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81.
곧바로 내게 다가온 성산하가 한쪽 구석으로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를 따라가며 물었다.
“방금 뭐야? 그 새끼 찾은 거야? 설마 아예 돌아온다는 소리야?”
“본 그대로야. 방금 소재를 파악했고 빠른 시일 내에 녹스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미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중얼거렸다. ‘주호현’이 보이기엔 과한 반응이었지만 그걸 미처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태제헌의 출현은 갑작스러웠다. 그런 날 보는 성산하의 표정도 좋지만은 못했다. 태제헌 생각에 정신이 팔린 내 턱을 잡아 올린 성산하는 각인하듯 눈을 맞추며 말했다.
“내가 연락할 때까지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공방에 붙어 있어.”
“…….”
“응? 멍멍아.”
“이젠 목줄도 없는 게.”
어디서 명령이냐고 투덜거리자 머리를 짚은 성산하가 나직하게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야 감시라도 붙이고 싶다만……. 부탁하지.”
“알겠어.”
“태제헌에겐 반지도 소용없는 것 잊지 마. 네 얼굴을 기억 못 하더라도 네가 ‘강의진’과 닮았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을 테니. 마주치면 반드시 네게 관심 가질 거야.”
성산하 말대로 태제헌은 아예 만나질 말아야 했다. 막상 마주해 내가 강의진인 걸 숨길 자신도 없었고 설령 속일 수 있다 해도 제 심기를 거스르면 곧바로 돌변해 개새끼 밥으로 뿌릴 새끼다. 생각하기도 싫은 이름에 진저리 치다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돌아온 거래.”
“가서 알아봐야지. 그동안 무슨 이유로 잠적한 건진 몰라도 이쪽엔 일부러 정보를 흘린 거다.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게 분명해.”
다른 목적이라니……. 등 돌려 떠나려는 성산하를 급히 붙잡았다.
“태제헌 정보 들어오면 나도 알려 줘.”
“연락하지.”
다급해 보이는 이초와 함께 떠나는 성산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허전해진 목을 더듬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인터넷 뉴스, 헌트로폴리스, 티브이 등 닿는 모든 곳들을 정신없이 뒤졌다. 그러나 태제헌이 돌아왔다는 말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긴, 천랑 길드장도 방금 전해 들은 정보가 벌써 퍼져 있을 리 없긴 했다.
태제헌이 언젠간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때가 오자 이렇게 불안할 줄이야. 그동안 태제헌 없는 일상이 편하긴 했나 보다. 잠도 오지 않아 자정이 넘도록 멀쩡한 눈만 감고 있던 나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답답해 활짝 열어 놓은 방문을 나섰다. 공방 옥상으로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맞자 그제야 숨이 막혀 갑갑했던 가슴이 뻥 뚫렸다.
“하아…….”
옥상 바닥에 냅다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사실 가장 좆같은 건 태제헌에게 휘둘리는 내 모습이었다. 겨우 이름 세 글자에 불안해하는 내 모습이 아직 그새끼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서…….
“어디 가서 확 죽어 버리지. 이 씨발 새….”
“메에.”
“엇, 구름아.”
구름이가 다가와 내 곁에 다리를 굽혀 앉았다. 배에 얼굴을 얹고 날 응시하는 새카만 눈망울을 마주하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언제 나왔어. 나 위로해 주는 거냐? 우리 구름이 의리 있네.”
“메에에에-.”
“그래, 여긴 녹스가 아니라 내 공방이지.”
더 이상 태제헌의 성채에 갇힌 개새끼가 아니다. 나는.
“……별일 없겠지.”
그 새끼 눈앞에서 죽었는데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날 찾아다닐 리도 없었고. 처음에 지랄하던 성산하만 봐도 지금은 포기하지 않았는가. 지레 겁먹고 꼬리를 말 필요도 없는 거였다.
손을 들어 구름이의 복슬하고 단단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맑은 밤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빛나며 내게 쏟아질 듯했다. 그중 간헐적으로 아주 옅게 깜빡이는 별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
“호, 호현 님, 호현 님! 으아악!”
문을 벌컥 열고 급하게 들어오려던 연승연이 제 눈앞에 보이는 선명한 복근에 기절할 정도로 놀라 뒤로 까무러쳤다. 잡념을 없애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방문에 걸어 놓은 풀업바에서 턱걸이를 하는 중이었던 나는 털썩 바닥으로 내려와 의아하게 물었다.
“왜 이렇게 급해.”
“그게…. 오, 옷부터 입으시면…….”
“아직 운동 다 못했는데, 급한 일이야?”
“그, 그것에 대한 일이라…….”
“가이딩 포션?”
얼굴이 새빨개진 채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연승연에 결국 벗어 놓은 옷을 들어 껴입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내가 가이딩 포션 제작을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연승연이 유일했다. 에스퍼들에게 퀘스트가 간다는 시스템창을 보고는 혹시 센터에서 연락이 들어오면 전해 달라고 해 뒀는데. 이렇게 급한 걸 보면…….
“무슨 일인데?”
“호현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센터에서 그, 그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막 속보도 뜨기 시작했고요. 여기…….”
내미는 연승연의 손에 여러 장의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받아 들어 빠르게 훑었다. 가이딩 포션의 파급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온갖 단체들이 보낸 공문서들의 향연에 혀를 내둘렀다.
‘아직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한다고?’
헌터 협회에서 제작계에게 돌린 협조 요청 공문과 월계나루 연합에서 돌린 안내문, 에스퍼·가이드 센터에서는 호소문을 보냈으며 그들이 속한 국제기구인 ‘세계초능력기구’에서는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공개 수배 공문까지 돌렸다.
모두가 가이딩 포션을 선점하길 원하는 건 당연했다. 한동안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물밑으로 경쟁하느라 잠잠할 줄 알았건만 이토록 빠르고 단합적인 움직임이라니. 예상과는 달랐다. 연승연이 우물쭈물 말했다.
“사실 제게도 아침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월계나루에서 온 공문을 받느라 중간에 끊어야 했는데 호, 혹시 저보고 만들었냐는 의심을…, 모르는 일이라고 하긴 했지만 센터도 크게 뒤집어진 상태 같습니다.”
“널 의심하다니. 벌써 국적까지 알아낸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포션 쪽으로는 앞서 나가다 보니 WPO에서는 우리 쪽을 의심할 겁니다.”
“슬슬 센터랑 접촉하긴 해야겠네.”
종이에 적힌 신고 회선을 손으로 쓸며 중얼거리자 연승연이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빨리요? 차라리 가이딩 포, 으악!”
“승연아!”
전결서약도 잊고 말하던 연승연이 고통에 주저앉았다. 다가가 일으키자 눈물이 핑 돌아서는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너, 너무 급한 것 아닌가 우려됩니다. 레시피를 완성하고 거래하는 편이 호현 님께 더 도움 될 텐데…….”
연승연의 말처럼 확정된 레시피로 거래하는 게 거래에서 조금 더 유리하긴 했다. 사실 성산하의 경고도 있고 마음 같아선 태제헌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묵히며 연구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에스퍼 쪽의 움직임이 심상찮았다.
“걸릴 바엔 선수 치는 게 나아.”
“호현 님…….”
“그리고 돈도 없고. 제대로 연구해서 레시피 확정하려면 돈도 많이 들 텐데 지원금 따내야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근심을 다 숨기진 못한 연승연이 걱정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연승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까 전화 왔다는 사람한테 다시 전화 좀 해 봐.”
“네? 그건 왜……?”
“사전 답사 해야지.”
연승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연승연이! 아까는 손님이었나? 공방에서 재미 좀 보나 봐?]
“그런 거 아닙니다…. 아직 시작 단계라, 선배님 잘 지내시죠…….”
[잘 지내긴! 요즘 아주 정신없어 죽겠어. 정말 놀랍지 않나? 그으으-음음 포션이라니. 우리 평생의 과업 아니던가. 내 생애 그것 제작을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줄이야! 에스퍼들에게 떨어진 퀘스트만 아니었다면 믿지 못했을 거야. 소장님이랑 센터장이 함께 와서는 숨기는 거 있으면 죽을 줄 알라면서 잡도리를 아주……!]
“그, 그런 협박을 했단 말입니까?”
[에잉, 말이 그렇다는 거지. 살짝 양념한 것 가지고 뭘 그리 놀라나. 예민한 걸 보니 혹시 자네…….]
“아닙니다! 그럴 리 없잖습니까!!”
[정말 아니지? 우리끼리는 자네 의심한 적도 있다고. 한창 성과 잘 나오다 나가 버렸잖은가.]
“제가 그걸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죠……. 저도 공문 보고 궁금하던 참이었습니다.”
[하하하. 농담이야. 공방도 겨우 6등급이라면서. 소문 다 났네.]
둘 다 센터와 전결서약을 맺은 놈들이라 그런지 가이딩 포션이란 주어 없이 말을 나눴다. 시끄러운 상대에게 휘둘려 혼이 빠져나간 연승연을 보다 입 모양으로 속삭였다.
“그거 물어봐 봐.”
“네? 어떤…….”
“에스퍼들 분위기는 어떻냐고. 뭐, 레이븐팀 같은. 나 나온 뒤로 가이드도 부족하고 그랬을 거 아니야.”
사실 궁금한 건 한서진이었지만 대충 에둘러 레이븐팀으로 포장했다. 내 말에 잠깐 멈칫한 연승연이 전화기에 대고 물었다.
“현장팀 쪽 반응은 어떤가요?”
[어떻긴, 외국이야 우리나라를 의심하지. 그래도 우리는 실상을 알잖나? 이건 비밀인데 센터에선 아예 제3의 국가일 가능성을 두고 조사를…….]
말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길래 툭툭 치며 재촉하니 연승연이 다시 대상을 좁혀 물었다.
“아아, 그렇습니까……. 서울 센터의 팀들도 궁금해서요. 레, 이븐팀이라든가.”
연승연의 물음에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잠시 후 터져 나가듯 남자의 탄성이 돌아왔다.
[아아! 무슨 소리인가 했네, 언제 적 레이븐인가. 그 팀이 와해된 지가 언젠데. 쫄딱 망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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