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64.
발로 소파를 쾅 차기까지 하며 분기를 짓씹었지만 성산하의 눈에 걸린 웃음기는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씨발 공증이 족쇄지. 대량 계약까지 해서 차마 쫓아내지도 못하고…….
-자영업자는 다 그런 거야!
이제는 익숙해진 중개소 사장의 음성을 가뿐히 무시하고 괜히 성산하와 함께 온 이초에게 시비를 걸었다.
“존나 한가한가 보다?”
“하하, 하. 왜 저한테…….”
이초가 데굴 눈을 굴리며 지정석이 된 소파에 앉은 성산하의 눈치를 봤다. 성산하는 눈 하나 까딱 않고 손에 든 카탈로그를 마저 둘러보며 답했다.
“초야. 이 공방 손님 대접이 부실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예?”
“고객이 왔는데 사장이 아는 척도 않네. 이젠.”
저 새끼가……! 나도 연승연을 불렀다.
“승연아! 오늘 일찍 문 닫을까? 손님들 좀 내보내라!”
“네, 네?”
한쪽에서 물류를 검수하던 연승연과 김진명이 당황해 나를 돌아봤다. 성산하가 느물거리는 목소리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초야, 너 여기 다른 손님 오는 거 본 적 있니.”
“없긴 한, ……산하 님. 왜 그러십니까…….”
“망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지.”
이에 질세라 나도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
“승연아! 천랑 곧 망한대? 길드장이 왜 이렇게 한가해?”
“초야. 여기 주인 좀 나오라고 해.”
“승연아, 바쁘다고 해.”
“초야. 포션 맛이 이상하다고 전해.”
“승연아! 너 새끼 내 포션 안 마셔 본 거 다 알고 있다고 전해!”
“초야.”
“승연아.”
“초야.”
“승연아!”
***
「미약한 과로 상태에 빠졌습니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제작 성공률이 떨어집니다.」
「운이 나빠집니다. 혼절 가능성이 2% 높아집니다.」
눈앞에 뜬 상태창에 머리를 짚었다. 천랑의 수주와 더불어 공방에서 판매하는 품목을 늘려 보려 조금 무리를 하자마자 어김없이 상태 이상-과로에 걸려 버렸다.
‘한 번만 더 하고 진짜 쉬어야지.’
슬쩍 옆에서 포션 제작 중인 연승연을 바라봤다. 티 내지 않고 진행하려고 했는데 유리 막대를 놓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귀신같이 달려와서 내 팔을 붙잡았다.
“호현 님? 얼굴이 살짝 붉어지셨어요. 조금 쉬세요.”
“이것만 만들고. 납품 건도 마무리해야 하잖아.”
“그건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호현 님은 더 큰 일을 하셔야 하니 이럴 땐 쉬세요.”
“됐어. 한 번 정도는 더 할 수 있어.”
팔에 매미처럼 매달린 것을 털어 냈다. 입술을 깨문 연승연이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겉에 손글씨로「응급키트」라고 라벨링된 것을 보고 뭐냐고 묻자 연승연이 상자를 열며 답했다.
“호현 님의 하, 하나뿐인 조수로서 무리하시는 걸 알면서도 무책임하게 방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했습니다. 차례로 마나 포션, 스태미너 포션, 상태 이상 해제 포션과 활력 포션입니다! 모두 드신다면 저도 더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너 이런 걸 언제…….”
필요 없다고 단박에 거절하려다 멈칫했다. 연승연이 이렇게 준비할 정도로 신경 쓰게 만들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호현 님도 아시잖아요. 아프고 난 후에는 더 강하고, 독한 포션을 써야 한다는 것을요…….”
연승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응급키트 안에 들어 있는 포션들을 보고 속으로 계산했다. 내가 버텨서 만들 수 있는 포션의 값어치와 마셔 버려서 사라질 포션 4종의 금액…….
이득이 없음을 알고 깔끔하게 포기한 나는 작업대에서 내려왔다.
“알겠어. 좀 쉬다 올게. 오늘 어느 정도 남았지?”
“호현 님께서 손대실 부분은 없으십니다. 천랑 납품 건은 거의 다 끝냈고 샘플들만 조금 만들면 돼서요.”
연승연이 제 뒤에 있는 작업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죄다 하급인 포션들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연승연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알아봐야겠고.’
등 뒤로 연승연의 걱정 어린 잔소리들이 떨어졌다.
“좀 주무세요. 밥도 드시구요, 아니. 제가 챙겨드릴…….”
“됐어. 나 간다.”
내 방으로 올라와 침대에 뛰어들었다. 딱히 잠은 오지 않아 침대 위에 누워 한참을 뒹굴었다. 꽤나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아직도 과로가 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심해졌다.
「과로 상태에 빠졌습니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제작 성공률이 떨어집니다.」
「운이 나빠집니다. 혼절 가능성이 10% 높아집니다.」
지금까진 상태 이상 기미만 보여도 포션을 마셔서 해제시켜 버렸기에 이렇게 오래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얼굴에서 열이 오르는 게 지금 처리하지 않았다가는 독한 몸살이 겹칠 것 같아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일 층으로 내려갔다.
“아이씨, 쪽팔리게.”
연승연이 보면 굉장히 놀랄 게 뻔해 몰래 샘플로 만들어 뒀던 상태 이상 해제 포션을 찾아 마셨다. 포션을 마시자마자 청량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부르르 몸을 떠는 내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당연히 과로가 풀렸다는 알림이겠거니 했던 나는 번쩍번쩍 얼굴을 비추는 빛에 놀라 황당히 앞을 쳐다봤다.
{ 메인 퀘스트 }
#4.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 최초의 S급 이상 포션’을 제작해라.
성공 조건 : S급 이상 포션 최초 제작 성공.
난이도 : A+
제한 시간 : 30일
보상 : ??? 스킬 회복
실패 시 퀘스트 영구 삭제
※ 거부 불가능
“뭐? 잠깐, 야!”
황당하게 손을 뻗었다. 당연하게도 손은 퀘스트창을 통과해 허공을 휘저었다.
예전이었다면 그저 설렜을 상황이 지금은 다르게 다가왔다. 최초의 포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레시피와 쓰이는 재료들부터 알아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레시피 스킬인 <천지보감>과 재료 감정 스킬인 <플라멜의 현안> 둘 다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성공할 때까지 지원할 녹스의 재정 역시도.
퀘스트창을 원망하듯 노려보다 한숨을 뱉었다. 하라는데 어쩌겠어.
“왜 이제 와서 뜬 거지? 내가 포션을 마셔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센터 나와서 처음이었지…….”
투덜투덜하면서도 막상 새로운 포션을 만들 생각을 하니 의지가 샘솟았다. 몸도 회복됐겠다, 벌떡 일어나서 외출 준비를 했다. 그래 봤자 로브를 입고 후드를 푹 눌러쓰는 게 끝이었지만.
후드를 쓰자 무거워진 머리와 가려진 시야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음침하게 숨어 다녀야 하는지. 적어도 태제헌에겐 절대 걸려선 안 됐다. 그 새낀 워낙 독한 새끼라 지옥도 안 받아 줘서 존나 오래 살 게 분명했다.
“로브가 아니면 아이템뿐인데.”
안타깝게도 외형을 바꾸는 아이템은 존나 비쌌다. 게다가 등급이 높은 통찰 스킬이나 아이템에 당하면 본래 모습이 드러날 수도 있어 확실히 숨기기 위해선 무조건 S급을 사야 했는데 그건 부르는 게 값이다.
예전엔 돈을 쓸데가 없어서 문제였는데 이젠 모든 게 돈이다. 조금 울적해져 발밑에 차이는 돌을 툭툭 차면서 걸었다.
“미남박명이라더니. 태제헌이고 센터고 도움이 안 돼요. 어쨌든 내 완벽한 얼굴에 손댈 순 없으니까 아이템을 구해야겠어.”
혼자 여러 가지를 고민하며 걷다 보니 와 보지 않은 곳까지 발길이 다다랐다. 월계나루로 가려던 것이 한참 지나 서쪽 공방촌까지 와 버렸다. 원래 내 공방을 지을 뻔했던 곳. 주위를 둘러보자 중앙 거리에 비해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누군가 집만 사고 입주하지 않는다는 중개소 사장의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여기보단 우리 공방이 더 좋네.”
팔짱을 끼고 둘러보는 내 어깨를 누군가 툭툭 쳤다. 느릿한 박자에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자 역시나.
“너 진짜…… 한 대 때려도 되냐?”
“혼자 산책 중?”
또 예전처럼 머리 색과 눈 색이 바뀐 성산하였다. 방금 전까지 아이템 생각을 해서 그런가 성산하의 바뀐 외형에 눈길이 갔다.
‘겨우 색만 바꿨을 뿐인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분명 다른 능력이 있는 거겠지?’
빤히 바라보자 성산하는 얼굴이 더 잘 보이게 틀어 주며 잘생긴 척 웃음 지었다.
“왜, 새삼 반한 것 같아?”
“……꺼져.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내 뒤밟았냐? 왜, 뭐. 용건이 뭔데.”
뾰족한 물음에 성산하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떨떠름한 낯으로 응시하자 한참을 웃던 성산하는 겨우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나도 일이 있어서 온 거야. 그런데 멍멍이가 근처라길래. 그나저나 이젠 용건도 들으려고 하고, 많이 컸네? 우리 강아지.”
“무슨 볼일인데?”
“그건 알 필요 없고. 웬만하면 이쪽으론 다니지 마.”
부드럽지만 단호한 거절에 코웃음 쳤다. 성산하의 용건 따위 궁금하지도 않고 내 알 바도 아니다. 괜히 물어봐서 엮이느니 안 듣는 게 훨씬 낫다.
“올 일 없으니까 신경 끄시지.”
등을 돌리고 다시 대로변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터벅터벅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월계나루에 가는 길인가?”
“너도 알 바 아니잖아.”
“마침 일이 끝나서. 데이트할 시간은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징그러운 소리에 발끈해 멈춰 섰다가 체념하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나 같은 정상인이 견디기엔 성산하가 너무 또라이였다. 평화로운 안위를 위해 내가 참아야지.
“하, 맘대로 하든가.”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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