정도로 약한 빛에 의지해 동굴 벽 전체를 손으로 더듬었다. 틈을 찾으려 애썼지만 끝에서 끝까지 돌아봐도 그 어떤 작은 균열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물에 맞닿은 곳에 풍덩 발이 빠졌다. 시선을 내려 반쯤 잠긴 종아리를 내려다보다 혹시나 하고 물에 얼굴을 담갔다.

“……우푸풉! 푸하…! 아씨, 차가워.”

몇십 초도 버티지 못하고 빠져나왔다. 역시나 불가능하다. 설상가상으로 몬스터에게 물린 팔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욱신거렸다. 손을 가져다 대자 아직도 피가 흐르는지 팔에 닿았던 손이 젖어 들어갔다. 이런 상처에 도움될 만한 포션들은 몇 개나 알고 있는데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니.

다치면 어떻게 하는 거더라? 포션이나 힐 말고 다른 방법이 뭐가 있나 떠올려 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이래서 던전이 싫다니까. 투덜대며 셔츠를 벗어 대충 피만 닦아 냈다.

“이러다 썩는 건 아니겠지…….”

여기 가만히 있다 굶어 죽는 게 먼저일까, 아니면 물로 들어가 헤엄치다 숨 막혀 죽는 게 먼저일까. 아니, 뭐가 덜 아플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건가? 둘 다 싫은데.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새카만 허공을 바라봤다. 온 사방이 어두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이 날 삼키려 다가오는 것 같아 두려운 감정이 피어올랐다. 몸이 움츠러들고 심장이 크게 뛰는 느낌이 불쾌해 몸을 일으켜 느릿느릿 빛이 있는 곳으로 기어갔다. 옅은 빛이었지만 두려움이 조금 가셨다.

주호현이 죽은 사람으로 처리되면 인벤토리를 열 수 있을 테다. 그러나 그 안에 지금 상황을 타개할 만한 것이 들어 있으리란 기대는 되지 않았다.

“……어지러워.”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잔뜩 부은 팔에서 열이 났다. 제정신이 아닌 건지, 따듯해서 좋다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

“메에에에에.”

어렴풋하게 들리는 울음소리에 천천히 정신이 돌아왔다. 흐린 눈을 뜨자 분홍빛 물체가 시야에 가득 찼다.

대체 이게 뭐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나를 툭툭 치던 물체가 멀어지며 드러나는 동그란 눈과 복실복실한 하얀 털을 보자, 날 치던 게 구름이의 코였음을 알 수 있었다. 온몸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는 구름이 덕에 동굴 내부가 전보다 밝아졌다.

“너…….”

“미에에에!”

저 이상한 울음소리를 듣자 울컥 안도가 피어올랐다. 구름이는 같이 있었구나.

혼자가 아니란 위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다가왔다. 그와 별개로 자다 일어난 몸은 자기 전보다 더 무겁게 늘어져 도무지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근육통에 끙끙거리는 신음 소리가 절로 나오고 다친 쪽 팔은 감각이 없었다.

다시 내게 달려든 구름이가 팔을 잡고 늘어졌다.

“메, 미에에!!”

“어. 나도 반가워. 근데 지금, 아……. 몸이 안 움직인다.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서 놀아 줄게.”

“메에!!”

자그만 머리로 내 몸을 퍽퍽 때리고 몸 위에 대충 덮고 자던 셔츠까지 물고 흔드는 행태에 머리를 짚었다.

“성질머리 진짜…….”

투덜대며 몸을 일으켜 구름이가 물고 늘어지는 쪽으로 크게 발을 뗀 순간이었다.

쾅!

간발의 차로 등 뒤를 스친 육중한 무게감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정수리부터 등줄기를 훑고 간 바람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삐걱거리는 목을 돌려 뒤를 돌아보자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돌덩이가 떨어져 있었다.

그건 시작이었다. 곧 동굴 전체가 흔들리며 진동했다. 우수수 떨어지는 돌가루와 함께 무작위로 낙하하는 주먹만 한 돌들에 기겁해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으아악! 이게 뭐야!! 구름이! 이리 와!”

내 셔츠를 물고 폴짝 앞서 뛰어가는 구름이를 따라 동굴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아래로 떨어지는 돌덩이의 크기가 커지며 쿵쿵 떨어지는 소리가 동굴 내부를 울렸다.

먼지가 일어 뿌연 시야 뒤로 저 멀리 밝은 빛이 보였다. 햇살이었다.

“빛… 빛이다!”

쿵!

슬쩍 고개를 들던 희망이 그 위로 쿵 떨어지는 바윗덩이에 깔려 즉사했다.

“씨발!!”

희망은 무슨, 저기까지 가다가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경악해 벽에 바짝 붙었다. 구름이를 꼭 끌어안고 그를 지켜보는데 전과는 차원이 다른 진동이 느껴졌다.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쩌저적 하고 어둠이 무너졌다.

손톱만큼 작았던 빛이 한순간에 하늘로 화하며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한순간에 반전된 사위에 눈이 부셔 눈살을 찌푸렸다.

“큭…….”

“가엾기도 해라.”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흐린 시선에 반짝거리는 인영이 비쳤다.

‘이 재수 없는 목소리는…….’

누군지 확인하기도 전에 눈앞에 떠올라 있는 상태창을 알아챘다.

「근처에 주인님이 있습니다. 키워드 명령에 거부할 수 없습니다.」

“네놈이 여길 어떻게……?”

눈을 끔뻑일 때마다 성산하의 모습이 뚜렷해졌다. 가까이 다가온 성산하의 시선이 먼지를 뒤덮어 쓴 머리부터 벗고 있는 상체까지 천천히 훑더니 다친 팔에 이르러서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 불쌍한 꼴은 또 뭐지?”

“네가 던전엔 대체 무슨 일이냐니까?”

“글쎄? 우리 멍멍이 구해 주러 왔지. 이리 와.”

‘날 구하러 온 거라고? 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바로 뜬 시스템창에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주인님이 ‘이리 온’을 하셨습니다. 서둘러 주인님께 달려갑니다.」

“씨발!! 뭐 하는 짓이야! 네 도움 따위 필요 없…….”

천 근 같아 꼼짝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좆같은 목줄 탓에 어떻게든 일어나 성산하에게로 향했다. 결국 따라 주지 않는 몸에 다리가 풀썩 꺾여 쓰러지자, 한 팔로 수월하게 받아 안은 성산하가 웃음을 흘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던 나와 달리 여유로운 성산하의 태도가 재수 없어 몸부림쳤지만 오히려 비웃음만 당했다.

“우리 멍멍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특이하게 하네.”

“누가 고맙다는 거야? 다 부수고 들어오길래 몬스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너 때문에 대가리 깨질 뻔했다고. 구하러 온 게 아니라 시체 찾으러 온 거지. 너.”

내 말에 완전히 매몰된 주위를 둘러본 성산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힐해 주면 되잖아.”

“하…!”

다친 사람이 아프든 말든 그저 치료해서 나으면 된 거 아니냐는 재수 없는 힐 만능주의!!

힐러가 한층 더 싫어졌다.

어쨌든 성산하에게 목숨을 빚진 건 사실이다. 어두운 동굴에 갇혔던 전과 달리 성산하를 보자마자 내 목전까지 드리웠던 죽음과 무기력감이 씻은 듯이 사라진 상태였다. 설령 성산하가 이대로 등을 돌려 나가 버린대도 나 혼자서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

‘의도야 뭐였든 일단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아주 잠깐 고민하기가 무섭게 성산하의 싸가지 없는 목소리가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팔은 또 왜 이런 꼴이야? 혹시나 해서 묻는데……, 다친 곳엔 지혈을 해야 한단 걸 몰라 그런 건 아니겠지?”

“닦았어. 피도 멈췄고.”

“…….”

“뭐, 말을 해. 왜 그딴 눈으로 보는데.”

말없는 성산하의 시선이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만 같아 울컥해 소리쳤다.

“포션이 있는데 그딴 걸 왜 알아야 하는데?”

“……지독한 포션 만능주의라니.”

“뭐, 뭐라고? 누가 누구한테 포션 만능주의래? 너야말로……!”

“그래. 혼자서 서러웠던 건 알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

성산하가 내 다친 쪽 팔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고통스러워 움찔 몸을 굳히는데 곧 잡힌 부분부터 따스한 감각이 흘러들어 왔다.

“큭, ……아아악!”

“……멍멍아. 힐 받으면서 그런 반응이면 서운한데.”

이미 감각을 잃어 파랗게 질려 버린 손끝에서부터 서서히 피가 돌며 순식간에 너덜너덜했던 팔이 치료됐다. 나가서 포션 사 먹으려고 했는데! 심지어 몸까지 상쾌했다!!

힐을 또 받아 버리다니. 자존심에 커다란 구멍이 나 울분에 몸부림쳤다. 성산하에게 잡힌 팔을 뿌리치려던 때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메에에에!!”

어느샌가 사라졌었던 구름이가 다시 나타나 성산하의 다리를 머리로 마구 박고 물어뜯으며 공격하고 있었다. 나와 성산하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하말?”

“구름아!!”

“구름이라니 무슨…….”

마음 같아선 이 새끼 아주 잘근잘근 씹어 버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미친놈이 작고 복슬복슬한 구름이를 발로 차 버릴 수도 있었다.

“구름아! 이리 와. 빨리!”

성산하의 흰 바지 자락을 물고 늘어지던 구름이가 눈만 돌려 날 쳐다봤다. 쓰읍! 입술을 깨물고 고갯짓하자 그제야 구름이는 성산하의 바지를 퉤 뱉고는 내게로 종종 걸어왔다.

“다른 사람 있을 땐 나오지 말랬지. 얼른 들어가.”

“메.”

“빨리!”

“미에에에에-.”

불만스럽다는 듯 긴 울음소리를 낸 구름이가 내 발목에 툭 머리를 박고 사라져 버렸다. 구름이를 구해 냈단 안도감에 시선을 돌리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성산하가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말을 어디서 구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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