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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14화 (114/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14.

짜증스레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자 태제헌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도망가려고 했다던데.”

“씨발, 도망은 무슨…. 자꾸 가출이니 도망이니 하지 마요. 아닌 거 알면서.”

“그럼 배신이라고 해야 할까?”

느긋한 목소리에 불만스레 입을 다물었다.

태제헌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는 분명 태제헌 눈앞에서 자폭했고, 주호현의 몸으로 다시 눈을 떴다. 내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면 믿지 못했을 정도로 황당한 일인데도 태제헌은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떻게 찾았는데요.”

“쯧, 바보 같긴….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면 모두 버렸어야지. 포션을 쥔 채 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니?”

“난…….”

“그래. 포션을 버릴 수 있을 리 없지.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런 네가 내게서 도망가겠다고?”

비웃는 목소리에 입술을 깨물었다. 태제헌의 말대로다. 죽는 것 말고는 태제헌에게서 도망칠 방법을 모르겠다. 하지만…….

‘죽기 싫어.’

태제헌에게서 벗어나 상상하지도 못했던 세상을 맛봤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즐거웠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포기하기엔 너무 큰 행복이었다. 그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죽기 싫어. 다시 내 공방으로 가서 모두 함께…….

“아!”

부드럽게 쓰다듬던 손이 갑자기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 내 머리 위로 화난 목소리가 떨어졌다.

“착각하지 마.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설령 포션을 버렸더라도, 나는 널 찾아냈어. 넌 내 거야. 강의진.”

“씨, 발……. 좆 까세요. 내가, 개새낀 줄 아나.”

덕분에 현실로 돌아왔다. 쓸데없는 걱정은 내 취향이 아니다. 감상은 이만 집어치우고, 죽기 싫으면 죽지 않으면 된다. 몇 년이 걸려도 몇 번이고 다시 도망쳐 주마. 누가 먼저 포기하나 보자.

태제헌이 내 머리채를 잡아 돌려 저를 보게 했다. 마주친 눈이 차게 가라앉았다. 태제헌이 개빡쳤다는 걸 알았지만 지지 않고 노려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후 태제헌의 입술이 벌어지며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잘못했다고 빌어.”

“……싫어요.”

“그럼 벌을 받아야지.”

“그냥 날 내보내 주…… 커헉!”

커다란 손이 내 목을 졸랐다. 다급히 팔뚝을 때리며 놓으라 발버둥을 쳤지만 그럴수록 목을 조른 손에 힘이 강해졌다. 부족해지는 산소에 머리가 핑글 돌며 눈물이 고였다. 얼굴을 가까이한 태제헌이 이마를 맞댄 채 속삭였다.

“다시 가둬 줄까. 네게 나뿐이던, 하루 종일 나만 기다리던 그때가 그리워? 그렇다면 들어줘야지.”

“아, 커윽! 누, 놓아…….”

“잠시 눈 감았다 일어나면 익숙한 곳일 거야. 지금 와 다시 교육이 필요하게 될 줄 몰랐어. 이젠 알았으니…….”

‘교육실’을 운운하는 태제헌에 결국 꼴사납게 눈물을 흘리며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하윽, 씹, 알겠다고! 알겠어요.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씨발…….”

“쉬…. 그래, 착하지.”

“거긴 가기 싫…. 나는.”

겨우 트인 숨통에 급히 숨을 몰아쉬며 헐떡대는 날 안고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다른 생각 하지 마. 네가 있을 곳은 여기니까.”

“으, 하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꽉 쥐었다. 태제헌 씨발 좆같은 새끼…….

***

“오늘은 드셔야 합니다. 의진 님.”

“내가 먹기 싫다는데 왜 지랄이야. 꺼져.”

밥을 안 먹은 지 이틀째, 놈들은 내게 밥을 먹이려 난리였다. 배가 고픈 것보다도 24시간 내내 누군가와 함께 있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갇히는 걸 싫어하는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태제헌이라 창문은 항상 열린 채였으나 창문만 열어 놓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대체 왜 안 드시는 겁니까?”

“이 좆만 한 방에 누워만 있는데 밥을 뭐 하러 먹어. 나가게 해 달라니까?”

“안 됩니다. 길드장님 명입니다.”

“태제헌이 나가도 된댔다고!”

“의진 님께서 가드들 따돌리고 도망가려 하시지 않았다면 나가실 수 있었겠죠.”

태제헌에게 얌전히 있겠다고 말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일을 벌인 건 조금 후회 중이긴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놈들의 급소를 치고 도망가던 중이었다니까? 5m 내 경호 운운해 대는 덩치 다섯 명과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니 잠깐 미친 게 분명했다.

“길드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하던가 씨발.”

“…정말 제멋대로군. 언제까지 애새끼 입맛을 맞춰 줘야 하는 건지.”

이젠 코앞에서 욕을 하는 비서 새끼의 모습에 그대로 카트를 발로 차 엎었다. 그릇이 깨지고 음식이 날아갔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하아……. 여기. 치워 주세요.”

비서의 말에 사용인들이 주춤주춤 다가와 치우려는 모습에 손을 들어 멈춰 세웠다. 깨진 접시 조각을 발로 툭 쳐 비서 새끼에게 날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네가 직접 치워.”

“……뭔가 착각하나 본데, 저는 길드장님의 지시만 받습니다. 당신이 아직도 녹스의 포션 마스터인 것 같습니까? 착각 마시죠. 당신은 배신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녹스의 포션 마스터? 언제 적 얘기야. 그거 때려친 지 오랜데. 소식이 느린가 봐?”

비서의 표정이 구겨졌다. 난리 통을 가로지르며 안타깝게 주위를 둘러봤다.

“방이 더러워서 어쩔 수 없이 나가야겠다. 다 치우면 불러라.”

“저 자식이!”

***

두 팔을 뒤로해 잡힌 채 무릎이 꿇려졌다. 머리를 누르는 우악스러운 손길에 고개를 숙이자 까딱이는 반질반질한 까만 구두 끝이 시야에 가득 찼다.

“시위라도 할 생각인 건가.”

“…….”

“강의진. 고개 들어.”

머리를 잡고 고개를 들게 하는 손길에 강제로 시선이 들렸다. 거만한 태제헌 뒤로 재수 없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비서 놈이 보였다.

‘속 좁은 새끼. 그걸 진짜 일러?’

둘을 노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무슨 시위요.”

“식사하지 않는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먹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요. 쓰러지면 포션 먹이던가. 어차피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있는 힘껏 비꼰 말에 태제헌보다도 비서 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화를 참지 못한 놈이 또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길드장님께 말 똑바로 하십시오!”

“너나 똑바로 해.”

“하, 저… 저런……!”

길드장 앞이라 그런지 차마 이 자식 저 자식 하진 못한 비서가 저 싸가지 없는 새끼 보라는 듯이 태제헌을 바라봤다. 무언가 저와 비슷한 반응이 있길 바란 것 같지만 태제헌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조금 당황하는 비서의 표정에 속으로 혀를 찼다.

‘멍청한 놈.’

몇 달 안 된 놈이라 그런지 아직 태제헌이 뇌 한쪽이 고장 난 싸이코라는 건 모르나 본데, 내가 진짜 엿을 먹일 거였다면 존댓말 하면서 형, 형 하고 따라다녔겠지. 그럼 아마 다음 날부터 사라져 보이지 않았을 거다.

흘깃 비서를 돌아본 태제헌이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마음에 안 들면 바꿔 줄까.”

“전에 놈이 더 나았는데. 원래 있던 애들 다 어디 갔어요?”

“너 때문에 사라졌지.”

“나 때문이라니?”

“네가 도망칠 때, 분명 누군가 널 도왔을 텐데 그게 누군지 모르잖아.”

“이 미친…! 걔네 아무 상관 없다고요! 날 얼마나 싫어했는데 도와줄 리가 없잖아! 설마 다 죽였어요?”

“다는 아니고. 네가 방금 한 말 덕분에 살았어. 그럼 조력자는 남은 곳에서 찾아봐야겠네.”

“씨발, 진짜!!”

태제헌 개새끼! 아닌 척 음흉하게 떠보다니. 분해서 바닥을 세게 쳤다.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비서가 의아한 눈으로 나와 태제헌을 번갈아 봤다.

“길드장님? 대체 무슨…….”

“이만 나가 봐.”

“아, 네. 나가서 기다리겠습니다.”

꾸벅 인사하고 나가는 비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태제헌의 태도로 보아 내일부턴 다른 비서가 보일 게 뻔했다.

태제헌의 지시에 나를 꿇렸던 가드들이 내 팔을 놔줬다. 몸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저려 죽겠네. 다 혼냈으면 가요. 좀 쉬게.”

투덜대는데 뒤에서 바퀴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또 음식을 실은 카트가 들어왔다. 이게 뭐냐는 듯 쳐다보자 태제헌이 제 앞을 턱짓하며 말했다.

“내 앞에서 먹어.”

“시위가 아니라 진짜 먹기 싫다고요. 그냥 포션 먹고 때울 테니까…….”

“먹어.”

“싫어요.”

“음식 앞에서 버릇없긴. 잠시 나갔다고 그새 매너도 잊었나 보지?”

사용인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테이블에 음식을 차렸다. 내가 앉을 의자를 빼내 주는데도 앉지 않고 버텨 서자 태제헌의 눈이 가늘어졌다.

“선물이 있는데. 그걸 먼저 보여 주는 게 좋겠군.”

태제헌이 나이프를 든 손으로 까딱 손짓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문 쪽을 돌아봤다. 곧 다른 양복을 입은 덩치들이 묵직한 포대 자루를 끌고 들어왔다. 흙먼지가 묻어 더러운 데다 뭔지 모를 갈색이 얼룩덜룩 말라붙어 있고 꼭 사람만 한 크기의……. 아니, 사람이잖아?

“열어.”

태제헌의 명령에 가드들이 자루를 묶고 있던 끈을 풀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흠씬 두들겨 맞아 피를 흘린 채 쓰러진, 얼굴이 팅팅 부은 청이였다.

“청아!!”

당장 달려가려 했지만 태제헌의 손짓 한 번에 제압당해 우당탕탕 바닥을 굴렀다.

“청아, 임청! 일어나!”

소리 질러도 이미 기절한 청이에겐 닿지 않았다. 기어서라도 다가가려고 청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저벅저벅 걸어온 태제헌이 그런 내 앞을 막아섰다. 시야를 가린 채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검지로 내 턱을 들어 올렸다.

“선물은 어때,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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