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65.
“뭘 사려고?”
“알 거 없어.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따라오지 마.”
“차가워라.”
시비를 원천 차단하고 월계나루로 향하던 길이었다. 큰길가에 들어서자마자 사이렌을 울리는 차들이 몇 대나 줄지어 지나갔다. 한두 대 정도야 전에도 몇 번 본 적 있는 일이었지만 셀 수도 없이 끝없이 이어지자 자연히 관심이 그리로 향했다. 차들은 월계나루와 인접한 뒷산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산 쪽에서 연기가 나고 헬기도 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거 무슨 일이래?”
“아, 깜짝아! 왜 그러고 다녀?”
“개인 사정.”
나와 성산하를 이상하게 돌아보던 여자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잘 몰라. 던전 있는 쪽인데, 오늘 저기 센터 각성자들 온다고 했거든.”
“센터 각성자? 에스퍼?”
“나야 모르지.”
여자들은 마지막까지 나를 이상하게 보고는 피하듯 그 자리를 떠났다.
국가 소유 던전이 근처에 있는 건가? 혹시 한서진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성산하를 바라봤다. 그게 허락을 구하는 것 같은 행동으로 보이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그딴 짓 하지 않았을 텐데!
팔짱 낀 채 뒤에서 관망하던 성산하가 헛숨을 내뱉었다.
“미리 허락받을 생각을 한 건 대견한데, 당연히 안 돼. 본인이 어떤 위치인 줄은 알고 있는 거야?”
“허락은 무슨! 게다가 멀리서 보기만 하고 다시 돌아올 거야. 가까이 갈 생각도 없다고.”
“갑자기 센터가 그리워지기라도 한 거야? 생각보다 감상적인 구석이 있군.”
“그립긴. 그냥 그 새끼들 살아는 있나 궁금해서 그러지.”
머리로는 이미 갈 생각이었지만 저 새끼가 훼방을 놓는다면 어떻게 할지 그게 문제였다. 좆같은 ‘이리 와’만 아니었어도……!
한참 동안 날 응시하던 성산하는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데이트 코스로는 형편없는걸.”
***
높지 않은 산기슭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자 푸른 빛으로 일렁이는 게이트 하나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익숙한 뒤통수를 발견했다. 뒷모습만 보고도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거 한서진이잖아!
한서진의 옆에는 전에 봤던 그 싹싹한 친구까지 함께였다. 왜 레이븐 팀원들과 함께 있지 않고 쟤랑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나무를 잡고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뒤에서 성산하가 로브를 잡아당겼다.
“조심해. 이 이상 가면 들켜.”
“……응.”
멀어서 정확한 상황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에스퍼 팀들은 한 무리의 헌터들과 대치 중이었다. 고성이 오가는 분위기는 전에 내가 겪었던 때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 전에 한서진이 외부 팀의 경우에는 마찰이 잦아 강한 에스퍼들로 구성한다고 했던 말을 들었는데 확실히 국가 소유의 던전이 아니니 헌터들도 조금 더 배짱 있게 나서는 듯했다.
쌓인 물건들을 집어 던지며 행패를 부리던 헌터가 에스퍼 팀에게 공격적으로 대응하자 박무일이 금방이라도 달려들려 했다. 한서진은 박무일의 어깨를 잡아 말리더니 대신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보다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가려 했다.
“너, 뭐 하는.”
딱 보기에도 공격곈데 겨우 생각이나 읽는 한서진이 나서서 뭘 어떻게 한다고.
그런데 내 걱정과는 달리 한서진은 맨손으로 헌터의 얼굴을 잡아챘다. 놀라기도 잠시 헌터는 반항도 없이 인형처럼 무릎을 꿇었고 한서진은 곧장 그의 어깨를 발로 차 버렸다.
“워…….”
‘저거 한서진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격한 행동에 놀라 나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헌터들은 쉽사리 달려들지 못하고 슬금슬금 한서진을 피하고 있었다.
옆으로 다가온 성산하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특수 부대에 아는 얼굴이 있나?”
“특수 부대? 아, 설마 외부 팀 말하는 거야?”
“센터에선 그렇게 부르나 보지? 박무일 에스퍼가 있는 곳은 센터에서 가장 공격적이기로 유명한 팀 중 하나다. 순혈주의에 엘리트들이라 우리 강아지가 엮일 만한 곳은 아닐 텐데.”
‘너 C급이잖아.’ 하는 성산하의 시선에 대꾸 없이 고개를 저었다.
“응. 별 상관없어. 이만 가자.”
한서진은 외부 팀으로 옮겨 간 건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이렇게 멀리서라도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잘 지내는 모습 봤으니 된 거고, 이만 가자고 등을 돌리는 순간 돌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발밑이 흔들렸다. 누군가 참지 못하고 날린 공격이 잘못 날아와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성산하가 급히 손을 뻗었다. 아래로 쓸려 내려가는 흙에 휩쓸려 미끄러질 뻔한 내 팔을 잡아 올린 성산하가 게이트 쪽을 쳐다보며 욕을 짓씹었다.
아래의 나무들이 쓰러지고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땅이 푹 꺼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고마워.”
“저번부터 생각했는데…….”
성산하가 손을 뻗어 어느새 벗겨진 내 후드를 툭 치며 말했다.
“이런 것 말고 아이템 하나 구하는 게 나을 텐데.”
“안 그래도 구하려고 했어.”
“하나 줄까?”
“……필요 없어. 이미 좆같은 거 하나 차고 있는데 네가 주는 걸 받겠냐?”
성산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후드를 다시 푹 눌러쓰고 등을 돌렸다.
다시 원래 목적인 월계나루로 향했다. 딱히 목적이 있지는 않았다. 그저 상인들이 판매하는 재료들을 둘러보며 머릿속으로는 어떤 식의 S급 포션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다. 성산하는 생각보다 귀찮게 하지 않고 그저 팔짱을 낀 채 내 옆을 지켰다. 쓸데없는 말도 걸지 않아 퀘스트와 포션에 대해 고민하며 편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뭘 만들어야 하지?’
전에도 수주를 받긴 했다만 제작하다 보니 가끔 높은 등급도 나온 거지 이렇게 등급을 먼저 생각하고 포션을 만든 적은 없었다. 희귀하고 만들기 어려울수록 등급이 잘 나올 가능성이 높긴 해도 또 무조건 그렇지만도 않고……. 방금까지 한서진을 봐서 그런지 당장 떠오르는 것은 하나였다.
‘역시 가이딩 포션인가. 다행히 주호현 자체가 가이드니까 비교할 모델은 있고, 실험해 볼 에스퍼가 없다는 게 문제네. 아! 그때 그 측정 기계를 잘 이용하면 무슨 방법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고민하며 걷는 내 눈에 심히 거슬리는 장면이 하나 보였다.
“이건……. 풀이니까…. 말리는 게 아닐까요?”
“그럴까요?”
“아닐까요?”
“말릴까요?”
마치 첫날의 백다인을 보는 듯했다. 완전 초짜들인지 손에 쥔 아스브모라 꽃술을 화로에 구우려는 모습에 달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하는 짓이야!”
“네? 누구세요?”
가까이 다가가자 더 가관이다. 내게 등을 돌리고 있던 놈은 신선함이 생명인 나바 가루를 보관액에 조심히 넣고 있었다.
“뭐 사시려고요?”
“어서오세요. 손님.”
“손님이고 나발이고 재료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나바 가루는 이 상태로 팔고 보관액엔 아스브모라 꽃술을 담가야지! 백다인 친구냐?”
“그게 누구…….”
하나하나 지적하자 지나가던 손님이 내가 재료상인 줄 알고 물어볼 정도였다. 답답함에 분통이 터졌다. 어떻게 채집꾼이란 놈들이 재료 관리법 숙지를 못하느냐는 말이야! 그런데도 간간이 손님이 있었다. 우리 공방은 지금까지 손님이 없는데!!
모두 정상으로 되돌린 후에야 손을 털며 여자와 남자를 노려봤다.
“공부 좀 해.”
“사실 저희가 본업은 따로 있는데 취미로 즐기는 거라……. 모르는 게 많았습니다. 귀한 재료들을 낭비할 뻔했네요. 감사합니다.”
“간다.”
취미인데 손님이 있다니, 그게 더 짜증 나.
분명 멍청한 놈들을 혼내 주러 간 건데 어느새 내 두 손엔 살 생각도 없던 재료들이 가득 들려 있었다. 조금 떨어져 지켜보던 성산하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세간에선 이런 걸 호구 잡혔다고 하던데.”
“연구 재료로 필요해서 산 거야.”
“이제 볼일은 끝났으면 공방으로 가자.”
“네가 주인인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두 손이 무거워 월계나루를 더 돌아볼 수도 없었다. 발을 옮기는데 뒤에서 누군가 우리를 불렀다.
“손님, 손님! 잠깐만요.”
“왜. 더는 안 사.”
“아니, 그게 아니라요. 제가 사실 취미로 술을 담가서, 한 병 가져가시라고요.”
“술?”
그가 내미는 병을 받아 들자 안에는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들이 담겨 있었다.
“미친, 설마 취미라는 게……. 재료들로 술 담그는 거야?”
“하하… 하. 소소한 취미라고 생각해 주세요. 포션만큼은 아니지만 술 마시면서 건강도 챙기면 좋지 않겠습니까. 활력에 정력에, 게다가 몸은 얼마나 노곤해지는지……. 여하튼 선물로 드리는 거니까 한번 맛이나 보시고 괜찮으면…. 예? 저희는 항상 저기 있으니까.”
남자가 눈을 찡끗거리며 저희가 있던 곳을 눈짓하고는 후다닥 사라졌다. 황당히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옆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성산하가 내 손을 보고 있었다. 술병을 성산하에게 내밀며 말했다.
“가질래?”
“술을 잘 못하는 편인가 봐?”
“그건 아닌데. 이상하잖아. 아이템으로 술이라니.”
여태껏 듣도 보도 못했다. 술병을 받아 든 성산하는 내용물을 면밀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못하는 거 아니면 같이 마시지.”
누가 너랑 마셔 준대? 분명 그렇게 뚱하게 생각했는데…….
‘왜 내가 이놈이랑 같이 앉아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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