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22.
“태제헌이 나를? 무슨 일이길래 이 시간에 사람을 오라 가라야?”
딱딱한 비서의 얼굴을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언제고 자기 내킬 대로 찾아올 수 있는 놈이 굳이 비서를 보내 나를 불렀다고?
라이라프스의 목줄을 찬 직후라 그런지 괜히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목을 더듬었다. 이미 투명화된 목줄이라 손에 걸리는 일은 없었지만……. 아직 보육원 사건에 대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일상을 지내다가도 잠깐 그 생각이 들면 갑작스레 치미는 격정에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오를 정도인데 단둘이 태제헌을 만나 침착할 자신이 없었다.
‘하필이면 왜 지금…….’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으나 비서의 재촉에 하는 수 없이 따라나섰다. 별일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100층을 누르는 비서를 보며 나도 슬쩍 다른 층을 눌러봤다. 등록되지 않은 지문이라는 기계음이 공간을 울렸다.
“……엘리베이터는 카드나 지문을 스캔해야 눌러집니다.”
“나도 알아. 그냥 눌러 본 거야.”
나를 보는 비서의 모습에 머쓱하게 손을 털며 말을 돌렸다.
“태제헌 위에 있나 보지? 거긴 폐쇄했다고 들었는데.”
“네. 현재는 길드장님께서만 출입하십니다.”
“왜? 거기 보물이라도 숨겨 놨나.”
대수롭지 않은 중얼거림에 비서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마침 100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그를 미처 보지 못한 채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뒤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의아하게 돌아보자 그 자리에 가만히 선 비서와 눈이 마주쳤다.
“저는 여기까지만 안내하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뭐? 야……!”
닫히는 문 사이로 비서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조용한 복도에 혼자 남아 버린 나는 황당한 한숨을 내쉬고는 느릿느릿 맞은편에 보이는 방으로 향했다.
본사에 올 때마다 집처럼 머물던 곳이었기에 다른 층보다도 고급스러운 복도나 문들은 익숙했다. 그러나 막상 방문을 열자 펼쳐진 이질적인 내부에 순간 내가 다른 층에 온 건가 싶어 다시 복도을 내다봐야 했다.
‘뭐야. 100층 맞잖아.’
엘리베이터 위에 붙어 있는 100이란 숫자를 확인한 후에야 떨떠름하게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태…제헌? 나 왔는데. 태제헌!”
어두운 방 안을 둘러봤다. 안락한 가구들이 모조리 사라진 자리에는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이 늘어서 있었다. 어둡고 음산한 내부에선 서늘한 한기마저 느껴졌다. 문이 닫히고 밖의 소음이 차단되자 미세한 기계음과 보글거리며 공기 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을 불러 놓고 어딜 간 거야.’
한껏 경계한 채 푸른 불빛이 퍼져 나오는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기계의 뒤편을 지나자 푸른 빛의 발원인 거대한 수조가 나타났다.
“으악! 깜짝이야……. 씨발, 이게 뭐야?”
수조는 정체 모를 액체로 꽉 차 있었는데, 그 안에 나체 상태의 사람이 잠겨 있었다. 못 볼 것을 봤다는 느낌에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렸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수조로 가까이 다가갔다.
공기 방울이 올라오는 액체 속에서 몸은 아주 천천히 위아래로 부유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완전한 나체는 아니었다. 옷 대신 빼곡히 붕대가 감겨 있었고, 몸의 상태가 이상했다. 붕대로도 다 감춰지지 않는 화상 자국이라든가. 한쪽 팔뚝이나 무릎 아래로 팔다리가 있어야 할 곳이 텅 빈 채로 사지가 성하지 않았다.
‘대체 누구기에 이런 끔찍한 꼴로…….’
수조에 손을 댄 순간 물속에서 느리게 흔들리던 사람의 머리칼이 흩어졌다. 그 사이로 드러난 얼굴을 보자 입이 떡 벌어졌다. 눈을 감은 채 수조에 잠겨 있는 것은 나였다.
“씨발, 태제헌 이 또라이 새끼가…….”
얼핏 봐서는 그저 잠든 것처럼 보이는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너덜너덜한 몸에 푸른 빛을 받아 더욱 창백하게 보이는 얼굴은 분명 시체였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게 죽은 나라는 걸 인지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태제헌이 짭의진에게 속지 않은 이유를 이제 알았다. 시체를 보관하고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죽으면 끝인 줄 알았건만 저런 처참한 꼴로 태제헌의 장난질에 이용당했다니.
더 보기가 힘들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다 뒤의 기계에 몸이 부딪혔다. 딸깍이는 소리에 내가 뭔가를 잘못 눌렀다는 것을 직감했으나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하는 수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조가 돌아가며 시체의 뒷모습이 드러났다. 등에는 오랜만에 보는 다섯 마리 늑대 문신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붕대로 군데군데 가려졌지만 아직도 반짝이며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몸은 죽었는데 어디서 마나를 받는 거지.’
아이템으로 시간의 흐름을 멈춘 건지, 다른 약품 처리를 한 건진 모르겠지만 시체로는 보이지 않는 탱탱한 피부나 뚜렷한 근육 등이 기분 나빠 욕지기가 치밀었다.
“진짜 미친 줄은 알았지만 시체를……. 우욱, 씨발 또라이 변태 새끼.”
저걸 그냥 둘 순 없었다. 내 시체가 태제헌의 장난감 취급이나 받게 두고 갈 수는…….
주위를 둘러보다 버튼이 가득한 콘솔로 다가갔다. 이것저것 눌러 보다 눈에 띄는 푸른 레버를 당기자 낮은 경고음이 울리며 수조에 가득했던 액체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저 액체가 바닥에 닿으면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육신의 시간이 끝날 테다. 서서히 낮아지는 수위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머지않아 액체가 모두 사라지고 지지할 곳 없는 시체가 털썩 바닥에 떨어졌다. 등을 보인 채로 엎어진 시체를 착잡하게 보다 방 구석으로 다가가 가구 위를 덮고 있던 흰 천을 거둬 냈다.
“내 시신을 내가 수습할 줄이야. 기분 좆같네……. 그럼 그때 한 장례식은 뭐야? 설마 빈 관을 둔 거야?”
투덜대며 다가가 몇 개나 되는 잠금장치를 모두 풀고 수조를 열었다. 내 것이었던 몸뚱어리 위로 흰 천을 덮으려다 수조 내에서 옅게 풍기는 특이한 향을 맡고 코를 씰룩댔다.
“뭐지? 처음 맡는 냄새……. 설마 포션인가?”
물을 다 빼 버리기 전에 감정 좀 해 볼 걸 그랬나.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텅 빈 수조를 보며 아쉽게 혀를 차다 나도 모르게 아직 촉촉한 피부 위로 손을 뻗었다. 감정 스킬을 사용하기에 너무 적게 남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드러난 맨 어깨를 콕 찔러봤다. 손끝에 부드럽게 감기는 피부가 시체답지 않았다. 잠시 놀라다 선을 긋듯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렸다.
검지가 문신에 닿기 전, 갑자기 느껴지는 열감에 놀라 화들짝 손을 뗐다. 빛이 새어 나오는 주먹을 펴자 손바닥에 흐릿한 문양이 생기고 있었다. 타올랐다 사그라듦을 반복하는 빛과 함께 점점 선명해지는 것은 카스토르의 문양이었다.
‘갑자기 이게 왜……?’
전엔 분명 오른손에 있던 문양이 지금은 정반대인 왼손에 나타났다. 황당히 쳐다보던 중 내 앞에서도 빛이 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문신이 있는 자리에 내 손과 같은 박동으로 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잠깐, 이건 뭐지?”
이상함을 깨닫고 늑대들 위로 내 손을 가져다 댔다. 자세히 살피자 늑대들이 겹쳐진 부분의 선에 ♊모양이 숨겨져 있다. 빛이 나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거다. 교묘하게 문양을 가린 늑대 문신에 의구심이 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있던 거지?’
다시 봐도 꼭 문양을 숨기려는 것처럼 그어진 선들을 매만졌다. 문신을 새긴 건 태제헌이다. 그 새끼는 이걸 알고 있었나? 설마 예전부터 있던 거라면……. 나 역시 류수윤과 같이 카스토르의 대응자라는 소리다.
손바닥의 문양이 선명해진 만큼 등의 것은 거의 사라져 이제는 자세히 봐도 찾기 힘들었다. 꼭 내 몸에 있던 것이 주호현의 손으로 옮겨진 것처럼.
지금은 잃어버린 오른손의 문양은 꿈속에서 주호현을 만나고 받은 거다. 그리고 왼손의 문양이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거라면.
“카스토르…. 쌍둥이자리.”
내 중얼거림에 내가 놀라 흠칫했다. 처음 봤을 때 나라고 착각했을 정도로 닮은 생김새에 같은 나이까지. 의심할 이유는 충분했다.
‘설마 주호현이랑 내가……?’
끼익.
그때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시체의 머리칼을 한 줌 쥐어뜯어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팽개쳐 놨던 천을 들어 시체 위에 덮음과 동시에 가까워지던 구두 소리가 등 뒤에서 멈췄다. 혀를 차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가관이군.”
빛을 등지고 선 태제헌의 번뜩이는 안광이 나를 샅샅이 훑었다. 울컥 화가 치미는 걸 겨우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뭐 하자는 건데. 또라이예요? 내 시체를 왜 가지고 있어.”
“…….”
“이거 보여 주려고 불렀어요? 씨발, 이딴 거 안 보여 줘도 너 미친 건 아주 잘 알-…….”
돌연 무릎을 굽히는 태제헌에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눈을 감았다. 한 대 맞을 줄 알았는데, 대신 내 턱을 잡은 태제헌이 좌우로 이리저리 돌려 보며 중얼거렸다.
“울지는 않았네.”
“…내가 씨발 왜 우는데요.”
“글쎄.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중얼거린 태제헌이 내 어깨 너머 흰 천이 덮인 시체를 턱짓하며 물었다.
“예전 몸을 본 소감은 어때?”
“좆같지 뭘 어때요. 저딴 걸 왜 갖고 있는데. 계속 갖고 있을 생각이라면 나도…….”
“아니,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까 필요 없어. 저건……. 화장시켜 주지.”
마치 선심이라도 베풀듯 말하는 태제헌의 말투에 표정을 구겼다. 몸을 일으킨 태제헌이 발로 천을 거두는 것을 지켜보며 터질 듯한 감정을 억눌렀다.
‘방금 내가 돌아왔다고 했지.’
전부터 의심했지만 역시나, 저 새끼는 내가 살아 있을 걸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지? 언제부터였을까. 모든 게 의심되기 시작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몸으로 돌아올 줄 알고 있었나? 주호현의 몸으로 눈을 뜰 거라고? 설마 내가 배신하고 죽으려던 것까지 알고 있었던 건가. 문신은? 내가 정말 카스토르의 대응자인 걸 알았다면, 그래서 나만 보육원에서 빼낸 건가? 친구들은 신관으로 보내어 실험을…….
친구들 생각을 하자 다시금 치미는 분노에 주먹을 꾹 쥐었다.
물어도 대답해 줄 놈이 아니다. 내일 제로와 함께 도망치려면 오늘만큼은 조용히 보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놈을 노려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응?”
“왜 날 데려온 거예요.”
억누른 분노에 한껏 낮아진 음성에도 태제헌은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태연하게 답했다.
“넌 특별하니까.”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