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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69화 (69/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69.

‘전리품’은 해당 몬스터를 죽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인벤토리에 합산되지 않기에 전리품만 따로 수집하는 헌터도 있었고 관련한 세계 대회도 있다고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양도가 불가능한 귀속물인 데다 아무런 쓸모가 없었지만 몬스터를 죽였다는 증거로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곳들에서 헌터를 판단하는 수단으로 전리품을 요구하곤 했다.

그런 전리품을 A급 이상으로만 제한했더니 공방 앞에 몰렸던 수많은 인파에 비해 울타리를 통과한 사람은 겨우 열 명뿐이었다.

위로 올라가자 먼저 도착한 안송아와 백다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현 씨. 왔어? 면접자들은 둘씩 다른 방에서 대기하게 했어.”

“고마워. 누나들. 사람 많았지.”

“난리도 아니었어. 진지한 놈은 거의 없고 죄다 이슈만 보고 와서는……. 맞다, 밖에서 건물 내부는 촬영이 안 된다고 하더라. 엘프목이 막는 건가 봐. 그쪽으로는 걱정 좀 덜어도 되겠어.”

“그래? 엘프목이…….”

방금 전까지 엘프목 운운하는 성산하의 잔소리를 들은 터라 떨떠름하게 창밖을 내다봤다. 문이 굳게 닫혔음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건물 주위를 떠돌고 있었다.

“누구 괜찮은 사람 있었어?”

“으음, 내가 벌써부터 말할 건 아니고 호현 씨가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다들 B등급 이상이라…….”

“라이커의 전리품을 가져온 사람이 한 명 있긴 했어요.”

“그래? 합격. 그 사람은 바로 계약하자.”

내 말에 연승연과 누나들이 벙한 얼굴로 말을 잃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백다인이 걱정스레 물었다.

“누군지 보지도 않고 계약해도 괜찮으시겠어요?”

“응. 나 라이커의 갈기가 필요하거든. 모집글에 우대한다고 해 줬으니, 우대해야지.”

“호현 씨 정말! 하아, 그나마 소문이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뭐…….”

“알겠습니다. 호현 님.”

한 명은 프리패스로 합격이나 다름없지만 일단 만나는 보고, 나머지 아홉 명 중 한 명을 면접으로 뽑기로 했다. 안내를 자원한 백다인이 첫 번째 면접자를 데리러 간 사이 내 옆에 앉아 안경을 쓰던 안송아가 멈칫했다. 그의 시선이 내 왼쪽 손에 닿아 있었다.

“길드장님 다녀가셨나 봐?”

“응. 어떻게 알았어?”

“자주 사용하시던 반지라. 그런데 거기 껴도 괜찮겠어?”

안송아의 물음에 시선을 내리자 왼쪽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보였다.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이상하게 여기밖에 안 들어가. 다른 덴 두 번째 마디에서 걸려서 들어가질 않더라. 어쩔 수 없지 뭐.”

“하, 하하…. 길드장님 정말…….”

“왜?”

안송아와 내 대화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첫 번째 면접자에 의해 더 이어지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네. 들어오세요.”

***

용병 면접을 시작하고 한 명씩 방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근데 어떻게 된 게 하나같이 마음에 차는 놈이 없었다.

“월급은 얼마지?”

“업무 협의 후 정해질 겁니다. 하지만 업계 평균 이상으로…….”

“하하하! 겨우 6등급 공방의 평균이라 봤자 뭐 얼마나 한다고. 6등급 공방이 상급 헌터를 왜 구하나 궁금해서 온 것뿐이다. 날 고용하려면 번 돈의 80% 정도는 줘야 할 텐데. 자신 있나?”

“그, 그런…….”

본래 안송아와 연승연이 질문을 하고 나는 뒤에서 지켜보기로 했기에 눈을 감고 참으려 했으나 덜덜 떠는 다람쥐를 보다 못해 나섰다.

“야. 나가.”

“설마 지금 내게 한 말은 아니겠지……?”

“너 아니면 누구겠냐? 나가라고.”

싸가지가 없질 않나.

“흠, 계약 전에 일단 포션부터 맛보고 싶은데요.”

“네, 네? 이건 계약이 아니라 면접 자리인데요…….”

“어차피 이젠 제 계약 의사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 솔직히 6등급 공방에 저만 한 용병은 찾기 힘들 텐데요. 쓰읍, 면박을 받다니 기분이 조금 좋진 않네요.”

“저흰 단순히 등급으로만 뽑지는 않습니다.”

“됐고, 오히려 제가 역으로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6등급 공방의 주인이신 포션 메이커님께선 등급이 어떻게 되시는지?”

“그런 무, 무례한…….”

“나가.”

“네? 지금 제게 나가라고 하셨나요? 당신은 누군데…….”

“여기 사장이다.”

포션 거지가 오질 않나,

“이 전리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가 왕년에 혼자 떠났던 몽골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늘은 어둡고 별이 쏟아지는…….”

“제 소개 전에 몇 가지 먼저 말하고 시작하고 싶은데요. 헌티드매거진에서 인터뷰에 응한다면 오백만 원을, 중앙뉴스에서 질의에 대한 답을 조건으로 삼백만 원을 제안…….”

“씨발.”

그냥 답이 없었다. 그렇게 연이은 여덟이 모두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두 명만이 남았을 때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물었다.

“혹시 남은 둘도 이래? 죄다 이런 꼴이면 그냥 보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상급 헌터들이다 보니……. 차라리 조금 낮은 등급인 쪽으로 찾아 보는 건 어떠세요? 둘이 아니라 여럿을 구하는 쪽으로요.”

“그건 안 돼.”

심각한 내 표정에 연승연과 누나들이 놀라 돌아봤다. 긴장해 침을 꿀꺽 삼킨 백다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죠?”

“돈이 없어.”

“아! 아주 중요하죠…….”

“호현 씨!”

황당하게 소리 지른 안송아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사실 면접에 사견이 섞일까 봐 말하지 않았지만, 지원자 중 유명한 헌터가 둘 있어. 용병 일을 할 사람들이 아닌데 왜 왔는지 의문일 정도로.”

“누군데?”

“한 명은 라이커의 전리품을 가져온 헌터고, 나머지 하나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데 성격은 몰라도 실력은 확실하니 한번 만나 봐도 괜찮을 거야. 호현 씨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보면 알겠지. 남은 둘 다 한 번에 들여보내.”

마지막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이 들어왔다. 안경을 쓴 남자는 시종일관 웃는 낯에 철철 흘러넘치는 여유로 보아 누가 봐도 고등급 헌터였고 그 옆의 비루한 남자는…….

아무런 기백도 느껴지지 않고 어리바리한 모습에 말을 잃고 바라봤다. 방 안의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누가 봐도 하급이다.’

백다인과 안송아가 당황한 시선을 교환했다.

“안녕하십니까, 양, 수, 철! 입니다! 저는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 잠깐만요. 양수철 헌터. 여기 어떻게 들어왔나요? 제가 확인한 기억이 없는데….”

“그냥 옆문으로 들어왔는데요?”

“네?”

아까 성산하와 있을 때 들어왔던 놈이다. 당장이라도 쫓으려는 안송아와 백다인을 일단 말리고 양수철은 따로 옆에 세워 뒀다.

‘쟨 따로 불러서 뭔가 본 게 없는지 확인하고 보내야겠다.’

시선을 돌려 중앙에 가만히 서 있는 안경 쓴 남자를 쳐다봤다. 꽤나 큰 키에 깡마른 모습이 전투계라기보단 책을 좋아하게 생겼다.

“그쪽은 가져온 전리품이 뭐야?”

“거인족 족장의 목걸이입니다.”

“음. 괜찮네.”

거인족들은 덩치가 크고 몬스터 중 지능이 있는 편이라 상대하기 까다로운데 그중에서도 족장의 전리품을 가져오다니. 안송아의 말대로 실력으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앞의 여덟을 지켜보며 대충 면접 질문에 대해 파악했기에 내가 나서서 질문을 이어 갔다.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쫓아낼 작정이었다.

“등급이 높은데 왜 용병 일을 하려는 거야?”

“딱히 용병 일이 하고 싶어서라기보단 흥미가 생겼다 정도로 대답할 수 있겠네요. 이쯤 되면 모든 일들이 지루하거든요.”

“우리 공방에 면접을 온 이유가 뭐야?”

“재밌어 보여서요?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일지도 궁금하고.”

“재료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길드도 없던데 프리 헌터로 활동한 거야?”

“과거는 비밀이랍니다.”

누가 봐도 면접자의 대답이 아니었다. 안송아는 팔짱 낀 채 오만상을 찌푸렸고 연승연과 백다인 역시 수상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오직 공방의 주인인 호현만이 바로바로 나오는 대답에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막상 보니까 어떤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당신이 공방의 주인이겠죠? 그 글을 쓴 사람이고?”

“맞아! 어떻게 알았어?”

“이렇게 바로 보이는데 모를 리가 있나요. 아마 포션 실력도 상당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다만 조금 의외인 건 제 예상과 달리 잘생기셨다는 점일까요?”

“합격.”

안경남에게 언제 축객령이 떨어질지 속으로 점치는 사이 돌연 들려온 합격 소리에 안송아가 입을 떡 벌렸다. 연승연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호, 호현 님 아, 안 돼요. 한 번만 차근히 생각을…….”

“호현 씨! 저 말을 믿어? 눈에 영혼이 없잖아!”

“좋게 봐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양수철 자리의 원래 주인인 라이커의 전리품을 가져왔다는 헌터 역시 이 방으로 불러왔다. 그는 짧은 머리에 무뚝뚝한 생김새의 여자로 말수가 적어 보였다.

작은 여자와 깡마른 남자. 헌터를 외형으로 판단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았지만 처음 내 예상과 상당히 다른 용병들이 뽑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떡대 둘을 뒤에 멋있게 데리고 다니려고 했는데 말이지.

“우리 공방의 용병이 된 걸 축하해. 난 공방 주인인 호현이고, 호현 님이라고 부르면 돼.”

“임청입니다.”

“제로입니다.”

“이름들이 특이하네. 계약 관련해서는 여기 송아 누나랑 승연이랑 해결하면 되고, 또…….”

말하던 중 어디선가 조그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돌아보자 한쪽 구석에 서 있던 양수철이 눈을 굴리며 나왔다.

“제 면접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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