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파업 선언-78화 (78/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78.

돔은 일종의 쉴드 역할을 하는지 어쩌다 지나는 자잘한 몬스터들도 내부로 들어오지 못했다. 중앙에 박혀 은은한 빛을 내는 로드를 미심쩍게 바라봤다. 저게 여기 있으면 성산하는 뭘 가지고 싸우는지도 의문이었다.

다른 수가 없어 털썩 주저앉는데 뭔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몬스터와는 다른 소리에 단검을 꺼내 들고 몸을 숙이는데 풀숲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심하게 다친 헌터였다.

“사, 살려 주세요!”

절박하게 이쪽으로 달려온 헌터의 상태는 가관이었다. 한쪽 팔은 뜯긴 채 피로 범벅이 된 꼴은…….

룬을 통과해 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린 놈은 고통에 반쯤 정신이 나가 입에는 거품이 끓고 있었다.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따로 챙겨 왔던 포션 가방을 꺼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많이 가져올걸.’

성산하는 힐러니까 많이는 필요 없겠지 싶어 조금만 가져왔는데 이제 와서 후회됐다. 힐링 포션을 꺼내 놈의 입에 물렸다.

“정신 차려. 여기서 정신 잃어 봤자 난 못 도와줘.”

“끄흑, 윽…….”

“스크롤 있어?”

“아, 니요.”

고개를 젓는 놈의 손에 성산하가 두고 간 스크롤을 쥐여 줬다.

“지하 10층으로 가. 그리고 거기서 도움 청해.”

“하지만…….”

헌터는 스크롤을 곧바로 찢지 않고 망설였다. 처음엔 스크롤을 믿지 못해 그러나 싶었지만 저 멀리 비명과 소음이 난무하는 바깥을 돌아보는 걸 보니 제 일행들을 걱정하는 듯싶었다.

“빨리 가. 네가 먼저 가야 다음에 보낼 놈들도 빨리 치료받을 거 아니야.”

“……감사합…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크롤을 찢은 남자가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이번엔 여럿이었다.

아예 포션을 꺼내 나열해 놓은 나는 밖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들어와.”

***

그렇게 포션과 스크롤을 거의 다 쓰고 헌터들을 위로 올려 보내는 동안에도 성산하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련히 잘하시겠지만 제 주무기인 로드를 두고 간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헌터들에게 성산하의 행방에 대해 물었지만 겨우 도망쳐 온 놈들은 아는 게 없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은 유일하게 면식이 있던 효영과 이재아였다. 다른 헌터들을 치료해 보내며 내심 둘을 찾았기에 살아 있는 모습을 보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 쓰러진 이재아를 업고 돔으로 오던 효영이 놀라 입을 벌렸다.

“그쪽은, 그쪽이 어떻게 여기 있어요?”

“들어와. 마침 스크롤이랑 포션도 딱 두 개 남았는데.”

“전 괜찮으니 그보다 재아를…….”

이재아를 흔들어 깨워 정신을 차리게 한 효영은 천천히 입술로 포션을 흘려 넣었다. 그를 바라보다 물었다.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밖에 다른 헌터들도 남아 있어?”

“아니요. 저희가 마지막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쉽게 풀린다고 욕심을 부린 게 문제였어요.”

“파동 변화 때문이야. 이미 바로 다음 층은 잠식됐어.”

효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까의 참상이 떠올라 쯧 혀를 찬 나는 스크롤을 건넸다.

“여기, 이거 받아. 지하 10층으로 올라가면 먼저 올라간 일행들이 구조대 불러 놨을 거야.”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스크롤을 받아 든 효영은 울컥하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에 움찔 놀라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 우는 모습은 쥐약이었다.

‘설마 우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데 혼자 감정을 갈무리하고 고개를 든 효영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을 돌렸다.

“함께 있던 분이 미스틱인 줄은 몰랐지 뭐예요.”

“아…. 그런 이름이었던가. 잘 싸우고 있어? ……뭐, 어디 다친 덴 없지?”

“몬스터들이 워낙 강력해서……. 남은 두 마리를 유인해 다른 곳으로 간 게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당연히 괜찮으시겠죠. 미스틱이니까요.”

“그래. 그놈이 누군데. 멀쩡하겠지.”

효영과 이재아가 마지막 남은 스크롤과 함께 사라지고 다시 나는 돔 안에 혼자 남았다.

돌아가서 새로 얻은 심연 수정을 이용해 가이딩 포션을 제작할 백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한 가지를 더 생각할 때까지 성산하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지지 않아 시간의 흐름이 없는 던전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땅에 꽂혀 있는 로드를 뽑아 들었다.

***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로드는 뽑힌 이후에도 조금의 쉴드 효과가 있었다.

내가 혼자 돌아다니는 게 불안했는지 어느샌가 튀어나온 구름이도 함께 성산하의 흔적을 찾았다. 멋대로 뛰쳐나온 구름이를 보고 처음엔 놀라 잡으러 갔지만 오히려 몬스터들이 구름이를 피해 슬슬 도망치는 것을 보고 안심해 풀어 두었다.

어느새 산을 내려와 처음 들어왔던 워프 장소 근처까지 온 상태였다. 슬슬 걱정이 되던 찰나 앞장서 킁킁대던 구름이가 갑자기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그를 황급히 뒤따랐다.

구름이가 향한 곳은 워프 장소 뒤쪽이었다. 워프 주변이라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숨겨진 공간이었다. 작은 연못 옆에 하얀 인영이 쓰러져 있었다.

“성산하!!”

놀라 달려가자마자 숨을 쉬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숨도 쉬고 있고 겉으로 보이는 외상도 없는데 그저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딱 하나 따로 남겨 둔 포션을 꺼내 성산하의 입에 흘려 넣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성산하, 야! 일어나!! 너 여기서 자면 죽어!”

멱살을 잡고 흔들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손을 치켜올렸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건 치료다…. 성산하를 위해서야. 몇 번 되뇌고 드디어 뺨을 때리려는 순간 성산하가 눈을 떴다. 평소보다 유독 밝아 황금빛으로 보이는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황급히 머리를 매만지는 척을 했다.

온통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의진?”

“아직 제정신 아니구나. 아픈 것 같으니까 이번은 봐준다.”

비뚠 말투에도 반박하지 못할 정도로 성산하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온통 인상을 찌푸리고 가쁜 숨을 내쉬는 모습에 다시 풀숲에 눕히고는 걱정스레 이마에 손을 올렸다.

“성산하. 너 괜찮아? 마나가 부족해? 아니면 독에라도 당한 거야?”

“저기, 내…….”

“뭐라고?”

“약…….”

낮게 들려 구름이가 찰방이며 놀고 있는 연못 쪽을 가리키던 손가락이 힘없이 뚝 떨어졌다. 미심쩍게 일어나 투명한 물속을 들여다봤다. 어쩌다 떨어진 건지 연못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포션병이 하나 보였다.

“포션이잖아?”

가장 깊은 곳이 무릎에 겨우 닿을 정도로 얕은 연못이었다. 연못 안으로 들어가 병을 주워 올렸다. 손가락만 한 병에 담긴 투명한 액체. 어떤 포션이든 극치에 다다라 정결해진 것이 가장 강력한 법이었다.

‘대체 뭐길래…….’

성산하가 따로 챙겨 다닐….

<????>

아주 적은 양

많은 정보가 가려졌지만 뭔지 알기엔 충분했다. 극치에 다다를 정도의 독이라고?

“대체 뭘 처먹는 거야?”

설마 다 포기하고 죽을 생각이었던 건 아니겠지……? 섬찟한 생각에 서둘러 연못에서 나와 성산하에게 다가갔다. 아직도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심각하게 바라봤다.

“성산하. 잠깐 일어나 봐. 스크롤 좀 줘.”

“큭, ……약은.”

“가져왔으니까……. 엇, 야!!”

내 손에서 순식간에 병을 낚아챈 성산하는 더는 참기 힘들다는 듯이 내용물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가쁜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줄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늘어진 흰 장갑에 쥐여 있던 포션병이 데구루루 굴러떨어졌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에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성산하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생각에 손이 덜덜 떨렸다.

“성…산하, 성산하!!”

축 늘어진 몸을 붙잡고 흔들던 때였다. 성산하에게서 눈이 멀 정도로 환한 빛이 퍼져 나왔다. 몇 번을 깜빡이며 타오르듯 점멸하던 광휘는 점차 사그라들어 마지막엔 성산하의 온몸을 두른 은은한 빛으로만 남았다. 그대로 멈춰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진 몰라도, 죽지 않았다. 숨도 쉬고 심장도 뛰고 있었다.

성산하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나서야 털썩 뒤로 주저앉았다. 남자답지 않게 살짝 눈물이 고일 뻔했다.

“이……. 씨발 놈아. 존나 놀랐잖아…….”

메에-. 태평한 구름이의 울음소리만이 주변을 울렸다.

***

성산하가 스크롤을 주지 않고 기절해 버렸기에 어쩔 수 없이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구름이와 로드의 힘으로 다가오는 몬스터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에 반짝반짝 빛나는 성산하를 질질 끌고 몸을 숨길 만한 곳으로 대피했다.

언제 깨어날지 몰라 그동안은 편하게 누워 있으라고 겉옷을 벗겨 머리에 받쳐 줬다. 그동안 볼 때마다 답답해 보이던 장갑까지 벗기는데 그 난리 통에도 순백색을 유지하는 하얀 장갑이 벗겨지며 드러난 손을 보고 그대로 굳었다.

“뭐야…….”

장갑 아래 감춰진 손은 새카맣게 썩은 상태였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7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