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67.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동굴마늘의 뿌리를 다듬던 연승연이 문득 생각난 듯 고개를 들었다.
“킁…! 저, 호현 님. 말씀하셨던 면접 시간이 가까워져 오는데, 킁!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될까요?”
마나 충전을 위해 소파에 늘어져 있던 나는 누운 채 발만 까딱이며 대답했다.
“그냥 전리품 보고 뽑을 건데 준비가 필요한가? 일부러 강한 헌터들만 오라고 했으니까 몇 명 안 될 거야. 아무래도 아직 날 모르잖아.”
“네에. 그러면 저도 킁! 이것 마무리만 하고…….”
그때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자 <안송아 누나>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응. 누나.”
[오늘 공방 용병 면접 본다면서?]
“어? 어떻게 알았어?”
[헌폴에 올라온 공고 봤지, 나도 마침 휴문데 잠깐 들러도 될까? 고용이나 계약 문제 좀 도와줄게.]
“나야 좋지. 이따 열한 시야.”
[아, 호현 씨. 그리고 아마 우리 길드장님…….]
“푸헹취! 죄, 죄송합니다!”
동굴마늘을 다듬던 연승연이 크게 기침을 했다. 놀라 휴대폰을 귀에서 뗀 채 바라보자 연승연이 고개를 급히 끄덕였다. 괜찮다곤 했지만 아무래도 얼굴에 동굴마늘의 즙이 튄 것 같아 급히 전화를 마무리 지었다.
[……놀랄까 봐 미리 알고 있으라고.]
“어어, 누나 그럼 이따 봐! ……승연아 너 괜찮냐?”
“네. 괜찮습니다!”
“괜찮긴, 그러다 얼굴에 구멍 난다. 가서 정제수로 세수하고 와.”
연승연이 얼굴을 감싸고 팬트리로 간 사이 남은 동굴마늘을 모두 까고 포션을 한 번 더 만들었다.
‘이렇게 손도 빠르다니. 역시 포션 마스터다워.’
모두 정리할 때가 되어서야 누군가 가게로 들어왔다는 벨이 울렸다. 송아 누나인 걸 알아 작업실 밖으로 나가는데 벨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이번엔 분명 손님일 거라 예상하고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올라 갔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보인 얼굴들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안녕하세요. 채집가 백다인입니다.”
“안녕하세요, 전 안송아예요. 각성자는 아니랍니다.”
안송아와 백다인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둘 다 얼굴이 핼쑥했다.
“둘이 뭐 하는…. 다인 누나는 무슨 일이야?”
“저번에 필요하다고 말했던 재료 이번에 우연히 구하게 되어서 가져왔는데…….”
백다인이 겁먹은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안송아도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호현 씨. 상황이 좋지 않아.”
“그게 무슨 소리야?”
둘의 말에 로비로 향했다. 코너를 도는 순간 커다란 통창으로 보이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얼어붙었다.
“이게 무슨…….”
우리 아담한 정원 너머 울타리 밖을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일반인답지 않은 모습들로 그들이 모두 각성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사람들 머리 위로 카메라도 몇 대나 지나가고 있었다.
“호현 님! 얼굴!”
내 머리에 급히 천을 덮어씌운 연승연이 로비 뒤편으로 달려가 조정 버튼을 누르자 창문이 불투명해지며 바깥의 시선을 차단했다. 옆에서 안송아가 머리를 짚었다.
“최악의 상황이야. 너무 이슈가 되어서 언론사에서 취재까지 나왔나 본데.”
“미친, 나 카메라에 찍히면 안 되는데? 무슨 이슈? 뭔데 남의 공방 앞에서 행패야?”
급히 헌트로폴리스에 접속한 연승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호, 호현 님……. 아무래도 모두 용병 지원자인 것 같습니다.”
“뭐라고……?”
울타리 밖으로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나마 다들 정원 안으론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다행이었다. 아니, 들어오지 못한 건가?
누군가 구석에서 담을 넘으려 하자 정원의 커다란 엘프목이 묵직하게 진동하며 옅은 빛을 내더니 담을 넘던 사람이 저 멀리 튕겨 나갔다.
“……저거 저런 기능도 있었어? 누나들은 어떻게 들어온 거야?”
“사람이 많아 옆문으로 들어왔는데 딱히 다른 방해는 없었어요.”
“나도. 아마 호현 씨가 허락한 사람에 한해선 막지 않나 봐.”
“어, 어떻게 하죠? 모두 돌려보낼까요?”
연승연과 누나들이 허락을 기다리듯 날 돌아봤다. 불투명한 창문 뒤로도 느껴지는 북적임을 응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참에 용병 구하자.”
“하지만 호현 님 얼굴 보이면 안 되는…….”
연승연이 안송아와 백다인을 흘깃대며 더듬댔다. 연승연의 말도 일리가 있어 고민하는데 안송아가 혀를 차며 바깥을 바라봤다.
“호현 씨 말도 맞아. 이 정도 열기면 돌려보낸대도 쉽게 사그라들진 않을 게 뻔해. 오히려 그냥 돌려보내면 더 항의할지도 모르고.”
“그럼 빨리 뽑고 치워 버리자.”
“좋아. 그럼 바깥 컨트롤은 내가 도울게. 호현 씨 따로 원하는 조건 있어? 저 많은 사람을 다 들여보낼 순 없잖아.”
“강한 놈.”
“…….”
입을 다문 안송아 대신 백다인이 휴대폰으로 내 공고를 보며 말했다.
“미리 공지에 전리품을 거셨으니까, 확인 후 들여보내면 될 것 같아요. 강한 헌터라면 전리품의 등급이 A급 이상인 경우는 어떠세요?”
“그거 좋다. 그러면 누나들이 허락한 사람만 들여보내 줘. 뭐, 나무가 골라 주겠지만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서랍을 뒤져 둘의 손에 작은 스프레이 하나씩을 올려 줬다. 누나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게 뭐죠?”
“승연이 특제 스프레이야. 눈에다 뿌리면 돼.”
“눈…이요?”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둘은 일단 스프레이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안송아가 백다인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마자 밖의 소란이 거세졌다. 천랑의 법무팀 소속이라 그런지 역시나 일반인인데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안송아 아니야?”
“천랑이랑 관계 있는 건가?”
조금씩 들려오는 목소리에 안송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옆에서 백다인이 걱정스레 말했다.
“괜찮으세요?”
“그럼요. 아무래도 얼굴이 너무 많이 팔렸나 봐요. 길드장님한테 월급이라도 올려 달라고 해야 하나.”
“천랑 소속 공방입니까?”
장난식으로 답하던 중 문 가까이 선 한 기자가 고개를 쭉 빼고 소리쳤다. 안송아는 곧바로 다가가 공방을 비추는 카메라를 손으로 내리며 말했다.
“주인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뿐이에요, 제가 누군지 알면 일반인이라는 것도 아시겠죠? 전 각성자 아니라 각성자 특별법에 해당 안 돼요. 제 모습이나 이름, 천랑과 연관 지어 기사 쓰면 양쪽에서 고소할 거예요. 기자님.”
“…….”
“지원자만 남고 모두 돌아가 주세요! 미리 공지한 대로, A급 이상 전리품을 가져온 분들만 통과입니다.”
“갑자기 A급 전리품이라니 너무해!”
“그런 법이 어딨어!!”
***
연승연이 머뭇대며 내게 말했다.
“호현 님, 그럼 면접은 삼 층에서 보는 것으로 하고……. 로비를 지킬 사람이 없으니 옥외 계단으로 안내하라 하겠습니다.”
“그럼 나는 삼 층에…….”
“안내는 제가 할 테니 호현 님은 어서 들어가서 로브라도 입고 나오세요!”
연승연의 등쌀에 떠밀려 이 층으로 간 나는 로브를 걸쳐 후드를 푹 눌러쓰고 다시 방문을 나섰다. 위에 있을 연승연을 돕는 게 맞았지만 나도 모르게 발이 아래로 향했다. 몰린 인파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이 몸을 알아보다니 다들 보는 눈이 있나 봐. 6등급 팻말로도 가려지지 않는 내 위신이…….”
즐겁게 중얼거리며 내려가는데 로비에 보여선 안 될 것이 보였다. 제집이라도 되는 양 소파에 앉은 성산하가 얼굴을 감싼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처웃고 있었다!
후드를 벗어 버리고 손가락질했다.
“너 언제 들어왔어?”
“이제 그런 질문 하기 조금 새삼스럽지 않아? 매일같이 얼굴 보는 친밀한 사이끼리.”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말고 닥쳐. 벨이고 알람창이고 왜 너한테만 안 울리는 거야?”
“주인이 일일이 보고하면 멋없잖아.”
“역시 네놈을 믿는 게 아니었어. 저 나무 오늘 당장 베어 버릴 거야.”
성산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와 달리 진지한 낯의 놈이 멋있는 척을 하는 것 같아 속으로 조금 구역질을 했다.
“오늘은 바쁜데도 이유가 있어서 온 거야.”
“무슨 이유.”
“사장님께서 우리 계약을 잠시 잊은 건가 걱정돼서.”
“구름인 내가 좋은 거 먹이면서 잘 키우고 있으니까 그쪽은 신경 끄시지.”
“……뭘 먹인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하말을 지킨다면서 이렇게 이목을 끌면 어떻게 해.”
팔짱을 낀 채 내려다보는 시선이 재수 없어 더 어깨를 펼쳤다.
“내가 뛰어난 게 내 탓이냐? 가만 있어도 날 알아보고 찾아온 걸 어떻게 해?”
“…….”
노려보며 말하자 성산하의 무표정이 허물어졌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누른 성산하가 진지한 척 목소리를 깔았다.
“멍멍아. 혼나고 있잖아. 자꾸 웃길래?”
“혼내긴 지랄, 씨발 너…….”
“예쁜 말.”
「주인님이 ‘조용히’를 하셨습니다. 입을 꼭 다뭅니다.」
애써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 입술을 깨물자 성산하가 장갑을 낀 손으로 툭 내 턱을 두드리며 말했다.
“당장 공방만 봐도, 내가 준 엘프목이 없었다면 밖의 헌터들로 점령당했을 거야. 매스컴에 이 얼굴이 오르기라도 했다간 센터 측과 녹스 양쪽에서 널 노렸을 텐데. 그래도 잘하고 있어?”
“…….”
“멍멍아. 내가 널 풀어 준 건…….”
그때 성산하의 시선이 다른 쪽을 향했다. 어느 한 곳을 돌아본 성산하가 날 붙잡고 벽 뒤로 몸을 피했다.
팔을 붙잡는 손길을 뿌리치고 반사적으로 몸을 물리려는데 성산하가 속삭였다.
“이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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