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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10화 (110/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10.

시간 맞춰 잘 도착한 것 같다. 이제 겨우 입상이라니까. 승연이는 무슨 상을 받을지 즐거운 상상을 하며 자리에 앉아 앞을 바라봤다. 그러나 곧바로 들려온 소리에 귀를 의심하며 벌떡 일어났다.

[입상! 아카데리안 공방의 팀 오드리! 무소속 천혜인! 노네임 공방의 연승연! 한로의…….]

“엥? 뭐야, 입상? 지금 입상이라고 했어?”

“……네. 입상 맞아요.”

“말도 안 돼! 겨우 입상이라니!”

치료제를 개발했는데 가장 낮은 상을 받았다. 심지어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기백이었는데도!

“잘못된 거 아니야?”

황당하게 소리치자 뒤에서 원성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앉아요! 화면 가리지 말고!!”

“혼자 봅니까!”

한서진이 내 팔을 잡아 앉혔다. 함께 앉아 있던 정혁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사장님. 저 그게……. 아마 길드의 입김이 들어갔을 겁니다.”

“녹스 말하는 거야?”

“당장 심사 위원에 테란과 산정 출신 임원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노바리온도 함께고요. 노바리온은 강의진을 앞세워 나올 텐데 강의진이 만든 포션의 부작용 치료제에 대놓고 상을 주기엔…….”

옆에서 한서진 역시 당연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는 건 부작용이 있단 말과 같으니까. 일부러 일리미탈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상을 준 게 분명해요.”

“이 치사한 새끼들…….”

둘의 말에 일리가 있어 불퉁하게 입을 다물었다.

하위 상들의 시상이 모두 끝난 후 주요 상들을 앞두고 노바리온의 대표라는 할머니가 앞으로 나와 연설했다.

[더할 수 없이 중대한 사명감으로 우리 노바리온은 포션계뿐 아니라 모든 제작·생산계의 부흥을 위해 월계나루 서쪽에 대-공방단지, 얼티밋 밸리를 건설하기로 계획하였습니다. 오픈을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으며 한 달 후, 국민 모두를 위해…….]

대표의 말에 모두가 환호하며 소리쳤다. 오직 나와 내 주변만이 기뻐하지 못했다.

‘사명감은 무슨. 사기꾼이면서.’

월계나루 서쪽의 큰손이 노바리온이었다니. 날 사칭한 것도 모자라 저놈들 때문에 손님 많은 월계나루 서쪽에 공방을 열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더 열불이 났다. 보고 싶지 않은데 사방의 커다란 화면에서 연설을 중계하는 탓에 피하지도 못했다. 즐거웠던 기분은 순식간에 가라앉고 머릿속엔 서둘러 여길 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 내 귀로 뒷자리의 사람들이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듣기론 대통령상은 이미 내정되었다고 하더라.”

“내정이라니. 누구로?”

“누구겠어? 강의진이지. 노바리온이 딱 본상 앞두고 저런 거 공개하는데 강의진이 안 받으면 이상한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오늘 강의진 안 왔길래 아닌 줄 알았지. 사실 내 친구가 강의진 팬인데…….”

곧 뒤의 둘은 목소리를 더 죽이고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엿듣던 나만 답답해져 한숨을 내쉬었다.

‘불참 시 수상 취소라더니. 강의진 불참했는데 대통령상 주기만 해 봐라.’

이왕 이렇게 된 거, 대통령상을 누가 받는지는 보고 가야겠다. 팔짱을 낀 채 삐딱하게 앉아 화면을 응시하는데 단상 아래를 비춘 카메라에 흰 천으로 덮인 길쭉하고 커다란 무언가가 보였다.

[얼티밋 밸리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의 헌터들에게 힘이 되고 발전이 되는 범지구적인 기관이 될 것입니다. 역사에 남을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포션 마스터 강의진이 이 자리에 함께합니다! 다 함께 셋을 세어 볼까요, 하나, 둘, 셋!]

사람들의 환성과 함께 흰 천이 벗겨졌다. 그 아래 황금빛으로 빛나는 ‘강의진 동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씨발! 저거 내가 하려고 했던 건데!’

금으로 만든 동상, 내 소소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다름 아닌 짭의진에게 빼앗기다니 억울해 눈물이 찔끔 났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짜증스레 주먹을 꼭 쥐자 손등 위로 한서진의 만질만질한 장갑이 닿았다.

“호현 형. 괜찮아? 힘들면 나갈래?”

“아니. 어디까지 하나 꼴 좀 봐야겠다.”

이를 부득 갈며 고개를 젓던 나는 동상과 함께 자료 화면으로 크게 떠오른 짭의진의 얼굴을 노려보며 물었다.

“야. 쟤랑 나 닮았냐?”

“누구, ……강의진이랑 형이요?”

동상은 안경을 쓰지 않아서 그런지 확실히 내 얼굴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화면 속의 강의진은 존나 다른데.

화면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한서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비교도 안 되는데. 형이 훨씬 낫지.”

“……그렇지?”

기대한 대답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동시에 조금 의문이 들었다. 짭의진과 나는 닮지 않았는데, 왜 짭의진을 보면 다들 나와 닮았다고 말하는 걸까.

‘저 안경에 뭐가 있나…….’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의 동상과 짭의진을 번갈아 보다 한서진에게 물으려던 순간 갑자기 송출되던 화면이 꺼졌다.

“한서진. 그럼 저 동상이랑 짭……. 어? 뭐야.”

“방송 사고인가?”

저 앞쪽에서 크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단순 방송 사고라기엔 그 소란이 워낙 거센 터라 이번에는 나뿐 아니라 주위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내다볼 수밖에 없었다. 발뒤꿈치를 들어 봐도 앞에 깔린 인파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의문만 가중되던 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질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태, 태제헌이다!!”

“뭐?”

그 외침을 시작으로 모든 사람들이 흥분해 떠들어 댔다. 바로 옆에 있는 한서진의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태제헌이 왜 여기에?’

당황한 나는 급히 로브를 더 깊이 눌러쓴 채 뒤를 돌아 퇴로를 찾아봤다. 그러나 흥분해 앞으로 몰려오는 사람들 탓에 도망갈 길이 없었다. 시상식을 위해 찾아온 기자들이 닥치는 대로 단상을 향해 달려갔고 뒤이어 까맣던 화면이 커지며 커다란 전광판에 태제헌의 얼굴이 가득 차 나왔다.

“씨발, 씨발…. 빨리 나가야…….”

“형, 내 옆으로 와. 다쳐요.”

“이거 놔!”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소리치자 한서진이 놀라 멈칫했다. 그러나 그런 한서진을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주위에 깔려 있던 수십 개의 전광판이 모두 태제헌을 비추고 있었다.

[그동안 어디 있다 나타나신 겁니까!]

[오래 잠적하신 이유가 강의진과 관계있나요?]

[잠적 이후 회복 불능으로 무너진 녹스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방관하신 겁니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태제헌의 새카만 두 눈은 뭔가를 찾듯 장내를 천천히 훑고 있었다. 사방에 가득한 태제헌의 얼굴에 사색이 된 채 슬슬 뒷걸음질 쳤다.

“……형?”

“아니, 아니다. 미안. 서진아 내가 좀 급해서. 먼저 가야 할 것 같아. 공방에서 보자.”

로브를 푹 눌러쓴 채 뒤를 돌았다. 손을 뻗는 한서진을 피해 사람들 틈으로 몸을 빼내려는데 등 뒤에서 수십 명의 경악에 찬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파란이 우리가 있는 관중석까지 치달아 공중을 울렸다.

“꺄아악! 살려 줘!”

“몬스터다! 피해!!”

놀라 뒤를 돌아보자 무언가를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그 사이로 두 마리의 검정 개가 존나 빠른 속도로 날 향해 달려왔다.

“월! 월월!”

“…발. 좆됐다.”

온몸의 피가 빠지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빙글빙글 돌며 사람들을 위협해 뒤로 물린 개 새끼들 덕에 내 주변은 동그랗게 비워졌다. 저 멀리 단상에서 가볍게 뛰어내리는 인영이 보였다. 백 미터도 넘는 거리였지만 무언가에라도 묶인 것처럼 옴짝달싹조차 할 수가 없었다.

서두르지 않고 긴 보폭으로 날 향해 걸어오던 태제헌이 황금빛 동상 앞에서 잠시 발을 멈췄다. 귀찮은 것을 치워 버리듯 가벼운 손짓에 동상은 그대로 네 등분으로 부서져 땅으로 떨어졌다.

다시 이쪽을 향하는 시선에 땀으로 젖은 주먹을 꾹 쥐었다. 그때 옆에서 개가 낑낑대기 시작했다.

“깽, 끼잉.”

“크르르르…….”

위협하듯 으르렁대는 룬을 무시하고 다가온 한서진이 내 옆에 다가와 섰다. 가까워진 태제헌을 노려보며 잇새로 중얼거렸다.

“형…! 여기서 뭐 해요? 어서 나가요.”

씨발 언제 이렇게……!

어느새 내 주변에 다다른 태제헌이 발을 멈췄다. 뱀 같은 시선이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훑었다. 예상대로였다. 태제헌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이리 와.”

태제헌이 내게 손을 까딱였다. 급히 내 앞을 막아선 한서진이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두 번 말 안 해. 이리 와.”

“형, 가만 있어요. 당신 뭐야.”

“강의진.”

나를 강의진이라고 부르는 태제헌의 모습에 한서진이 더 놀란 얼굴로 돌아봤다. 그때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온 태제헌이 검은 아우라를 풍기는 팔을 들어 한서진을 잡아 내팽개쳤다. 저 멀리까지 날아가는 한서진의 모습에 놀라 소리쳤다.

“서진아!”

땅에 쓰러진 한서진이 욕을 짓씹으며 품에서 총을 꺼냈다. 그에 태제헌이 비웃자 결국 장전한 총에서 푸른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멍하니 있던 박무일이 그제야 놀라 한서진을 뜯어말렸다.

“한서진, 이 미친 새끼야! 민간인들 있잖아!”

“놔, 다신 안 놓쳐.”

“못 놔!”

한서진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놀라 달려가려는데 뒤에서 거센 손길이 팔을 잡았다.

“어딜 가려고.”

“……태제헌.”

“가출이 길었지.”

우리가 선 자리로부터 검은 연기가 마치 불꽃처럼 화르륵 타올랐다. 곧 그것은 나와 태제헌을 덮쳐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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