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62.
우리 가게 앞에 멈춰 선 트럭의 옆면에는 ‘데이지37’이라는 글자가 크게 랩핑되어 있었다. 차 문이 열리고 곰 같은 남자가 트럭에서 내려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어. 진명아.”
진명인 우리가 거래하기로 한 도매 상가 노부부의 손자였다. 주문한 재료들을 내려놓는 진명의 곁으로 다가가 상자를 받아 들었다.
“어어, 제가 해도 되는데요.”
“도와줄게. 검수나 해.”
“넵. 이번에 따로 주문하신 재료들은 이 상자에 들어 있고요, 나머지는 전과 같이 힐링 포션 재료 열 박스, 정제수 육백 리터는 오늘 저녁에 올 겁니다.”
“개수 다 맞네. 그나저나 저번에 말한 건 알아봤어?”
“아, 그거요…….”
내 물음에 진명이 목장갑을 낀 손을 몇 번 쥐었다 펴며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거 있는 것 중에 하나라도 찾아 보려고 했는데 도무지 틈이 안 나옵니다. 매물이 없거나 아님 말도 안 되게 비싸서…….”
“역시……. 그럼 매물 있는 건 얼만데?”
“왁토스의 발굽은 개당 오백만 원 선, 새벽에 딴 은하꽃의 꽃봉오리는 이천만 원을 호가해요.”
“뭐, 뭐?”
“그 둘 외에 나머지는 구하기가 힘들고요.”
생각지도 못한 금액에 입이 떡 벌어졌다.
“말도 안 돼! 라이커의 갈기랑 세이렌의 깃털 외에는 그렇게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도 아닌데도?”
“애초에 시장에 풀린 매물이 적어서 부르는 게 값인 것 같습니다. 특수 물품은 헌터들 경매로 들어와서 그런지 월계나루에선 시가예요.”
“그 돈 주고 사는 사람도 없잖아!”
“그렇긴 한데 그 사람들은 안 팔면 그만이라는 식이라서요. 죄송해요. 사장님. 믿고 맡겨 주셨는데…….”
“미친.”
머리를 짚었다.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실패하면 사라져 버리는 소모품이라 한두 개 필요한 게 아닌데 매번 살 수도 없고.
“일단 알겠어. 안에 들어와서 포션 가져가. 사장님한테 전해 드려.”
“안 주셔도 되는데……. 맞다, 할머니가 반찬 좀 해서 보낸다고 하셨는데요.”
“우리 집 다람쥐가 요리 잘해서 괜찮다고 그래.”
“예? 아… 예.”
품에 포션 상자를 안은 진명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떠났다.
꽤나 뼈대 굵은 데이지 상가 사장님들도 못 찾은 거 보면 월계나루에선 못 구한다고 보면 된다. 남은 수는 용병을 구해 직접 재료들을 수급하는 것뿐인가.
방금 진명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려 지하로 내려갔다가 열심히 포션을 만드는 연승연의 뒷모습에 조용히 문을 닫고 위로 올라왔다.
마나 조루인 주호현 대신 연승연이 고생 중이니까, 용병 찾는 것 정도는 내가 해 줘 볼까. 귓가에 연승연의 감동받은 목소리가 울렸다.
호기롭게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마우스만 딸깍이다 결국 휴대폰을 들었다. 아래로 내릴 필요도 없이 등록된 번호는 한 페이지로 끝났다.
“음……. 성산하는 꺼지시고. 이초는 성산하 따까리니까 빼고….”
남은 건 송아 누나랑 다인 누나인데. 왠지 송아 누나에게 물어보면 일이 커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백다인 누나>라고 적힌 번호를 꾹 눌렀다.
[여보세요. 호현 님?]
“응. 누나. 나 궁금한 게 있어서.”
[궁금하다니, 어떤 거 말인가요?]
반대편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꼬맹이 목소리가 넘어왔다.
[우리 언니 지금 전화 안-된-다-고-!]
“응. 나 우리 가게 직원 좀 구할 생각인데.”
[직원을요?]
“헌폴에서 구하는 방법이 있다던데, 어떻게 하는지 알려 줘.”
***
헌트로폴리스. 각성자들을 위한 커뮤니티다. 녹스 애들이 하는 대화에 자주 등장해 각성자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진 별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용하게 될 줄이야…….
잠시 보안 검사 후 헌트로폴리스 메인 페이지가 펼쳐졌다. 심플한 로고 아래의 배너들에선 화려한 광고들이 지나가며 눈을 사로잡았고,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진 게시판은 수많은 글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오른쪽 위에 회원 가입이라고 했지…….”
다인 누나가 알려 준 대로 회원 가입을 하러 갔다. 그런데 겨우 십 센티 움직이는 동안 왜 이리 눈길을 끄는 게 많은지. 가장 커다란 배너에 마침 포션 공방 광고가 뜨길래 나도 모르게 클릭했다.
“오늘 너의 mood, 감성 포션? 공방 이름 특이하네.”
오늘 너의 어쩌고 포션은 청년 포션 메이커 네 명이 힘을 합쳐 창업한 감성 포션샵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도 우리처럼 어떤 길드의 지원을 받는 듯했다. 처음 보는 컨셉트가 특이해 조금 둘러보려는데 아무리 화면을 내려도 아름다운 던전 풍경 사진만 나왔다. 어쩌다 나온 포션도 끄트머리에 겨우 걸린 사진뿐. 겨우 끝까지 내려가자 포션들이 나오긴 했지만 성분이나 효과가 기재되지 않은 데다 도통 무슨 포션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프렌치 감성을 담은 오후의 포션? 비 오는 날 홀로 던전에 남은 한, 남자…의 한숨……? 이름이 다 왜 이래?”
프랑수아 새끼보다 더 지독한 놈들이다. 이걸 보고 누가 사긴 하는 건가? 보다 보니 나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아 서둘러 페이지를 나갔다.
다시 메인으로 가자 새로운 게이트가 생겼다거나 신규 던전 공략 파티를 모집하는 등 여러 게시글들이 지나갔다. 엄청나게 많은 글들 사이로 가끔씩 태제헌의 행방을 찾는 제목들도 보였다.
“태제헌 이 개새끼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천랑이랑 엮여서…….”
본래 목적을 잊고 이리저리 클릭하며 돌아다니던 중 눈길을 끈 한 게시글이 있었다.
[잡담] 그럼 이제 포션계 1타 누구야?
강의진 죽었잖아,, 나도 슬슬 보험용 고급포션 하나 장만하려고 준비중인데 어디 노려야 할지 모르겠어
댓글(16)
- 프랑수아
└ 프랑수아는 보험으론 적절하지 않죠.
- 솔직히 없다고 본다
- 신성 뜨기 전까진 참으려고. 난 다행히 삼촌이 준 거 35개 정도 있거든!
└ 대박 강의진 걸로?
└ 응 삼촌이 지인이라! 사실 35개도 불안해ㅠㅜ 목숨이 제일 소중하잖아.
└ 진짜 부럽다……
- 나 이번에 대형길드 중 하나 들어갔는데 거기서 포션 하나 받았거든 존나 좋더라 조만간 그사람 뚫을까함
└ 정보좀
└ 대형이면 어디? 설마 녹스?
└ ㄷㅆ/ 미안 내가 힘들게 훈련해서 들어간 길드에서 얻은 혜택인데 이렇게 공유하긴 좀 그래 ^^;
└ 그럼 자랑질은 왜함
- 강의진 중고포션 매물 가장 많은 곳 아는데. 필요하면 쪽지 줘. 한 모금 밖에 안 마신 A급들 많아.
└ 쪽지 보냈어
└ 나도 알려주면 안될까?? 아직 헌폴 레벨 낮아서 쪽지가 안돼ㅠㅜ
“역시 내가 없으니까 모두 난리군.”
다만 댓글의 중고 포션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포션은 한 병 전체가 적정량이었고 개봉하면 변질 위험성도 커진다. 괜히 비싼 전용 포션병을 쓰는 게 아닌데.
사지 말라고 말해 주려는데 댓글 쓰기를 클릭하자 로그인을 하라는 창이 떴다.
「더 많은 헌트로폴리스를 이용하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귀찮게…….”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 뒤늦게 본래 목적을 상기해 낸 나는 회원 가입 창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고난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아이디? 호…현 일이삼.”
Hohyun123을 치자 알림창이 떴다.
「이미 있는 아이디입니다!」
“……호현 일이삼사, 삼이일, 이것도 안 돼? 씨……. 호현 칠칠칠, 호현 영영영.”
「이미 있는 아이디입니다!」
「이미 있는 아이디입니다!」
「이미 있는 아이디입니다!」
적어도 스무 개는 쓴 것 같다. 이후로도 뭘 하든, 어떤 조합을 하든 이미 있는 아이디라는 창이 계속 떴다.
“씨발 어쩌라고! 안 해.”
진저리 나서 키보드를 멀리 밀어 버렸다. 손가락에 엔터키가 눌리며 이번엔 다른 화면이 떴다.
「Tlqkf999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입니다.」
큰 산을 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후로도 대문자, 소문자, 뭔 문자들을 합쳐서 암호를 만들어 내라는 비밀번호 만들기와 멋진 닉네임은 이미 다 빼앗겨 중복 없이 하기 위해서는 수치를 선택해야 하는 닉네임 짓기 난관이 이어졌다.
포션 마스터, 최고, 베스트, 마스터, SS급 포션 메이커, 전설 모두 중복이었다.
“그냥 닉네임 돈 받고 팔라고!!”
짜증나서 입력창에 욕을 하자 그게 채택되었다.
「**그냥돈주고살게얼마면돼님 헌트로폴리스의 시민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겨우 회원 가입 하나 하는데 진이 다 빠졌다. 시간을 보니 삼십 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까의 포션 게시글을 찾아 봤지만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어 포기하고 구인 구직 게시판에 들어갔다. 게시글 작성을 클릭하자 자동으로 지원서 양식이 나타났다.
[말머리를 설정하세요]
제목 :
내용 :
* 양식을 모두 기입해야 합니다.
* 게시판 특성상 닉네임이 공개됩니다.
모집 인원 :
계열/등급 :
근무시간 :
업무내용 :
급여 :
지원 조건 :
.
.
공방 정보 필수 기입
잠시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다. 이런 양식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내가 도장 찍은 계약서는 모두 내 멋대로 하거나, 태제헌 멋대로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잠시 고민하다 그냥 고민할 것 없이 솔직하게 쓰자고 결심했다.
“인원은 둘, 계열이나 등급은…. 던전 들어갔다가 다치지 않으려면 당연히 강해야지. 아, 애초에 자신 있는 사람만 클릭하라고 해야겠다. 괜히 면접 왔다가 떨어지면 상처받을 테니까.”
집중한 채 중얼거리다 멈칫했다. 방금 내 말이 굉장히 멋있었던 탓이다. 역시 사장이 되면 어른스러워지나 보다.
더 신이 나 글을 작성했다. 한번 시작하니 고민했던 게 이상할 정도로 수월했다.
“다 했다. 흠… 쉽네. 등록!”
「[용병 구인] 강한 사람만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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