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85.
믿기 힘든 황당한 소리에 입이 떡 벌어졌다. 강의진이라니. 내가 강의진인데 무슨 헛소리지 이게.
“저 미친 새끼는 뭐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미 경연장은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터지는 플래시와 녹음기를 들고 단상으로 몰려드는 기자들로 인해 대 혼동 상태였다. 누군가 멍하니 서 있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흠칫 놀라 돌아보자 연승연이 서 있었다.
“호현 님, 호현 님!”
“승연아.”
“사람이 너무 많아요!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연승연과 함께 단상 아래로 내려오면서도 자랑스레 웃고 있는 놈에게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연승연이 속삭였다.
“준결승전에서 만났던 린지 그레인이 3위를 했습니다. 방금 부상을 받고 경연장을 나갔습니다.”
“벌써? 어느 쪽으로 갔는지 기억해?”
“네. 위층으로 올라가는 걸 봤는데…. 바로 전이라 멀리 가진 못했을 겁니다.”
연승연이 입구를 가리켰다. 연승연과 단상 위의 사칭범을 번갈아 보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존나 어이가 없었지만 저 새끼야 곧 잡히겠지. 사칭범보다 당장 내 설풍의 결정이 중요했다.
“승연이 네가 먼저 가서 린지를 잡아 놔. 난 2등 부상 수령해 갈 테니까.”
“네!”
서둘러 달려 나가는 연승연을 보다 나도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부상을 받는 곳으로 향하려는데 성산하가 보였다. 무대로 몰려드는 사람들 사이 홀로 우뚝 서서 한곳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급히 달려가 성산하의 손을 덥썩 잡았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일단 나가자.”
“…….”
“대체 무슨 난린지, 오늘 엑스포 구경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 ……성산하?”
우뚝 선 성산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 역시 저 멀리 무대 위의 사칭범에게 꽂혀 있었다. 아까는 나만 쳐다보더니 이젠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쳐다도 보지 않는다. 불쾌한 기분에 인상을 쓰고 팔을 흔들었다.
“야, 빨리 가자니까.”
드디어 성산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손등에 장갑의 부드러운 감촉이 닿는가 싶더니 잡은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를 황당히 보자 성산하가 애써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뭐냐, 이거.”
“나중에, 나중에 놀아 줄게. 오늘은 먼저 가.”
“너 그게 무슨…. 성산하!”
성산하는 등을 돌려 단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텅 빈 손을 꾹 쥐었다.
“이 멍청아. 당연히 가짜잖아…….”
***
공방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린지와 3등 부상을 교환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멍하니 서 있다 연승연이 찾으러 오기까지 했으니.
설풍의 결정도 얻었겠다, 가이딩 포션을 만들 준비가 다 되었지만 작업실로 내려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온 정신은 소파에 앉은 양수철과 연승연이 보고 있는 뉴스에 쏠려 있었다.
[녹스로는 돌아가지 않으신다고요. 어떤 길드에도 속할 생각이 없단 말이신가요?]
[응. 생사의 기로에 서고 나니 부와 명예…… 그 모든 것에 달관하게 됐어. 이젠 내 힘으로 베풀며 살고 싶어.]
금방 거짓말이 들통나 전 국민에게 망신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사칭범 새끼는 칭송과 우러름을 받으며 뉴스에 출현했다. ‘압도적인’ 차이로 포션 대회 일등을 차지한 실력 역시 그가 강의진이란 사실을 뒷받침했고 심지어 그 뒤에는 녹스에서 내 심부름을 하던 놈까지 서서 그가 강의진이란 구라에 확신을 더해 주고 있었다.
‘찬정이 저 새끼는 왜 저기 있는 거야. 녹스는 그만두고 나온 건가? 나를 몇 년을 봤는데 가짜랑 나랑 구분도 못하고 저기 서 있어? 저건 짭의진이라고.’
물론 나와 소름 끼치게 닮긴 했다만-이쯤 되자 내가 흔한 얼굴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내가 유명한 게 어디 큰 키와 잘생긴 얼굴뿐이었던가. 세계 유일의 포션 마스터, 그게 나인데.
겨뤄 봐서 확실히 안다. 놈의 포션 실력은 형편없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져 준 덕에 우승한 거지 오히려 나랑 준결승전에서 붙었던 린지보다도 약해 보였다고. 게다가 끼고 있는 범생이 같은 안경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씨발, 태제헌 때문에 내가 강의진이라고 나서지도 못하고.
사기꾼도 구분하지 못하고 넙죽 붙어 있는 찬정이를 보자 자연히 떠오르는 얼굴. 멍청한 성산하.
‘언제는 강의진 존나 잘 아는 척하더니……. 이제 보니 다 헛소리였잖아.’
내 손을 쳐 버리고 사칭범 새끼만 맹목적으로 바라보며 떠나던 성산하의 뒷모습이 선연했다. 게다가 그렇게 간 후에 어떤 연락도 없었다.
‘씨발. 엑스포 구경시켜 준다고 약속했으면서.’
엎드려 팔을 베고 누운 채 눈앞의 주머니를 푹푹 찔러 댔다. 주머니 안에 든 설풍의 결정들이 잘그락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뉴스를 보던 양수철이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강의진, 강의진 말로만 들었지 얼굴 보는 건 처음인데 존나 잘생겼네요. 강의진 포션이 그렇게 대단하다면서요?”
“응…. 세계 유일의 포션 마스터니까.”
뉴스를 보며 떠드는 양수철과 연승연의 대화를 듣다 고개를 반대로 하고 물었다.
“나랑 닮지 않았냐?”
“네?”
“누구랑요?”
수철이와 승연이가 화들짝 놀라 날 돌아봤다. 티브이를 턱짓하자 둘은 화면에 나오는 가짜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고는 너털웃음을 치며 손을 내저었다.
“아하하! 아니요. 안 닮았는데요?”
“호, 호현 님이 더 잘생기셨습니다……!”
“어라? 잠깐…. 그 말 듣고 보니 좀 비슷하긴 합니다. 조금 닮은 형제? 아니다, 사촌 정도로는 보입니다. 당연히 큰 사장님이 훨씬 잘생기셨습니다!”
나랑 똑같이 생겼는데 무슨 소리야? 반지를 끼고 있다 해도 외모는 그대로일 텐데. 뚱하게 고개를 들어 화면을 바라본 나는 멈칫해 몸을 굳혔다.
방금 전까지 나와 닮아 존나 잘생겼다고 생각한 얼굴을 다시 보니 전혀 다른 생김새였다. 전체적인 느낌이 비슷하긴 했으나 양수철의 말대로 잘 쳐줘 봐야 닮은 정도지 주호현의 몸을 처음 봤을 때만큼의 소름은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저렇게 생겼었나?’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서 얼굴마저도 잘못 본 건가 싶어 머쓱하게 목뒤를 매만졌다.
대체 무슨 속셈인지는 알아야 했기에 뚱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마저 보는데 또라이 사칭범은 자기 죽음이나 녹스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정말 감격적인 말씀이십니다. 그럼 현재 몸담고 계신 노바리온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말했듯이 죽어 가는 날 살려 준 곳이지. 그 외에도 내게 많은 도움을 준 곳이야. 공익과 봉사를 위해 힘쓰는 굉장히 좋은 기업이고. 그래서 함께하기로 했어.]
[그럼 오늘 이후로 포션 마스터의 포션은 녹스가 아닌 노바리온에서 전속으로 공급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 셈이지.]
연승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노바리온? 어디서 들어본 이름…… 아!”
휴대폰을 꺼내 서둘러 뭔가를 검색해 본 연승연이 벌떡 일어나 내게 급히 다가왔다.
“호현 님! 호현 님, 그 회사입니다!”
“무슨 회사?”
의아하게 묻자 연승연이 몸을 숙여 속삭였다.
“노바리온, 호현 님께서 의뢰했었던 가이딩 보조제를 만든 회사 말입니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보조제를 만들었던 회사.
-제조사가 처음 들어 보는 곳이에요. 노바리온. 정식 등록된 회사긴 한데 검색해도 나오는 정보가 없고 출시한 약이라고는 이 가이딩 보조제가 다라서요.
연승연이 처음 알아봤던 그때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사칭범이 거기 속해 있다고? 구린 냄새가 났다.
“…….”
잠잠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성산하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지만 그저 지금까지 도움받은 게 있으니 못 본 척할 수가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성산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떤 이유로든 성산하에게 연락할 구실이 생기자 속이 다 시원했다.
신호가 가는 소리가 길어졌다. 생각해 보니 성산하가 받지 않을 가능성도 컸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 강의진이 아니라고 했는데도 또라이처럼 스토킹했던 놈인데 직접 강의진이라고 주장하는 놈을 만났으니 눈이 돌아 버렸을 게 분명하다. 멍청하게 가짜도 구분 못하고.
‘또 바쁘다고 안 받겠지. 내가 딱 다섯 번만 전화해 보고, 아니 세 번, 아니 딱 한 번만 더 해 보고 신경 끈다.’
점차 기대가 사그라들 때쯤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지루한 낯으로 퍼져 있던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응. 호현아.]
“성산하! 지금 뭐 해? 지금 어디 있어?”
[오늘 무슨 날인가? 이렇게 반겨 주다니 놀라운데. 나야 아직 엑스포지.]
“너, 너…….”
성산하의 말투는 여느 때와 같았다. 마치 오늘 강의진을 본 적 없는 사람처럼. 할 말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듣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공방으론 잘 돌아갔나? 놀아 주기로 했는데 이렇게 돼서 미안하네. 그래도 폐막식이 좀 더 구경거리가 많으니 그땐…….]
“너 강의진은 어떻게 된 건데.”
[응?]
“모르는 척하지 마. 아까 뭐에 홀린 놈처럼 그 새끼한테 갔잖아. 걔 가짜야. 강의진 죽었다고. 게다가 강의진 그 노바리온이란 회사도 존나 이상한….”
[호현아.]
“진짜라고. 자세히는 설명 못해도 내가 센터에서 엮였던 놈이랑 관계된 존나 수상한 회사야. 네가 직접 알아보면 나올 거 아니야. 또 등신처럼 속지 말고.”
반대편에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이 상황에서 웃는 건 아니겠지? 귀에서 휴대폰을 떼 황당하게 바라봤다. 성산하는 다정한 목소리로 선을 그었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뭐?”
[시간 되면 내가 찾아갈 테니 괜히 오늘처럼 밖에 싸돌아다니지 말고. 또 걸리면 이번엔 정말 혼나. 이만 끊지.]
“야 성산하! 야!!”
이미 전화는 끊긴 상태였다. 싸가지 없는 새끼!
저 새끼가 어떻게 되든 이젠 내 알 바 아니다. 위험을 감수하고까지 경고했으니 나도 할 만큼 했다.
나 강의진이야. 존나 바쁜 사람이라고. 가이딩 포션도 만들어야 하고 성산하 손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해서 성산하한테 신경 쓸 시간도, 엑스포 따위 놀러 다닐 시간도 없다. 짭의진한테 낚여서 이상한 약을 처먹든 사기당해 돈을 날리든 내 알 바 아니라고!
테이블 위에 있는 주머니를 휙 낚아챈 나는 쿵쿵 발을 구르며 지하실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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