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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00화 (100/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00.

[…잠시 후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착륙을 위해…….]

강의진은 옆을 돌아봤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앉은 남자는 가만히 턱을 괴고 구름이 가득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게 조금의 관심도 두지 않는 성산하의 태도에 입술을 깨물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분명 시작은 순조로웠다. 조금 가까워지려나 싶으면 항상 생기는 성산하의 급한 일에 불만이 생기던 차에 찾아온 열흘간의 그리스 여행. 성좌 중 하나를 보고 싶다는 제 조름이 통한 것이었다. 물론 노바리온과 천랑 사이에 이해관계가 존재했지만 그렇게나 바쁘던 성산하도 오직 저만을 위해 흔쾌히 열흘이란 시간을 내었다.

성좌를 떠나서 성산하와 제 사이에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 존재했다. 그분께 해가 되는, 치워 버려야 할 적이라도 제 죄를 뉘우치고 갱생한다면……. 일이 끝나더라도 상부에 제거가 아닌 ‘교육’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함께 전세기에 올라타 그리스에 도착해서는 성좌 루크바트를 확인하러 왔다는 목적도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이번 일정이 끝나고도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다음 성좌까지 알아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하지만 삼 일째 되던 날 모든 게 어긋났다. 아침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성산하의 표정이 급속도로 차가워지더니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가 한참 동안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오전이 다 가고 정오가 다 된 시간에야 방에서 나온 성산하는 웃음이라는 가면에도 다 감춰지지 않을 정도로 냉기가 펄펄 풍겼다.

-의진아. 조금 이르게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내 걸 도둑맞아서.

-어떤……. 중요한 거야?

-응. 아주 소중한 거라.

성산하가 말한 귀국일은 당장 다음날이었다. 원래 열흘을 계획했던 일정이 말도 안 되게 줄어들고 심지어 원래 목적인 루크바트는 자리를 비워 별다른 추가 정보도 얻지 못했다. 루크바트는 카스토르를 보여 주는 대가로 거래한 일이었기에 천랑이 보호하고 있는 두 성좌에 대해 알기 위해선 성산하와의 친밀도가 중요했다. 그런데 루크바트에 대해 알아내고 성산하와 친해진다는 계획 모두가 어긋나 버린 것이다.

그분의 강림이 도래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아 그런지 제가 속한 남익뿐 아니라 서익에서도 다른 루트로 천랑에 접근한다는 말을 들어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뺏길 수 없어. 내가 성공해야 해.’

강의진은 초조한 눈으로 까득 손톱을 물어뜯었다.

성산하는 착륙하자마자 짧은 인사만 남기고 떠났다. 그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던 강의진 옆으로 여러 명의 사람이 다가왔다. 그중 한 남자가 어깨를 감싸 안았다.

“잘 다녀왔어?”

“치워.”

강의진은 그 손을 내치고 저를 기다리던 차에 올라탔다. 자연스레 옆에 탄 남자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들은 것보다 더 빨리 귀국했네. 어쨌든 잘했어. 유럽 지부에서 네가 알려 준 장소로 사람 파견했다니까 루크바트는 금방 잡을 거야. 알데바란이랑 주벤엘게누비는, 뭐라도 알아낸 거 있어?”

“재촉하지 마. 아직 없어.”

“재촉은 아니고. 서익에서 알데바란이랑 레굴루스 꼬리를 잡았다고 하거든. 알아 둬야 할 것 같아서.”

“벌써 찾았다고?”

젠장! 강의진이 이를 부득 갈았다. 불안하게 손가락을 가만두지 못하던 강의진이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말했다.

“찾아줄 게 있어.”

“어떤?”

“성산하가 뭔가를 도둑맞았다고 했어. 그것 때문에 이르게 귀국하게 된 거고. 그게 뭔지 좀 알아다 줘.”

“아…….”

아차 한 듯 남자의 표정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그를 놓치지 않은 강의진이 날카롭게 물었다.

“왜. 뭔데?”

“17일이었나? 연락받은 게.”

“응. 아마 그럴 거야.”

“네겐 돌아오면 말해 주려고 했었는데 일이 조금 꼬였어. 사실 가이딩 포션을 만든 포션 메이커를 찾아내 적당히 정리하려고 했는…….”

“알아. 어디 구석에 있어서 못 찾은 거였다면서. 그건 이미 처리한 거 아니었어?”

“알고 보니 천랑의 지원을 받는 공방이었더라고.”

“뭐?”

강의진이 제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빠르게 맞춰지는 퍼즐에 작은 얼굴이 사색이 됐다.

“그걸 왜 지금 말해! 그러면 내가 가이딩 포션을 만들었다고 해도 성산하가 믿을 리가 없잖아!”

“우리도 수습하다 발견한 거야. 정식 후원처도 아니었고. 어쨌든 그건 걱정할 것 없어. 포션 메이커 납치는 실패했으니까. 누군가 우리 용역들을 모두 쓰러트리고 그를 납치해 갔어.”

“그걸 지금 다행이라고 하는 소리야? 대체 그 포션 메이커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건데?”

***

“아- 지루하다.”

벌린 입에 연둣빛 포도알이 쏙 들어왔다. 조금의 씁쓸한 맛도 없이 꿀처럼 달콤한 과육을 즐기다 그 옆에 놓인 아기주먹만 한 딸기를 가리키자 또 입가에 붉은 딸기가 드리워졌다. 한입에 넣을 수 없는 크기라 반절 베어 물자 과즙이 넘쳐 흘러 입가에 주륵 흘렀다.

“아, 흘렸…….”

“그냥 있어요. 내가 닦아 줄게.”

게으른 몸을 일으키려 하는데 한서진이 가슴께를 눌러 다시 눕혔다. 얼굴에 닿는 진득한 시선에 의아하게 고개를 돌리자 부드러운 티슈가 얼굴에 닿아 젖은 부분을 살짝 눌러 닦았다.

“형.”

“왜.”

“……아니에요.”

얼굴이 조금 붉어진 한서진이 고개를 저으며 단추 하나를 풀었다. 덥냐고 묻자 또 귀끝까지 빨개져서는 다시 풀었던 단추를 잠갔다. 이상한 새끼.

너무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라 아직도 어색하지만, 나는 현재 한서진에게 납치당했다. 씨발.

인질은 구름이와 나, 납치범의 요구사항은 본인과 각인할 것. 가이드로 살 수 없는 내가 그 요구를 들어줄 순 없기에 우리 사이의 대치는 길어지고 있다.

“형.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응. 석갈비. 월계나루에 있는 가게.”

“그럼 사람 시켜서…….”

“가서 먹어야 맛있는데.”

이어진 내 말에 한서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건 안 돼요. 어떤 메뉴 먹고 싶은지 알려주면 사 오라고 할게요.”

“됐어. 안 먹을래.”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생기면 말해요.”

“대나무통밥. 월계나루에 있는데 여긴 포장 안 돼. 내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짜 가서 먹어야 해.”

“…….”

한서진이 못 들은 척 내 입에 딸기를 가져다 댔다. 입을 벌리자 이번엔 그걸 한 번에 욱여넣었다.

“웁, 우응윽!”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대충 비슷한 걸로 사 오라고 할게요.”

열심히 씹어 겨우 목으로 넘기곤 소리쳤다.

“다 흘렸잖아!”

“닦아 줄게요.”

“소용없어. 다 끈적끈적해져선……. 씻고 와야겠어.”

한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물렸다. 욕실로 들어가 옷을 벗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욕을 짓씹으며 일어나는 한서진이 보였다.

“누구 와? 누구야?”

“……형! 옷 안 입었으면 나올 생각 하지도 마요.”

“씻을 거야. 그런데 누구야?”

“별거 아니에요. 그냥 사람……. 바로 돌려보낼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씻고 나와요.”

청소하는 사람이나 한서진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수긍한 나는 다시 문을 닫고 들어갔다. 하지만 다 씻고 나와서도 한서진은 보이지 않았다.

“응? 밑에 있나…….”

나만 남자 자연스럽게 구름이가 퐁 튀어나왔다. 녀석을 번쩍 들어 안고 복도로 나갔다.

“구름아. 오늘은 네 간식도 온다? 내가 한서진한테 재료들 달라고 했어.”

“미에에에에에에-.”

“그렇게 싫어? 그래도 조금만 참아. 어쩌면 성산하가 너 찾으러 올 수도 있고, 것도 아니면 다른 방법이라도……. 어떻게든 나갈 거니까.”

“메에-!”

단단히 토라진 구름이를 둥실둥실 흔들어 달래며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래서 무언가 문제가 생겼는지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

“……라고! 갑자기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

“신경 쓰지 말고 나가 좀.”

“한서진!!”

누구지? 한서진에게 저렇게 소리치는 걸 보니 단순히 심부름하는 사람은 아닌 듯했다.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는지 발버둥 치는 구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거실을 가로질렀다.

“심문도 추적도 너 없으면 안 된다는 거 알면서 이러기냐? 그리고 최근에 월계나루에서 있었던 일 그것도 네 짓이지?”

“아닌데.”

“속일 사람을 속이세요. 내가 너 각성 첫날부터 지금까지 본 사람이야. 노바리온이랑 왜 엮였는데? 그래 놓고서 갑자기 빠지면…….”

“누가 안 한대? 좀 뒤로 미루라고.”

“아이씨,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미루긴 뭘 미루……. 흐아아아아악!!”

코너를 돌아 현관으로 나가자 한서진과 대화하던 놈이 날 보고 귀신이라도 본 듯 사색이 되어 뒤로 넘어갔다.

“어? 너는…!”

“허억, 유, 유령이다!”

“형은… 나오지 말라니까. 유령은 무슨, 박무일 네가 애야?”

맞다. 한서진의 친구 박무일. 싹싹한 놈. 이렇게 보니 또 반가워 손을 흔들자 놈은 외려 날 못 본 척하며 한서진을 보며 닦달했다.

“저, 저게 유령 아니면 뭐야, 뭐야!! 미친놈아. 너 설마 형 얼굴 따서 인형 만들었냐? 이 또라이 새끼야, 요새 좀 괜찮아진 줄 알았더니……. 누나는 너 이런 거 알아?”

“하아, 일단 들어와. 들어와서 얘기해.”

“싫어! 밀랍인형은 소름 끼친다고. 대체 무슨 아이템으로 움직이게 한…….”

“아까부터 무슨 인형 타령이야. 이렇게 잘생긴 인형이 어디 있어.”

“네…?”

한서진이 머리를 짚었다. 한서진의 멱살를 잡은 박무일이 삐걱대는 목을 돌려 날 얼떨떨하게 쳐다봤다. 팔짱 낀 채 고개를 까딱였다.

“일단 들어와 봐라, 너. 월계나루니 노바리온이니, 뭔지 나도 좀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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