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72.
‘저렇게 맛있나.’
옆에서 훌쩍이며 국밥을 먹는 양수철을 신기하게 바라보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성산하가 내게 턱짓하며 물었다.
“대체 뭘 먹는 거지.”
“누구, 나?”
시선을 내려 손에 들린 것을 바라봤다. 며칠 전부터 점심 식사 대신 먹기 시작한 단백질 보충제였다. 텀블러에 꼽힌 빨대를 휘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프로틴. 단백질이야.”
“밥은 안 먹고 그런 걸 왜 먹지?”
“그야 당연히…….”
무의식적으로 답하려던 나는 성산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떡 벌어진 어깨나 옷 밖으로도 느껴지는 탄탄한 근육. 그런데도 무구하게 그런 걸 왜 먹냐고 물어보다니.
“재수 없는 새끼.”
“갑자기 또 왜 화가 났을까.”
실실대는 성산하를 무시하고 빨대를 휘저었다.
요즘 다람쥐가 해 주는 밥만 받아먹다 보니 몸이 무거워진 기분이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새로 각성자용 장비를 구하는 걸 고려하면 미리 체력을 길러 두는 편이 좋을 테니까.
‘그나마 주호현이 현장을 나가던 몸이라 다행이지.’
한 번에 털어 넣자 턱을 괸 채 신기하게 바라보던 성산하가 또 헛소리를 했다.
“설마 직접 만든 건가?”
“……나도 프로틴쯤은 사 먹거든.”
“하긴, 아무리 너라도 그런 이상한 짓을 할 리가.”
성산하의 혼잣말에 조금 움찔한 나는 모른 척 시선을 피했다.
사실, 만들어 본 적이 있기는 했다. 효과가 너무 강력해서인지 보충제 수준이 아니라 마시는 즉시 미친 헐크가 돼 버려서 문제였지만. 결국 그 포션 레시피는 조용히 폐기했다.
잊고 있던 기억에 고개를 내젓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양수철의 모습에 옆을 돌아봤다.
“저, 는 그럼 일어나 보겠습니다.”
“벌써? 더 먹지?”
평소와 달리 밥을 남긴 게 이상해 묻자 양수철이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청소해야 해서. 아, 오늘은 정원도 청소해 보려고……요!”
“정원을? 그냥 쉬어. 깨끗하던데 뭘.”
“아니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진심으로 해 보고 싶어서요! 그, 그럼 가 보겠습니다!!”
붙잡을 새도 없이 달려 나가는 양수철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는데 성산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게 새로 뽑았다던 그 직원?”
“응.”
“계속 데리고 있을 생각인가?”
“손님 맞이할 직원도 있어야 하니까. 언제까지나 승연이가 잡일할 수도 없고. 사실 좀 맹해서 못 미더웠는데 생각보다 일에 진심이었네.”
뭐가 웃긴 건지 혼자 키득대는 성산하를 보다 아까는 묻지 못했던 것을 물었다.
“바빴냐?”
“왜. 걱정했어?”
“그래. 걱정돼서 잠도 못 잤다. 네놈이 횡사하기라도 하면 나는 평생 목줄 차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죽는다면 자동으로 사라질 테니 걱정할 필요 없어.”
비꼬듯 한 말에 의외로 진지한 대답이 돌아왔다. 머뭇대다 황당히 물었다.
“너는 무슨 죽는다는 말을…….”
“미에에에!”
갑자기 튀어나온 구름이의 울음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혔다. 로비에 아무도 없자 튀어나온 게 분명했다. 내 다리에 몸을 비비는 구름이의 북슬북슬한 털에 손끝을 얽어 쓰다듬었다.
“쟤 있을 때 나오지 말라니까. 너 잡아가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메에.”
성산하가 제게도 관심을 달라는 듯 발을 까딱였지만 우리 똑똑한 구름이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기특해서 재료를 하나 꺼내 입에 물려 주자 성산하가 웃음을 터트렸다.
“먹인다는 게 뭔가 했더니만……. 하말을 동물 취급하다니.”
“구름이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신경 끄시지.”
비뚤게 답하면서도 대체 하말이라는 게 뭔가 싶어 휴대폰을 들었다. 그동안 알아봐야지 생각만 하고 매번 까먹었는데 이참에 찾아볼 작정이었다.
검색창에 입력하자마자 곧바로 뜨는 건 별자리였다. 심지어 별자리 심벌이 내 발목에 박힌 문양과 꼭 같은 모양이었다.
“하말은 양자리의 알파성이다……. 양 모습이라서 하말이라고 하는 거야?”
“대단한데. 이렇게 빨리 알아채다니.”
놀리는 듯한 목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아래서 구름이가 신나서 발을 쿵쿵 굴러 대고 있었다. 자기를 이제야 알았냐는 듯한 당당한 모습이었다.
“하말의 유지…… 양자리 알파의 조각?”
조각난 정보들을 주워다 이리저리 맞춰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구름이를 바라보는데 성산하가 내 이마를 툭 건드렸다.
“뭘 그리 고민해. 모르는 편이 나을걸.”
“……넌 알고 있단 소리잖아.”
“응. 네게 말해 줄 생각은 없지만.”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비뚤게 바라보자 성산하는 웃음기를 담은 채 손으로 내 얼굴을 덮었다.
“괜히 엮이지 말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 지금처럼.”
“어째 욕처럼 들린다?”
“티가 났나 봐?”
“이 새끼가……!”
짜증스럽게 팔을 뿌리치자 재수 없게 입꼬리를 올린 성산하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앉으며 말을 돌렸다.
“그동안은 연락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어. 잠깐 해외 출장을 다녀오느라.”
“그딴 거 안 궁금……. 해외 어디? 길드 일로 간 거야?”
해외 소리에 눈을 빛내며 묻자 성산하가 느물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스. 왜, 가 보고 싶어?”
“응. 어땠어? 사진 있으면 보여 줘 봐.”
“사진…. 같은 건 없는데. 나중에 나랑 같이 갈래?”
“너랑? 웩, 미쳤냐. 됐어. 여권도 없고.”
“여권이야 문제도 아니지만, 토까지 할 건 없잖아.”
첫 해외여행에 대해서는 꽤나 환상이 가득했다. 무조건 철저한 준비 하에 완벽한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거기에 성산하 같은 오점이 남아서야 되겠냐고.
‘나중에 상황 봐서 여권만 달라고 해야…….’
퍼뜩 스친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그럼 러시아 가자.”
“갑자기 무슨 변덕이야?”
“나 구할 아이템이 있어.”
“러시아까지 가서? 그냥 사지.”
‘살 수가 없으니까 굳이 러시아까지 가자는 거잖아.’
웃돈을 주고서라도 구매할 생각으로 경매장, 월계나루, 통신 판매 등 온갖 곳을 죄다 뒤져 봤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성산하의 여유로운 낯을 마뜩잖게 바라보며 말했다.
“설풍의 결정. 눈보라가 치는 곳의 보스 몬스터에게만 구할 수 있어.”
재료 이름만 들어서는 모를 것 같길래 설명까지 덧붙였다. 성산하의 반응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흠, 구하기 힘들 텐데.”
“왜?”
“러시아는 단일 길드 체제거든. 현재 엑스포 준비로 아이템은 수출 제한 중이라. 특히 그런 아이템이라면 엑스포 끝나길 기다리는 게 나아. 아니면 참여를 하든가.”
“그럴 시간이 안 돼. 젠장. 엑스포가 뭐라고 그렇게들…….”
머리를 싸매고 고개를 떨구는데 위에서 성산하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놀라질 않는 거 보니 엑스포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나 보군.”
“어. 제로에게 들었어.”
“왜 필요한지 물어도 되나?”
“포션 때문에.”
“그러니까 어떤 이유로.”
“말하면 아냐? 레시피 연구는 심오한 오의를 이해해야 하는 일이라고.”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자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눈을 깜빡이며 답을 재촉하는 모습에 결국 한숨을 흘렸다. 무릎 위로 풀썩 뛰어오르는 구름이를 안은 채 입을 열었다.
“예상 재료들 중 강한 불 속성의 재료들이 두 개나 들어가. 이대로라면 다른 재료들이 영향을 받아 제 기능을 못해서 상쇄할 만한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자잘한 것들로 계량하며 맞춰 보기엔 여유가 없어서 아예 강력한 얼음 속성 재료를 넣을 거야. 강한 재료들을 쓰는 만큼 조금만 빗나가도 터져 버릴 테니 게다가…….”
그동안 혼자 고민하던 것들을 줄줄 읊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성산하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꼭 재료를 구해야 하나?”
“뭐?”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싶어 파삭 표정을 구기고 돌아보는데 성산하는 웃음기 없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속성이 문제라면 재료 말고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설풍의 결정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장비 쪽에서도 불 속성을 다룰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지 않아? 소모성도 아니니 여러 번 사용할 수도 있고.”
생각보다 진지하게 이어지는 성산하의 말에 천천히 입이 벌어졌다.
“당장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심연 수정? 화기를 흡수하는 특성이 있어서 대장장이들이 많이 쓸 텐데.”
“너……. 꽤나 똑똑하구나? 그건 어떻게 알았어?”
“비슷한 쪽으로 사용해 본 적이 있어서. 몇 개 가지고 있기도 하고.”
“살게. 나한테 팔아.”
바로 말하자 웃음을 터트린 성산하가 고개를 저었다.
“절박한 게 귀여워서 그냥 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만. 안타깝게도 귀속 아이템이라 양도는 불가능해.”
젠장, 조금 쓸 만하면 귀속이라니. 그렇다면 내가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 갈 수는 없고. 임청과 제로가 시간이 어떻게 됐더라…….
둘의 스케줄을 고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어느 던전에서 얻었다고?”
내 물음에 성산하가 눈을 휘며 미소 지었다.
“부탁 들을 준비 되어 있어.”
“무슨 소리야.”
경계하며 바라보자 성산하는 팔짱을 낀 채 눈썹을 까딱였다. 무슨 의미인지 뒤늦게 이해한 나는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이젠 나도 용병이 있다고. 네게 부탁 따위 할 것 같냐?”
“듣자 하니 그 둘, 바빠 보이던데.”
“내 용병들 뒷조사하지 마. 스토커 새끼야.”
“메에에-!”
나도 질세라 당당히 서서 소리치자 발치에서 구름이도 힘을 보탰다. 성산하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나와 구름이를 번갈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수고해 봐. 선의로 말해 주지. 심연 수정은 대청호의 던전에서 구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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