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92.
공방에 긴장감이 흘렀다.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 남자가 우리 공방의 첫 손님이라는 것을.
정원에서 상추에 물을 주고 있던 수철이가 가장 먼저 마주쳐서 꾸벅 인사를 했다. 곧 그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님을 공방 입구로 안내했다. 신나서 달려가려다 우뚝 멈춰 섰다. 당황한 나머지 사장의 위엄을 잃을 뻔했다.
“어, 어쩌죠. 호현 님? 마중이라도 나가야 할까요?”
“일단 다들 손님인 척해!”
내 말에 모두 소파에서 일어나 진열대 쪽을 기웃거렸다. 임청마저도 소파에 허리를 세우고 앉아 카탈로그를 뒤적였다. 나 역시 한쪽에 관심 없는 척 서 있지만 온 신경을 문 쪽에 쏟고 있었다. 드디어 문이 열리며 남자가 들어왔다. 공방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들어오자마자 제게 쏠리는 시선에 조금 당황한 듯했다.
“아, 안녕하세요. 포션을 사러 왔는데요…….”
“어떤 포션?”
“그게…….”
온통 기가 죽은 남자가 제 품 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며 변명하듯 웅얼거렸다.
“거, 거절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다만 이 중 몇 개라도 구할 수 있을까 해서…….”
“일단 줘 봐.”
남자가 제 손에 꼭 쥐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자주 만졌는지 손때가 탄 종이는 구깃구깃 구겨져 있었다. 종이를 펴 안에 적힌 내용을 읽은 나는 의아함을 숨기지 못했다. 대다수가 안정 성분에 스킬이나 스탯의 힘을 묶는 디버프 포션이었다. 거기에 단발성 무력화 포션들. 특이한 점은 모든 포션을 하급으로만 원한다는 거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런 게 다 왜 필요해? 누구 죽이게?”
내 말에 남자의 얼굴에 핏기가 빠지며 하얗게 질렸다. 말없이 보는 내 시선을 견디다 못해 남자가 변명하듯 마구 답하기 시작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단지, 단지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환자가 있어서 혹시 이거라도 먹으면 괜찮아질까 하고…….”
“무슨 힘을 어떻게 주체하지 못하는데. 원인 따라 필요한 포션도 달라. 무력화는 또 왜 필요한 건데? 이것도 그 환자 때문이야? 스킬 무력화 시키려고?”
“아니요…. 스킬보다는 몸 내부의 부작용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싶어서…….”
“급한 거면 고급 포션으로 사지 왜 단발성으로 사? 하급은 2%밖에 안 돼서 효과 별로야. 잠깐 보였다 사라질걸.”
“그, 그게 돈이 없어서……. 그리고 대부분의 포션 상점들에서 모두 거절당해서……. 하지만 그거라도 좋습니다. 혹시 살 수 있다면 제가 가져온 돈을 다 드리겠습니다!”
눈썹을 치켜올렸다. 남자가 다른 포션 상점들에서 거절당한 이유도 뻔했다. 거지다. 이런 비주류 포션들의 경우엔 미리 만들어 놓지도 않고 새로 연구 루틴을 짜야 해서 손이 많이 간다. 그렇다고 주문 제작 형식으로 가기에는 의뢰인이 거지다. 심지어 몇 개는 원재룟값도 싸지 않아서 최종 가격은 더 비싸질 텐데 의뢰인이 거지다. 당연히 거절하지.
목록을 보고 남자를 보고, 목록을 보고 남자를 보고. 내 시선이 닿을 때마다 남자의 어깨가 위축됐다.
뭐 그래도 첫 손님이니까…….
“가진 돈 다 내놔.”
“네, 네?”
“나머지는 내가 보태서 최대 등급으로 만들어 줄게.”
내 말에 남자의 눈과 입이 천천히 확장됐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뻐끔대다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 정말입니까? 정말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포션 먹을 사람들이 누구야? 상태를 확인해야 만들 수 있어.”
“제 아내입니다.”
“그리고 또? 설마 이걸 한 사람이 다 먹진 않을 거 아니야.”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자 남자가 주먹을 꾹 쥔 채로 고개를 숙였다. 곧 울음을 참듯 꾹 누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제 아내입니다. 어떤, 어떤 게 몸에 들지 몰라서요. 지금까지 몇 번 다른 포션들이나 주문 제작한 것도 써 봤지만 모두 들지 않아서…….”
그 말에 손님 행세하기로 한 건 때려치웠는지 탄식을 흘린 백다인과 김진명 등이 결국 울음을 터트려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 곁으로 가 위로하듯 어깨를 두드려 줬다. 그를 시큰둥하게 바라봤다. 뭐, 흔한 상황이다. 던전에 들어갔다 부상을 입은 헌터의 가족이겠지.
“걱정 마세요. 사장님 정말 실력 뛰어나신 분이세요.”
“사장님은 한 번 한 말씀은 꼭 지키시는 분입니다. 울지 마십쇼.”
“뭐, 일단 보러 가자.”
겉옷을 챙기는 내게 연승연이 다가와 말했다.
“호현 님. 저도 같이 가요.”
“넌 센터에 제안서 보내야지.”
“그럼 혼자 가시게요? 그래도 함께 가는 편이 안전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됐어. 혼자 못 갈 건 뭐야. 그냥 잠깐…. 흠…….”
말하다 멈칫했다. 요즘은 조금 사려야 하려나?
잠깐 고민하는데 임청이 아직도 보던 척하고 있던 카탈로그를 턱 덮으며 일어났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사장님 호위도 용병 계약의 일이니.”
“임청 너…….”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용병의 자세다! 흡족하게 보는데 제로가 고개를 저으며 다가왔다.
“이런, 임청 헌터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사람이네요.”
“무슨 헛소리냐.”
“벌써부터 재계약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다니요. 혼자서만 사장님께 아첨하는 모습을 가만두고 볼 순 없죠.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임청이 경멸하는 눈으로 제로를 흘겨봤다.
환자가 있는 곳까지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다고 해서 임청의 차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완전 멋있잖아?”
커다란 바퀴에 울퉁불퉁한 차체가 멋있는 임청의 차를 보고 한눈에 반해 덥썩 차에 올라탔다. 내 옆자리엔 손님이 올라타고 제로는 임청의 강력한 거부하에 의자가 없는 트렁크 공간에 타게 되었다.
남자가 안내한 곳은 꽤나 거리가 있었다. 도시 외곽으로 가다 못해 외진 곳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자 황량한 부지에 하얀 건물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건물 앞으로는 조악한 임시 보호소와 텐트 등이 모여 있었다. 병원 팻말이 보이긴 했으나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기능을 하는 병원은 아니었다.
‘이런 데가 다 있네. 환자촌인가…….’
병원과 텐트를 오고 가는 지친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데 큰 엔진음과 함께 들어오는 낯선 차에 가는 길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차례로 우리를 향했다. 차에서 먼저 내린 남자를 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의 경계심이 풀어졌다.
“하아, 정혁이 자네였나.”
“또 놈들인 줄 알고 놀랐잖아. 그 차는 뭐야?”
“하얀이 보러 오신 분입니다. 포션 때문에…….”
정혁의 뒤를 따라 내리는 나와 제로를 보는 눈빛이 탐탁지 않았다. 소곤댄다곤 하는데 굳이 숨길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마. 실패가 어디 한두 번인가.”
“월계나루 출신인가? 쳇, 그쪽 놈들은 다 한패라고.”
무슨 일 있었나? 적대감이 가득한 사람들의 태도에 의아하게 주위를 둘러보자 정혁이 어쩔 줄을 모르며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를 툭 치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다들 오해가 있으셔서……. 사장님께서 여기까지 와 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뭐, 상관없어. 아픈 사람이나 보러 가자.”
그들을 무시하고 등을 돌리는 내 말에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발끈해 외쳤다.
“굳이 찾을 거 뭐 있어? 여기 죄다 아픈 사람들뿐인데!”
“형사님, 그러지 마세요. 정말 도와주시러 오신 겁니다.”
“사람들이 왜 아픈데?”
“왜긴! 이게 다 그 강의진 찢어 죽일 놈 때문 아니야!”
***
“일어나. 곧 행사지로 출발해야 해.”
“하아, 언제까지 이 광대 짓을 더 해야 해? 할 만큼 했잖아. 만나는 사람마다 가이딩 포션에 대해 물어 대는데 둘러댈 말도 없다고 이젠.”
“알잖아. 태제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
“대체 그걸 만든 놈은 언제 찾는 건데!”
“포션 역시 역추적하고 있으니 기다려. 상황 봐서 네 것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남자의 답에 한층 누그러진 강의진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물었다.
“……태제헌은 이미 복귀했다며.”
“그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잖아. 게다가 네 기자 회견장에도 왔다 갔다는 말이 있어. 확실히 건드린 것 같으니 미끼를 물 날도 조만간이야.”
소파에 늘어져 있던 강의진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협탁에 걸쳐 놓은 안경을 끼며 지루하게 고개를 저었다.
“천랑에서는 소식 없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성산하랑 너무 진도가 안 나가는 거 아니야? 금방이라며.”
“몰라. 멍청한 건지 입이 무거운 건지, 돌려 말해선 도통 정보를 안 뱉어. 내일 만나기로 했으니 아예 대놓고 물어볼까 봐.”
“조심해. 녹스나 천랑이나 가볍게 볼 대상이 아니야. 게다가 천랑은 가장 먼저 눈치챈 쪽이잖아.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아하하, 의심할 리가. 성산하 이 얼굴에 완전 뻑 갔어. 안 그랬으면 저딴 거 계속 보내겠어?”
한쪽에 쌓인 선물이며 꽃들을 턱짓하며 말하는 강의진에 남자도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조심해. 하말을 잃은 걸 만회하려면 나머지라도 완전히 찾아내야 그분이 오셨을 때 온전한 힘을 드릴 수 있으니.”
“가르치려 들지 마. 난 센터 놈들과는 달라. 실수 따윈 하지 않아. 카스토르와 나머지는 반드시 내 손으로 처리할 거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강의진이 문을 쾅 소리 나게 열고 먼저 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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