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52.
“하말?”
익숙한 단어에 멈칫했다. 하말이라면 분명…….
「퀘스트 달성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하말♈의 유지 (1/1)
칭호 { 하말♈의 임시 보호자 } 를 획득합니다!」
시스템이 처음 구름이를 칭했던 이름이었다. 그런데 성산하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심지어 저렇게 동요하는 태도는…….
“그래, 토트의 눈도 그래서 듣지 않았던 거였어. 그럼 류수윤이…….”
혼잣말하던 성산하가 날 돌아보더니 명령했다.
“당장 하말을 다시 꺼내.”
“꺼져.”
곧바로 거절하자 성산하의 입꼬리에 비뚠 웃음이 걸렸다.
“멍멍아. 이리 와.”
“이런 비겁한……!”
또다시 눈앞에 뜬 주인님이 부른단 상태창과 함께 발이 저절로 성산하에게로 향했다. 한 발 남기고 바로 앞까지 다다르자 성산하가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우리 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할 것 같은데.”
목줄의 명령에서 벗어나 보려 옴짝달싹해 보던 나는 그 말에 참지 못하고 비웃음을 흘렸다.
“지랄, 마침 잘됐네. 내가 할 말이었거든 그거. 너 이미 걸렸어.”
“뭐?”
“그 하말이란 거, 나 말고 다른 데 또 있기는 하냐?”
성산하의 눈썹이 꿈틀하는 것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하말의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무려 황금빛 시스템창이 낸 연계 퀘스트였다. 절대 흔할 리가 없었다.
성산하는 순식간에 표정을 갈무리했지만 비뚠 눈썹의 각도로 심기가 불편함이 드러나 보였다.
“나랑 거래를 하자는 말인가.”
“거래? 좋지. 갑에는 내 이름 적는 것 잊지 마.”
“멍멍아. 거래도 살아 나가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던전은 이미 이틀 전 폐쇄되어서 너 혼자서는 여길 빠져나가지 못할 텐데.”
“내가 왜 혼자 나가? 네가 나 데리고 나가야지. 너 하말인가 뭔가 필요하다며. 나 죽으면 하말도 없는 거야. 노 호현 노 하말.”
성산하가 느릿하게 웃었다. 서늘한 눈이 위험하게 빛났지만 외려 이제야 본성을 드러낸 모습이 반가웠다. 정말 하말이 성산하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꼴이었으니까.
‘절대 안 보여 줘야지.’
오래지 않아 여유를 되찾은 성산하가 입을 열었다.
“우리 멍멍이가 나한테 원하는 게 뭐일지 기대되는걸.”
“일단 이 좆같은 목줄부터 풀어.”
투명화되어 보이지 않는 목줄이 있을 목을 툭툭 치며 말하자 성산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안 돼. 애초에 달지 않았다면 모를까 조건을 설정한 이상 강제로 해지할 수 없거든.”
가장 먼저 생각난 조건인데, 결국 태제헌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진 저 새끼한테 묶여 있어야 한다는 거잖아.
“대체 할 수 있는 게 뭐야? 어쩔 수 없지. 성의는 몸으로 보여라.”
팔짱을 끼고 말하자 성산하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 곧 겨우 웃음을 갈무리하고는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기대 이상인데. 어떤 식으로?”
“가장 먼저 날 밖까지 안전하게 안내해. 그리고 나가자마자 스토킹하지 않겠다고 전결 서약이라도 맺어야겠어.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무래도 존나 의심스럽거든. 아! 그리고 내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것도 잊지 마. 네놈이 보이는 성의에 따라 하말은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뭐, 무릎이라도 꿇는다면 가산점을 주지…….”
신나서 말을 잇는데 웃음기를 담은 성산하의 얼굴이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시야에 하얀 옷자락이 가득 찼다.
“억!”
목에 느껴지는 타격을 마지막으로 몸이 축 늘어졌다.
***
이초는 힐끔거리며 제 맞은편을 쳐다봤다. 제 상관이 돌아오자마자 대충 던져 놓은 남자가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었다. 먼지 구덩이에서 구른 꼴인 데다 옷은 어디 가져다 팔았는지 훤히 드러낸 상반신에 눈 둘 곳이 없었다.
결국 제 겉옷을 벗어 덮어 주자 곧바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지 않아도 심기가 불편할 성산하가 그려져 차마 돌아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던전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이초는 다시 제자리에 앉으며 제가 처음 주호현의 소식을 전했던 때를 떠올렸다.
던전의 파장이 달라졌다거나 수사국 지부장 한서현이 현장을 방문했다는 등, 센터의 정보원들에게서 전해 들은 소식은 많았지만 개중 가장 먼저 입 밖으로 튀어 나간 말은 주호현에 대한 것이었다.
“주, 주호현이 죽었답니다!!”
다른 부하와 대화하던 성산하가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들은 것처럼 황당한 웃음을 하고 돌아봤다.
“그럴 리가.”
“정말입니다. 센터 측에서 임시 폐쇄 전 진입했던 던전의 파동이 변하며 사상자가 한 명 발생했다는데 그게 주호현…….”
주호현을 꽤나 신경 쓰고 있던 것을 알아 듣자마자 서둘러 달려온 건데, 성산하의 반응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함께 있던 부하를 먼저 내보낸 성산하는 미간을 찌푸리고 뭔갈 확인하듯 허공을 응시했다.
곧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살아 있어.”
확신하는 대답에 차마 반박하지 못한 이초는 당황해 얼버무리며 주호현 때문에 하지 못한 보고를 이었다.
“예? 아……. 그렇군요. 그럼 아직 안 죽은 것일 수도……. 일단 던전은 폐쇄 조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센터 측에서도 요새 파동 변화를 인식하기 시작한 상태라 빠른 조치를 취한 것 같습니다.”
“……폐쇄를 했다고? 주호현은.”
“주호현은 죽었… 그게, 그쪽에선 죽은 걸로 알고 있으니까……. 그쪽에서도 나름 찾으려 노력한 것 같더군요. 수사국의 한서현도 한동안 현장에 머무르다 철수했다는 걸 보니까.”
“겨우 주호현을 찾는 데 한서현까지 움직여?”
“그쪽 막내랑 같은 팀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저번에 류수윤이 있던 팀 말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성산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어느 던전이라고 했지?”
“그게 오이도…… 가시게요?”
의도를 알아챈 이초가 놀라 묻자 성산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들어갈 방법을 찾아봐.”
“사, 사람을 보내 찾는단 말씀이시죠?”
“아니. 직접 들어가야지.”
무조건 몰래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란 소리였다.
센터가 철수했기에 망정이지, 본래 저렇게 뒷산 산책 나가듯 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닌데!
결국 센터 측에서 입구를 폐쇄하며 부른 용역들을 저희 사람으로 바꿔치기해 겨우겨우 틈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혼자 던전에 들어간 제 상관이 나올 땐 둘이 되어 나왔다.
“……나! 응…. 그거…….”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잠꼬대를 하는 주호현을 흘깃 바라보다 물었다.
“주호현이 살아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라이라프스의 목줄은 천랑의 귀속물이잖아. 주호현이 죽었다면 내게 반환되었겠지.”
“아아… 그래서…….”
대강 이해는 갔지만 애초에 왜 구하러 갔는지부터가 의문이라는 말은 눈치껏 하지 않았다.
“주호현은 그럼 어쩝니까? 다시 센터에 반환……하진 않으시겠죠?”
센터 소리를 하자마자 잠꼬대를 하는 주호현에 눈치가 보인 이초는 입을 다물었다. 머쓱하게 생수병을 드는데 돌아온 성산하의 목소리에 물을 뿜을 수밖에 없었다.
“주호현이 현재 하말의 대리자다.”
“푸우우웁!!”
급히 고개를 틀어 누군가에게 튀는 불상사를 겨우 막은 이초가 놀라 돌아봤다.
“주호현이 하말을요? ……아! 설마 류수윤입니까? 그렇담 류수윤이 하말이었군요!”
“아마도 그렇겠지. 주호현이 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놈들이 알고 있는지가 관건이지만.”
“그럼 센터로는 보낼 수 없겠네요. 류수윤을 죽인 놈도 조각을 찾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럼 이번 주호현의 죽음도 놈들의 계략 아닙니까? 하말은 보셨나요?”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인상을 찌푸린 성산하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멍멍이가 아주 멍청하진 않더군. 하말을 인질로 내게 딜을 걸었어.”
“이미 하말에 대해 인식한 상태였군요.”
“주호현을 대리자로 인식한 모양이야. 숙주의 몸이 위험에 처하더라도 나오지 않아. 귀찮게 됐어.”
성산하의 시선이 옆의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잠든 주호현에게 가 닿았다.
***
영혼을 담보로 이루어진 예속 관계가 사라집니다.
상태창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인벤토리 오픈이 가능해집니다.
소범위 경보 스킬이 해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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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인벤토리와 상태창뿐 아니라 여러 가지 사소한 제약들이 사라졌다는 알람이었다. 주호현이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된 것이다.
‘지독한 놈들……. 별걸 다 걸어 놨네.’
뒤이어 황금빛 퀘스트창이 떴다.
퀘스트 성공!
보상을 지급합니다.
+명성이 600 올랐습니다!
(현재 명성 : 1499)
+스킬의 숙련도가 오릅니다.
활성화할 스킬을 선택해 주세요.
►의신(醫神)의 손길 (S)
►황금 솥 (SS)
►Born to be Star (S)
►선산의 주인 (S)
►플라멜의 현안 (S)
►천지보감 (S)
►정신 방비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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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내 스킬들. 전엔 센터에서 탈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B급 스킬을 택했다지만, 이제는 결코 놓칠 수 없었다.
“황금 솥! 황금 솥 내놔!!”
스킬이 반환되며 메인 퀘스트 3이 클리어되었단 알람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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