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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79화 (79/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79.

혹시나 싶어 다른 쪽 장갑을 벗겨 보니 다행히 멀쩡했다.

“미친, 손이 왜 이래?”

조심스럽게 팔을 들어 자세히 관찰하니 다행히 피부색만 죽어 있을 뿐 괴사하거나 썩어 문드러진 것은 아니었다. 평범하게 움직이던 걸 보면 손의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던데. 하지만 다시 봐도 창백하게 푸르죽죽한 피부는 죽은 사람의 그것이었다. 심지어 말단으로 갈수록 새까만 게…….

“독인가? 아니면 저주…….”

내 S급 스킬이었던 의신의 손길이라면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시 장갑을 끼운 채 가만히 자는 성산하의 얼굴을 지켜봤다.

***

일회용 냄비 안에서 탁한 노란색의 무언가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타지 않게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중간중간 하늘을 확인했다. 어제보다 조금 어두워지긴 했지만 아직은 조금 더 버틸 만했다.

“메에-.”

때맞춰 구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성산하가 일어났다는 신호였다. 뒤를 돌아보자 막 일어나 예민한 분위기의 성산하와 눈이 마주쳤다. 몸에서 나던 빛은 사라진 상태였다.

“여기가 어디지.”

“어디긴. 지하 21층이지.”

“네가 어떻게…….”

아직 상황 파악 중인지 주위를 둘러보는 성산하에게 냄비를 가져갔다.

“몸은 괜찮냐? 일단 이것 좀 먹어.”

“이게 뭐야.”

“죽.”

가슴을 쭉 펴고 당당히 대답했다. 내 나름대로 던전 일에 대한 성의 표시였다. 게다가 처음으로 만든 요리가 꽤나 그럴듯하게 ‘죽’ 같아 기분 역시 좋았다.

가만히 제 코앞에 내밀어진 냄비를 바라보던 성산하가 느릿하게 물었다.

“죽이 이런 생김새였던가……. 갑자기 어디서 죽을 만든 거야.”

“밀키트에 생각보다 여러 가지가 있더라고. 그리고 근처에 피로 회복에 좋은 열매가 열려서 그것도 넣어 봤어. 그건 구름이가 따다 줌.”

내 설명을 들으며 죽에 꽂혀 있던 숟가락을 툭툭 건들던 성산하가 피식피식 새는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그래서 죽에 여러 가지를 넣었어?”

“응.”

“잘했네……. 응. 정말 좆, 죽 같고.”

성산하의 칭찬에 으쓱해 효과도 붙었다며 자랑했다.

<죽은 죽>

아플 때 먹는 죽.

몸을 낫게 하는 것이 먼저일까 음식으로써의 역할이 먼저일까?

어쨌든 둘 중 하나는 챙겼다.

기본 재료에 약간의 창의성만 더하니 무려 피로를 회복시켜 주는 음식이 생겨났다. 요리도 포션과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더 쉬울지도.

성산하는 먹기 아까운지 그저 숟가락만 휘저으며 죽을 내려다봤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마주 앉아 먹기를 기다렸다. 성산하가 날 바라보고는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계속 그렇게 쳐다볼 거야? 부담스러운데.”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부담 좀 가져도 돼. 내가 처음 만든 음식을 먹는 거니까.”

“영광인데.”

드디어 크게 한 스푼 떠 올린 죽이 성산하의 입에 들어갔다. 우물우물 씹는 성산하의 표정이 아무 변화 없어 애가 탔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때? 맛있어?”

“정말…….”

말하다 말고 다시 한 입을 크게 떠 넣은 성산하의 얼굴에 웃음이 그려졌다. 어깨까지 떨며 웃던 성산하는 꿀꺽 삼키고 말했다.

“독창적이야.”

“뭐야, 좋다는 거야? 무슨 맛인데?”

“맛도 안 보고 먹으라고 준 거야? 먹어 볼래?”

“아니. 너 다 먹어. 너 먹으라고 만든 거야.”

“하아…….”

맛있게 먹는 성산하를 지켜보다 물었다.

“어제 일 기억은 나냐?”

“그러잖아도 물어볼 생각이었어. 어떻게 된 일이지?”

“금방 온다며. 하도 안 오길래 내가 찾으러 왔잖아.”

“참 말 잘 들어. 우리 호현이는.”

“걱정 마. 로드도 그렇고 구름이도 있으니까 몬스터가 안 오더라. 그보다도…….”

잠시 말을 멈춘 나는 흰 장갑을 낀 성산하의 왼쪽 손을 슬쩍 보다 말했다.

“손 봤어.”

숟가락을 쥐고 있던 성산하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나도 모르게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일부러 본 건 아니야. 네놈이 갑자기 독을 먹고 쓰러지더니 빛나는 시체가 될 뻔해서 편히 눕혀 주려고 하다가.”

“아, 이제 조금 기억나는군. 급히 꺼내다 빠트린……. 그사이 감정까지 해 봤나 보지?”

번뜩 빛나는 날카로운 눈빛을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데 그걸 왜 먹어? 아주 강한 독 같던데. 손 때문이야?”

“비슷해. 힘을 쓰는 대가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성산하는 어물쩍 말을 돌렸다.

“의도치 않게 걱정을 끼쳤군. 어떤 독이라도 자연적으로 치유되니 신경 쓸 필요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산하를 따라 시선을 올렸다. 나는 그대로 앉은 채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고통도 안 느껴져?”

재미있는 소리라도 들었다는 듯 빙긋 웃는 성산하의 얼굴이 너무 환해 순간 나는 다른 답을 들었다고 착각할 뻔했다.

“그럴 리가.”

“너……. 차라리 다른,”

“그 얘기는 그만. 이만 일어나자. 돌아갈 시간이야.”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어두운 하늘에선 찢는 듯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

스크롤을 이용해 순식간에 게이트로 나온 우리는 생각보다도 더 혼란스럽고 복잡한 상황을 마주했다. 게이트 앞이 꽉 차 있었다. 온갖 구급차들과 실려 나가는 헌터들, 쇄도하는 방송국 기자들과 카메라뿐 아니라 구경꾼들까지 가득했다. 미리 예상하고 로브를 깊이 쓰고 나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나와 성산하 둘 다 카메라에 잡힐 뻔했다.

“이쪽으로 가자.”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 지나가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간헐적으로 ‘미스틱’, ‘성산하’ 등의 단어들이 들려왔다.

‘맞다. 성산하는 정체 드러났지 참.’

혹시나 해 뒤를 돌아보니 며칠 전엔 광고로 가득했던 커다란 전광판에는 뉴스가 송출되고 있었고 아래로 「대청호 사건의 영웅, 그 정체는 미스틱?」 따위의 헤드라인이 크게 적혀 있었다.

성산하와 함께 처음 차에서 내렸던 곳으로 가자 하루가 지난 날임에도 기사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성산하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던전을 벗어났다는 생각에 며칠간 쌓인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월계나루 근처였다. 눈을 깜빡이며 성산하 너머로 보이는 창밖을 바라봤다. 내가 일어난 걸 알았는지 성산하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잘 잤나? 곧 도착이야.”

“……언제 잤지.”

웅크린 몸 위에 성산하의 재킷이 덮여 있었다. 긴 하품을 하며 눈을 비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공방 앞에 차가 멈춰 섰다.

정원을 청소하던 수철이가 차를 보고 놀라 구십 도로 꾸벅 인사하는 걸 보자 정말 내 집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나도 모르게 왼쪽 가슴팍을 매만졌다. 며칠간 고생의 산물인 심연 수정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죽을 뻔했으면서 잘난 척은…….”

“하, 그건.”

슬쩍 기사를 바라본 성산하가 말을 아꼈다. 어쨌거나 고마운 마음은 진심이라 성산하에게 말했다.

“도움받은 건 반드시 보답할게.”

“이미 받았잖아. ‘씨발 산하 형.’”

“야, 그건……! 어쨌든 정말이야.”

“기대돼라.”

성산하는 장난으로 치부했지만 진심이었다. 성산하의 손으로 가는 시선을 붙잡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차 문을 열고 내리려던 나는 문득 든 의문에 성산하를 돌아봤다.

“아, 근데 너 그 헌터들 왜 구한 거야? 전엔 네 알 바 아니라며.”

막 전화를 받으려던 성산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내가 그런 질문을 할 줄 몰랐다는 표정을 짓던 성산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선의. 약속했거든. ……착하게 굴기로.”

“누구랑?”

성산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더는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전화를 받는 모습에 나도 문을 쾅 닫고 등을 돌렸다. 차가 떠남과 동시에 안쪽에서 연승연의 외침이 들렸다.

“호현 님! 오셨군요!!”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응. 돌아왔어.”

끔찍한 던전에서 지내다 공방을 보니 이렇게 풍경이 좋을 수가 없었다. 신나서 안으로 발을 들였다.

***

작업실 한가운데에는 내가 따로 수배한 가이딩 측정 기계가 놓여 있었다. 센터에서 폐기 딱지가 붙어 있던 것을 따로 돈을 주고 슬쩍 한 거라 전에 봤던 기계보다 낡았다. 그래도 기능에는 문제가 없다니까.

퀘스트 남은 기간은 13일. 그동안 공방의 모든 포션 제작은 멈추고 지하 작업실은 온전히 나만 이용하기로 했다. 널따란 작업대에는 임청과 제로가 열심히 구해 온 스무 종의 아이템들과 가공을 마친 심연 수정이 놓여 있었다.

“시작해 볼까.”

오랜만의 마스터다운 제조에 가슴이 설렜다. 오늘만큼은 옆의 찬장에 마나 포션과 활력 포션, 상태 이상 포션까지 가득 채워 놓았다. 주호현의 물몸에 발목을 잡힐 수는 없다.

팔을 걷고 정제수가 가득 들어찬 냄비에 심연 수정을 빠트리자 순식간에 냄비 안의 모든 파동과 에너지가 흡수되어 수면이 고요해졌다.

미리 머릿속으로 짜 놨던 공식을 하나씩 실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라이커의 갈기 10g에 졸린 가지 1cm……. 그리고 곤달즙은 일단 한 방울만…….”

펑 소리와 함께 냄비가 터졌다. 실패했지만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래야지. 쉬우면 재미없지.”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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