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97.
눈을 떠 보니 나는 처음 보는 방 안이었다. 몸을 일으키려다 머리에 느껴지는 격통에 인상을 찌푸리고 손을 뻗자 뒤통수에 덧대어진 거즈가 만져졌다. 그를 만지작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점차 전의 기억이 돌아왔다. 공기 중으로 퍼지던 독 연기와 갑작스러운 기습. 결국 정신을 잃던 것까지. 피가 차가워졌다.
‘나를 아는 놈이었어. 대체 누구지? 여긴 어디고……. 납치당한 건가?’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밖으로는 경사진 숲만 내다보였다. 방 한쪽엔 CCTV까지 붙어 있었다. 그 뒤에 있을 놈을 가늠하며 빤히 노려보는데 문 쪽에서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문 뒤로 몸을 숨긴 나는 바닥에 놓인 소화기를 조용히 들어 올렸다. 놈이 들어오자마자 머리를 후리고 문밖을 나갈 생각이었다.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소화기를 든 손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눈에 보인 놈의 얼굴은…….
“한서진?”
온 힘 다해 내려치려던 팔을 급히 거뒀다. 내 기억 속에서보다 살이 빠져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한서진이 맞았다.
‘뭐야, 얘가 왜 여기 있어?’
너무 놀라서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돌아본 한서진이 나를 보다 내 손에 들린 소화기로 시선을 내렸다.
“……주호현 맞네.”
“뭐? …야, 야!!”
자조적인 중얼거림만 남기고 지나쳐 들어가는 한서진에 나도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그 탓에 방금 한서진이 들어온 철문이 굳게 닫히는 것도, 그게 얼마나 두꺼웠는지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주호현’이 죽은 줄 알았을 텐데도 막상 나를 보고 큰 놀람 없이 차분한 한서진의 태도에 나 역시 경계심이 풀려 뒤를 졸졸 따라가며 물었다.
“네가 왜 여깄어? 아! 설마 네가 나 구해 준 거냐? 널 이렇게 볼 줄이야…….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한서진이 우뚝 발을 멈췄다. 나도 따라 멈추자 비꼬는 듯한 물음이 돌아왔다.
“할 말이 그게 다예요?”
오랜만이다. 기분 상한 티 팍팍 내는 저 말투. 저 새끼 또 지랄이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간만에 들으니 저것마저도 조금 반가웠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이는데 한서진이 들고 있던 종이 뭉텅이를 테이블에 집어던졌다.
“뭔지 설명해요.”
“갑자기 뭘 설명하라는 거야?”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에 짜증스레 중얼거리던 나는 테이블 위에 펼쳐진 서류들을 보고 멈칫했다.
“네가 이걸 어떻게…….”
공방 등록증, 건물 임대 계약서, 청년 제작자 지원 대상 서류에 내가 올린 용병 공고문……. 심지어 공방을 구하기 전 연승연과 잠깐 머물렀던 아파트 월세 계약서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탈탈 털린 공방 이력들을 보며 입을 뻐끔대는데 한서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목덜미를 스쳤다.
“이상하죠. 가이드인 형이 왜 포션 공방 사장이 되어 있는지. 무슨 사정이라도 있었겠지 하며 이해해 보려고 해도 ‘그 일’이 벌어진 지 일 주도 되지 않아 공방을 계약하는 건 말이 되질 않잖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론은 하나던데.”
“…….”
“애초에 죽은 적도 없고 처음부터 계획적인 도망이라고.”
등골이 서늘했다. 단순히 살아 있다는 걸 들킨 게 아니라 이건……. 서류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예 내가 죽은 줄 알았다면 모를까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 한서진이 내 뒷조사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아직 여지는 남아 있어. 명의는 모두 연승연이니 나는…….’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발뺌할 생각 마요. 이미 신원 확인 마쳤으니까.”
“기억이 잘…….”
“정호현, 마두석까지 들어야 인정할래요?”
“쳇.”
철두철미한 새끼.
이런 말을 하는 상황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꽤나 민망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야. 도망친 거 맞아.”
“왜요?”
“왜긴 왜야, 좆같… 그냥 나가고 싶었으니까. 센터에 갇혀 사는 것도 싫고 팀원들도, 가이딩하는 것도 싫고.”
내 말을 듣던 한서진의 표정이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로 구겨졌다.
“그렇다고 죽은 척을 해요? 잘못됐으면 어쩌려고!”
사실 잘못되리란 생각을 하지 않고 저지른 일이었지만 일이 꼬여 죽을 뻔했던 것도 사실이기에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어깨를 으쓱이고 말자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린 한서진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체 언제부터 계획한 건데. 정말 도망쳤던 거라도 내겐, 내겐 말할 수 있었던 거잖아!”
“내가 왜? 네 뭘 믿고 그걸 말해?”
솔직한 물음에 한서진의 표정이 무너졌다. 꼭 상처받기라도 한 표정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설마 팀원들과 같은 취급을 했다고 저러는 건가? 물론 한서진은 다른 팀원과 다르긴 했다. 하지만 한서진 역시 에스퍼다. 심지어 협회장의 손자씩이나 되는. 가이드가 센터에서 튄다는데 어떤 에스퍼가 그걸 용인하겠어? 일말의 미안함도 없이 팔짱을 낀 채 바라보는데 내 손에 한서진의 시선이 닿았다. 왈칵 표정을 구긴 한서진이 내게 다가와 손목을 잡아챘다.
“뭐예요. 이 좆같은 건.”
“윽, 무슨…….”
시선을 돌리자 꽉 잡혀 억지로 펼쳐진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보였다.
“뭐냐고 물었어요.”
“네 알 바 아니잖아.”
젠장, 이 새끼가…….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손을 뿌리치는데 한서진이 갑자기 제 쪽으로 날 잡아당겼다. 단번에 끌어안긴 꼴이 된 내 머리 위로 딱딱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오랜만에 봐서 잊었나 본데… 형 입으로 듣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한 팔로 날 끌어안은 한서진의 눈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한서진이 내 생각을 읽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여태껏 경계해 본 적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너 어차피 내 생각 못 읽잖아.”
“……하말이 뭐예요?”
“뭐?”
경악해 바라보는데 한서진이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카스토르는 또 무슨, 노바리온?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너……! 씨발 놔!”
온 힘을 다해 한서진에게서 벗어났다. 혼자 중얼거린 말이나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보아 단편적으로만 읽은 듯해 보였으나 내 생각을 처음으로 한서진에게 읽혔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어떻게 읽게 된 거지? 얼마나, 어느 정도까지 읽힐지 모른다. 이대로라면 내가 강의진이라는 걸 읽히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한서진을 쓰러트린 후 튈 생각으로 주먹을 날리는데 곧바로 잡혀 제압당했다. 숨 돌릴 새도 없이 피부가 맞닿은 곳에서부터 온몸의 기력이 빨려 나갔다. 제압이 목표인 가이딩이라 가차 없었다.
“아윽! 흑.”
잊고 있던, 다신 겪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감각이라 더 무력했다. 강한 강도로 가이딩을 빼앗아 가는 한서진에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무릎이 꺾인 날 들어 안아 침대에 눕힌 한서진이 버둥거리는 내 눈을 가리며 꾹 눌렀다.
“씹……. 개새, 끼야.”
“다시 올게요.”
손이 떨어지고 한서진이 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력이 다 빨린 몸은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손끝을 움찔대기만 하며 속으로 한서진에게 욕을 다발로 퍼부었다.
한서진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릴지 정강이를 먼저 발로 깔지 따위를 고민하며 기력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렸다.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문으로 달려갔다.
“한서진 이 개새끼. 뒤졌어.”
씩씩거리며 문고리를 돌렸지만 뭔가에 막혀 움직이지 않았다. 따로 잠금장치가 붙어 있나 싶어 문고리뿐 아니라 문 전체를 이리저리 둘러봤는데도 작은 홈 하나 없이 매끈했다.
“뭐야. 왜 안 열려.”
부서져라 돌리고 잡아당겨도 문고리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설마.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뒤를 돌아보자 한눈에 들어오는 좁고 네모난 방에 소름이 끼쳤다. 헛생각이 들기 전에 황급히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고장, 고장 났어. 왜 안 열리는… 아니야, 야!! 한서진! 문 열어! 한서진!!”
철문을 두드리며 소리쳐도 문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좁은 방 안에 혼자 갇혔단 생각이 들자 걷잡을 수 없이 숨이 막혀 왔다.
“한서진! 야, 씨발 문 열어!!”
“장난 치지 마. 한서진, 서진아. 빨리.”
“한, 서진…….”
머리에 쥐가 난 듯 조이고, 주먹 쥔 손이 잘게 떨렸다. 헛구역질마저 드는 느낌에 마른 입술을 적시다 초조한 눈으로 뒤를 돌았다. 창문이라도 열어야겠다는 생각에 달려갔지만 이제 보니 창문 역시 용접해서 열릴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주먹으로 창을 때렸다.
“씨발!”
갇혔다, 갇힌 거다. 나갈 곳이 없었다. 이빨이 딱딱 부딪혔다. 어느새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씨발, 괜찮아. 정신 차리자. 창문 깨면 돼. 갇힌 거 아니야.’
창에 머리를 기댄 채 문 앞에 놓인 소화기를 쳐다봤다 소화기를 가져와야 하는데, 안 그래도 가이딩을 빼앗겨 지친 몸으로 애를 썼더니 한 발짝도 움직일 힘이 없었다.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중심을 잃는단 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나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팔을 들어 하염없이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메에에! 메에!”
걱정됐는지 결국 튀어나온 구름이가 내 주위를 맴돌았다. 안절부절못하며 코와 발로 나를 건들이는 구름이의 뒤로 반질반질 빛나는 선명한 CCTV가 보였다.
“구, 름이. 안 돼……. 카메라…….”
“미에에에!”
이젠 어린애도 아닌데, 구름이도 있는데 왜 이렇게……. 가쁜 숨을 색색 내쉬었다. 어느새 귀도 멍해지며 구름이의 소리마저 아득해졌다.
쾅!
“형!!”
-할 수 있어요! 거의 다 성공했어요. 만들 수 있으니까…….
언젠가의 기억과 함께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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