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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55화 (55/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55.

서명해야 할 계약서가 몇 부나 되었기에 연승연이 그를 작성해 넘기면 앞의 중개인이 확인하는 식이었다. 계약서를 꼼꼼히 읽으며 서명하던 연승연이 멈칫했다. 곧 고개를 들고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저…….”

“네. 무슨 일이시죠?”

“저희는 사설 공방인데요. 여기……. 사설은 직계 길드를 쓰라고 되어 있어서요. 없다면 그냥 공란으로 남겨 둬도 되는 건가요?”

“아니요. 사설 공방은 직계 길드가 꼭 있어야 해요.”

“네?”

“웬 길드?”

연승연과 나는 둘 다 놀라 물었다. 길드는 무슨 길드?

“우린 길드 같은 거 없어.”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요……. 공방 오픈은 길드 없이도 가능하지 않나요? 모든 공방이 길드 소속이지는 않을 텐데요…….”

“직계 길드의 의미는 해당 길드가 공증했다는 의미예요. 공설과 달리 사설 길드들의 관리를 길드 쪽으로 넘겨 불법적으로 재료를 수급하진 않는지, 불법적인 판매를 하지 않는지 길드 측에서 확인 후 공증했다는 말이죠. 공증을 받지 않으면 리스크가 너무 커서요.”

연승연이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당장 공증받을 만한 길드가 없습니다. 공증받지 않고도 가능한 방법으로 진행하고 싶습니다.”

“하아…. 정말 비추천드려요. 공증을 받지 않은 사설 제작자는 세금이 70 퍼센트거든요.”

“치, 칠십 퍼센트?”

무, 무슨 씨발!! 입이 떡 벌어졌다. 연승연 역시 혼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개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뿐 아니라 거래 시에도 따로 과세가 붙고 매출이 늘어도 또 누진세가 붙죠.”

그냥 하지 말란 소리였다. 이때 전화를 끊고 온, 사실 사장이었던 남자가 다가오더니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뭐? 길드가 없다고? 안 돼 안 돼. 수수료는 세금 제외한 수수료잖아. 결국 우리도 손해……. 아 맞다. 핫핫! 수수료는 없지? 여하튼! 다른 데 가도 받아 줄 중개소 없어. 개업도 어렵다고. 그리고 재료 파는 재료상들에게도 수수료 나가서 재료도 안 팔아 줘.”

“겨우 공증 하나 안 받았다고 어떻게…….”

“불만이면 협회 가서 따져!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옆에서 다른 중개인이 한숨 쉬며 말했다.

“정말 아무 데도 없으세요? 돈 받고 공증 서 주는 곳들도 있긴 한데 그런 곳들은 대체로 하급 길드라, 하급 길드는 다수의 공증을 받아야 해서 돈이 꽤 크게 나가요. 요즘 사기도 성행하고 있고.”

“몇 군데나 필요한데?”

“길드 체급에 따라 다른데, 음……. 대형 길드의 경우 하나, 중형 길드의 경우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적어도 두세 군데를 추천해요. 하급의 경우엔 최소가 다섯 군데고요. 여기 차트 보세요.”

차트 가장 위에는 역시나 천랑과 녹스가 1, 2번을 다투고 있었다.

충격받은 우릴 두고 사장이 쯧쯧 혀를 찼다.

“젊은 총각들이 뭘 모르네. 원래 자영업자라는 게 그런 거야. 싫으면? 길드 들어가야지. 들어가기 싫어? 그럼 세금 내면 돼. 기브 앤 테이크. 아니, 노 페인 노 게인인가? 여튼, 그게 자영업자의 슬로건이야. 자, 어떻게 할래. 계약할 거야, 말 거야?”

“…….”

다른 수가 없었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휴대폰을 꾹 쥐고 벌떡 일어났다.

“호, 호현 님. 어디 가세요?”

“전화 좀 하고 올게. 잠깐만 기다려.”

“역시, 뭐가 있긴 한가 봐? 파면 다 나온다니까. 없는 게 어딨어?”

사장의 말소리를 뒤로하고 건물 내의 휴게실로 나온 나는 기둥에 털썩 등을 기댔다.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은…….”

손에 쥐고 있던 명함을 내려다봤다.

「천랑 길드장 성산하

+225_10820_0000」

적혀진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원래 이렇게 길었나. 안 받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때에서야 신호음 소리가 끊겼다.

[강아지 혼자 버티기엔 바깥이 험하긴 하지?]

막상 성산하의 목소리를 듣자 말문이 턱 막혔다. 아 씨, 이거 어떻게 해야…….

[어딘지 말해. 기사 보낼 테니까.]

“…….”

[멍멍아? 듣고 있어.]

성산하의 재촉에 겨우 목소리를 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어, 산하야. 나 호현인데.”

뚝.

“씨발?”

전화가 끊겼다. 황당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보는데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야, 왜 끊어?”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보이스 피싱인가 했지.]

“미친…….”

겨우 욕을 참아 내고 차분히 말했다.

“너, 나에게 빚질 기회를 줄게.”

너머에서 한숨 소리와도 비슷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말을 트니 그 뒤는 수월했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돈 필요해? 아니면 납치 같은 식상한 상황은 아니지?]

“납치는 씨발, 네가 한 게……! 흠흠, 아니 그게 말이야, 내가 작업실을 차리려고 하거든? 근데 길드 공인이 필요해. 내가 다른 데 돌아다니고 이런 것보다 네가 공인 한 번 딱 해 주는 게 낫지 않냐? 나 안전해야 한다며.”

[작업실? 무슨 작업실을 차린다는 거지. 혹시 불법 가이딩이라면…….]

“무슨 가이딩이야. 포션 공방 차릴 거야.”

[포션이라고? 네가?]

멈칫한 성산하의 동요가 느껴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어차피 천랑 길드장에게 영원히 숨길 수는 없었다.

“던전에서 약 잘못 먹고 죽을 뻔했는데 그 이후에 스킬 생겼더라. 어제 말한 그 사람이랑 같이 동업하기로 했어.”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지?]

“내가 너한테 거짓말해서 뭐 해? 센터 내에선 상태창 열람 못 해서 나도 이제야 알게 된 일이니까 나한테 따지지 말고 너 잘하는 뒷조사해 봐.”

[…….]

“그래서 공증 서 줄 거야 말 거야? 안 해 줄 거면 빨리 끊어. 다른 길드 가야 하니까.”

[네가 아는 길드가 어디 있다고.]

“그냥 들어가서 몸빵할 건데?”

이번엔 아주 작지만 욕이 들린 것 같았다.

“야, 너…….”

[사람 보낼 테니 주소 불러.]

성산하가 전화를 끊은 지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중개소로 사람이 찾아왔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의 여자였는데 중개소 사람들도 아는 얼굴인지 그가 등장하자마자 다들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송아……?”

“천랑이잖아?”

“어어어! 안 변호사님 아니십니까? 어이쿠 여길 무슨 일로.”

안쪽에서 사장이 달려 나와 인사했다. 그를 부드럽게 무시해 버린 여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승연 님? 어느 분이시죠?”

“이쪽.”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내가 손을 들어 아는 체하자 여자가 다가와 명함을 내밀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천랑 법무팀 변호사 안송아입니다. 길드장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난 호현. 반가워. 계약하는 데 길드의 공증이 필요하다고 해서 말이야.”

“호현 님이시군요.”

옆에 앉아 있던 연승연이 당황해 인사하며 더듬댔다.

“아, 안녕하세요. 호현 님, 이쪽은 누구…….”

“우리 도와줄 사람.”

“천…랑에서요?”

“공증 전에 기본적인 계약서 검토부터 하겠습니다.”

안송아는 평범한 차림새와는 달리 눈빛이 살아 있었다. 곧장 우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관련 서류를 모두 가져가더니 눈을 빛내며 계약서와 확인서를 모조리 훑기 시작했다.

곧 그의 손에서 여러 종이들이 튕겨 나갔다.

“여기 날짜가 잘못되었네요. 다시 인쇄하세요.”

“아, 아이쿠, 이런 실수를…….”

“승연 님? 각성자 증명서를 일반으로 뽑으셨네요. 상세로 뽑으셔서 내역까지 나오게 해야 바로 수리됩니다. 다시 뽑아 오세요.”

“앗, 네…. 넵!”

그렇게 안송아가 앉은 탁자에서 여러 사람들이 서류를 돌려받아 일어났고 연승연의 경우엔 세 번이나 지적당했다. 나는 주호현과 강의진 쪽 모두의 주민 번호가 말소상태라-있다 한들 쓰지도 못하겠지만-해야 할 일이 없었다.

팔짱 끼고 가만히 등을 기대고 있는데, 막 건물 정보를 본 안송아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호현 님. 공방을 짓는 위치를 정말 이곳으로 하시는 겁니까? 신규 공방의 경우엔 월계나루와 가까운 쪽이 유리합니다. 또한 동쪽의 경우 신규 제작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되어 있어서요.”

“아. 그래서 동쪽으로 가려고 계약금까지 냈는데 다른 사람이 돈 더 준다고 해서 저 아저씨가 팔았대.”

“네?”

안송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던 사장이 홀로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어휴, 오, 오해가 있지 않았습니까. 저희 잘 해결된 줄 알았는데…. 하하…….”

“충분한 매물을 소개받지 못하신 거라면 차라리 저희 천랑 소속 중개소로 가는 게 어떠십니까?”

“아냐, 괜찮아. 아저씨가 수수료도 없애 줬어.”

“수수료를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안송아의 눈썹이 삐죽 올라가자 중개인이 삐질삐질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까 있었던 상황을 대충 설명하자 안송아의 표정이 더없이 딱딱해졌다.

“그런…… 일을 겪으셨다니. 특수지 매매법 위반인데도 봐주신 거군요. 하지만 호현 님, 원론상 작업실을 임대로 계약하면 수수료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수수료는 필수 조건이라 여기, 이렇게 0 퍼센트로 표기하면 자동으로 기본 요건인 8 퍼센트로 변경되게 되는 겁니다.”

“뭐라고? 그럼 이대로 계약했으면 수수료가 다시 생겼을 거란 말이야?”

“물론 수정 권고가 가지만 모두 중개소를 통하는 거라서요. 가끔 악덕 업체들은 정정일까지 숨기는 경우가 있답니다.”

안송아가 우리 앞에 앉은 사장을 째려보며 말했다. 둘러말했지만 결국 안송아의 말은…….

“뭐야. 아저씨. 나 속였어?”

“그, 그게……!”

“좋게 봤는데……. 씨발, 이렇게 뒤통수를 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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