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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94화 (94/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94.

정혁이 마나 포션을 구하기 위해 다급히 뛰어나간 사이 제로가 옆에서 능청스럽게 물었다.

“어쩌시게요?”

“뭐가.”

“저 포션 모조품이라는 것 이미 눈치채셨잖습니까. 제가 이곳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만, 구해 주더라도 보상받긴 힘들 겁니다. 오랜 병간호와 끝없는 공방으로 여기 대부분이 모두 빈털터리거든요.”

“그걸 누가 몰라.”

“왜 사장님의 시간과 자본을 투자해 구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대충 무시하며 넘기던 나는 고개를 돌려 제로를 바라봤다. 웃느라 가느스름해진 눈꼬리 뒤에 빛나는 눈빛이 확실히 내게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솔직히 사장님이 신경 쓰실 일 아니잖아요. 가짜인 이상 강의진이어도 책임질 필요 없는 일이죠. 그런데 왜? 혹시 영웅 심리입니까? 아니면 설마 부채감이라든가 책임감……. 뭐 그런 거라도 됩니까?”

“그딴 게 왜 궁금한데? 그냥 첫 손님이라 도와주는 거야.”

“돈도 내지 못할 텐데요?”

“아픈 사람 보고 그냥 가냐 그럼?”

버럭 소리를 지르자 제로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잘 걸려들었다는 듯한 태도에 미간을 찌푸리는데 팔짱을 낀 채 고상한 척 말했다.

“후후, 재미있는 말씀이시네요. 하지만 사장님께서 세상의 아픈 사람들을 모두 챙겨 줄 순 없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무시하고 넘기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치료만 해 주겠다니 성인처럼 살겠다 이겁니까?”

머리 아픈 궤변에 귀를 탈탈 털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거 생각 해 본 적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아. 왜 만드냐고? 내가 만들고 싶으니까! 다른 이유는 없어. 헛소리할 거면 꺼져.”

꺼지라고 손을 내젓자 제로는 입에 지퍼를 채우는 손짓을 하곤 무슨 일 있냐며 한쪽 어깨를 으쓱였다.

***

윤하얀이 생각보다 등급이 높았는지 마나통의 열 배가 넘는 마나 포션을 구하려니 꽤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정혁이 주위에 사정해 조금씩 빌려 오는 중인 것 같은데 기꺼이 내어 주는 경우보다 불만과 불신의 목소리가 더 컸다.

“저 사람 믿어도 되는 거냐? 마나를 채워 주면 또 광증이 도질 텐데…….”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런 새파랗게 젊은 놈의 어딜 믿는다고! 지금이야 마나 포션이지 곧 굿이니 부적이니 본심을 드러낼 거다!”

“정혁아.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이 있어. 우리가 있고. 이상한 길로 빠지면 안 된다. 응?”

나에 대한 의심과 ‘강의진’을 향한 쌍욕 역시 넘치도록 쏟아졌다. 도합 105%의 욕을 들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어차피 내 포션도 아니고 실체가 없는 대상을 욕하는 거니 별로 타격은 없었지만 아까 지나가던 여자가 해 준 말만은 사라지지 않고 머리를 맴돌았다.

-다들 이 포션 어떻게 구한 거야? 내가 알기론 일리미탈은 존나 비싸서 쉽게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확실히 비싸긴 하지만 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전엔 필수 응급 포션이라고 광고하며 팔기도 했고……. 여러 유통처에서 구할 수 있었어요. 일반 포션 상점이나 포션나라에서도…….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었다고? 대체 뭘 믿고 산 건데?

-테란이나 호너트, 산정 같은 길드에서 맡아 판걸요. 다들 녹스의 협력 길드잖아요. 강의진이 만들었다는 걸 보증하는 거나 다름없죠. 혹시 속였다면 녹스가 가만있었겠어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그냥 어떤 간땡이 부은 놈들이 내 포션을 흉내 낸 줄 알았건만 그 이름들이 나올 줄이야. 예상도 하지 못했다.

테란, 호너트, 산정 모두 녹스의 비공식적인 산하 길드였다. 그냥 협력 관계가 아니라 녹스의 자본과 인력이 대가리를 차지하고 있는, 녹스의 자식 같은 길드. 그런 곳들에서 내 포션 짭을 만들어 팔았다니. 이건 녹스의 뜻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녹스에게 일리미탈 레시피와 제작권을 준 건 바로 나…….

“포션 메이커님! 사장님!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나를 급히 부르는 정혁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내 앞에는 각양각색의 마나 포션들이 모여 있었다. 응급 처방에 실패해 윤하얀이 난리를 치는 것을 염려한 사람들이 무기나 안정제 등을 꺼내 들고 텐트 바깥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럼 투입하던 약품들 모, 모두 다 끊겠습니다.”

정혁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윤하얀의 몸이 크게 팔딱였다. 동시에 핏기 없는 손에서 파지직 하며 푸른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구속구를 차고 있음에도 강한 세기였다.

“지금이야! 마나 포션을 주입해!”

정혁이 레버를 아래로 내렸다. 안정제가 완전히 끊긴 호스를 따라 천천히 푸른 빛의 마나 포션이 흘러들어 갔다. 모두 숨을 멈추고 윤하얀을 바라봤다. 마나 포션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윤하얀의 전기가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지직거리며 벽과 천장까지 닿았다 사라지는 스파크가 우리 발치까지 다가와 위협하고 있었다. 눈썹을 치켜올린 임청이 무기 끝으로 바닥에 선을 하나 긋자 윤하얀의 스파크는 일렁이면서도 선을 넘지 못했다.

마나가 100%를 넘어서자 빛나는 스파크로 인해 눈앞이 하얗게 점멸할 정도였다. 형사가 급히 아이를 끌어안고 뒤로 몸을 피했고 밖에서만 지켜보던 사람들이 결국 참지 못하고 안으로 뛰어들어 와 소리쳤다.

“그만! 그만둬! 지금이라도 마나를 빼앗아!”

“다음 포션 주입해.”

“당신 미쳤어? 하얀이를 죽일 셈이야! 정혁아 절대 하지 마. 그만둬!”

“여기서 멈추면 모두 수포로 돌아가. 다음 포션 주입해. 빨리.”

“저 돌팔이가! 강의진 믿었다가 이렇게 된 거 몰라! 저 사람이 누군 줄 알고 믿는다는 거야, 정혁아!!”

정혁이 망설이는 눈으로 나와 사람들을 돌아봤다. 점점 잡고 있던 레버에서 손이 떨어져 나갔다.

‘저 멍청한 놈이.’

겁에 질린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칠까 고민하는데 누군가 내 바지 자락을 잡아당겼다.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여자애가 서 있었다. 한창 울다 그쳤는지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헌터님.”

“왜.”

“헌터님이 우리 엄마 고쳐 줄 수 있어요?”

“당연하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여자애가 침대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야! 가면 안 돼!”

손을 뻗기도 전에 임청이 그어 놓은 선을 넘은 아이는 정혁에게 달려갔다. 놀란 정혁이 황급히 두 팔을 뻗어 아이를 감싸 안으며 손이 완전히 레버에서 떨어져 나갔다. 윤하얀에게 연결되어 있던 푸른 선이 점점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탄식을 뱉는데 정혁의 품 안에서 작은 팔이 빼꼼 나오더니 레버를 다시 아래로 잡아당겼다. 고주파 소리가 점점 커지고 윤하얀의 전기가 몇 배로 강해졌지만 아이를 인지하고 있기라도 한 듯 스파크는 더 이상 정혁이 있는 쪽으로는 번지지 않았다.

마나 수치가 1000%에 도달했다. 스파크가 잦아들고 몸부림치던 것이 멈췄다. 윤하얀의 가슴팍이 한순간 높아지더니 곧 깊은숨이 뱉어졌다.

“하, 하얀아!!”

정혁이 달려가서 끌어안자 여자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경악이 흘러나왔다. 하얀을 끌어안은 정혁이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흐어엉, 하얀아, 허윽, 너, 너…….”

“정혁아? 너 왜……. 대체 무슨 일이……. 하정아!”

“허어엄마흐앙!!”

가족의 해후를 잠시 기다려 주는데 막사 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누구는 주저앉고 누군가는 한 발 한 발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 소리 지르는 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뛰쳐나갔다.

“마, 마나 포션이다! 마나 포션이야!! 마나 포션을 구해야 해!!”

흘깃 뒤돌아보니 입이 떡 벌어진 채 깨어난 윤하얀을 바라보고 있는 형사가 보였다. 다가가 팔을 툭 쳤다.

“아저씨. 아저씨가 좀 힘이 있는 것 같던데. 맞아?”

“어? 아, 아니 넵! 넵!!”

“가서 사람들한테 전해. 마나 포션은 환자 보유량의 10배를 단번에 넣어야 한다고. 그리고 이건 일시적인 처치일 뿐 부작용은 사라진 게 아니라고. 이거 안 지키면 아마 사람들 뻥뻥 터져 나가고 난리 날걸? 윤하얀도 정신은 차렸지만 아직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 마나가 어느 정도까지 떨어졌을 때 광증이 다시 나타날지, 그건 나도 몰라. 마나 포션 조달할 힘 없으면 처음부터 깨우질 마.”

형사가 멍하니 제 품에서 수첩을 꺼내 내 말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나는 말했다? 본인이 잘못 알고 일 벌였다가 나중에 와서 책임지라고 행패 부리고…. 나 그런 거 존나 싫어하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메모하던 형사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런 그에게 눈이 팅팅 부은 정혁이 다가와 말했다.

“형사님. 어서 가 보세요. 소현이……. 기다리잖아요. 여기, 저 마나 포션 남은 거…….”

“됐어. 정혁이 자네도 필요할 거야. 하얀이, 수치…. 떨어지지 않게…….”

“이쪽은 손님이니까 내가 마나 포션 줄 거야.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받아.”

정혁을 턱짓하며 말하자 눈시울이 붉어진 형사가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빨리 가서 사람들부터 통제하라고 형사를 내보낸 후에야 천막에는 우리만 남게 되었다. 품에서 서약서를 꺼내며 정혁을 불렀다.

“어때. 이제 계약할 마음이 들어?”

“뭐든 하겠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정혁아. 전결서약이라니?”

아직 제 상태에 대한 파악도 되지 않은 하얀이 지쳐 잠든 하정이를 품에 안고 의아하게 물었다. 하얀과 정혁, 임청과 제로의 얼굴을 둘러본 나는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겉으로 티가 났겠지만 나는…….”

호기롭게 운을 띄운 것과 달리 나를 포션 마스터라고도, 강의진이라고도 소개할 수가 없었다. 볼을 긁적이다 말했다.

“천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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