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파업 선언-117화 (117/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17.

“와, 이건 체육 대회 때야? 나도 처음 보는데. 이거 진짜 귀엽다.”

손에 가득한 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겨보며 사나를 찾았다. 사나 혼자 찍힌 사진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나와 다른 아이를 찍은 사진 배경에 모습이 작게 걸린 정도였다.

“사나만 찍은 사진은 없는 거야?”

“걔 사진 찍는 거 싫어했잖아. 그 성격에 이 정도도 많이 찍힌 거지…, 그나저나 네 사진도 많이 없더라. 누가 가져갔나?”

“거울 보면 보이는 게 내 얼굴인데 뭐. 사나 사진이나 더 찾아 줘.”

“증명사진 정도야 찾아보면 있긴 할 텐데…….”

말끝을 흐린 창식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얼굴에 닿는 시선이 괜히 간지러워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자 찢어진 상처에 덧댄 거즈가 만져졌다. 아니나 다를까 창식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 정말 괜찮냐? 누구한테 맞은 거야.”

“넘어졌다니까.”

씨발 쪽팔리게……. 어제 외국 가기 싫다고 뻗대다 또 맞았다. 태제헌 개새끼.

머쓱하게 앞머리를 흩뜨려 내렸다. 사나 증명사진이나 보여 달라고 말하려다 스치는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맞다, 인명부 같은 것도 있어?”

“있지. 왜?”

“사나가 보육원 퇴소했을지 아직 남아 있을지 궁금한데 나이를 몰라서.”

“17기 명부라면 아마 원장실에 있을 거야. 그런데 거긴 행정부 직원들이…. 아, 오늘 쉬는 날이다. 한번 가 볼래?”

한창식과 함께 안쪽 건물로 향했다. 쉬는 날이라 그런지 잠겨 있는 문을 열쇠로 열고 원장실까지 들어갔다. 원장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사이 책꽂이를 뒤지던 창식이 파일 하나를 꺼내 보였다.

“여기 17기 찾았다. 어디 보자, 알파룸에 시옷……. 으응?”

“찾았어? 어디 봐.”

먼저 펼쳐 본 한창식이 어리둥절하게 명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얘 이름이 사나였어?”

“그걸 지금 알았냐? 이름이 귀엽긴 하지. 처음 봤을 때 여자애라고 착각했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까 이름까지 사나라는 거야. 그래서 몰래 정말 여자애 아니냐고 비밀 지켜 주겠다고 다시 물어봤다가 사나한테 정강이 맞았잖아. 게다가 사나가 일주일 동안 말도 안 하려고 해서…….”

“아니! 산하라고, 산하! 사-나가 아니라 산! 하!”

“뭐?”

뭔가 착각하는 게 분명해 참지 못하고 일어나 한창식에게 다가갔다.

“무슨 소리야. 산하는 성산하가 산-하고. 우리 사나는……, 뭐야 이거.”

한창식의 손가락이 가리킨 사진을 본 나는 그대로 입을 벌린 채 얼어붙었다. 커다란 눈에 어린애답지 않게 오뚝한 콧대. 전체적으로 밝은 색채의 아이는 이제 보니 성산하가 낳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한창식의 손가락이 사진 아래 이름이 적힌 곳을 툭툭 두드렸다.

“여기 봐 봐. 산, 하. 맞지? “나이는……. 어디 보자, 불명으로 적혀 있네.”

혼자 주절거리는 한창식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등줄기를 타고 오른 소름이 귀까지 돋았다.

사나가, 우리 예쁜 사나가……. 성산하라고?

***

보육원을 나온 후에도 혼란스러움에 떠돌다 혼자 구석진 곳에 앉아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그게, 그게 말이 돼?”

이런 역변이 다 있나, 물론 성산하가 존나 잘생겼단 건 인정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도 손에 꼽아 줄 정도로 빼어난 외모다. 하지만 사나는, 우리 사나는……!

‘아예 종이 달라졌잖아!!’

강아지가 케르베로스로 변한 꼴이다. 구름이가 미노타우로스가 된 거나 다름없다고!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 봐도 모든 정황이 사나가 성산하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솔직히 성산하를 마구 주물러 아주 작고 귀엽고 예쁘게 만든다면 우리 사나가 될 것 같긴…. 아니야, 굳이 이상한 생각 하지 말자.

가슴속의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긴 기분에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려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성산하가 사나라면…….

첫 만남부터 내 얼굴을 갈아 버리니 뭐니 하며 ‘강의진’에게 집착하던 모습이 이해가 갔다.

대체 뭘 먹고 나보다 큰 거지? 근육은 몇 킬로나 늘어났으며 성격은 어쩌다 그렇게 변한 거야? 어릴 땐 정말 조용하고 착했는데. 지금은…….

-멍멍아. 이리 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 채 사나와 성산하를 동시에 생각하다 머리에 스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부르르 털었다. 성산하의 과거뿐 아니라 더 커다란 문제가 떠오른 탓이었다.

‘그럼 나 지금까지 사나에게 맞고, 목줄 채워진 데다 멍멍이 소리를 들었단 말이야?’

그대로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머리를 벽에 쿵 박았다.

“씨발 쪽팔려, 성산하 개새….”

사나라는 걸 알아 그런지 차마 전처럼 욕이 나오질 않았다. 추억과 현실의 괴리감과 불쑥불쑥 치고 올라오는 자괴감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이쪽으로 가까워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보육원에 있는 것도 아니고, 눈치 볼 필요도 없었기에 깊은 한숨을 쉬며 골목 밖으로 나가는데 나를 발견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멈춰 섰다. 전의 놈이 사라지고 새로 온 태제헌의 비서가 놀란 눈으로 내게 달려왔다.

“의진 님. 여기서 혼자 뭐 하고 계십니까?”

“잠깐 산책. 이제 들어갈 거니까 태제헌한테는 말하지……. 어?”

성가시게 손을 내저으며 답하던 나는 비서가 있던 무리의 가장 앞에 선 남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얇은 은테 안경에 속내 모를 미소. 나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제로잖아?’

설마 제로까지 날 구하러 왔다 잡힌 건가? 놀란 내가 이름을 부르려 하자 제로가 검지를 들어 제 입 위에 가져다 댔다. 황급히 입술을 말아 물었다.

시계를 확인하느라 그를 보지 못한 비서가 고개를 들어 표정을 관리했다.

“지금 곧바로 들어가시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꼭 바로 돌아가십시오. 저는 손님들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손님이라고? 이쪽 말하는 건가? 무슨 일로 왔는데?”

이제 보니 제로는 기절해 들려 온 나나 청이와는 다르게 아주 멀끔한 모습이었다. 비서에게 물었지만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죄송합니다만, 길드장님 개인적인 일이라 말씀 못 드립니다.”

“태제헌이 불렀다고? 태제헌 아침에 녹스 본사 간댔는데.”

“곧 오실……. 큼큼, 길드장님께서 의진 님이 이 일에 신경 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비서가 도망치듯 등을 돌리고 제로는 태평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놈들의 뒷모습을 황당히 바라봤다.

“뭐야 씨발……. 구하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태제헌이 내가 알길 원하지 않는다고? 그럼 꼭 무슨 일인지 알아내 주는 게 도리다. 바로 돌아가라는 비서의 말은 머리에서 지워 버리고 조용히 등을 돌려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태제헌을 만난다면 갈 곳은 뻔하지.

이미 구름이를 찾느라 한 번 와 본 곳이었다. 응접실이나 태제헌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카메라를 피하느라 뒷길로 달렸더니 놈들과 비슷하게 건물에 도착했다. 창고를 통해 응접실과 이어진 다용도실로 들어가자 위쪽의 열린 창문을 통해 놈들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녹스 길드장님께선 언제 오십니까?”

“십 분 안으로 도착하실 겁니다. 먼저 말씀드렸듯 물건 호송은 일주일 뒤고 오늘은 장소와 인원 확인 먼저 하게 될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비서가 나갔는지 잠시 후 놈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다들 따로 움직이는 거죠? 착수금은 얼마씩 받았어요?”

“에이, 그런 거 말하는 거 아니야! 소영 씨도 섭섭지 않게 받았을 거면서. 요즘 잘 나간다던데.”

“아하하하! 그 정도는 아니에요.”

“대체 무슨 의뢰길래 이렇게 많이 부른 걸까요? 딱히 합동도 아니라고 하던데.”

“역시 녹스는 녹스야. 아무리 휘청했대도 이렇게 다 부르려면 이게 다 얼마야.”

“그러게요. 저 고등급 이렇게 많이 모인 거 처음 봐요.”

놈들은 사설 용병들이었다. 말하는 걸로 보면 꽤나 고등급 헌터 같은데. 그들을 모아 무슨 일을 시킨다는 거지?

제로의 목소리는 달리 들리지 않았기에 대체 왜 여기 있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조금 더 들으려 발끝을 들어 머리 위 창문에 귀를 가져다 대는 순간 제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늦지 않게 다녀오라고! 녹스 길드장 성격 장난 아니잖아.”

귀를 쫑긋대고 있을 때 내 앞의 문고리가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놀라 피하기도 전에 안쪽으로 몸을 들인 제로와 눈이 마주쳤다.

“……제로.”

“오랜만입니다. 사장님. 이런…. 얼굴이 많이 상하셨네.”

빙글빙글 웃는 얼굴에 인상을 찌푸린 채 제로를 노려봤다. 설마설마했는데 이 반응은…….

“너 뭐야.”

“네? 뭐가요.”

“이상하다 싶더라니, 태제헌 따까리였냐? …그럼 내 정보 태제헌에게 팔아넘긴 것도……!”

제로가 순식간에 다가와 나를 벽에 밀쳤다.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문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이런, 조용히 하셔야죠. 밖에 등급 높은 헌터들이 몇인데.”

“웁으읍! ……놔!”

“그런데 사장님.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제가 그렇게 신뢰를 못 드렸다니 이거 꽤나 가슴이 아픈데요.”

“내 공방에서 네 정보는 싹 다 사라진 데다 녹스 한복판에서 시시덕거리며 돌아다니는 꼴을 봤는데 너라면 믿겠냐? 차라리 네가 날 팔아넘겼다는 게 더 신빙성 있지.”

내 말에 제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흐음, 글쎄요…. 사실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사장님을 팔아넘기는 것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게 조금 더 재밌어서요. 제 죄라면 그저 눈치가 빨라 사장님이 포션 마스터 강의진이라는 사실을 남들보다 조금 더 이르게 알아챈 것밖에 없답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1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