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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60화 (60/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60.

“제작.”

시동어를 말하자마자 마력이 담긴 정제수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안의 재료들이 우러나와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은은한 빛과 함께 흘러나오는 향기에 연승연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호, 호현 님. 대단하세요! 향만 맡았는데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과장은.”

“정말입니다. 향이 좋아서일까요…….”

피식 웃으며 넘기긴 했지만 연승연의 말이 맞았다. <황금 솥>으로 제작하는 포션들은 감정 스킬로도 파악 불가능한, 나만이 확인 할 수 있는 추가 능력이 무작위로 붙곤 했다. 아마 이번 포션들의 추가 능력은 피로 회복 계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솥이 빛나며 제작 성공을 알리는 알림창이 떴다. 동시에 몸에서 마나가 주욱 빠져나갔다.

“큭.”

“호, 호현 님!”

무릎을 꿇고 주저앉자 연승연이 놀라 달려왔다.

“호현 님, 괜찮으세요?”

“……어. 괜찮아. 마나 계산을 잘못해서.”

“어서 이것 드세요.”

연승연이 제 인벤토리를 열어 마나 포션을 꺼냈다. 됐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뒤에서 날 받쳐 안으며 포션병을 입가에 대 주는 연승연의 행동에 결국 힘없이 흘러들어 오는 포션을 받아먹었다.

다행히 마나통이 적은 만큼 빠르게 차오르는 마나에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될 뻔했네. 고맙다. 승연아.”

“정말, 정말 놀랐어요…….”

“이젠 괜찮아. 포션 네가 만든 거지? 효과 좋네.”

“……감사합니다!”

제작하며 마나가 부족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오랜만에 서 보는 작업대에 주호현의 몸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연승연의 얼굴에 예의 그 고집스러운 표정이 드리웠다.

“아, 앞으로 호현 님의 조수로서 이렇게 무리하시는 일은 막겠습니다……!”

“알겠어. 알겠어.”

열심히 포션을 소분하는 연승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을 내렸다. 연승연이 가장 첫 포션이라며 신나서 가져다준 것이 손에 쥐여 있었다. 상품 같은 판매 라벨이 어색했다.

“감정.”

<맛있는 하급 회복 포션>

뛰어난 손길로 제작한 회복 물약

다친 상처를 낫게 한다.

일부러 제조한 사람의 이름은 등록하지 않았다. 꽤 괜찮은 결과물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다 정보창을 넘기자 창이 뒤집히며 나만 볼 수 있는 창이 떠올랐다.

추가 능력

–상태 이상을 무작위로 해지한다.

-활력 증가로 스킬 딜레이 50% 감소

무작위로 붙은 능력치곤 꽤나 잘 나왔다. 하급 포션에 붙을 만한 옵션들이 아니었다.

“하, 아깝네…….”

마음 같아서는 일반 포션의 열 배는 받고 싶었다. 하지만 신규 공방이니만큼 주 고객층은 대부분 고급 공방을 가지 못하는 헌터들이라 너무 비싸면 아예 팔리지 않을 거라는 연승연의 의견을 수용해 딱 두 배로 측정했다.

‘난 돈 많이 벌고 싶은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포션을 정리하는 연승연에게 다가갔다. 함께 포션을 상자에 담고 위로 올라가 진열대에 진열하는 것까지 돕자 나름 포션 상점 태가 났다.

“호현 님, 등록증은 카운터 안쪽 벽에 달겠습니다.”

“응. 표지판은 내가 꽂고 올게.”

가게 밖으로 나가 아직 아무것도 심지 않아 황량한 정원을 가로질러 갔다. 정원의 아치문 바깥에 파인 홈에 6등급 공방임을 나타내는 표지판을 끼워 넣고 손을 털었다.

“준비 끝.”

***

오늘은 포션 상점-이름 없음-이 개업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중개소 사장이 보낸 간판이 도착했다.

“허 참, 아직도 이해가 안 가네. 가게 이름도 안 넣을 거면 간판을 왜 만들어? 도대체 무슨 의미냐고 이게?”

“이름은 이름이고, 간판은 간판이고. 좀 휑하잖아.”

“……말을 말자. 내가 늙지 늙어. 거, 간판집에 얘기해 놨는데 일 년 안에만 정하면 무상으로 이름 박아 준다니까 웬만하면 일 년 안에 마음 고쳐먹고 연락해!”

“알겠어. 고마워.”

간판을 싣고 온 트럭에서 커다란 뭔가가 내려졌다. 화환이었다.

“뭐야?”

“그래도 개업인데 빈손으로 올 수가 있나. 아예 안 가면 안 갔지……. 나중에 안 변 오면 내가 화환도 보내고 잘 챙겨 줬다고 말 좀 해 주고.”

화환에는 개업 축하 문구가 쓰여 있었다. 중개소 사장이 떠나고 나와 연승연은 화환을 가게 문 옆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한 시간, 두 시간…….

가게 앞 거리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질 않았다.

개업 첫날에는 뭘 해야 하는 건지 몰라 일단 로비에 나와 앉아 있던 우리는 아무도 오지 않는 문만 멀뚱히 바라보다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저…… 호현 님.”

“승연아, 그냥 우리…….”

“머, 먼저 말씀하세요!”

펄쩍 뛰며 손을 내젓는 연승연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이렇게 기다리는 건 그만두고 각자 할 일 하는 게 좋겠단 말을 하려던 때였다. 가게 앞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누군가 왔어요!!”

연승연이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갔다. 가게 앞에 멈춰 선 트럭에서 또 다른 화환 하나가 내려졌다. 우리가 뚫은 도매 상가 사장님들이 보낸 화환이었다. 그리고 트럭이 떠나기도 전에 품에 작은 꽃 화분을 들은 백다인, 백다혜 자매가 가게에 왔다.

“누나!”

“호현 님, 승연 씨. 개업 축하드려요”

백다인이 웃으며 품에 안고 있던 화분을 내밀었다.

“이건 작지만 개업 축하 선물이에요. 다혜랑 같이 골랐어요.”

“정말 작긴 하네. 고마워. 들어와서 커피나 마시고 가. 꼬맹인 주스.”

가게를 가리키며 말하자 꼬맹이가 볼을 부풀렸다.

“꼬맹이 아니거든요? 아저씨 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니에요?”

“다혜야!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꼬맹인 물 마셔.”

“치사해!!”

뒤늦게 뛰쳐나와 인사한 연승연을 따라 둘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가려다 발을 멈추고 가게 앞 거리를 크게 둘러봤다.

“진짜 사람이 없네. 왜 없지?”

두 손으로 화분을 든 채 중얼거렸다. 다시 들어가려던 때, 저 멀리 골목 사이로 커다란 차 하나가 들어왔다.

‘손님인가?’

기대하기도 잠시, 눈앞에 뜨는 주인님이 근처에 있단 상태창을 보자 표정을 와락 구겼다.

커다란 차는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문이 열리더니 모습을 보인 건 역시나 이초였다.

“안녕하십니까. 호현 님!”

“……안녕 못하는데.”

반대편 문이 열리며 성산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달리 외형을 숨기지 않은 건지 유독 환히 빛나는 얼굴을 마주하자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 말도 안 되는 얼굴은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단 말이지.

“여긴 무슨 일이냐?”

“내가 후원하는 공방에 오지 못할 이유라도?”

“후원은 무슨……. 돈으로 내놔.”

“돈으로도 못 사는 공증을 얻어 갔으면서 욕심도 많지. 우리 강아지는.”

강아지, 강아지 거릴 때마다 마치 ‘강의진’을 부르는 것 같아 몸이 흠칫 떨렸다.

성산하는 자연스럽게 정원 안으로 발을 들였다. 주위를 둘러보는 표정이 탐탁지 않았다.

“역시.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망하기 일보 직전이네.”

“시비 걸러 왔으면 꺼져. 개업 첫날부터 재수 없게 하지 말고.”

“안전하긴 하겠지만……. 거지꼴로 나앉을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눈앞을 가리는군.”

당장 썩 꺼져 버리라고 말하려던 나는 이초가 트렁크에서 양손 가득히 꺼내는 과일 바구니를 보고 멈칫했다.

“뭐, 여기까지 왔으니까 잠깐 들어왔다 가든가.”

“개업 축하드립니다. 호현 님.”

이초가 꾸벅 인사를 하며 들어갔다. 그에 반해 성산하는 우뚝 서서 미동도 없었다.

“또 뭔데.”

눈썹을 치켜올리자 성산하는 내가 두 손으로 들고 있던 화분을 턱짓했다.

“그건 뭐야?”

“개업 선물이다. 누구처럼 빈손으로 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성산하의 하얀 장갑을 보며 말했다. 과일 바구니는 이초가 들고 갔으니 어쨌든 성산하는 빈손이었다.

피식 웃은 성산하가 손을 들었다. 허공을 뒤적이는 걸 보니 인벤토리를 여는 듯했다.

“마침 적당한 게 있군.”

뒤적이던 성산하가 뭔가를 꺼냈다. 손에 잡힌 건 탁구공만 한 씨앗이었다. 그걸 그대로 왼편 마당에 던진 성신하가 내게 말했다.

“물을 줘.”

“물? 승연아, 물.”

문간에서 불안한 낯으로 지켜보고 있던 연승연에게 말하자 급히 안으로 들어갔던 연승연이 물병을 가지고 나왔다.

“여, 여깄습니다. 호현 님.”

황량한 땅에 덩그러니 놓인 씨앗 위에 물을 죄다 쏟아부었다. 물이 닿자마자 씨앗의 표면이 반으로 갈라지며 연초록빛 싹이 올라왔다.

‘아이템인가?’

빠른 반응 속도에 눈을 찌푸렸다. 발밑이 떨리기 시작해 신기하게 고개를 들이미는데 뒤에서 뻗어진 팔이 내 몸을 단번에 낚아채 뒤로 끌어당겼다.

그게 성산하라는 것을 알고 짜증스레 팔을 뿌리치는 순간 성산하와 내 얼굴 위로 그늘이 드리웠다. 얼떨떨하게 뒤를 돌아보자 씨앗이 있던 자리엔 언제 이렇게 컸는지 두 팔로도 다 끌어안지 못할 정도로 두껍고 커다란 나무가 자라나 있었다.

“무…슨, 언제 이렇게 큰 거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무가 있던 자리부터 기운이 퍼져 나가며 듬성듬성했던 잔디가 푸르게 메워지고 담쟁이 넝쿨이 딱딱한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갔다.

보급형 공장 같던 황량한 집이 멋지게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척 보기에도 평범하지 않은 나무로 다가가 손을 댔다.

“감정.”

<녹음의 엘프목>

희귀한 생물체.

매우 단단하고 정화 기능이 있다. 생명력이 질기다.

“대체 뭘 준 거야?”

“영역 보호에 특화된 나무다. 혹시 모를 위험은 대비할 수 있겠지.”

성산하의 시선이 구름이가 있을 발목에 가 닿았다. 녹음의 엘프목은 나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꽤나 귀한 식물 같긴 했다만 뭐가 됐든 내 소중한 앞마당에 성산하의 흔적이, 그것도 존나 크게 남은 게 견딜 수 없이 거슬렸다.

“누가 이딴 거 필요하대? 구름인 내가 알아서 지켜. 당장 베어서 가구점에 갖다 팔아 버…….”

“우와! 예쁘다!!”

엄포를 놓던 내 말은 뒤에서 들려온 앳된 목소리에 막혔다.

어느새 가게에서 뛰어나온 백다혜가 펄쩍펄쩍 뛰며 늘어진 나무에 달린 나뭇잎을 받으려 손을 벋었다.

“언제 생겼지? 언니! 이리 와 봐!!”

다시 사라질 거니까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말하려는데 지금까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지나가다 멈춰서 말했다.

“집이 너무 예쁘네요. 새로 생긴 공방이에요?”

“네, 네! 맞습니다! 포션 상점입니다.”

“이렇게 멋진 집에서 파는 포션은 어떨지 기대되네요. 다음에 들릴게요!”

“감사합니다!”

서둘러 달려 나와 답하던 연승연이 기쁜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호, 호현 님!”

“나만 믿으랬지. 다들 알아서 찾아온다니까.”

팔짱을 끼고 답하자 뒤에서 성산하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태세 전환이 빠르네.”

“뭐, 나무는 죄가 없으니까. 크고 우람한 게 나랑 딱 어울리기도 하고.”

“큽……. 그래. 어울리네.”

“그쪽도 차라도 마시고 가든가.”

먼저 등을 돌렸다. 내 뒤로 따라오는 성산하의 기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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