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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26화 (126/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26.

이만 나가자는 한서진의 말에 벌떡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졸졸 따라와 발치를 맴도는 구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구름아. 잠깐만 들어가 있어.”

“메에에.”

구름이가 문양 속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후 한서진과 함께 방 밖으로 나갔다. 호텔 복도를 걷다 보니 에스퍼와 더불어 천랑 길드원인지 특유의 하얀 제복을 입은 헌터들과 간간히 마주쳤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옷차림에 저절로 눈이 돌아갔다.

‘성산하는 어딨지?’

“…형. 이쪽이에요.”

“아, 응!”

한서진의 재촉에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들과 만나기로 한 곳은 호텔 내의 라운지 바였다. 안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신이 나 다가가려는데 날 발견한 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먼저 달려왔다.

“사, 사장님!!”

“정말 돌아오셨어요…!”

“다들 오랜만이다.”

눈으로 빠진 사람이 없나 확인하는 사이 누군가 와다다 달려와 품에 안겼다. 얼결에 받아 안자 가슴팍이 금세 축축이 젖어 들어갔다.

“야, 승연아……. 미안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리는 어깨를 어색하게 쓰다듬었다. 양다리가 묵직해지는가 싶더니 다혜와 하정이까지 매달려 울어 대기 시작했다.

“흐아아앙! 아저씨, 바보야! 멍청이!”

“아빠가, 사장님 금방 온다고 그랬, 끕, 그랬는데. 안, 와서, 그래서…….”

세 명이 매달려 울어 대니 정신이 없었다. 연승연을 위로하랴 두 애기들을 달래랴 손을 어쩔 줄 모르는데 백다인과 송정혁이 황급히 아이들을 떼어 냈다.

“다혜야! 어서 놔. 사장님 방금 오셨잖아.”

“싫어! 언니도 알잖아. 아저씨 전에도 안 간댔으면서 또 갔단 말이야.”

“하정아. 사장님 곤란하게 하면 안 돼. 죄송합니다. 사장님. 얘들이 그날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봐서 그런지……. 하정아, 어서 아빠한테 와.”

“……네에.”

“괜찮아. 놀랄 만도 하지.”

우는 놈들을 겨우 달래니 십 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자리에 앉아 앞을 둘러봤다. 승연이와 수철이, 윤하얀 가족, 백씨 자매와 진명이까지. 걱정하던 얼굴들이 모두 있었다. 마음이 놓임과 동시에 당연한 궁금증이 들었다.

“어떻게 다들 여기 모여 있었어?”

“사장님 그렇게… 가시고 얼마 안 돼서 천랑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가긴 뭘 가. 누가 보면 죽은 줄 알겠네.”

진명이의 말에 황당히 답하는데 죽는단 소리에 하정이 또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고 급히 손사래 쳤다.

“어어. 말해. 그래서?”

“감시당하고 있다며 당장 거처를 옮겨야 한다고……. 급히 짐을 싸 이곳으로 왔더니 모두 계셨습니다.”

“그런다고 곧바로 와? 함정이었으면 어쩌게.”

녹스가 쓸 법한 수는 아니었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괜히 툴툴대자 다들 앞다퉈 변명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천랑이잖아요!”

“게다가 미스티…. 천랑 길드장님께서 직접 데리러 오셨습니다.”

“아저씨는 모르죠? 산하 님이 우리 엄청 잘해 주는데. 그리고 여기 우리가 다- 써요! 전부 공짜고 우리 거라고 그랬어요.”

눈을 빛내며 으스대는 백다혜의 머리를 콩 두드렸다.

“왜 성산하만 아저씨 아니고 산하 님이야? 나도 이제부터 호현 님이라고 불러.”

백다혜가 양손을 들어 머리를 막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싫어요! 그리고 그거 아저씨 이름도 아니잖아요.”

“다혜야!!”

백다인이 다급히 백다혜를 당겨 안고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찬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뭐…라고?”

무슨 상황인지 느리게 이해하곤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태제헌이 나를 ‘강의진’이라고 불렀던 것. 매스컴에서는 지워졌대도 곁에 있던 이들만큼은 똑똑히 들은 것이다.

태제헌에게 끌려간 이후 도망치는 데만 급급해 돌아와서의 일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잠깐, 이미 태제헌에게 들켜 버린 거, 이젠 굳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숨길 필요도 없는 거잖아?’

다시 내 이름을 돌려받을 수 있는 걸까? 그건 꽤나 달콤한 유혹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다들 의심은 하고 있는 것 같고, 그냥 확 밝혀 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차지했다.

내가 누군지 밝힐 생각에 절로 어깨가 펴지고 당당한 웃음이 지어졌다.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던 때였다.

“그래, 바로 내가…….”

“쓸데없는 소리는 이쯤 해 두죠.”

갑자기 끼어들어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는 한서진 탓에 멋지게 고백하려는 계획이 무산됐다.

언뜻 딱딱하게 느껴진 목소리에 위를 올려다봤다. 한서진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다.

‘착각이었나?’

날 내려다본 한서진이 그대로 눈을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모두 오랜만에 만났으니까요. 호현 형이 더 바빠지면 이렇게 다 같이 만나기도 힘들 텐데.”

한서진의 입이 정확히 뱉은 ‘호현’이라는 이름에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백다인이나 김진명까지 의문을 품을 정도로 심증이 확실한 상황에서 혼자 날 주호현이라고 부른 이유가 왜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는 거다.

‘하긴. 한서진은 센터에서부터 알고 지냈을 테니…….’

내가 주호현의 몸에 들어온 이후 연을 맺게 된 사람들이야 상관없겠지만 한서진은 주호현이 살아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알고 지낸 유일한 사람이었다. 주호현은 죽었고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그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뒤늦게야 이해했다. 성급히 내 정체를 밝힐 생각에 한서진을 배려하지 못한 것이다.

‘짜식…….’

안쓰러운 마음에 손을 뻗어 한서진의 등허리를 위로하듯 쓰다듬었다.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었지만 한서진이 서 있는 탓에 이게 최선이었다.

손이 스칠 때마다 움찔움찔거리던 한서진이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형. 그만 해. 왜 이래요.”

“내가 뭘. 오랜만에 만나니까 좋아서 그러지.”

“진짜, 너……!”

얼굴에 열이 오른 한서진이 급히 내 손을 치우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꼭 도망치는 것 같은 뒷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는데 한서진의 눈치를 보던 이들이 뒤늦게야 사과를 건넸다.

“저, 사장님.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저……. 사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괜찮아. 잘못한 거 아니야. 내가 나중에 다 얘기해 줄게. 이리 와.”

풀죽은 백다혜에게 손을 까딱이자 하정이까지 원 플러스 원으로 따라왔다. 둘 다 번쩍 들어 무릎 위에 앉히자 연승연도 슬그머니 다가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분위기가 풀린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승연이가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저, 사장님. 공방은 안전합니다. 걱정하실 것 같아서…….”

“다행이다. 녹스 놈들은 안 얼쩡댔어?”

“수상한 사람들이 주위에 보이긴 했지만 엘프목 덕분인지 안까진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다만 손님도 없어 그사이 상할 것 같은 재료들은 제가 임의로 처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생했어. 그래도 승연이 너 있어서 공방 걱정은 덜었다.”

“호…. 사, 사장님!”

감동받은 눈으로 눈물을 글썽이던 연승연이 쭈뼛대며 소심하게 물었다.

“저, 사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혹시 사장님 옆방으로 옮겨도 될까요? 지금은 층이 다르고 멀어서…….”

“옮겨. 아니다, 방에 침대 더 있던데 아예 들어오든가.”

“그, 그렇다면……. 네.”

“어어? 우리 방은 침대 하나밖에 없는데. 저도 놀러 갈래요!”

“저도 다혜 언니랑 같이 가도 돼요?”

“셋 다 와. 치킨 시켜 먹자.”

“와!! 언니는 무슨 치킨 좋아해요?”

“나는…….”

둘이 떠드는 소음 사이로 윤하얀과 백다인의 대화가 들렸다.

“다인아. 너는 퀘스트 어쩔 셈이야? 다혜까지 있잖아.”

“아, 언니…. 아직 잘 모르겠어요. 협회에서 다혜 같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던데 섣불리 믿고 보내기가……. 아직 어리잖아요.”

걱정스러운 백다인의 목소리에 백다혜를 톡 치고 물었다.

“꼬맹이. 그새 사고 쳤냐? 누나가 걱정하잖아.”

“흥,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저씨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해 줄까요 말까요? 듣고 싶어요?”

“아니? 안 궁금한데? 사장님이라고 부르랬지.”

혀를 날름거리며 놀리자 약 올라 하던 다혜가 갑자기 짧은 팔로 팔짱을 끼더니 어른스러운 척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사장님은 약하니까 제가 지켜 줄게요!”

“맞아요! 다혜 언니 엄청 강하댔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하정이까지 합세해 하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이는데 다인누나가 다가와서 말했다.

“아, 사장님. 못 들으셨죠. 다혜가 각성했어요.”

“뭐? 각성이라니?”

놀라 벌떡 일어날 뻔했다. 다리에 앉힌 꼬맹이들이 꺄르르 웃는 소리에 정신이 다 없었다. 어린 나이에 각성하는 아이들도 있다지만 다혜는 그보다도 몇 년은 더 일렀다.

“어떻, 어떻게? 아직 너무 어리잖아.”

“아직 완전한 각성은 아니고요. 다혜에게도 퀘스트가 떴어요. 알아보니 이번 사건으로 이른 각성한 아이들이 꽤 있다고 해요.”

“맞다, 사장님은 어떤 퀘스트 받으셨어요? 보니까 직업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퀘스트는 뭐고 사건은 또 뭔데?”

답답한 물음에 승연이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게…. 사장님이 돌아오시던 날 탑의 카운트다운이 줄어들며 이상한 변화가 생겼었습니다.”

“하늘의 먹구름 말이야?”

“그뿐 아니라 모든 던전의 문이 열리고 있었어요.”

“그런…….”

생각지도 못한 말에 심각한 표정으로 연승연을 바라봤다. 윤하얀도 걱정스러운 낯으로 동조했다.

“정말 끔찍했습니다. 현존하는 모든 게이트가 하나도 빠짐없이 열리고 있어서 어딜 먼저 막아야 할지도 가늠이 되질 않았거든요.”

모든 던전의 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니. 만약 퀘스트를 성공하지 못했다면…….

뒤가 궁금해 어서 얘기하라 재촉하자 연승연이 말을 이었다.

“인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움직임과 격렬한 파동이라 모두가 몬스터 웨이브를 각오하고 있었는데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순간 갑자기 그 모든 게 사라졌어요. 겨우 마음을 놓았을 때 전 세계 모든 각성자들에게 동시에 한 퀘스트가 떴습니다. 모두가 연결된 S급 파티 퀘스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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