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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61화 (61/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61.

로비에는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누가 초대라도 한 것처럼 편히 앉은 성산하와 달리 백다인은 제 앞에 앉은 게 천랑 길드장임을 알았는지 잔뜩 얼어붙어 동생을 껴안고 있었다. 데굴데굴 눈을 굴리는 이초와 그 사이를 바지런히 돌아다니며 각자의 앞에 차를 내어 주는 연승연까지. 마지막으로 상석에 앉아 그 모습들을 둘러본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어때? 멋지지?”

“워낙 외진 곳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웬만한 포션 상점보다 번듯한걸요? 이렇게 대접까지 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호현 님.”

“밝고 따듯해 정말 보기 좋아요.”

이초와 백다인의 치사를 흐뭇하게 들었다. 녹스는 건물부터 모든 것들이 어두운 편이라 내 공방은 무조건 밝고 웅장하게 만들고 싶었다. 아직 밝기만 하고 웅장까진 챙기지 못했지만 그건 나중으로 조금 미뤄 두고.

다들 일어나 공방을 둘러보는 사이, 우아하게 앉아 차를 홀짝인 성산하가 만족스러운 감탄을 흘렸다.

“괜찮은 차군.”

“당연하지. 누구 공방인데.”

“내 취향까지 알아내서 준비한 거야? 자주 찾아오라는 어필 같은 건가?”

“이 씨……!”

실실 웃으며 헛소리를 하는 성산하에게 나도 모르게 욕을 뱉으려다 엄청난 인내심으로 참아 냈다. 꼬맹이가 내 바로 뒤 쇼케이스를 구경 중이었다.

“헛……소리하지 마라. 첫날이라서 오늘은 봐준다만, 다음엔 쓸데없이 오지 마. 나 앞으로 존… 개…… 엄청 바쁠 예정이라 너 상대할 시간 없어.”

“글쎄. 바쁠 일이 생길까?”

“이게!!”

발끈해 벌떡 일어나는데 옆에 진열된 포션들을 구경하던 이초의 목소리가 나를 막았다.

“호현 님. 하급 힐링 포션만 있는 건가요? 포션 좀 사려고 하는데요.”

“포션? 안 팔아.”

“네?”

내가 미쳤다고 너한테 내 소중한 포션을 파냐. 단호하게 내젓는 손길에 이초의 옆 칸에 서 있던 백다인이 헛숨을 들이켰다.

“아직 첫날이라 판매하지 않는 건가요? 사실 저도 포션을 사려고 했거든요.”

“던전 들어가려고? 얼마나 필요한데?”

“그게…. 가격에 맞춰 사려고……. 한 열 개 정도 사려고 했어요.”

“그냥 줄게.”

“호현 님! 저는요!”

“아니요, 사려고 해요.”

“제게도 팔아 주시면 안 될까요?”

이초야 그렇다 쳐도 다인 누나까지 돈을 못 써 안달인 모습이 의아했다. 답은 연승연에게서 돌아왔다.

“지인의 가게라 팔아 주려는 것 같습니다. 흔히 있는 일이라서요.”

“왜? 돈 못 벌까 봐 동정하는 거야?”

“에이, 호현 님. 설마요!”

“응원하는 거죠.”

“앞으로 잘 풀리라고 처음으로 길을 뚫어 주는 겁니다.”

“맞아요! 승승장구하셨으면 좋겠다고.”

“우리 포션 비싸. 그리고 필요하지도 않은데 살 필요 없어. 진짜 필요한 사람들이 못 사면 어떻게 해?”

“호현 님…….”

연승연이 감동받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초는 왜 필요가 없냐며 무조건 필요하다 항변했고, 백다인 역시 이초의 열변을 보며 끼어들었다.

“정말 필요해서 사려고 했습니다!”

“저도 모레 던전에 들어갈 거라 응급 포션이 필요한 참이에요.”

끈질긴 둘의 조름에 먼저 백기를 든 건 나였다.

“첫날이라 하급 힐링 포션 백 개밖에 없어.”

“능력치가 높은 편이 아니라 하급 포션이면 돼요.”

“저도 이제 막 수료를 마친 신입들 주는 용이라 하급 포션으로 살 생각이었습니다.”

“정 그렇게 사고 싶다 하니 열 개씩 정도는……. 승연아.”

둘에게 포션을 보여 주라 하려던 참이었다. 여태껏 조용히 있던 성산하가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기회 있을 때 팔지 그래? 백 개…… 다 못 팔 것 같은데.”

“뭐? …끼가. 시비 걸러 왔냐?”

내 공방에서까지 저 재수 없는 놈이 활개를 치는 꼴은 못 본다. 문을 가리키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너한텐 안 팔아, 너도 마찬가지야. 둘 다 나가! 이제부터 천랑은 우리 공방 출입 금지라고!”

“하루에 몇 개까지 만들 수 있지?”

“뭐?”

딴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고 쳐다봤다. 성산하가 진열된 하급 포션들의 개수를 가늠하며 말했다.

“곧 헌협에서 대대적으로 청년 제작자 지원 사업을 시작해. 정부에서 압력이 들어와 우리도 참여해야 해서 말이야.”

“지원 대상을 우리 공방으로 하겠단 말이야?”

“어느 정도 기준만 맞춘다면 대량으로 주문하지. 물론, 퀄리티가 조금 떨어지는 건 감안하고 하는 말이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쿼, 퀄리티가 뭐?”

태연자약한 성산하의 말에 주먹을 꾹 쥐었다. 나만은 내 포션의 가치를 알고 있다. 지금은 아무도 몰라준대도 이렇게 무시당하며 팔 생각은 절대 없다고!

단박에 거절하려던 순간 연승연이 날 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빛나는 다람쥐의 눈을 보자마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챘다.

“안 돼. 거절할 거야.”

“하, 하지만 호현 님! 저희 곧 용병도 구해야 하고, 호현 님 개인 연구를 위해서라면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

“호현 님께서 수, 숭고한 목표를 이루는 것을 돕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앞으로 천랑은 제가 호현 님 대신 응대하고 진행하겠습니다!”

연승연이 두 주먹을 꾹 쥐고 결심에 차 말했다. 한숨과 함께 손을 뻗어 연승연의 머리칼을 헝클였다.

“다람쥐는 안 돼. 저 새끼가 얼마나 미친 새끼인데?”

“예? 저, 저 말인가요?”

“너도 명심해. 길드장들은 다 또라이들이야.”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연승연을 보다 성산하가 있을 쪽을 돌아봤다.

그나저나 저걸 어쩐다. 재수 없었지만 연승연의 말대로 지원을 받는다면 내 공방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결국 사장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가서 발주서 샘플 가져와.”

“네!”

다시 로비로 나가 성산하의 앞에 앉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운 시선을 못마땅하게 마주하며 물었다.

“뭐, 얼마나 필요한데.”

“자신 있나 봐?”

“없겠냐? 참고로 우리 포션은 다른 곳 가격의 세 배야.”

뒤에서 서류를 들고 나오던 연승연이 눈을 크게 떴다. 흔들리는 눈빛이 ‘세 배가 아니라 두 배잖아요!’ 하며 소리 없이 부르짖었다. 가뿐히 무시하고 어깨를 으쓱이자 성산하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참……. 사업에는 재능 없다는 거 인정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싫으면 꺼지시든가.”

“계약금은 선지급하지.”

선의로. 찡긋거리며 눈웃음치는 성산하의 모습에 와락 얼굴을 구겼다.

***

작업실을 차리느라 홀쭉해졌던 계좌는 한 번에 입금된 계약금과 착수금, 청년 제작자 지원금으로 전보다 몇 배로 불어났다. 하지만 대형 길드의 수주라 그런지 주문량이 너무 많았다. 연승연과 나 둘이서 수량을 맞추려니 마나가 차는 대로 포션 제작에 매진해야 했다.

“이 많은 포션을 다 쓴다니 믿기 힘들어요. 심지어 저희 말고도 내부 제작자들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엇, 호현 님 지금 몇 회째세요?”

“두 번째야.”

“아니에요! 분명 네 번째……. 이제 쉬셔야 해요. 어서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어떻게 알았지? 연승연의 말대로 마나가 위험 수치 아래로 내려갈락 말락 했다. 이놈의 쓰레기 마나는 늘지를 않아요. 투덜대며 작업대에서 내려왔다.

다른 포션 메이커들과 달리 나는 <황금 솥> 덕에 포션들을 제작할 때 자잘한 공정이 필요 없었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굉장한 메리트였으나 주호현의 마나가 부족해 때마다 휴식을 취해야 했기에 결국 만들 수 있는 포션의 개수는 연승연과 그다지 차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추가 능력을 위해서는 연승연의 포션에도 후처리를 해야 하니까…….

‘백날 하급 포션만 만들 수도 없고. 연구 시작해야 하는데.’

마나가 떨어졌다면 두 가지 방법뿐이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든가, 마나가 떨어지는 즉시 마나 포션을 빨아 충전하든가. 하지만 포션을 만들기 위해 포션을 먹는다니 효율이 너무 구렸다.

이게 다 성산하 탓이다. 그 새끼의 의뢰만 받지 않았어도……. 내 예술적이고 이상적이었던 공방이 단순한 공장이 되었잖아.

소파에 늘어져 머릿속으로 성산하와 싸워 이기는 상상을 했다. 내 주먹으로 성산하가 다섯 번쯤 쓰러졌을 때, 누군가 정원에 들어왔다는 벨이 울렸다.

“손님이다! 내가 나갈게!!”

첫날의 성산하와 백다인 이후로 손님이 없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뛰어올라 갔다. 그러나 눈앞에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이초였다. 김이 새 어깨가 축 처졌다.

“안녕하십니까. 호현 님!”

이초가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손님인 줄 알았네.”

“하, 하하…. 너무 실망하시면 상처받습니다. 차라리 길드장님이 오셨더라면 더 나았을까요?”

“왜 왔어? 아직 납기일 남았잖아.”

“저번에 받은 포션들이 품질이 너무 좋습니다. 애들에게 인기가 굉장한데다 기존 천랑 헌터들까지 더 구할 수 있냐고 난리가 났어요.”

“당연하지. 누가 만든 건데.”

“그래서 말인데 혹시……. 추가 발주 가능한가요?”

이초가 뒤늦게 본심을 꺼냈다. 눈을 빛내며 묻는 이초의 제안을 칼같이 거절했다.

“되겠냐? 지금 천랑 놈들 물량 만드느라 내 공방이 공장이 되었다고.”

“조금도 안 되는 겁니까? 딱 10 퍼센트 만이라도요!”

“안 돼. 그쪽은 들어도 이해 못할 심오한 문제가 있어. 심지어 성산하가 따로 의뢰한 것도 있잖아.”

심오한 문제라 함은 주호현의 좆만 한 마나통이지만 이초는 알 바 아니니까. 납기일 전까진 얼씬도 말라며 쫓아내고 난 후에 정원 문을 닫으려는데 저 멀리서 파란 트럭 하나가 덜덜대며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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