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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53화 (53/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53.

이어서 연계 퀘스트가 진행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눈앞에는 아무런 창도 떠오르지 않았다.

‘뭐야, 설마 이게 연계 퀘스트 끝?’

그럴 리가 없었다. 연계 퀘스트들은 항상 마지막에 몇 배로 커다란 보상을 주곤 하는데.

“내 스킬들은? 스킬 내놔! 퀘스트!!”

메인 퀘스트#4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끝난 건 아닌지 시스템창이 멀쩡히 뜨긴 했다. 그러나 회색빛으로 비활성화된 상태였다.

“조건? 무슨 조건을 말하는 거지.”

뭔지는 알려 줘야 진행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니야? 미동도 없는 시스템창을 바라보며 투덜대던 중 반투명한 창 뒤로 열리는 문이 보였다. 황급히 일어나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세웠다. 일어나자마자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창들 탓에 주위를 살필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나는 처음 보는 공간에 와 있었다.

‘퀘스트 보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역시나 성산하였다.

“조용하길래 자는 줄 알았더니?”

“방금 일어났……. 여기 어디야?”

나도 모르게 순순히 대답하다 날카롭게 되묻자 성산하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천랑.”

“천랑이라고? 맞다, 너 동굴에서 날……!”

마지막 기억에 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질하는데 다가온 성산하가 내 다리 부근을 턱짓했다.

“발목에 하말의 문양이 있던데.”

“그건 또 언제 봤냐. 아니, 애초에 내가 동굴에 있는지는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목줄.”

‘개 같은 목줄. 별 기능이 다 있네……. 잠깐, 그래도 거리 제한이 있을 텐데. 던전을 다 돌아다녔단 소리야?’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진실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보니 동굴에서 구른 몸도 깨끗하고, 옷도 처음 보는 옷으로 갈아입혀져 있었다. 조금 소름 끼쳐 몸을 부르르 떤 나는 석연찮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구해 준 건 고맙고, 난 이만 간다.”

성산하를 지나치는 순간 곧바로 팔이 잡혔다. 웃음기 담긴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우리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이 남은 것으로 아는데?”

“난 너랑 할 말 없어.”

“내 몸을 원한다고 할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군?”

“씨발 무슨 개소리야?”

팔을 뿌리치고 돌아보자 애초에 날 도발하는 게 목적이었다는 듯 성산하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황이 조금 달라졌어. 난 하말을 보호할 책임이 있거든. 그런데 네가 하말을 갖고 있으니 자연히 널…….”

“누가 네놈에게 보호 따윌 받는대? 말이 보호지 감시한다는 소리인 거 모를 줄 알아?”

“당장 여길 나가서 어떻게 할 작정이지? 센터는 그쪽이 죽은 줄 알고 있던데. 살아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협박하냐?”

“그렇게 들렸다면 유감이군. 그저 아무런 계획이나 대책도 없어 보여서 말이야.”

무시하는 듯한 말에 욱해서 내가 예전부터 준비한 계획들을 말할 뻔했다.

‘정신 차리자. 이 미친놈은 천랑 길드장이라고.’

태제헌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나기에 대형 길드의 위력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에스퍼·가이드 센터는 그레이존이기라도 했지, 센터를 뛰쳐나온 이상 바깥은 길드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를 보호할 기반이 세워질 때까진 숨길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이 새끼가…….’

“내 계획은 그쪽이 알 것 없고, 대체 하말이 뭐길래 그러는 거야?”

“그거야말로 우리 강아지는 알 필요 없는 일이지. 착하게 주인님 보호 아래 숨어 지내는 건 어때?”

“씨발, 납치 감금한단 소리를 참 고상하게도 하시네. 뭔진 알아야 납득을 하든가 할 것 아니야.”

성산하는 고고한 눈으로 날 내려다봤다. 네 동의 따위 필요 없다는 눈빛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직까지 잡혀 있는 팔을 뿌리치며 답했다.

“뭘 잘못 알고 있나 본데, 내 입장에선 귀찮게 네놈과 엮일 바에야 하말이 없는 편이 나아.”

“하말은 마음대로 없애고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말도 없는 네가 뭘 안다고? 그냥 죽이면 끝이야.”

어디선가 양이 길게 우는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속으로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구름아. 미안하다……. 여기서 나가면 당근 줄게, 아니 양은 풀 먹나. 여튼 조금만 참아.’

뻗대며 뱉은 내 말에 성산하가 황당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 그게 어떤 건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

“내가 어떻게 알아, 새끼야. 네가 안 알려 줬잖아.”

결국 먼저 물러난 것은 성산하였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성산하가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전결 서약서 가져와. ……응. 누가 나랑 깊게 엮이고 싶어 해서.”

***

차가 사거리로 들어섰다. 주위에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는 곳이었다. 표지판을 흘깃 보고 말했다.

“여기서 내려 줘.”

길거리에 세워 달라고 하자 성산하가 웃으며 물었다.

“멍멍아. 노숙해?”

“씨……. 네 뭘 믿고 집을 알려 줘?”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닌걸. 괜한 데 힘 빼지 말라는 배려지.”

뒷조사할 거라는 걸 숨길 생각도 않는 태도에 속으로 흠씬 욕을 하며 문고리를 잡았다. 내리려던 때, 뒤에서 뭔가가 날아와 잡아챘다. 예전에도 본 적 있던 성산하의 명함이었다.

“보고 잊지 말고.”

“그건 걱정 말고 그쪽이나 내 스토킹하지 마.”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자 운전석의 기사가 날 돌아봤다.

뭐, 뭐. 턱을 까딱이며 썩 꺼지라고 차 위를 두드리자 그제야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

차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가야 할 아파트를 찾았다.

“베르사유 캐슬 107동 1709호라고 했지……. 아, 저깄다.”

미리 외워 둔 주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파트 단지 자체가 꽤나 넓은 부지라 조금 헤매다 겨우 107동을 찾을 수 있었다. 17층으로 올라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깔끔한 내부가 나를 반겼다.

작업실을 구하기 전까지만 있을 거처를 빌렸다고 해서 텅 비어 있을 줄 알았는데 꽤나 아늑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센터에서 도망친 후, 비로소 혼자 남아 안전한 곳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렸다. 그대로 소파에 늘어져서 혼자 남으면 보려 했던 주호현의 인벤토리를 열어 봤다.

“인벤토리.”

각성자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세 칸의 인벤토리가 가시화됐다. 역시나 별거 없었다. 싸구려 포션 한 개와 은색 체인에 연결된 반지 하나. 심지어 마지막 칸은 비어 있었다. 반지를 꺼내 살폈다. 하지만 감정이 되지 않는 것을 보니 아이템은 아닌 듯했다.

‘이제 센터도 나왔으니까 그냥 버려 버릴까…….’

꺼내려 손을 뻗는데 어디선가 도도도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는 생각에 벌떡 몸을 일으키자 역시나 어느새 빠져나온 구름이가 저 멀리 구석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야, 야! 구름아!!”

흘깃 나를 돌아본 구름이가 대놓고 무시하듯 홱 고갤 돌렸다. 모퉁이로 가 벽지를 갉아 대는 모습에 왜 이러는지 대충 짐작이 가 서둘러 달려가 잡았다.

“구름아. 미안해.”

“메에에에!”

“아니, 그 새끼가 너 가지고 형 협박하잖아. 아! 물지 마. ……아니, 물어라. 내가 잘못했다. 물고 화 풀어.”

“메에에에-.”

구름이를 달래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조그만 게 고집은 왜 이렇게 센 건지.

겨우 화가 풀린 구름이와 함께 쇼파에 누워 있다 설핏 잠에 들었다. 나를 잠에서 깨운 건 미친 듯한 빠르기로 눌리는 비밀번호 소리였다.

띠띠띠띠띠띠띠띠. 삐리릭.

문이 벌컥 열리고 양손에 커다란 마트 봉지를 든 연승연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호현 님!!”

들고 있던 봉투를 버리듯 내팽개친 연승연이 곧장 달려와 나를 덥썩 끌어안았다. 잠에서 덜 깨 얼떨떨한 상태로 연승연의 등을 한 손으로 쳐 줬다.

“환대가 격하네. 오랜만이다.”

“호현 님……. 무, 무 무사하실 줄은 알았지만, 너무 오래 안 오셔서…….”

“일이 좀 있었어. 나 온 줄 알고 있었어?”

“네. 앞에 택배 상자 위치가 달라져 있어서 바로 알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나오신 건가요…….”

울상인 연승연을 바로 앉히고 주위를 둘러보며 구름이를 찾았다. 눈치 빠르게 다시 돌아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던전에서 도망쳤어. 미안. 미리 말할 수가 없어서.”

“당연히 이해합니다.”

“나 나가고 센터는 어떻게 됐어?”

내 물음에 연승연이 차근히 말을 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있었지만 대충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간 것 같았다.

“수사국? 그건 뭐야. 여하튼 들켰으면 좆 될 뻔했네.”

“대체 어떻게 수사국 에스퍼들의 추적을 피하신 건가요? 수색에 특화된 이들로 꾸려진 에스퍼라 피하기 어려우셨을 텐데요.”

“샛길을 알고 있어서. 뭐, 중간에 일이 있긴 했지만.”

“무슨 일이……. 늦어진 이유도 다 그것 때문인가요?”

하마터면 영영 못 볼 뻔했단 말이 입술까지 튀어나왔다. 그러나 눈물이 그렁그렁한 다람쥐를 보자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내 조수로 삼아 준다고 꼬셔서 센터도 그만두고 나온 건데 만약 내가 죽어 버렸다면 혼자 남았을 연승연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성산하한테 구해졌다는 사실도 창피했다.

‘뭐, 애초에 전결 서약 탓에 하말에 대해서도 말하지 못하니까.’

성산하가 날 풀어 준 조건으로 내건 것들은 하말에 대해 함구할 것, 하말을 데리고 있는 이상 안전할 것. 두 가지였다. 특히 안전 운운하며 경호를 붙이려는 걸 겨우겨우 뜯어말렸지. 아니었다면…….

혀를 차며 머리를 털었다.

“뭐, 다 잘 끝났으니까 이젠 상관없어. 넌 어디 갔다 왔어?”

“호현 님이 오실까 봐 식재료 좀 사러……. 식사는 하셨나요?”

점심 소리를 듣자마자 배가 요동쳤다. 생각해 보니 며칠 전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먹은 밥이 마지막이었다.

“아니. 나 배고파서 죽을 것 같아. 며칠 굶었는지도 모르겠어.”

“세상에!! 어서 준비할게요. 호현 님 잠시 앉아 계세요. 아, 호현 님 옷들은 저기 큰 방 침실에 모두 넣어 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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