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06.
이러다 오늘 모인 보람 없이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지나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다행히 직위를 폼으로 달고 있던 건 아닌지 둘의 대화도 점점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센터가 먼저 사이비에 대해 말하자 뒤이어 성산하도 성좌에 대해 입을 열었다.
“열두 별자리의 알파성과 연결된 각성자들이 있다. 하나같이 자기 계통에서 매우 강하거나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이들이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씩 죽어 나가더군. 각성자의 죽음과 동시에 성좌의 알파성이 빛을 잃었다.”
“그 조건이라면 S급 헌터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박무일의 중얼거림에 성산하가 고개를 저었다.
“꼭 헌터일 필요는 없지. 당장 하말의 각성자부터가 가이드였으니까. 그쪽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류수윤. 양자리 알파성의 대응자다. 안타깝게도 센터에서 살해당했다만.”
“류…수윤 가이드가?”
“역시 예성우가 그를…….”
놀란 에스퍼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린 박무일 대신 한서진이 눈을 찌푸리고 물었다.
“각성자들을 죽인다고 했습니까? 대체 어떤 목적에서?”
“하나 분명한 건, 성좌가 힘을 잃을수록 던전의 파동이 망가진다. 예측 불가한 던전 브레이크가 잦아진 데다 몬스터들은 강해져 던전 내부 생태계까지 말이 아니다. 열둘이 모두 파괴된다면 던전에 들어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르지.”
“던전의 파동이 그래서…….”
한서진이 나를 돌아봤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센터에서 탈출하던 날 이상 현상을 보이던 던전이 떠올랐다. 한서진 역시 같은 생각 중일 게 눈에 보였다.
“그럼 성좌는 얼마나 남은 겁니까?”
“반쪽짜리 둘을 제외한 멀쩡한 건, 다섯.”
“겨우 다섯이란 말입니까?”
방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 역시 남들 몰래 퀘스트창을 띄운 채 다섯이란 수를 되뇌었다. 반쪽짜리라는 건 하말과 카스토르를 말하는 거다. 남은 건 다섯이고. 어쨌든 모두 구하면 된다는 거지.
이후는 수월했다. 서로 직통 라인을 공유하고 센터 대 길드 차원에서의 계약을 하는 동안 할 게 없던 나는 지루함을 못 이기고 밖으로 먼저 나가 정원 꽃밭에 앉아 끝나길 기다렸다. 수철이가 내가 사라진 동안 정신이 없어서 정원 관리를 못했다며 저 멀리서부터 잡초를 뽑고 있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구경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가벼운 손길로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뒤로 젖히자 거꾸로 된 성산하의 얼굴이 보였다.
“가려고? 벌써 다 끝났어?”
“이만 가야지. 생각보다 길어졌어.”
옆으로 다가와 말하는 성산하를 올려다보다 툭 물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뭘?”
“진짜 강의진이 아니라는걸.”
성산하의 입이 다물렸다. 가만히 날 보는 눈을 마주하다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센터 측의 입장을 듣는 성산하를 봤을 때였다. 현재 노바리온의 주축이니만큼 사이비에 대해 말하면서 강의진이 자주 언급될 수밖에 없는데 성산하는 그의 횡포를 듣고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는 거다! 사이비라는데, 남의 레시피를 빼앗고 불법도 저질렀다는데! 그러곤 심지어 친절히 박무일과 한서진에게 충고씩이나 해 줬다. 진짜 강의진이 아니고 사칭범이니 그에 관련해서도 조사해야 할 거라면서.
“꽃이니 와인이니 별 지랄은 다 하길래 깜빡 속았네.”
발밑의 돌을 차며 투덜거리는데 성산하가 내 바로 옆에 걸터앉았다.
“가짜라는 건 보자마자 알았지. 연기가 여간 어설퍼야 말이야.”
“그럼 말을 해 주던가. 나까지 속일 건 뭔데? 사람 우스워지게 씨발.”
“그렇게 신경 쓰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서운했어?”
“서운은 무슨. 단지 나한텐 강의진 갖고 미친놈처럼 지랄하더니 그 새끼한텐 단번에 넘어가니까 멍청한 꼴이 답답해서 짜증 났던 것뿐이야.”
내 말에 성산하가 빙긋 웃었다.
“예쁘게 갈아 주려고 준비 중이야. 그때 구경 올래?”
“뭐?”
“말했잖아. 그 낯짝 못 들고 돌아다니게 할 거라고.”
정원의 어느 돌멩이를 응시하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니 흰 장갑에 쥐여져 눈앞까지 드리워졌던 주먹만 한 돌이 떠올라 오싹 소름이 돋았다.
미친놈…….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을 돌렸다.
“가짜인 거 알고 있었다면서 그리스는 같이 왜 간 건데?”
“서로 성좌를 거래하기로 했거든. 카스토르라고, 하말과 비슷한 상황인 성좌가 있는데 그쪽에서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성산하의 말에 흠칫 놀라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움츠렸다. 카스토르의 문양은 내게 있었다. 그러나 성산하에게 밝힐 수는 없다. 하말이야 주호현과 연관이 있다 해도 카스토르는 퀘스트를 통해 받은 것. 뜬금없이 주호현이 카스토르를 가진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선 퀘스트를 말해야 했다. 퀘스트를 조금만 파고들어도 내가 주호현이 아닌 강의진이라는 사실이……. 절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다 성산하가 카스토르를 미끼로 짭의진에게 속아 넘어갈까 걱정돼 말했다.
“……그것도 거짓말일지도 몰라. 믿지 마.”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조금의 가능성도 놓칠 수 없는 상황이라.”
중얼거리던 성산하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고해 성사 시간인가? 나도 들어야 할 게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우리 포션 메이커님,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가이딩 포션까지 만들었을 줄은 몰랐지.”
뜨끔해 바닥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한서진이 말했을 리는 없고, 아마 조사하다가 알아냈겠지……. 젠장.
“……대단한 걸 이제 알았냐? 너한테 보고할 의무 없잖아.”
“우리 사이에 나오긴 서운한 말인데. 게다가 손까지 허전해 보이고.”
내 손을 들어 올린 성산하의 입꼬리에 비뚠 웃음이 걸렸다.
“반지는 어디 갔어.”
“그러게. 어디 갔지.”
어색한 웃음을 지어낸 입꼬리가 파들 떨렸다. 봉긋하게 솟은 볼을 쿡 찔러 본 성산하가 킥킥대며 옆으로 잡아당겼다.
“일부러 이러는 건지.”
“윽, 놔…라.”
“걱정하게 하지 마. 공방에 붙어 있어.”
어차피 갈 데도 없다고, 그렇게 말하려는데 걸터앉아 있던 몸이 순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흔들렸다.
‘뭐지? 지진인가?’
의아하게 발밑을 내려다보는데 쩌저적 하며 갈라지는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급히 내 앞을 막아선 성산하가 로드를 꺼내 들었다.
“고개 숙여.”
“왜? 대체 무슨 일인…….”
부서지고 터지는 굉음 사이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언제나 조용하던 공방 거리 같지가 않았다. 궁금해 치켜든 시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들이 비쳤다. 잠시나마 내가 던전에 있는 건가 착각할 정도였다.
“씨, 씨발. 저게 다 뭐야?”
그때 한 운석이 정확히 우리 공방 위를 향해 떨어졌다. 순식간에 덩치를 불리는 운석의 크기에 피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씨발. 좆 됐다.’
현실감이 없는 광경에 입을 벌리고 바라보는데 성산하가 엘프목을 향해 제 로드를 던졌다. 하얀 로드가 꽂힌 엘프목이 번쩍 빛나더니 위로 환한 빛을 뿜어냈다. 룬 문자가 그려진 반구형의 돔이 공방 위로 생겨났다. 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크기의 돔이 공방 전체를 덮음과 동시에 운석과 충돌했다. 충돌의 여파로 공기가 울려 머리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큭.”
다행히 성산하의 실드를 뚫지 못한 운석은 육중하게 구르며 돔을 타고 내려갔다. 주위의 건물들을 마구잡이로 부수던 운석은 땅에 닿자마자 검은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에 인상을 찌푸리고 성산하를 찾았다.
“성산하, 성산하!”
이름을 불렀음에도 돌아보지 않은 성산하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를 따라 성산하의 시선이 향한 곳을 올려다봤다.
“……저…게 뭐야, 씨발?”
달의 몇 배나 큰 행성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었다.
***
어느 날 갑자기 운석과 함께 하늘에 생겨난 행성에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아니 사실, 그것이 행성이냐 아니냐부터가 논란거리였다. 땅에서는 저렇게 크게 보이는 행성이 우주에서는 전혀 관측되지 않은 탓이다. 던전과 몬스터의 등장 이후 웬만한 것에는 놀라지 않던 사람들마저도 두렵게 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함께 나타난 아홉 개의 크고 작은 운석들 때문에 혼란이 배가 됐다.
간간히 나오는 지구 멸망설은 사람들에게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던전 브레이크로 몬스터에게 죽을 가능성이 높다며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EX급 퀘스트를 가진 나로서는 쉽게 넘겨듣기 힘든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상의 회복은 빨랐다. 첫날 이후 운석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고 행성 역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지구의 생태에도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자 그저 신비로운 현상 등으로 치부한 사람들은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생계를 뒤로하고 마냥 두려워할 수만도 없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설마 퀘스트 때문은 아니겠지 하며 불안해하던 내게 성산하의 문자가 도착한 건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알파성이 하나 더 꺼졌어. 하늘의 행성과 관련이 있는 것 같으니 웬만하면 공방에서 벗어나지 마.」
성좌가 하나 더 죽었다니.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퀘스트 실패에 한발 더 가까워졌다. 창피하지만 겨우 운석 하나에도 조금, 아-주 조금 겁을 먹었었는데 퀘스트를 실패해 7가지 대재앙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끔찍할지 이제야 실감이 나는 기분이었다.
“구름아, 우리 어떡하냐. 너 다른 친구들이 뭔지 아는 거 없어?”
“메에에에-”
구름이를 쓰다듬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의 운석으로 인해 무너져 복구 작업 중인 이웃집들이 내다보였다.
성좌에 관련된 일이니만큼 성산하뿐 아니라 한서진이나 박무일 역시 전에 비할 데 없이 바빠졌다. 내 공방에서 출퇴근하겠다며 내 옆방에 제 짐을 가져다 둔 한서진 역시 임무 탓에 공방을 비운 지 벌써 나흘째였다.
“센터랑 천랑만 믿고 기다려도 되는 건지…….”
하지만 별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퀘스트가 잘못 찾아온 거란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난 제작계라고.
근심에 가득 차 창밖을 보는 내 등 뒤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호현 님. 실험 준비 다 되었습니다.”
“나갈게.”
어쨌든 당장 해내야 하는 일은 치료제 제작이다. 구름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착하게도 곧바로 문양 속으로 들어갔다. 사념을 떨치며 방문 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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