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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96화 (96/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96.

용병들은 재료를 구하러 떠났고 윤하얀은 가족 전체가 공방에 머물며 실험을 도왔다. 한동안 바삐 움직이며 여러 방법들을 다 써 보긴 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보이지 않았다.

포션으로 인한 부작용을 겪은 사람들은 이미 몸이 마법 재료들에 잠식된 상태라 해독하기 위해선 완전히 상쇄하는 재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새끼들이 만든 짝퉁은 값싸고 구린 재료들을 아무렇게나 배합한 탓에 포션 성분을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스킬이 필요한 작업이라 레시피 스킬을 얻지 못한 나 대신 연승연이 낮은 등급이나마 제 레시피 스킬을 사용해 성분을 분석하고 있었다.

“으음……. 이번에도 차도가 보이질 않네.”

“레시피 판독을 다시 해 볼까요?”

고개를 끄덕이자 연승연이 한 손에는 포션을 다른 손에는 윤하얀의 손을 잡고 스킬을 사용했다. 맞잡은 손에서 푸른 빛이 퍼지더니 눈을 감은 연승연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으음……. 창공을 헤매는 새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담대할지니 등잔 밑이 어둡다, 라고 합니다.”

“뭐? 새의 마음이 담대한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레시피 스킬이라는 게 등급이 낮을수록 단서를 모호하게 알려 주는 특성이 있긴 했으나 이번은 전혀 가늠이 되질 않았다. 황당한 표정으로 되묻자 연승연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요. 두 개가 나왔습니다. ‘창공을 헤매는 새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담대할지니.’와 ‘등잔 밑이 어둡다.’ 두 개요.”

“아아, 그런 거였어?”

“왜 단서가 두 개 나왔을까요? 아마도 제가 뭔가를 잘못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당황해 얼굴이 새빨개진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연승연의 모습에 어깨를 잡아 진정시켰다.

“아니, 아니야. 그건 두 가지 방법이 있단 뜻이야.”

“정말인가요? 그런 경우는 처음 듣습니다.”

“자주 나타나는 일은 아니야. 최적의 방법이 두 가지 있다는 건데 이런 경우가 흔할 리 없으니까.”

깨달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연승연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창공을 헤매는 새의 마음? 비행형 몬스터라는 걸까? 아니면 특수 지형인 던전으로 가라는 소리일까?”

“하늘 공원이나 천공섬이 있는 던전들도 몇 개 생각나네요.”

“등잔 밑이 어둡단 소리는 뭘까요.”

“뭔가 놓쳤다는 뜻 같은데.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좀 더 쉽게 풀릴 텐데요…….”

윤하얀까지 합세해 한창 단서를 해석하던 중 수철이가 연구실에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사장님. 데이지 도매 왔습니다. 검수 부탁드린대요.”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연승연이 후다닥 위로 올라갔다. 윤하얀과 둘이 남은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윽…….”

하나씩 분석하고 실험하며 마력이나 성향을 체크할 생각을 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본래라면 즐거웠을 포션 개발이었는데 누구 뒤처리를 하는 기분이라 그런가.

‘씨발. 어떤 놈들인지 걸리면 두고 보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윤하얀이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역시 이 이상은…….”

“죄송하긴, 만들어 낼 거니까 쓸데없는 걱정 할 필요 없어. 그나저나 마나 농도 떨어질 때 되지 않았나?”

자리에서 일어나 선반의 마나 포션을 꺼내 휙 던지자 윤하얀이 한 손으로 낚아챘다. 손에 잡힌 포션병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윤하얀이 손끝으로 병을 덧그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장님은 던전 가 본 적 있으세요?”

“응. 재료 구하러 몇 번 정도.”

“저는 돈을 벌러 갔어요. …그거 아세요? 던전 초입을 열 번 도는 것보다 마지막 보스 한 번을 잡는 게 훨씬 돈이 많이 돼요. 제 실력보다 높은 등급을 가면 또 그것의 배는 많이 벌 수 있죠. 그래서였어요. 일리미탈을 찾게 된 것도. 보스 몬스터를 죽이면 그 이후야 마나가 없어도 상관없으니까.”

“바보 같긴.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거 아니야. 죽음을 각오한 놈들이 먹는 멍청한 포션이었다고.”

비뚤게 말하자 윤하얀의 얼굴에 흐린 미소가 드리웠다.

“더 바보 같은 거 말해 드릴까요? 사실 조금은 의심하고 있었어요. 이게 강의진이 만든 포션이 아닐 수도 있다고.”

“…….”

“강의진의 포션을 이렇게 쉽게 살 수 있는 게 이상하잖아요. 헌터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도 있던걸요. 강의진 포션에 물 탄 거다. 가짜다……. 심지어 이미 부작용을 겪은 사람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어요. 안일했던 거죠.”

마나 포션을 쥔 손을 몇 번이고 쥐었다 피던 윤하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해요. 제가 선택해서 먹은 포션이잖아요. 저는 무고한 피해자도 아니고 그저 안일했던 것뿐인데.”

고개를 숙인 하얀의 뒤로 들어오지 않고 계단 뒤에 숨어 있는 정혁의 모습이 보였다. 멍청한 둘의 모습에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저었다.

“헛소리. 걔네가 팔 때 주의 사항 알려 줬냐? 0.2퍼센트의 확률로 미쳐서 죽을 수도 있다고? 심지어 치료제는 없다고?”

“그건 아니지만…….”

“부작용이 그 정도면 원래 버프 포션으로 허가 안 나는 게 정상이야. 너희는 사기당한 거라고. 포션 먹고 아프면 환자고 속았으면 피해자지. 무슨 무고하니 아니니 하면서 혼자 땅굴을 파?”

윤하얀이 입을 다물었다. 흘러내린 머리칼에 가려진 얼굴을 빤히 보다 등을 돌렸다.

“오늘은 이만하고 올라가자.”

“저는, 저는 조금 더 생각 좀 하다 올라갈게요.”

“그러든가.”

계단을 오르자 문 바로 앞에는 눈시울이 붉어진 정혁이 보였다.

‘남자가 울기는…….’

어서 가 보라며 아래를 턱짓하곤 정혁을 스쳐 지나갔다.

로비에선 꼬맹이 둘이 소파에 앉아 헌터 애니매이션을 보며 떠들고 있었다.

“때려! 때려!!”

“멋있다……. 언니도 저만큼 강해?”

“응! 무기 말고 두 손으로 싸우는 게 진짜 멋진 거라고.”

“나도 각성하고 싶다아….”

작은 주먹을 꼭 쥐고 말하는 백다혜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던 윤하정이 수줍게 말했다.

“난 힐러가 될 거야.”

“그건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 아니 힐러? 왜? 힐러는 몬스터도 앞에서 못 죽이는데?”

“아픈 사람들을 고쳐 줄 수 있으니까! 우리 엄마도 고칠 수 있어.”

하정의 말에 멈칫한 다혜가 입술을 말아 물더니 몸을 숙이고 속삭였다.

“…그럼 나랑 몰래 던전 갈래? 원래 위험한 상황이 닥칠 때 제일 각성 많이 한대.”

“던전은 무서운데…….”

“괜찮아. 몬스터 나오면 언니가 이렇게, 이렇게 때려 주…!”

“꼬맹아. 다인 누나한테 이른다.”

작당 모의하는 꼬맹이들의 작은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통통 두드리자 둘 다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

“헌터님!”

“이잇, 아저씨! 언니한테 말하면 절대 안 돼!”

“하는 거 봐서.”

난리 치는 백다혜를 뒤로 하고 벽에 걸려 있던 로브를 걸친 채 정원으로 나갔다. 한창 물류를 점검하는 승연이와 진명이, 정원의 잡초를 뽑는 수철이도 지나 공방을 나섰다.

“맞다, 성산하 또 지랄하기 전에 문자해야지.”

「나 잠깐 재료 보러 혼자 월계나」

약속한 대로 위치 보고를 하려다 멈칫했다. 순간 불쑥 치미는 반항심에 다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어차피 외국이라 보지도 못할 텐데 뭐.”

호텔에서의 일을 마지막으로 성산하는 또 보이지 않았다. 전화야 몇 번 오고 문자야 몇 개 나누긴 했다만 공방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해 공방에 놀러 온 이초에게 슬쩍 묻자 그제야 성산하는 그리스인가 독일인가를 갔다는 소리나 들었다. 뭔가 짚이는 게 있어 캐물으니 심지어 짭의진과 함께 갔다는 게 아닌가!

“나랑 같이 가자더니. 여권도 준댔으면서 그걸 가짜랑 가? 의리도 없는 새끼.”

발에 치이는 돌들을 툭툭 차면서 걷는데 뭔가 시큼한 냄새가 맡아졌다. 코를 씰룩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뭐야, 무슨 냄새가 나는데.”

그때 눈앞에 독 저항을 활성화한다는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다행히 독 저항 등급이 높아 몸에 이상은 없었지만……. 대체 어디서 독이 새어 나오는 거지?

혹 주위의 공방 중 하나가 제작 실패라도 한 건가 싶어 냄새가 풍기는 쪽으로 발을 옮겼다.

코너를 돌자마자 뭔가가 날 향해 날아왔다. 잡을 수 있는 각도가 아니라 슬쩍 몸을 피했더니 동그란 것이 바닥에 닿자마자 연기가 터져 나왔다.

“윽, 이게 무슨…….”

“…님. 저 새끼 안 쓰러지는데요?”

“그럴 리가…! 일단 기절부터 시켜.”

“누구야!”

곧바로 단검을 꺼내 주위를 경계했다. 연기 사이로 보이는 인영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씨발, 뭐야 이거. 어디서 온 새끼들이지. 태제헌인가? 아니면 센터?’

그런데 갑자기 놈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으억, 뭐 하는 거야!”

“야, 정신 차려 임마! 갑자기 왜 이래? 여긴 같은 편이라고!”

“저 새끼 붙잡아!”

“형님!! 진규도 이상합니… 커억!”

갑자기 저들끼리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놈들을 황당히 바라보다 일단 시야를 확보하자 싶어 등을 돌렸다. 그러나 채 한발 떼기도 전에 누군가 뒤에서 내 머리를 후려쳤다.

“큭! 씨……팔.”

“어딜 도망가려고.”

휘청이는 몸을 가누려는데 곧바로 다리를 후리는 몽둥이에 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곧 나를 때린 놈도 곧 누군가에게 처맞고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이게 무슨 개판이야. 씨발….’

머리가 축축한 걸 보니 피가 나는 건가. 흐려지는 눈에 하나둘씩 쓰러지는 놈들이 보였다. 그 사이로 누군가 날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코앞까지 다가와 멈춘 놈이 발로 내 어깨를 밀어 돌렸다. 모멸감에 이를 부득 갈았다.

“…발 놈아.”

“……경고했잖아. 가만두지 않겠다고.”

내 얼굴을 가린 로브를 구두 끝으로 걷은 놈이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곧 다시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형?”

내가 꿈을 꾸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하고.

이 개새끼 얼굴을 봐야 하는데 흐르는 피 탓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버티던 걸 그만두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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