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11.
연기에 감싸였다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시상식장이 아닌 처음 보는 공터였다. 반항할 틈도 없이 태제헌 따까리들의 거센 손길에 사지가 묶이고 입도 틀어 막혀진 채 뒷자석에 던져졌다.
성좌의 안위가 위험합니다. 성좌를 안전히 보호하세요.
돌발 퀘스트!
성좌의 안위를 위협하는 세력에게서 벗어나시오.
제한 시간 : 03:00:00
‘씹……. 이 상황에서 어떻게 튀어….’
등받이 틈에 얼굴을 처박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눈앞에 독 저항을 활성화한다는 시스템창이 떴다. 재갈에 뭘 묻혀 놓은 것 같은데……. 뻔했다. 내가 만든 독이겠지.
원래의 스킬을 꽤나 많이 돌려받은 상태라 독 저항이 높아진 내게는 다행히 들지 않았다. 옴짝달싹하지도 못하고 욕을 짓씹는 내 뒤로 룬과 루트가 헥헥대며 차에 올라탔다. 룬은 의자로 올라와 내 종아리 위에 턱 손을 얹고 앉았고 루트는 쓰다듬어 달라는 듯 뒤로 묶인 내 손에 머리를 갖다 댔다.
“읍! 으읍!”
‘좁아, 씨발!!’
“월! 크르르르……. 월월!”
의자에서 쫓아내려는 나와 버텨선 룬이 몸부림을 치며 싸웠다. 그 덕에 흔들리는 내 손에 머리가 긁힌 루트만 좋다고 헥헥댔다. 몸싸움이 멎은 것은 태제헌의 목소리가 들린 후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곧바로 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트렸다.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태제헌을 마주할 수는 없었다.
“누가 온다고?”
“뒤를 쫓아오는 에스퍼들이 있습니다. 정확한 수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적어도 다섯 이상입니다.”
“…쯧, 성가시게.”
“에스퍼들이라 손쓰기가 애매한데 어떻게 할까요?”
“따돌려서 한번에 처리해. 시신은 근처 던전에 던지든 알아서 하고.”
룬과 루트가 태제헌에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갔다. 다시 차 문이 닫히고, 출발하는지 온몸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쓰러진 척하는데 등 뒤에서 태제헌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는 척하지 말고 일어나.”
찔렸지만 고른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계속 자는 척하자 뒤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말했다.
“아직 본래 힘을 찾지 못하셨잖습니까. 하급 가이드 몸으로는 수면 독을 이겨 내실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게 약하다니.”
“…길드장님. 본사에서 계속 급한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무시해도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제하더라도 천랑 쪽 인사들이 본사까지 찾아와 버티고 있다는데요.”
“그래 봤자 이빨 빠진 호랑이지. 무시하고 쫓아내.”
뒤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싶더니 둘의 대화를 엿듣던 내 몸이 바로 눕혀졌다. 커다란 손이 내 턱을 잡아 이리저리 돌려 봤다. 얕은 눈꺼풀 위로 태제헌의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너같이 특별한 것으로 들어갔을 줄은 알았지만……. 확실히 이건 예상외로군.”
아니, 나름대로 특별한 건가. 태제헌의 중얼거림은 앞에서 들려온 다급한 외침에 묻혀 사라졌다.
“기, 길드장님! 에스퍼들이……!”
무슨 일인지 밖에서 큰 굉음이 울렸다. 타이어의 마찰음과 함께 급회전을 하는 차체에 몸이 바깥으로 쏠렸다. 내 허리를 잡아 고정한 태제헌이 놀라 날뛰는 개들을 진정시켰다.
“다른 팀에게 연락할 테니 일단 따돌려!”
“아니, 내가 나가지.”
“길드장님!”
“의진이는 준비했던 곳에 데려다 놔. 룬, 루트. 따라와.”
“월월!”
바짝 붙어 내 몸을 데우고 있던 룬과 루트의 온기와 태제헌의 손길이 함께 떨어져 나갔다. 태제헌이 내린 차가 다시 출발하고 나서야 간질거리던 눈을 뜬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 씨발…….”
내가 다른 몸에 들어온 걸 알고 있다.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태제헌에게 걸린 이상 끝이다.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앞의 비서나 운전기사 모두 각성자 같고, 태제헌도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비서에게 물었다.
“여기 어디야?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건데.”
“……깨어 있으셨습니까?”
“아니. 방금 일어났는데? 내 말에 대답이나 해. 어디 가는 거냐고.”
인상을 찌푸린 놈이 내 말을 무시한 채 휴대폰을 똑딱댔다.
“야, 묻잖아. 태제헌이 내 말 잘 들으라고 안하던?”
남비서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조금만 더 긁으면 넘어오려나 싶던 놈은 운전기사와 뭘 속닥거리더니 다시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가 날 개무시했다.
“야, 태제헌 따까리. 안 들리냐?”
“제가 해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기다렸다가 길드장님이랑 하시지요.”
“어디 가는지는 말해 줄 수 있잖아! 야, 야!”
씨발 납치하는 주제에 존나 당당해요.
결국 팔짱을 낀 채 밖을 내다봤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길을 외워 보려 했으나 애초에 시작점이 어딘지도 모르니 다 허사였다. 씨발, 어쩌지 진짜.
이상한 산속으로 계속 올라가더니 코너를 돌자 거대한 장벽이 나타났다. 장벽 안쪽으로는 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이 몇 개나 보였다.
그중 어느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야 멈춘 차에서 끌어 내려진 나는 대기하고 있던 양복 입은 놈들에게 끌려가 가장 끝 구석 방으로 던져졌다. 몸을 묶고 있던 구속은 풀렸지만 달리 도망칠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태제헌에게선 도망 못 가. 그럼…….’
방을 지키고 선 비서와 그 옆의 놈들을 돌아보고 문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나가.”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잘 거니까 불 끄고 꺼지라고.”
“…….”
“태제헌이 말 안 해? 나 사람 있으면 잠 못 잔다고.”
“……어차피 도망가실 수 없습니다.”
놈들은 친절히 커튼까지 치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벌떡 일어난 나는 기척을 죽이고 방을 천천히 살펴봤다. 다행히 방 내부에는 별다른 감시 카메라가 보이지 않았다. 내 세 칸짜리 소박한 인벤토리에는 포션과 단검, 그리고 성산하가 준 목줄이 있었다. 개중 라이라프스의 목줄만 꺼내 든 나는 초조한 눈으로 방을 둘러봤다.
“무조건 뺏길 텐데. 어디 숨겨야…….”
화장실 점검구에 숨기는 건 예전에 한 번 태제헌에게 걸린 적이 있어 안 될 것 같고. 벽을 돌며 이음매를 발끝으로 툭툭 쳐 봤다. 빈 소리가 들려 몰딩 조각을 옆으로 밀고 마루를 들어 올리자 주먹 두 개 겨우 들어갈 만한 틈이 나왔다.
“여기다.”
개새끼들이 찾는 일 없게 이불로 마구 문대 냄새를 지우고 천으로 감싸 쥐어 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다시 원상 복구를 시키기가 무섭게 절망적인 소리와 함께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실패!」
「경고- 과반수 이상의 성좌가 빛을 잃으면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돌발 퀘스트!
성좌 수호
조건 : 보호 중인 성좌의 소유권을 잃으면 실패.
*보호 중인 성좌의 수 : 2개
실패 시 D-day 카운트다운 시작
퀘스트 실패창이 뜨기가 무섭게 새로운 돌발 퀘스트가 떠올랐다. 보상도, 제한 시간도 없는, 무조건 내게 불리한 엉터리 퀘스트였다.
「경고- 과반수 이상의 성좌가 빛을 잃으면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계속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창에 짜증스레 머리를 헤집었다.
“나도 알아! 실패하면 존나 위험한 거! 하지만 나더러 어쩌라고!”
태제헌에게선 도망칠 수 없단 말이야……. 벽에 등을 기댄 채 주륵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시스템창은 말없이 내게 다섯 번째 퀘스트 창을 다시 띄워 주며 퀘스트의 수행을 종용했다.
머지않아 태제헌이 내 방에 찾아왔다. 소파에 느긋하게 앉은 태제헌과 달리 나는 놈의 부하들에게 제압당한 채 그 앞에 무릎 꿇려졌다.
“태제헌.”
“쉿.”
“…….”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화났어. 조용히 말 들어.”
태제헌 옆의 놈들이 테이블 위에 검은색 케이스를 열었다. 케이스 안에는 세 개의 아이템이 담겨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이미 본 적 있는 물건이었다. 토트의 눈.
태제헌의 턱짓에 옆의 여자가 내게 토트의 눈을 사용했다. 토트의 눈은 내 손에서 한 번, 발목에서 한 번 터지고 제 기능을 잃었다.
“두 개나. 의외인걸.”
눈썹을 치켜올린 태제헌이 케이스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천천히 아이템들을 스치다 짧은 봉 같은 아이템을 쥐어 올리자 그와 동시에 눈앞에 경고처럼 붉은 경고창이 우수수 떠올랐다.
「성좌를 보호하세요. 」
「경고- 과반수 이상의 성좌가 빛을 잃으면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씨발 나도 안다고.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뭔지 모를 봉 끝에는 이상한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태제헌이 그것을 들고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날 잡은 놈들에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곰만 한 덩치 두 놈을 이기긴 무리였다. 놈들이 내 왼발을 잡아 태제헌에게 내밀었다. 시스템은 수많은 경고창을 띄웠고 이젠 시야가 온통 붉게 보일 정도였다. 신발이 벗겨져 드러난 내 발목의 문양에 아이템을 가져다 대려고 할 때,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잠깐만, 잠깐!”
다행히 태제헌의 손이 멈췄다. 말하라는 듯 가만히 응시하는 눈빛에 도통 떨어지지 않는 입을 들썩이다 주먹을 꾹 쥐고 소리쳤다.
“씨… 발. 보자마자 이러기예요? 일단 내 말 좀 들으라고요.”
“내가 왜 네 부탁을 들어줘야 하지?”
“부탁은 씹…….”
태제헌이 혀를 차는 소리에 욕이 쑥 들어갔다. 탐탁지 않은 그의 표정에 뭘 먼저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갑자기 발목에서 불타는 고통이 느껴졌다. 놀라 내려다보자 태제헌이 문양이 있던 곳에 아이템을 가져다 댔다.
“큭, 흐아윽. 지금 뭐… 하는……!”
“미에에에에!”
“구름아!!”
하얀 뭔가가 보이는가 싶더니 내가 손을 뻗기도 전에 구름이의 울음소리만 남기고 봉 안으로 사라졌다. 창 바깥에서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운석이 떨어지던 날과 같은 소리였다.
「성좌의 소유권을 잃었습니다.」
「퀘스트 실패!」
다급히 발목을 살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문양이 사라져 있었다.
“씨발, 뭐 하는 짓이야! 돌려줘!”
“버릇없긴.”
이번엔 내 오른손을 가져가는 태제헌의 모습에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씨발, 내 말 좀 들어! 재앙이 일어날 거라고!!”
내 손바닥을 살피던 태제헌이 잠시 멈칫하는 것 같아 이때다 싶어 말했다.
“너, 너 짭의진. 그러니까 가짜 강의진 알지. 그놈이랑 노바리온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어. 그런데 네가 그걸 가져가면 세상에 대재앙이……!”
“상관없어.”
“뭐라고?”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묻자 태제헌이 웃으며 속삭였다.
“그딴 거 상관없다고.”
태제헌이 들고 있던 아이템을 문양 위로 내리찍었다. 경악해 바라보는 시야에 수많은 상태창들이 읽기도 힘들 정도의 빠르기로 떠올랐다.
「과반수 이상의 성좌가 빛을 잃었습니다.」
「행성 직렬이 시작됩니다. 멸망 D-day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
.
「돌발 퀘스트!」
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엑스트라 파업 선언 1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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