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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59화 (59/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59.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온 여자를 돌아봤다. 아직 본인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채집 스킬이 특별하거나 아니면 운을 기막히게 높여 주는 스킬이 있다거나 한 게 분명했다. 어느 쪽이든 채집가로서 귀한 인재였다.

“아까 말 들어 보니까 채집 스킬이 있나 본데……. 이것도 직접 채집한 거고?”

“네.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관법이 따로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바보같이…….”

‘자매가 둘 다 각성했나 보네. 동생 쪽이 전투계인가.’

내가 싫다며 어서 집에 가자고 떼를 쓰는 꼬맹이를 쳐다보다 연승연을 불렀다.

“승연아, 행복한 잡초랑 나머지 다 사. 가격은 사장님한테 도와 달라고 해. 보관법도 모르는데 가격이라고 알겠어?”

“넵.”

다 산다는 소리에 자매가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갑자기 왜 사시는, 도와주신 걸로도 충분합니다. 동정이라면…….”

“동정할 거면 그냥 돈으로 하지 귀찮게 왜 사? 이것들은 다 쓸데가 있어서 사는 거야.”

퉁명스럽게 답했다.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연승연이 값을 치르는 사이 여자에게 물었다.

“난 주……. 흠흠, 그냥 호현. 그쪽은 이름이 뭐야?”

“저는 백다인이라고 합니다.”

그때 백다인의 뒤에 숨어 있던 백다혜가 빼꼼 고갤 내밀어 소리쳤다.

“아저씨 몇 살이야? 우리 언니는 스물여섯 살이야!”

스물여섯? 예상보다 많은 나이에 조금 놀라 바라봤다. 백다인은 동생의 무례를 질책하기 바빴다.

“다혜야! 너 정말……. 호현 님. 아니에요, 신경 안 쓰셔도…….”

“누나, 번호 좀.”

“네?”

휴대폰을 꺼내 건네자 옆에서 연승연과 백다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승연이 털썩 봉투를 떨어트리고 중얼거렸다.

“호, 호현 님. 무슨…… 왜…….”

“우리 언니한테 꼬리 치지 마! 이 바보야!!”

둘의 격한 반응에 나와 백다인이 의아하게 돌아봤다.

“응? 꼬리를 쳐? 승연이 넌 왜 그래?”

“다혜야, 무슨 소리야. 손님이시잖아.”

연승연의 눈빛이 정말이냐고 묻는 듯해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뭐야. 재료 사려고 하는 거지, 당연히.”

“아아…….”

“손님 아저씨가 와서 사면 되잖아요!”

지갑을 열었다고 어느새 호칭이 격상했다. 백다인을 보며 물었다.

“매일 나와? 채집해야 하잖아.”

“아뇨. 정해진 날짜는 아직 없어요.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백다인이 떨떠름하게 웃으며 난리 난 좌판을 바라봤다.

“또, 자리를 옮겨야 하나 고민 중이라서요.”

“번호 줘. 여는 날 올게. 개인 주문도 받지?”

“제, 제게요? 하지만 주문하셔도 제가 구해 올 거란 보장이 없어요.”

“누나는 할 수 있을 거야.”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확신에 차 말하자 백다인의 눈이 커다래졌다. 잠시 입을 가렸던 손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백다인의 얼굴엔 그동안 보였던 위축이 조금 사라져 있었다.

양손 가득 백다인에게 산 재료들을 들고 공방으로 돌아가는데 옆에서 우물쭈물하던 연승연이 물었다.

“호, 호현 님.”

“왜?”

“백다인 씨를 콜렉터로 삼으시려는 건가요?”

연승연의 물음에 발을 멈칫했다.

콜렉터란 제작자들에게 고용된 용병이었다. 상급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은 구하기도 힘들고 특수한 만큼 수요가 많지도 않아서 던전에서 직접 수급해야 했다.

나 역시 이젠 말만 하면 구해다 바칠 녹스 길드원들이 없으니 콜렉터를 고용하긴 해야 하지만…….

“백다인은…….”

문제는 내가 만들고자 하는 포션은 굉장히 고등급이고 재료 역시 존나 구하기 힘들다는 거다. 사실 행복한 잡초로 그가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콜렉터로 고려한 수는 없었다.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 백다인은 안 돼.”

“왜, 왜 그런가요?”

“딱 봐도 전투력은 없어 보이잖아. 괜히 내 의뢰한답시고 던전 들어갔다가 죽으면 어떡해? 한두 개면 모를까 전속으로 받으려면 적어도 헌터 등급 A급 이상은 되어야 해.”

내 말에 연승연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군요. 호현 님께서 바로 연구를 시작하고 싶다고 하셨으니 콜렉터들을 모집하는 일들도 함께해야겠습니다. 다만 저희가 신규 공방이라 A급 이상 헌터들이 구해질지…….”

“걱정 마! 이 강…. 주호현이 콜렉터를 모집한다는데 이런 명예를 걷어찰 리가 있어? 아마 줄을 설 거다.”

“저도 옆에서 힘내겠습니다!”

***

지하실에 있는 세 개의 팬트리에 포션 제작에 필요한 재료와 물품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일 층에는 중개사가 들여다 준 진열대와 카운터, 사람들이 잠시 앉을 수 있는 로비까지 완성되었다.

심혈을 기울여 고른 고급 소파에 편히 앉아 구름이에게 밥을 주는 내게 연승연이 후다닥 달려왔다.

“호현 님. 방금 한 사장님께 연락해 봤는데 간판은 내일 온다고 합니다. 간판에 이름을 정말……. 그대로 할 건지 물어보시는데…….”

“그대로 한다고 전해.”

“넵……! 그, 그리고 방금 헌터 협회에서 정식 등록증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어디 봐 봐.”

이리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품에 택배 상자를 들고 다가오던 연승연이 얼빠진 표정으로 멈춰 서서 더듬댔다.

“호, 호현 님! 양이 지금 상달그라스의 열매를 모두 따 먹고 있습니다!!”

“메에에에.”

저를 부르는 줄 알았는지 내가 잡고 있던 가지에서 열심히 열매를 따 먹던 구름이가 고개를 들고 길게 울었다.

“응. 당근도 풀도 안 먹길래 걱정했는데 마법 재료는 먹더라.”

“원래……. 소환수가 밥도 먹나요?”

“나도 몰라. 근데 이렇게 좋아하는데 안 줄 순 없잖아. 게다가 누굴 닮았는지 비싼 걸 더 좋아해.”

“메에에에에!”

구름이가 귀를 펄럭였다. 가지를 아예 줘 버리고 연승연이 건네는 택배 상자를 열어 봤다. 열자마자 액자 안에 담긴 공방 등록증이 나를 반겼다. 하단에 헌터 협회와 천랑의 인장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이거 걸어 놔야 한댔지?”

“네! 제가 벽에 걸겠습니다!”

연승연에게 액자를 넘기고는 그 아래에 들어 있던 팔뚝만 한 표지판을 꺼냈다. 등록증과 마찬가지로 표지판도 손님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달아야 했다. 아무 곳이든 걸어 놓기만 하면 되는 등록증과 달리 표지판은 반드시 입구 옆의 말뚝에 부착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표지판에는 각 공방들의 등급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신규인 데다 경력도 등급도 신고하지 않았기에 자연히 최저 등급인 6등급을 받았다. 표지판도 갈색 나무판자였다.

열매를 다 먹고 상달그라스의 억센 나무줄기까지 질겅질겅 씹는 중인 구름이를 둥글게 피해 다가온 연승연이 내 손에 들린 표지판을 내려다봤다.

“아……. 잘 나왔네요. 정말 의뢰한 대로…… 아무것도 없게…….”

“이런 등급 처음이야.”

“정말 가게 이름을 정하지 않으실 건가요……? 호, 호현 님 뜻은 알지만…….”

연승연은 내 손에 들린 푯말을 보고 살짝 우려 섞인 표정을 지었다. 갈색 나무 표지판에는 ‘6등급’이란 글자 외에 공방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내가 가게 이름을 붙이지 않고 신고했기 때문이다. 평소와 달리 연승연의 반대가 거셌다. 손님들이 오지 못한다나 뭐라나? 하지만 다른 상점들을 돌며 팻말들을 확인했던 나는 고려도 않고 가게 이름을 짓지 않겠다 선언했다.

“응. 이런 나무 쪼가리에, 심지어 ‘6등급’이라는 끔찍한 단어 옆에 내 가게 이름을 박을 순 없지. 다른 등급들은 금, 은, 심지어 1등급은 보석 박아서 커스텀도 가능한데. ……아직도 걱정이야?”

“조, 조금요……. 물론 호현 님 뜻은 완벽하시지만 헌, 터들을 못 믿겠어서요……. 못 찾아올까 봐…….”

“흥. 그런 바보들은 내 포션을 먹을 자격도 없어. 걱정하지 마. 금방 1등급 먹을 테니까. 금, 아니다 은만 달아도 가게 이름 정하자.”

1등급 위에 마스터의 자리가 있긴 하지만, 어쩌면 내가 마스터라는 것은 평생 밝히지 못할 지도 모른다. 분명 태제헌이 찾아올 테니까. 그래도 1등급까지는 뭐, 껌이지.

물론 그때보다 스킬도 없고 돈도, 도울 부하들도, 재료도 없긴 했지만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1등급으로 가려면 손님이 많이 와야 하고, 손님이 많이 오려면 가게 이름이 있어야……. 아닙니다.”

“그나저나, 슬슬 포션 만들까?”

“네. 준비는 모두 마쳐 놓았습니다!”

내일이 개업일이기 때문에 이제 포션을 만들어야 했다. 연승연과 함께 지하의 작업실로 내려갔다. 잠금장치에 내 마나를 흘려 넣자 문이 열렸다. 문을 열자마자 곧바로 상쾌한 내음이 맡아졌다. 몸을 감싸는 마법 아이템들의 기운에 가슴이 들떴다.

‘내 작업실! 심지어 태제헌도 없고 감시도 없어.’

사랑스러워서 잠도 여기서 자고 싶었다. 연승연이 몸 상한다고 말려서 내 방은 결국 2층에 두긴 했다.

“하급 포션 백 개 정도면 부족한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일단 오늘은 스무 개만 만들…….”

“말했잖아. 오늘 다 만들 거야.”

“저,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저는 걱정이 되어서…….”

걱정 말라며 손을 내젓고는 제작대에 오를 준비를 했다. 손도 씻고 장갑도 끼고…….

초반이니만큼 우리 공방의 재정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동안은 한정된 재료로 최대 효율을 뽑아내야 했다. 포션 상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헌터들의 수요가 많은 하급 힐링 포션이 적합했다.

커다란 솥 앞에 서서 포션 백 개분의 재료들을 다 때려 박고 이번에 얻은 스킬 <황금 솥>을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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