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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56화 (56/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56.

“호현 님. 신고 처리하신다면 제가 맡아서 진행하겠습니다.”

“아이고, 안 변호사님! 호현 님!”

안송아의 말에 사장의 태도가 급변했다.

“제가 요즘 눈이 침침해서어, 계약서를 잘못 봤네요! 이거 누가 프린트한 건지, 어떤 새끼야? 어휴, 나중에 잡아서 아주 혼쭐을 내 주겠습니다. 이거 이거 임대가 아닌 전세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별로 큰일 아닙니다. 전혀 악의 없는……. 이거 죄송해서 어쩝니까. 어쩌긴 뭘 어째, 임대료도 깎아 드려야지!”

서늘한 우리의 모습에 사장이 애써 웃음 지으며 말했다.

“푸, 풀 옵션에 매대랑 간판 지원까지 해 드릴게요!”

‘흠……. 그럼 결국 공짜라는 건가.’

“호현 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 난 좋아.”

몇 번이나 뒤통수를 때리려고 한 건지, 괘씸하기 그지없었지만 집은 죄가 없다. 한적하고 웰빙과 힐링을 담은 정원도 마음에 들긴 했고.

가장 큰돈이 나갈 게 작업실을 구하는 돈이었는데 그 돈으로 재료를 더 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지막까지 처리를 도와준 안송아는 나와 연승연을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필요하시면 편히 연락하세요. 길드장님 말씀 아니어도 호현 님 부탁이라면 도와드릴 테니까.”

“고마워. 누나. 잘 가.”

손을 흔들어 배웅하고 집에 들어가자 연승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호현 님…….”

“응?”

“오늘 안송아 변호사님, 그러니까…… 천랑이랑 어떻게 알게 되신 건지……. 친분이 있으셨나요?”

“으엑, 친분이라니. 이번에 나올 때 도움 좀 받았어. 친분이라고 할 것도 없어.”

단호한 내 대답에 연승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몸을 뒤로 누이는 순간 어디선가 구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미에에에에!”

“야, 양이 왜 여기에!!”

“구름이! 다른 사람 있을 때 나오지 말랬지.”

연승연에겐 아직 말 못 했는데! 심지어 하말에 대해 함구해야 했기에 쉽사리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구름이를 다그치자 구름이가 반항적인 표정으로 내 바지 자락을 물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대충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갔다.

“하아. 집에선 나와도 된다고 했지만, 나 혼자 있을 때 나와야지!”

“호, 호현 님을 놔줘!”

연승연이 손을 뻗자 양이 연승연을 노려봤다. 둘의 대치에 결국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승연아. 괜찮아. 구름이는 내 거야.”

“……그럼 호현 님의 소, 소환수인 건가요?”

“그런 셈이지. 인사해. 여긴 구름이.”

“아, 안녕 구름아…….”

“구름이 너도 인사해. 이쪽은 연승연.”

“미에에.”

구름이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아무것도 없는 입을 우물댔다. 그를 안아 들어 눈을 쳐다보고 경고했다.

“야, 구름이. 얘 있을 땐 나와도 되는데 다른 사람은 안 돼. 진짜로. 또 이러면 문양을 지우든 널 가둘 우리를 찾든 할 거니까.”

“메에에에!”

“알아들었으면 신나게 뛰어놀도록.”

아래로 풀어 주자 구름이가 이리저리 들쑤시고 돌아다녔다. 연승연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구름이를 바라봤다.

“벽지……. 뜯으면 나갈 때 물어 줘야 하는데…….”

***

공방을 열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됐다. 기본적인 틀이 갖춰진 집이라 가장 중요한 이공간은 준비된 상태였다.

작업실의 이공간을 가동하자마자 우리가 할 일은 약초를 사러 가는 것이었다.

월계나루에 도착해 내린 나와 연승연은 신기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초입부터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여기가 월계나루구나…….”

“너도 안 와 봤어?”

“네? 네……. 저희는 따로 센터에서 수급을 해 주지 직접 사러 오지는 않아서요.”

“나도.”

내 말에 연승연이 고개를 기울였으나 그를 무시하고 발을 옮겼다.

여태까지 본 적 없던 새로운 거리가 펼쳐졌다. 품에 든 황동 솥에 온갖 재료들을 넣고 달려가는 사람. 등에 제 키만 한 도면들을 꽂고 흥정하는 여자, 한 꼬맹이 뒤를 졸졸 줄지어 따라가는 테이밍된 새끼 몬스터 등. 그야말로 비전투계의 천국이었다.

휘황찬란한 상점도, 세를 얻지 못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연 조그만 좌판도 있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한 던전 앞과는 달리 생기가 돌고 북적이는 거리였다. 대부분의 장인들이 제 공방에서 생활도 했기에 각성하지 않은 어린아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각성자들도 많아, 로브를 깊이 쓴 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제작계 각성자들이 모인 풍경을 처음 본 나와 연승연은 온갖 것들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연승연이 주위 상인에게 길을 물어보고 왔다.

“호현 님 마법 재료 도매 상가는 이쪽이라고 합니다.”

“그래? 우리 살 거 사고 여기 또 오자. 저쪽도 가 보고.”

“좋아요!!”

연승연과 함께 도매 상가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종이에 오늘 살 물품들을 죄다 적어 온 연승연이 그를 보며 말했다.

“일단은 기본적인 것들은 대량으로 납품받아야 합니다. 정제수는 워낙 많이 쓰기 때문에 그때그때 사기보다는 따로 배송 업체를 뚫어 놓는 게 좋다고 합니다. 대형 공방은 아예 탱크를 놓고 거기에 충전해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호현 님, 힐링 포션 위주로 판매한다고 하셨죠?”

“응. 그게 만들기 쉽고 돈 제일 잘 벌리잖아. 따로 연구도 해야 하는데 판매할 포션에 너무 힘쓸 수는 없어.”

“따로 연구까지……. 당장 포션을 제작해 팔 생각에 급급한 저와 달리 호현 님은 다 생각이 있으셨군요……. 대단하세요!”

“당연하지.”

으쓱이며 도매 상가에 들어섰다. 몇 걸음 가기도 전에 가장 초입에 있던 젊은 남자가 우리를 잡았다.

“손님, 재료 사려고 그러죠?”

“어? 어떻게 알았어?”

“그냥~ 감으로. 일단 앉아. 커피 드시나? 아니면 주스? 왜, 뭐 사려고. 이리 줘 봐요.”

이렇게 먼저 알아보고 대접하다니. 얼굴을 가렸어도 내 위엄은 가려지지 않나 보다.

기분이 좋아 내미는 주스를 덥썩 받으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로브를 잡아끌었다. 당연히 연승연일 거라 생각하고 뒤를 돌아봤다.

“응? 왜?”

“호, 호현 님…….”

연승연은 내 앞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럼 날 잡아당긴 건 누구지?

홱 반대편을 돌아본 나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너!!”

“쉿. 멍멍아, 조용히 해야지.”

「주인님이 ‘조용히’를 하셨습니다. 입을 꼭 다뭅니다.」

머리와 눈 색이 어두운 갈색으로 변한 성산하였다. 그의 뒤에서 이미 본 적 있던 부관 이초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너 어떻게!! 시스템창도 뜨지 않았는데?’

경악한 내가 할 말을 알아챘는지 성산하가 눈을 휘며 답했다.

“주인님 프라이버시는 지켜 줘야지.”

‘나는, 씨발!’

“조용히 한다면 풀어 줄게. 어떻게 할래?”

고개를 끄덕이자 금지가 풀렸다.

색만 바뀌었을 뿐 성산하의 외모는 그대로인데도 아무도 동요하지 않는 걸 보면 내게만 얼굴을 보인 것 같았다. 성산하가 따라오라는 듯 턱짓하고 뒤를 돌았다.

“어? 어 손님 어디 가십니까!”

“있어 봐. 나중에 올게. 승연아. 가자.”

손을 흔든 나는 성산하를 따라 도매 상가 바깥, 어느 인적 드문 막다른 길로 갔다.

“이거 계약 위반 아니야? 이젠 아주 대놓고 따라다닌다?”

“그런 불명예스러운 오해라니. 나도 우연히- 이쪽에 일이 있어 나온 거야.”

“그럼 가던 길 가지 왜 따라와서 귀찮게 구는데? 보고하면서 송아 누나 보내 준 것도 고맙다고 인사했잖아.”

내 말에 성산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멍멍…….”

“야!!”

다급히 소리쳐 말을 막은 나는 뒤의 연승연을 눈짓하며 성산하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내 조수 앞에서 그따위로 부르면 죽인다!!’

“흐음…….”

성산하의 묘한 웃음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대충 상황 파악을 했는지 다행히 뒤에 서 있던 이초가 어색하게 웃으며 성산하 앞을 막아섰다.

“저, 인사가 늦었지만, 이초입니다.”

“알아.”

“대부분 시장 초입 쪽에 위치한 상점들은 비싸거나 호객 행위가 심하기에 그냥 지나치는 게 좋습니다. 원래 재료들은 발품을 팔아야 싸고 질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 하지만 친절했는데.”

“하하, 진짜…… 됐으니 다시 가서 마저 사기당하도록 해.”

“사기라니?”

성산하가 비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와 손을 내저었다.

“어휴, 그랬나요? 저는 호현 님 보자마자 반말도 찍찍 하고 강압적으로 구는 것 같아서 별로더라고요. 제 착각이면 좋겠지만…….”

이초가 그렇게 말하자 왠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사실 그 설명은 이초의 뒤에 있는 얼굴만 멀쩡한 놈에게 더 어울리는 설명이었다.

그 사이 성산하는 연승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 포션 메이커라고 했나?”

“네? 네, 넵.”

“월계나루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도 가지지 않고 와서 어쩌겠다는 거지? 그쪽이 선임자면 모범을 보여야지 온몸으로 사기쳐 달라 외치는 수준이던데.”

“아, 알고 있었지만……. 호현 님의 경험도 중요…….”

“웃기는군. 방금 주호현이 먹을 뻔한 게 뭔지는 알아?”

“무, 무슨?”

싸가지 없는 성산하 앞에서 쩔쩔매는 연승연이 불쌍해 못 봐 줄 지경이었다.

“왜 애한테 시비야? 얘한테 말 걸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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