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파업 선언-63화 (63/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63.

C급 헌터 양수철은 오늘도 누워서 휴대폰 중이다.

삼 년 전 처음 각성했을 땐 제 인생이 드디어 꽃피고 앞으로는 쭉 승승장구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녹록지 않다. C급은 낮지는 않았지만 높지도 않은 그저 그런 보통의 등급일 뿐이었고 수철은 스킬마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올 초에 있던 대형 길드들의 공채 결과가 속속들이 발표되고 일주일 전엔 마지막이었던 천랑에서까지 불합격을 받았다. 그러니까 양수철은 현재 백수였다.

눈을 뜨자마자 헌폴에 접속한 양수철은 오늘은 또 무슨 재미난 일이 없나 게시판을 둘러봤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았다. 새 글이 리젠되는 속도와 사람들의 어투를 보자마자 양수철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났음을 예감했다.

[잡담] 다들 구인겟 가봐 ㅅㅂ 올해 레전드 나옴 (12)

[호외] 원수가 간다고 해도 말릴 알바.jpg (271)

[잡담] 아 미친 저기 벌써 별점 1점 박힘 ㅅㅂㅋㅋㅋㅋ (34)

[잡담] 저 공방 가본 사람 없어? (22)

“구인게시판?”

구인게시판에 들어가자 이미 수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용병 구인] ‘그 공방’보다는 무조건 조건 좋은 포션 공방 (5)

[용병 구인] 약한 사람도 봐라 (13)

[용병 구인] 용병이 아닌 용갑으로 대해드리는 땅콩네 대장간

조금 더 내리자 이 모든 일의 중심이 된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친! 댓글 삼천?”

제목부터 어그로가 장난 아니었다.

[용병 구인] 강한 사람만 봐라 (3194)

작성자 : **그냥돈주고살게얼마면돼

우리 공방에서 용병 모집한다. 면접일은 일주일 뒤 아침 11시

모집 인원 : 2명

계열/등급 :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헌터

근무시간 : 사장이 원하는 아무때나

업무내용 : 아이템 콜렉팅, 공방 업무 보조

급여 : 협의 후 결정

지원 조건 : 본인의 강함을 증명할 만한 전리품 가져와야함 (라이커 사냥 성공 우대)

주의 사항 : 녹스 사절, 천랑 사절

공방 정보 펼치기▾

댓글(3194)

- 뭐냐 이거……. 나 혹시 꿈꾸는 중?

- 여기 유머방 아니에요;;;

- 진짜 있는 공방이네… ㄷㄷ

└ 이름이 없는데 오류 아닐까요?

- 미쳤낰ㅋㅋㅋㅋㅋㅋㅋ녹스 사절 천랑 사절ㅋㅋㅋㅋ

- ㅅㅂ 6등급 듣보 상점인데 무슨 라이커 타령이야

- 닉넴 클라쓰

.

.

- 헌트로폴리스 운영자 다온입니다. 현재 공방의 진위 여부를 확인중이니 그때까지는 댓글을 금지합니다.

“푸하하하! 아 미친 뭐 이딴 데가 다 있냐. 또라이 아냐.”

댓글창을 조금만 내려도 이미 헌터들이 온갖 유행어와 웃긴 이미지들을 만들어 올리며 놀고 있었다. 지루하던 중 잘됐다. 이슈에 기뻐하며 저도 기꺼이 참전하려고 손가락을 푸는 순간 문이 열렸다.

“용수철!!”

“아 노크하고 들어오라고 했잖아! 그리고 용수철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내가 용수철이면 아빠는 용수만이야?”

들어오며 갑자기 불을 켠 아버지에 수철은 눈부셔 온통 얼굴을 찌푸렸다.

“불은 왜 켜? 안압 높아진다고! 헌터는 몸이 생명인데!”

“허어어언터는 무슨? 네놈이 훈련을 하기를 해 길드에서 일을 하기를 해? 어이구- 한심하다, 한심해! 각성한 지 삼 년이 되도록 어? 맨날 탱자- 탱자-.”

“아, 나가라고!!”

“너나 내 집에서 나가세요. 각성자 맞아? 어? 거짓말 아니냐?”

방으로 들어와 커튼까지 걷어 버리는 아버지에 수철은 머리 위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 나 지금 일 찾고 있었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일은 무슨, 내가 한두 번 속냐? 그럴 거면 그냥 각성자 때려 쳐! 아빠는 너 그냥 평범해도 안전하게 사는 게 좋다.”

“아 진짜야! 구인 구직 공고 보고 있었다고!”

양수철이 억울하게 이불 틈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용병 구인이라고 써진 화면에 여태껏 구박하던 아버지의 입이 다물렸다.

“……진짜냐?”

“어. 가을 공채 준비할 거야.”

수철은 몸을 일으켜 퉁명스럽게 말했다.

“봄 공채 떨어진 게 아무래도 내가 스펙이나 한 방이 없어서 떨어진 것 같아. 용병 일 하면서 발전해 보는 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수철아.”

처음엔 그저 둘러대던 변명이 살에 살을 붙이니 말할수록 진심이 담겼다.

“나 그래도 스킬도 괜찮고 경험만 쌓으면 돼. 요즘 길드에서 신입 뽑는 트렌드가 그래. 좀만 하면 된다니까? 아빠도 알잖아. 잘만 하면 각성자만큼 돈 벌기에 최고의 직업이 없어. 내가 성공해서 효도할게.”

아버지가 수철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심히 해 봐. 그래도 아빠랑 엄마는 너 안전한 게 제일이라는 거 알지.”

“알아. 다음 주에 면접 보러 갈 거야.”

수철의 시선이 휴대폰 화면으로 돌아갔다.

‘이딴 곳 면접 따위 절대 볼 생각 없었지만……. 잠깐 경력만 먹고 버려 주지.’

여기면 떨어질 일은 없을 테니까. 당연한 자신감이 샘솟았다.

***

동 시간대에 헌트로폴리스에 접속한 헌터들은 모두 그 글을 보았다. 던전 앞, 월계나루, 협회 건물에서. 사람들의 입과 휴대폰을 통해 널리 널리 퍼져 나갔고 당연하게도 성산하의 앞까지 다다랐다.

“미치겠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성산하가 실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만면에 웃음이 걸린 성산하와 달리 같은 자리에서 소식을 전해 받은 안송아와 이초는 경악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요, 용병을 구한다곤 하셨는데 이런 방식일 줄이야…….”

“이렇게 이목을 끄는 짓만 하고 다니는 것도 능력이군.”

공고를 다시 읽은 안송아가 진저리 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걱정도 되는지 이초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상한 놈들 꼬일까 봐 걱정인데요. 이초라도 보내서 말려 줘요. 길드장님.”

“어우, 누님! 제 말 들을 분이 아니에요. 저는 호현 님 무섭습니다? 이번에도 포션 더 달랬다가 거의 파리 쫓아내듯 내쳐졌다고요.”

“호현 씨가 성격이 튀긴 하지만 착한데. 아직 이초에겐 경계심이 안 풀려 그런 거겠죠.”

“예? 튀긴 무슨……. 두 번 튀었다간 사람 죽이겠어요?”

“이 공고를 보고 면접에 가는 미친놈이 있을 리가. 그나저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나 친해졌나 본데?”

성산하의 말에 안송아가 빵을 뜯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번 일 고맙다고 꽃다발이랑 선물도 보내던걸요?”

“뭐?”

성산하가 제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이초는 아예 헛소리를 들었다는 듯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푸하하, 호현 님이랑 가장 어울리지 않는 소리 중 하나를 들은 것 같은데요. 그런 짓을 할 리가요.”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안송아가 말없이 내민 휴대폰 화면 속의 문자를 본 이초가 입을 다물었다.

송아 : 「사진」

송아 : 「고마워 호현씨~」

호현 : 「다음에 놀러 와」

“정말이잖아? 주, 주호현이 누님께 왜? 혹시…….”

“이초야. 정신 챙겨. 실언하지 말고.”

“그, 그래도 이상하잖습니까!”

“정말 고맙다고 보낸 거야. 귀엽지 않니? 운송하는 사람 보니까 다른 걸로 하나 더 가지고 있더라. 그땐 혹시 길드장님 아닐까 했는데……. 표정 보니까 아닌가 보네요.”

“이거 서운한걸. 우리 강아진 강요할 때 말고는 나한테 연락도 없던데.”

“심지어 송아 누님껜 초대까지 했습니다! 저한텐 썩 꺼지라고 납기일 전엔 머리털도 보이지 말라고…….”

억울하게 중얼대던 이초는 다시금 헌트로폴리스에 올라온 모집 공고로 시선을 돌렸다. 안송아도 함께 보더니 안쓰럽게 중얼거렸다.

“용병이 필요한 거면 차라리 나한테 말을 하지. 이러면 아무도 안 갈 텐데.”

“공고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데요. 손님 하나 없어도 이렇게 당당하신 분이라구요.”

“너는 어쩜 그렇게 모르니? 아무렇지 않긴. 저번에 손님 얘기 잘못 꺼냈다가 시무룩해져서 입술이 댓 발 튀어나오던데. 그거 보고 미안해서 그다음부턴 손님의 시옷도 안 꺼냈어.”

“누님 제가 보기엔 콩깍지입니다. 뇌물 받았다고 현실을 왜곡하시면 안 되죠.”

둘이 싸우는 사이 조용히 손가락으로 팔걸이만 톡톡 건드리던 성산하가 툭 내뱉었다.

“우리도 사람 좀 보내지.”

“네? 아, 감시하는 겁니까?”

이초가 곧바로 물었다. 성산하가 주호현을 신경 쓰는 내막을 알고 있으니 당연하게 드는 생각이었다. 이초의 말에 성산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면 서운하지. 그냥 다른 데서 기죽는 거 상상했더니 별로길래.”

“그건…….”

주호현 때문입니까? 강의진 때문입니까? 입 밖까지 물음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꾹 눌러 참은 이초는 다른 사견 없이 답했다.

“네. 적당한 사람으로 추려 보겠습……, 어디 가십니까?”

이초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제 상관을 멍하니 바라봤다. 겉옷을 집어 든 성산하는 생긋 웃더니 곧장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

손님이 왔다는 벨을 듣고 신나서 뛰어올라 간 나는 당당하게 로비에 앉아 있는 성산하를 보고 팍삭 인상을 썼다.

“……네놈이 왜 여깄냐?”

“꼭 이유가 필요한가? 아니면 내 입으로 듣고 싶은 말이라도?”

당당한 되물음에 말문이 막혀 입을 뻥긋대다 손가락질했다.

“아니, 꺼지란 소리다!”

“멍멍아. 이리 와.”

「주인님이 ‘이리 온’을 하셨습니다. 서둘러 주인님께 달려갑니다.」

혹시나 연승연이 듣기라도 했을까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두 다리는 착실히 성산하에게 향했다.

제 바로 옆까지 다다른 내 손을 툭 친 성산하가 비웃듯 속삭였다.

“겁먹긴.”

“……볼일 없으면 내 공방에서 꺼져라.”

“볼일이 왜 없어. 있는 포션 다 살 테니 가져와.”

“안 팔아.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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