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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57화 (57/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57.

“……대체 센터 소속 연구원을 뭘로 회유해 저렇게 빌빌 기게 만든 건지 모르겠군.”

“됐고, 그래서 그게 뭔데? 내가 뭘 마셔?”

“뭔지도 모르면서 좋다고 받아먹으려고 한 거야?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성산하의 비꼼에 옆에서 또 이초가 나섰다.

“하하…하. 그게, 요즘 헌터들이 너무 과하게 각성하는 것 때문에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보조제나 음료 등이 성행하거든요. 위험성은 없지만 판단력이 떨어지거나 작게는 충동도 일어날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충동?”

“네. 엄청나게 큰 액수를 그냥 긁어 버리거나, 좋지 않은 품질의 매물을 떠넘기는 사기 사건이 여러 번 있어서요.”

“뭐? 그럼 아까 그놈……. 이 새끼가!”

사람 좋게 웃던 새끼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뚝뚝한 표정의 성산하가 고개를 저었다. 옆에 있던 이초가 연락을 받더니 성산하에게 말했다.

“산하 님. 움직임이 있다는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가자.”

떠나려던 성산하가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자신 없으면 쓸데없는 짓 말고 천랑으로 들어와. 착하게.”

“꺼져!”

사기의 충격이 컸는지 성산하가 떠나고 나서도 연승연의 얼굴이 영 좋지 않았다. 결국 다시 도매 상가에 들어가기 전 잠시 앉아서 쉬기로 하고 근처 카페에서 따듯한 음료를 사 왔다.

나란히 앉은 연승연이 제 손에 쥐어진 따듯한 차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먹어도 될까요…….”

“다른 놈들도 잘만 마시더라. 마셔.”

“죄송합니다. 호현 님. 제가 더 잘 알아봤어야 했……. 조금 구경하다 거절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될 줄 알았어요.”

“아니야. 사기꾼들이 개새끼지, 그게 왜 네 잘못이야? 좀 있다 들어가는 길에 한 대 때려 줄게.”

주먹을 휘두르며 말하자 연승연은 장난이라고 여겼는지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호현 님은 저를 이렇게 지켜 주시는데……. 그래도 호현 님, 참으셔야 해요. 상점끼리 연합을 맺어서 함부로 건드렸다간 보복을 당할 수도 있대요…….”

“그런 게 있어?”

“네. 여러 연합이 있는데 그중 악랄한 이들에게 잘못 걸렸다간 미운털이 박혀 월계나루에서 재료를 사지 못할 수도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희 같은 신규 공방은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고요.”

“별게 많네.”

길드 외에도 상인들끼리 모여 연합 같은 단체를 만들었다니. 알면 알수록 신기했다.

‘쳇. 난 포션 마스턴데……. 재료상한테 사기를 당할 뻔하다니. 녹스에서처럼 편하게 포션만 만들고 돈 벌면 얼마나 좋을까…….’

머릿속에 중개소 사장이 나타나 소리쳤다.

-자영업자는 다 그런 거야! 싫어? 싫으면 다시 녹스 가서 태제헌 개새끼 하든가!

사장이 하지도 않은 말까지 들렸다. 황급히 고개를 저어 머릿속의 아저씨를 날려 보냈다.

절대 그럴 순 없지. 불편해도 자유로운 지금이 더 좋았다.

조금 안정을 취한 나와 연승연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괜찮은 상점을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여긴 자주 쓰는 세이지류가 적어요.”

“저기가 질이 괜찮던데.”

“하지만 너무 비싸서……. 그럼 방금 전 32번은 어떠세요?”

“거긴 사장이 재수 없어.”

“네에…….”

결국 우리가 택한 곳은 노부부가 운영하는 조그만 재료상이었다.

***

사람이 사는데 이렇게 필요한 게 많았나? 제작하는데 이렇게 사야 할 것이 많았나?

본격적으로 작업실로 거처를 옮기려니 큰 것부터 사소한 것까지 살 게 천지였다. 작은 티스푼이나 손님이 발을 털고 들어올 러그, 하물며 실내화까지 필요하다니. 항상 모든 게 미리 준비되어 있던 곳에서 지내다 직접 구하려니 사소한 것들이 자꾸 빠져 골치를 썩였다.

한동안은 그렇게 작업실의 집기와 필수품들을 채우는 데 집중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후, 개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슬슬 포션을 만들어야 할 때라 며칠 만에 다시 월계나루로 가는 날이었다.

“준비됐어?”

“네! 금방 나가요!!”

전에 당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연승연은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오늘은 사전 답사도 할 겸 다른 포션 상점들을 구경하며 걸어가기로 했다.

“간판과 매대는 중개소에서 해 주기로 해서 다행이에요. 소도구랑 포션에 직접 닿는 물건들만 더 사면 될 것 같습니다. 포션병 같은 경우엔 단순한 게 있고 금박, 보석이 들어간 화려한 게 있어요. 아니면 그 중간에 금속 양각과 가죽으로 꾸며진 적당한 포션병도 있고요. 호현 님은 어떤 게 좋으세요?”

“단순한 거. 난 쓸데없이 꾸미는 거 싫어. 내 완벽한 포션이 안 보이잖아.”

툭 내뱉은 말에 연승연이 감동받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포션 메이커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대단하세요.”

“그럼.”

“아, 호현 님. 그리고 저희 공방 홍보는 어떻게 할까요? 너무 갈래가 많아서…….”

“홍보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다. 연승연도 익숙하지 않은지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헌트로폴리스라고 헌터들이 하는 커뮤니티가 있는데 거기에 배너를 올리는 방법과 프리미엄 결제를 하면 가입자 전체에게 광고 메일을 보내는 경우도 있대요.”

“그런 걸 보고 누가 사긴 해?”

“저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들 하는 추세라서요. 또 던전 앞 광고판에 시간을 사는 방법도 있고,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지나가는 헌터를 잡고 시음 이벤트를 하는 방법도 있대요. 시음 이벤트의 경우에는 포션 값이 조금 나가지만 헌터 커뮤니티 등에 무료로 홍보가 돼서 광고비는 나가지 않는다고…….”

연승연이 공부해 온 것을 열심히 읊었다.

‘이 강의진이 포션을 만들어 주는데 감사 인사와 뇌물은 못 받을망정……. 내가 헌터들 따라다니면서 제발 마셔 주십사 홍보까지 해야 해?’

뚱하게 들으며 함께 걸어가던 중 옆에서 돌연 큰 소리가 났다. 한 포션 상점 앞에 헌터 무리가 서 있었다.

“이거 진짜 맞아?”

“지, 진짜 맞습니다. 효능은 확실한데요.”

“좆나 구린데. 내가 강의진 포션도 몇 번 먹어 본 고급 입이거든.”

“푸하하, 구라 치기는. 열 명 모아서 한 번씩 혀만 대 봤다며!”

“씨발, 안 닥쳐?”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것 같은 헌터 둘의 모습에 가게 주인이 벌벌 떨었다. 다른 헌터가 작은 포션병을 아무렇게나 버리며 말했다.

“느낌도 안 나는데? 물 탄 거 아냐?”

“아닙니다. 순도 100 퍼센트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효과가…….”

“아무래도 내가 키가 커서 안 드나 봐. 한 병 더 줘 봐.”

“하, 하하……. 저희, 시음 규칙이 한 헌터에게 하나의 샘플이라…….”

“지금 미래 고객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헌폴에 비추 리뷰 올려 줄까?”

헌터가 버럭 화를 내며 매대를 뒤엎으려고 하자 포션 메이커가 안절부절못하며 결국 새 포션 하나를 꺼냈다.

“아, 아닙니다. 이거 받으세요. 원래 안 되는데 헌터님이 너무 머, 멋있어서 드리는 겁니다.”

“그래. 이래야지. 내가 별점 잘 남겨 줄게.”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충격적인 광경이 끝날 때까지 나와 연승연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보고 있어야만 했다.

“저거 뭐야…….”

“호, 현 님.”

충격받은 나와 연승연은 월계나루 장터로 가는 일정을 취소하고 온 상점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린 모든 제작자들의 적나라한 실태를 보았다.

포션 메이커뿐이 아니었다. 어떤 제작 업계든 고위 등급으로 갈수록 헌터들은 빌빌 기었고 하급으로 갈수록 반대로 제작자들이 천대당했다. 애초에 재룟값이 비싸기 때문에 하나라도 팔기 위해서는 헌터에게 굽신대야 했다.

“……씨발.”

“죄송합니다. 호현 님. 샘플은 안 될 것 같…….”

연승연도 나도, 지원을 받으며 연구만 하던 사람들이었기에 자본주의 시장에 나오면 이렇게 굴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또다시 머릿속에 아저씨가 등장했다.

-자영업자는 다 그런 거야!

눈 뜨고는 못 볼 꼴을 보며 중얼거렸다.

“승연아. 뭐 느껴지는 거 없냐.”

“네? 앗, 네에, 역시……. 포션을 사랑하는 마음은 잊지 말고 열심히 살면.”

“역시 최고가 되어야 해.”

“네?”

“하급이면 무시당하잖아. 상급으로 가면 그럴 일 없겠지. 그리고 난 실력도 최고니까.”

연승연이 당황해 눈을 굴리다 냅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래도 우리 홍보는 하지 말자. 폼 안 난다.”

“네…….”

“헌폴 후기? 별점 일 점? 그거 되게 무서운 건가 봐. 다들 그 말만 들으면 기절하려고 하잖아.”

“맞습니다. 되게 효과가 큰가 봐요…….”

“이만 상가 쪽으로 가자. 문 닫기 전에.”

연승연과 함께 충격의 하급 상점들을 지나 월계나루로 향했다.

오늘 갈 곳은 도매 상가가 아니라 홀수 요일에 열리는 장터였다. 헌터나 채집 스킬이 있는 각성자들이 모여 각자 던전에서 직접 채집한 아이템들을 팔기에 흔치 않은 특수한 재료들을 운 좋게 구할 수 있는 자리였다. 재료를 수급하려 계속 던전에 들어가는 헌터들을 대신해 판매만 위임받은 중개상들도 많았다.

“승연아. 여기 내가 필요한 거.”

쪽지를 건네자 연승연이 두 손으로 받았다. 곧바로 그를 펼쳐 읽더니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호현 님. 여기 곤달즙이나 졸린 가지……. 여기 적힌 전부가 힐링 포션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들인데요.”

“어. 힐링 포션 말고 가이딩 포션 만들 거거든.”

“네?”

연승연이 놀라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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