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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24화 (124/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24.

나와 같이 성좌를 지닌 사람을 이제 겨우 봤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당황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데 누군가 내 옆에 바짝 붙었다. 초면이었지만 굉장히 수상한 분위기에 조용히 속삭였다.

“……제로냐?”

“후후후. 이젠 바로 알아보시네요.”

이상한 웃음소리로 보아 제로가 확실했다. 또 다른 사람의 몸을 빌린 건지 이번엔 남자의 모습이었다.

‘대체 무슨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거지?’

궁금증을 뒤로한 채 손을 내밀었다.

“가지고 왔어? 어서 줘.”

“아직요. 물건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헛소…. 아, 네 진짜 몸?”

뒤늦게 이해하고 묻자 제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지금 47층입니다. 마무리하고 내려가겠습니다.”

“거기서 여기까지 스킬이 통해?”

“후후. 미리 손을 써 놨죠. 사장님만을 위해서요.”

음흉하게 웃는 놈의 얼굴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전이야 좀 깡마르긴 했어도 얼굴은 멀쩡해 저런 이상한 웃음소리마저 어울렸는데…. 다른 사람 얼굴로 저러니 도저히 못 봐 주겠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넋 나간 채로 티브이를 보는 도영을 곁눈질하고는 걱정스레 물었다.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만나도 되는 거야?”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도 저것 때문이겠죠.”

놈의 턱짓에 덩달아 고개를 돌리자 기둥의 카운트다운을 크게 보여 주는 뉴스가 나타나 있었다.

「00:21:03」

“……저거 뭔지 알아?”

“글쎄요. 저보다는 사장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을까요.”

뭘 알고 하는 말일까, 의미심장한 말에 흠칫 놀라 바라보는데 제로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작게 속삭였다.

“오 분 뒤, 오른쪽 구역 세 번째 자판기 옆입니다.”

제로는 내가 답하기도 전에 떠났다. 한쪽 구석에서 제로에게 이용당한 남자가 영문 모를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촉박한 시간제한에 손에 땀이 났다.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 따위는 이후에 고민하기로 하고 우선 제로가 말한 길을 찾아봤다. 거대한 티브이 뒤로 양쪽으로 뻗어진 두 갈래 길이 보였다. 워낙 넓어 오 분 안에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선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도영이 뉴스에 정신 팔린 모습을 확인하고 슬쩍 발을 옮기려는데 곧바로 뒤에서 어깨가 잡혔다.

“가시려구요? 좋은 생각입니다. 여긴 영 어수선하니 일단 올라가는 게 좋겠습니다.”

“어어…. 근데 나 잠깐 화장실 좀.”

“네? 꼭 지금 가셔야겠습니까? 그냥 올라가서 가시죠?”

“존나 급해. 일 초도 못 기다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럼 같이 가죠.”

서둘러 자리를 뜨려 했으나 뒤를 졸졸 따라오는 도영 탓에 혼자 빠져나오는 것은 실패했다.

‘이러다 제로까지 같이 만나겠네.’

어쩌지 고민하다 결국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도영을 불렀다.

“야. 잠깐 이리 와 봐.”

“왜요? 안까지 들어가겠단 소리는 아니었는데요?”

“아니야. 신기한 게 있어서 그래.”

어서 들어오라 손짓하자 떨떠름한 표정의 도영이 화장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안쪽을 보라며 손가락질하자 거울 앞에 서서는 고개를 쭉 빼고 내부를 둘러봤다.

“뭔데 그러십니까? 뭐가 그렇게 신기하다는…….”

퍽-!

들고 있던 대걸레 자루로 도영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대자로 뻗어 버린 놈을 보며 손을 털었다.

“후우, 끈질긴 새끼.”

축 늘어진 놈을 청소도구함에다 구겨 넣고 문을 닫았다. 밖으로 나와 아무렇지 않게 복도를 걷는데 몇몇 사람들이 힐끔거리긴 했으나 다행히 별다른 방해 없이 제로와의 약속 장소에 다다를 수 있었다. 세 번째 자판기 옆에 기대 있던 제로가 손을 까딱였다.

“늦지 않게 오셨네요.”

“너야말로.”

느물대는 얼굴이 이렇게 반가웠던 적은 처음이다. 신이 나 다가가자 제로가 손을 내밀었다.

“약속했던 것 먼저 받겠습니다.”

“여기. 이거 맞지?”

“흐음……. 확실히 낮의 알이 맞군요.”

“확인 다 했으면 빨리 내 것도 줘.”

인벤토리에 그리폰의 알을 집어넣은 제로가 품 안에서 짧은 봉을 꺼냈다. 몇 주 만에 다시 보는 아이템에 눈이 커다래졌다.

“여기 있습니다. 이제는 탈출이 문제겠네요. 차는 대기시켜 뒀습니다만 주차장까지는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가야 합니다. 오는 길에 미리 봐 둔 길드원이 있는데 그자와 함께 4층으로 내려가면 주차장과 연결된 통로가……. 사장님? 듣고 계십니까?”

봉을 받았지만 곧바로 퀘스트 성공이 뜨진 않았다. 문양이 돌아온 느낌도 없고. 퀘스트가 십 분 남짓밖에 남지 않아 조급한 마음으로 봉을 둘러보는데 제로가 내 손을 한 번에 잡아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당장 풀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네팔의 제작 장인 중 최고로 꼽히는 이가 만든 걸작, 세 형제 시리즈 중 하나인 실링 스틱이거든요. 해금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스킬을 가진 자에게 가야 합니다.”

“안 돼. 시간이 없단 말이야. 십 분 안에 풀어야 한다고.”

“십 분이요? ……역시 기둥의 카운트다운과 연관이 있군요.”

“눈치 빠르긴……. 아! 됐다!”

이리저리 만작거리던 봉의 아래를 돌리자 뿜어져 나오는 빛에 놀라 입을 벌렸다.

「대응자의 힘에 응답합니다. 자격을 증명하십시오.」

빛나는 곳에 아까부터 찌릿한 느낌이 오던 왼 손바닥을 가져다 대자 철컥하는 소리가 들리며 봉의 아래쪽 조각에 손바닥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손을 떼지 마세요. 해금 1% 완료.」

“풀…어 내신 겁니까? 세 형제 시리즈를?”

“아니, 아직.”

심장에서부터 손까지 이어지는 묘한 감각에 집중해 힘을 주니 퍼센티지가 전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올라갔다. 답답하긴 해도 이 속도라면 시간이 다하기 전에 성좌를 돌려받을 수 있을 거다.

집중할수록 빨라지는 것 같아 퍼센트가 다 찰 때까지만 잠시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다 이동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단조로운 멜로디와 함께 안내 방송이 층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안내 방송 드립니다. 현재 빌딩 내에 침입자가 있어 수색 중에 있습니다. 스무 살가량의 앳된 외모의 남자로, 건장한 체격에 밝은색 겉옷을 입고 있습니다. 침입자를 발견하는 즉시 제압해 보안팀으로 인도 부탁드립니다.]

제로와 눈이 마주쳤다. 제로가 내 어깨를 잡아 뒤로 밀었다.

“뛰어요.”

“뭐? 야, 아니, 대체 어딜 가란…….”

“차가 있는 곳으로요!”

제로가 쓰고 있던 안경이 해체되며 얼굴을 덮는 가면으로 변했다. 모퉁이를 돈 제로의 모습이 사라진 후 밖에서 거센 소란이 일었다.

“저쪽이다!! 저쪽으로 도망간다!”

“의진 님! 도망가 봤자 소용없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해! 협력자와 만나게 둬선 안 된다!”

역시나 나를 찾는 놈들이다. 곧바로 겉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쳤다.

제로가 잠시 시간을 벌었다지만 녹스 길드원만 수백인 본사 한복판에서 오래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었다. 중앙 통로는 막혔을 게 분명하니 주차장이 있는 곳과 가장 가까운 비상구를 이용해야 한다.

잠시 정신을 팔았다고 퍼센트의 속력이 다시 느려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올라가는 퍼센트와 점점 줄어드는 카운트다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겨우 길을 찾아 비상구에 다다랐을 때 내 앞에 경고성 짙은 불똥이 날아왔다.

“의진 님! 거기 멈추십쇼!”

젠장! 바로 코앞이었는데. 조용히 인벤토리를 열어 수면 향을 꺼내 쥐었다. 겨우 하나뿐이다. 이렇게 탁 트인 공간에서는 써 봤자 효과가 미미해 놈들에게서 도망칠 수 없을 텐데.

「손을 떼지 마세요. 해금 83% 완료.」

퀘스트창을 열어 카운트다운 역시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겨우 오 분. 지금부터 최대한 집중한다면 나는 다시 잡히더라도 퀘스트만은 성공시킬 수 있었다. 가슴 위로 봉을 감춘 채 꽉 쥐었다. 등 뒤에서 다가오는 놈들이 경고 조로 협박했다.

“길드장님께서 바로 아래 계십니다. 지금이라도 올라가 대기하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도망칠 곳은 없으니 반항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고 이쪽으로 오시죠.”

놈들의 기척이 바로 등 뒤에서 느껴졌다. 그 순간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이 깜빡 점멸했다.

“뭐야, 정전?”

“…아니. 바깥이다.”

어둠 속에서 모두의 눈앞에 같은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카운트다운이었다.

「00:03:59」

“이게 뭐지?”

“너도 보이나? 나도 시스템창이 떴어.”

“설마 퀘스트인가? 그럼 주위에 던전 브레이크라도 터졌어야 하는데.”

까맣게 어두워졌다 서서히 밝아지는 하늘엔 온통 먹구름이 껴 있었다. 저 시간이 다하는 즉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재앙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듯했다. 그때 내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근처에 주인님이 있습니다.」

‘성산하?’

퍼뜩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성산하가 여기서 나타날 리 없었지만 그 대신 활짝 열린 비상구 문이 눈에 들어왔다. 녹스 놈들이 넋이 나간 사이 냅다 비상구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아니야. 내가 보기에 이 숫자는…… 의진 님!”

“강의진이 도망쳤다! 쫓아가!”

놈들이 모두 비상구로 발을 들인 순간 문 뒤에 몸을 감추고 있던 나는 그대로 수면 향을 바닥에 던져 깨트렸다. 눈보다 빠르게 퍼지는 향에 가까운 곳에 있던 놈들부터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머지도 휘청거리는 틈을 타 아래로 내려가는데 뒤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등에 붙은 끈끈한 물체가 벽과 합쳐져 떨어지질 않았다.

“잡…아라……!”

벽에 딱 붙은 옷 탓에 버둥대다 어쩔 수 없이 아래로 몸을 내려 옷을 벗어 버리고 트랩에서 빠져나왔다. 쓰러진 놈이 입은 청 재킷을 벗겨 대충 걸치고는 계단을 다섯 개씩 뛰어 내려갔다.

“거기 서! 강의진!!”

「00:01:15」

「손을 떼지 마세요. 해금 95% 완료.」

「00:00:28」

「손을 떼지 마세요. 해금 98% 완료.」

‘조금만, 조금만 더…!’

봉과 맞닿은 손을 꽉 쥐며 눈앞의 숫자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데 귓가에 바람 소리가 스쳤다.

“어……?”

나를 휘감으려다 빗나간 길쭉한 채찍 끝에 쥐고 있던 봉이 맞았다. 내 손을 벗어난 봉이 날아가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손을 떼지 마세요. 해금 99% 완료.」

‘안 돼, 제발, 안 돼!!’

허공으로 날아간 그것이 하필 열려 있던 층계참 창문으로 쏙 빠져나갔다.

“이- 씨- 발-!!”

「00:00:05」

다른 생각 할 새 없이 창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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