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80.
온통 몰입해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르고 연구에 열중했다. 아무의 연락도 받지 않고 끼니도 거른 채 포션을 만들다 최소한의 휴식을 취할 때면 조용히 들어온 연승연이 내 몸을 바로 누이고 이불을 덮어 줬다. 마나가 고갈되면 포션을 마시고 몸이 피곤함을 느껴도 포션을 마시고, 머리가 아파도 눈이 뻐근해도 포션을 마셨다. 준비했던 포션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떨어져 두 번을 더 채워 넣어야 했다.
셀 수도 없이 계속되는 실패에 제로와 임청이 급히 재료를 구하러 간 것만도 세 번이었고 물탱크 가득 들여놓았던 정제수가 뚝 떨어져 쉬고 있던 진명이가 급히 출장을 오기도 했다. -손님을 제외한-많은 사람들이 공방에 방문했으나 가이딩 포션을 만든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기에 짧은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모두 돌려보내야 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지하에서 연구에 연구를 반복했다.
“제작.”
<미지의 포션>
알 수 없는 힘이 가득 담긴 포션.
자연의 에너지가 풍부하나 흡수되지 않고 사라진다.
“젠장! 또야!”
삼 일 전, 나는 원하던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담은 포션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포션이 가진 에너지가 ‘가이딩’이 아닌 자연의 에너지라는 두루뭉술한 이름만 가진 채 인간에게 흡수되지 않고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내 계산대로라면 이 재료들을 조합하면 가이딩 비슷한 힘이 나와야 맞았다. 그런데 웬 뜬금없는 자연의 에너지? 수백 가지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해 도출해 낸 결과인데 뜬금없이 나타난 변수에 골머리를 앓았다. 몇 번을 다시 만들어 봐도 같은 포션이 나왔다. 마치 이게 한계라는 듯.
“아, 미치겠네.”
답답해 머리를 부여잡고 작업실 내부를 이리저리 배회했다. 이미 모든 것을 쏟아 냈기에 이 레시피가 내 최선이었다. 깊은 한숨을 뱉던 내 발치에 가이딩 측정 기계가 걸렸다. 가이딩 포션이 만들어지면 그 효과를 측정하려 준비한 건데 지금까지 쓰지도 못한 채 먼지만 쌓이는 중이었다.
잠시 환기할 겸 오랜만에 가이딩 측정이라도 해 볼 생각으로 손잡이를 잡고 버튼을 눌렀다.
“얼마나 올랐으려나.”
센터를 나오기 전까지 가이딩 총량이 조금이지만 꾸준히 올랐기에 몇 달이 지난 지금은 내심 전보다 훨씬 높을 것을 기대했는데 기계는 미동도 없었다.
“어라? 이거 왜 이래. 고장 났나?”
기계를 툭툭 치던 나는 전에는 가이딩 에너지가 통할 수 있도록 손에 젤을 바르고 측정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맞다. 젤! 촉매제로 쓸 만한 게 있나? 젤, 젤…….”
작업실에 젤이 있을 리가 없었다. 비슷한 촉감의 재료들이 있기야 했다만 잠시 일탈하자고 손에 슬라임의 진액을 덕지덕지 바르고 싶진 않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실패작들이었다.
여러 아이템을 조합해 포션 내부에 힘을 불어넣긴 했다만 인체에 흡수되지 못하고 퍼져 버리기에 <미지의 포션> 시리즈는 엄밀히 말하면 정제수나 다름없었다. 존나 비싼 정제수.
포션 중 하나를 열어 손에 적신 후에 손잡이를 잡았다. 그제야 손잡이를 통해 내 몸에서 기계로 힘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퍼센트가 천천히 올라갔다.
10%…….
25%…….
69%…….
진행률에 비해 이상하게도 게이지는 단 한 칸도 차오르지 않았다.
‘이상하다, 아무리 그래도 다섯 칸은 차야 하는데…… 역시 고장 난 기계인 건가.’
측정기에서 삐삐거리는 경고음이 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아 손을 놓으려다가도 꾸준히 올라가는 퍼센트를 보며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어차피 고장 난 거라면 끝까지 가 보자는 생각이었다. 진행도가 100%가 됨과 동시에 한 칸도 차오르지 않던 게이지에서 펑 소리가 나며 화면이 완전히 꺼졌다 다시 밝게 빛났다.
<5624rp>
멈춰 서 멍하니 숫자만 바라봤다.
“오천……?”
상상도 한 적 없던 수치를 인지했을 때 기계가 고장이라는 생각보다도 먼저 스친 가정이 있었다. 제작자로서의 촉과도 같았다.
“미친, 설마…. 설마…….”
빠르게 뛰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갈 것 같았다. 정신없이 작업대로 달려간 나는 방금 전의 가정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작업대를 뒤집어엎었다. 그러다 번뜩 스친 생각에 이리저리 던져 놓았던 실패작들을 모두 한데 끌어모아 놓고 떨리는 입술을 떼 말했다.
“…방사 가이딩!”
그리고 내 눈앞에 엄청난 길이의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대상을 선택해 주세요.
(다중 선택 가능)
-근처 ???
►미지의 포션(1)
►미지의 포션(2)
►미지의 포션(3)
►미지의 포션(4)
►미지의 포션(5)
►미지의 포션(6)
.
.
“하, 미친.”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내가 노력한 길의 끝이 막다른 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견딜 수 없이 벅찬 감정이 피어올랐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포션들을 모두 냄비에 쏟아부었다.
“방사 가이딩, 미지의 포션에 모든 rp를.”
내 온몸에서 작게 빛나는 가이딩들이 새어 나와 냄비를 향해 들어갔다. 빛들은 포션에 닿자마자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가이딩을 흡수한 포션들이 점점 환해지더니 종국엔 냄비에서 빛이 번쩍번쩍 새어 나올 정도로 빛났다.
이거다. 감정도 기계도 필요 없었다. 내 오랜 마스터의 촉이 말해 주고 있었다. 이 포션은 성공이라고. 내 모든 가이딩을 처먹은 포션을 냄비째로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하, 씨발 진짜. 의진아, 강의진!! 존나 멋진 놈. 천재야. 나는……. 감정!”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아니.”
<최상급 가이딩 포션>
가이딩 에너지가 흘러넘치도록 담긴 포션.
퀘스트 성공을 알리는 창이 우르르 뜨며 띠링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전 세계의 모든 에스퍼들에게 순차적으로 가이딩 포션을 구하는 퀘스트가 생겨납니다.]
[명성이 놀라울 만큼 크게 증가합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스킬을 선택해 주세요]
.
.
.
[메인 퀘스트#4 클리어.]
지금까지 그 어떤 포션 메이커도 가이딩 포션을 제작하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가이딩 포션은 반드시 가이드의 손길이 닿아야 했다.
‘가이딩을 할 줄 아는 포션 제작자가 없어서, 설령 있다 한들 포션에 가이딩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이 없는 거야.’
나도 주호현의 스킬 없이는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성공하고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한서진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직접 멋있게 가이딩 포션을 건네주고 싶으나 그럴 순 없었다. 직접 팔기에는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 이런 범용적인 포션은 공익을 위해 외부에 푸는 것이 옳았다. 전 세계에 폭주로 고통받는 에스퍼와 가이드들이 한둘도 아니고. 아깝지만 가이딩 포션은 레시피 전체를 판매할 것이다.
물론 각국에 레시피를 넘기는 과정에서 내 통장엔 아주 크고 실속 있는 대가가 차곡차곡 쌓이는 건 덤이다.
너무 비싼 재료들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일이나 포션을 레시피화 시키는 등의 후처리가 남아 있었지만 시간 제한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샘플이 될 황금빛 액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소분했다.
“이건 명예, 이건 돈, 이건 명성…….”
***
미처 알지 못했는데 나는 아슬아슬하게 몇 시간을 남기고 퀘스트를 성공한 거였다. 칩거한 지 13일이 지난 상태라는 것을 알고는 이미 퀘스트를 클리어했는데도 심장이 조금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13일 동안 쪽잠으로 연명했던 나는 그동안 못 잔 잠을 몰아 자기라도 하듯 하루를 꼬박 잤다.
다시 일어나 방 밖을 나오자 세상은 S급 헌터의 죽음으로 시끄러웠다.
“벨라가 죽었다고?”
그는 드물게 나도 알고 있는 헌터라 놀람을 숨길 수 없었다. 이탈리아의 최대 길드의 보스 벨라는 정부와 첩을 합하면 도합 쉰 명이 넘는다는 소문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외모로 잘 알려진 헌터였다. 막강한 매혹 스킬을 가져 요즘 학생들이 이탈리아의 수도는 몰라도 벨라는 안다고 할 정도였다.
바다 건너 들어온 그의 의뢰를 받아 본 적이 있어 그런지 벨라가 죽었다니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벨라의 사인은 불명. 죽은 것은 보름 전으로, 국가적 예우를 다해 장례를 치른 후에 세계에 알렸다고 한다. 드물게 텔레비전 앞에 앉아 뉴스를 보던 나는 성산하가 가게에 들어온 것도 모르고 뉴스를 보고 있었다.
“오랜만인데 인사도 없는 거야?”
툭툭 두드리는 손길에 뒤를 돌아보고서야 성산하가 왔단 사실을 알아챘다.
“뉴스 봤어?”
“그럼. 저 일로 얼마나 바빴는지 이제야 한숨 돌리러 온걸.”
“숨을 왜 내 가게에서 돌……. 잠깐, 저 일로 바빴다고?”
왜지? 궁금증을 못 참고 물으려는데 가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이초가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산, 산하 님! 드릴 말씀이…….”
내게 인사할 정신도 없어 보이는 모습에 한발 뒤로 물러났다. 성산하와 이초가 대화를 나누러 한쪽으로 간 사이 나는 다시 뉴스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내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주인이 ‘태제헌’의 위치를 인지하는 순간 계약 해지]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뭐……?”
「조건 충족으로 긴밀한 충심을 대가로 한 모든 계약이 해지됩니다.」
「라이라프스의 목줄이 본래의 주인에게 반환됩니다.」
연이어 떠오르는 상태창에 놀라 돌아보자 당혹스러운 낯의 성산하와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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