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01.
내 말에 당황한 한서진이 뭐라 입을 떼기도 전에 박무일이 재빨리 안으로 들어왔다. 순식간이라 제지하지 못한 한서진의 얼굴이 굳었다. 그것을 못 본 체하고 박무일과 함께 거실로 향했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깐 형님께서 인형인 줄 알고 저놈이 정말 돌아 버렸구나 싶어 심장 떨어질 뻔했다고요. 어떻게 된 겁니까? 형님 그날 분명히 죽, …던전에서 못 나오신 것 아니었습니까? 저도 수색에 참여했는데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저희 팀이 실력이 끝내주거든요. 그런데 흔적도 찾지 못해서…….”
“너까지? …뭐, 어쩌다 그렇게 됐어. 그런데 아까 그건 무슨 소리야? 노바리온이라니.”
제집처럼 소파를 차지하고 앉은 우리 둘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보던 한서진이 날카롭게 말했다.
“형이 알 필요 없는 일이에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박무일.”
“어? 야, 나는…….”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한서진의 모습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자꾸 방해할래? 그때 나 공격한 놈들 노바리온이란 소리잖아. 그런데도 내 일이 아니야?”
내가 거기까지 알았을 줄은 몰랐는지 말문이 막힌 한서진의 시선이 가만히 박무일을 향했다. 눈치를 보던 박무일이 미안한 표정으로 손을 싹싹 빌었다.
“몰랐지 나는. 여기 형님이 계실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어?”
“…….”
“그래도, 서진아. ……형님도 아셔야 하는 거 아니냐?”
“맞아. 내 일이라며. 알려 줘.”
“괜히 말 안 해 봤자 형님께서 오해만 하시지.”
“맞아, 맞아. 네가 더 나빠 새끼야.”
박무일의 말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자 한숨을 뱉은 한서진이 결국 그 비싼 입을 열었다.
“우리가 따로 맡아 조사하던 단체야. 형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 조사 중이었고.”
“아…. 맞다.”
한서진도 내가 노바리온과 엮였다는 걸 알고 있었지.
애초에 예성우를 한 방 먹일 생각으로 약을 두고 왔으니 주호현의 죽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노바리온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 짭의진에 대해 고민하느라 여념이 없어 센터에 두고 온 가이딩 보조제 역시 노바리온의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잊고 있었는데.
예성우와 연관 있던 곳이라 그렇잖아도 의심스러웠는데 내 사칭범까지 나와 매우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들었다. 예성우와 짭의진이 같은 곳에 속해 있다니 무슨 이런 개판…….
‘잠깐, 예성우와 짭의진. 둘 다 하말을 찾고 있었잖아?’
새삼스레 깨달은 사실에 놀라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알고 있었지만 차마 둘을 연관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예성우는 하말 때문에 주호현까지 죽이려 했던 미친놈인데 같은 소속인 짭의진이 과연 좋은 의도로 하말을 찾는 걸까? 다른 성좌들까지?
분명 그날 밤, 짭의진은 성산하에게 류수윤이 하말의 대응자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류수윤의 죽음 역시…….
하지만 노바리온이 날 습격한 이유가 짐작이 가질 않았다. 걸리는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내가 강의진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니면 혹시 구름이를 들키기라도 했나?
내가 아무 말도 없자 표정을 살피던 한서진이 넌지시 물었다.
“놀라지 않네? 약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미리 성분 검사했었어. 그래서 도망친 거야.”
도망이란 말에 박무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혀, 형님. 도망이라고요? 그럼 그것도 다 알고 계셨습니까? 예성우가 류수윤 가이드와 형님을…….”
“박무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한서진이 뒤늦게 경고했지만 이미 박무일의 말을 들은 이후였다.
‘류수윤 역시 살해당한 거구나. 그래서 주호현이 내게 류수윤을 지켜 달라고 한 거야.’
류수윤을 지키는 것과 성좌들을 수호하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예성우와 짭의진. 모두 성좌를 죽이려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짭의진은 이미 성산하와 손을 잡았잖아?
‘성산하, 이 바보 같은 놈. 그러니까 내가 믿지 말라고…….’
그땐 성산하의 일이지 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퀘스트를 받은 이상 이젠 성산하만의 일이 아니었다. 페널티가 무려 7가지 대재앙이라고.
“응. 다 알고 있었어.”
뒤늦은 내 답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박무일이 조용히 한서진의 눈치를 봤다. 한참 침묵하던 한서진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것도 저 안 믿어서 얘기 안 한 거예요?”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안 믿은 게 아니라 믿고 싶었는데 못 믿은 거지. 믿을 상황이 아니었잖아. 다 예성우 때문이니까 걔한테 지랄해. 이런 상황에 내가 센터에 돌아가고 싶겠냐?”
대수롭지 않은 대답에 박무일과 한서진의 표정이 굳었다.
“그나저나. 노바리온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아챈 거야?”
강의진이라는 것도, 하말에 대해서도 밝힐 수 없어 두루뭉술하게 물은 질문에 한서진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놨다.
“……그보다는 가이딩 포션 때문일 거예요.”
“가이딩 포션? 갑자기 가이딩 포션이 왜 나와?”
뜬금없는 소리에 의아하게 묻자 박무일이 넌더리 내며 말했다.
“강의진 말입니다. 포션 뺏긴 사람들이 몇 있거든요.”
“포션을 빼앗다니 무슨 소리야 그게?”
“저희도 노바리온 조사하다 알게 된 건데, 레시피를 강제로 팔게 하거나 양도해서 강의진 앞으로 돌린 미공개 포션들이 존나 많아요. 모두 순차적으로 강의진 이름으로 발표할 예정이고요. 어떻게 협박을 한 건지 죄다 전결서약으로 엮인 걸 보고는 기겁을 했습니다. 아마 가이딩 포션도 그렇게 뺏을 작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직 조사 중이라 확실한 건 아니야.”
둘의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황당함과 낭패감에 머리부터 찬물을 맞은 기분이었다.
‘이 씨발 새끼가!! 저딴 짓까지 하고 다닌단 말이야?’
내 명성에 똥칠을 하다못해 아주 나락까지 떨어트리는 짓이었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노바리온은 개새끼 집합소다. 거기에 홀라당 낚여 성좌를 갖다 바칠 성산하를 하루라도 빨리 정신 차리게 만들고 짭의진이 하는 짓거리도 멈춰야 한다.
그 모든 계획의 걸림돌인 한서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서진아. 가자.”
결심에 가득 찬 내 표정에 한서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가긴 어딜 가요. 방금 못 들었어요? 놈들이 가이딩 포션 노리고 있다고. 거기 가면 위험해요.”
“위험하니까 더더욱 빨리 가 봐야지. 네 말대로라면 승연이까지 위험한 거잖아.”
한서진이 싫다는 듯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내 눈을 피했다.
“예상보다 훨씬 덩치가 커서 아직 본체도 파악하지 못한 곳이에요.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도 모르고.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형을 어떻게 보내.”
“그럼 승연이는? 걔네는 승연이가 만든 줄 오해하고 있을 거 아냐! 그럼 승연이가 더 위험한 건데! 그리고 우리 용병들도 강해서 괜찮다니까.”
여간한 고집불통이어야지. 벽과 대화하는 느낌에 답답해 토로하다 내 본심이 드러났다. 한서진과 박무일이 제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만든 줄 오해하다니?”
“형…님? 꼭 다른 사람이 제작했다는 말로 들립니다?”
“…….”
내게 쏟아지는 둘의 시선을 피하며 이목을 돌리려 괜히 소리를 쳤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중요한데.”
“맞습니다. 그럼 누가 만들었다는 겁니까?”
“거기 형이랑 원승원밖에 없잖아요. 떨거지 하나랑.”
“저희 에스퍼입니다. 형님. 가이딩 포션이 제일 중요한데요. 정말 누가 만들었을까요?”
막다른 골목에 몰린 느낌이다. 둘 다 빙빙 돌리며 말을 안 할 뿐이지 이미 머리로는 한 가지 가정을 확실시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땀이 삐질 흘렀다. 이미 글렀다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너 때문이잖아. 씨발.”
“……정말 형이 만들었다고요?”
“그래! 배은망덕한 새끼야. 내가 그거 만들려고 얼마나 좆 빠지게 돌아다녔는데. 가이딩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만들어 줬더니 마시고는 쓰레기라고 하질 않나, 만나자마자 사람을 가두질 않나.”
며칠간 나도 모르게 많이 섭섭했나 보다. 하기야 포션 만들고 이런 푸대접 받아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한없이 줄줄 나오는 말을 내뱉는데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날 바라보던 한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내 앞까지 다가온 한서진은 내 양어깨를 잡더니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날 위해서 만든 거야?”
“몇 번을 말해. 네 생각 하면서 만들었……!”
갑자기 날 제 품에 끌어안는 한서진 때문에 말을 끝내지 못했다. 한서진에게 안긴 채, 그의 어깨 너머로 경악한 표정의 박무일과 눈이 마주쳤다.
씨발.
놀라 인중이 길어진 박무일이 검지로 제 가슴팍을 한 번, 그리고 엄지로 현관을 두 번 가리켰다. 표정을 왕창 구긴 나 역시 현관을 한 번 가리키고는 손날로 목을 그었다.
‘나가면 죽는다.’
무조건 박무일과 함께 나가야 한다. 살기 띤 내 표정에 박무일이 반쯤 뗀 엉덩이를 다시 소파에 붙였다.
그때 내 몸을 꽉 껴안은 한서진이 작게 물었다. 이상하게 조금 젖은 목소리처럼 들렸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
“나가서 행복했어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응. 존나 행복했어.”
“……그렇게 말하면 제가 어떻게 붙잡아요.”
나도 손을 들어 등을 두드려 주자 애교 부리듯 어깨에 더 파고든 한서진이 목에 입을 댄 채 웅얼댔다.
“저, 가이딩 해 주세요.”
“갑자기?”
“형 가이딩이 필요해요.”
시스템의 도움 없이도 조금의 가이딩은 할 수 있었으나 굳이 스킬창을 펼쳐 접촉 가이딩을 시전했다. 그사이 꽤나 늘은 가이딩이 한서진에게 빠르게 흘러갔다. 가이딩을 느낀 한서진의 몸이 잘게 떨리며 내 어깨가 젖어 들어갔다.
‘뭐지 이거.’
조금 고민하다 물었다.
“너 우냐?”
“……시끄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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