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27.
모든 각성자들이 동시에 S급 퀘스트를 받았다고? 그것도 파티 퀘스트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믿지 못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연승연이 조심스레 말했다.
“아마 직접 보는 편이 나으실 겁니다.”
“……퀘스트창.”
메인 퀘스트#5.5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돌발 퀘스트의 보상이었던 메인 퀘스트#5.5가 새로 생겨나 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난 없는데.”
“아앗, 없으시다면 어떻게 해야…….”
“그게 정말인가요? 지금까지 퀘스트를 받지 못했다는 각성자는 없었거든요.”
다들 당황한 시선을 교환했다. 내 눈치를 보던 연승연이 띄엄띄엄 입을 열었다.
“이, 일단 알려진 바로는 스킬이나 직업과 관계된 것들로 생성된다고 합니다.”
“퀘스트 내용이 이상한데 암호 해독이나 수수께기도 없이 아주 직관적이예요. 그래서인지 연계 퀘스트라는 말도 있어요. 그렇다면 점점 난이도가 올라갈 테니까요.”
“무슨 퀘스트길래 그래?”
내 물음에 다들 앞다퉈 제가 받은 퀘스트들을 이야기했다.
“제 경우에는 처음 보는 광석들을 채집하라고 떴어요. 지도도 함께 떴는데 아직 어떤 지역인지를 몰라서 문제예요.”
“전투계들은 대부분 사냥 퀘스트가 떴어요. 저는 코스모타우로스라는 몬스터를 70마리 사냥해야 하고요.”
“그것도 처음 듣는 몬스터네.”
“아저씨 저는 스타더스티아라는 걸 20…….”
“꼬맹이는 던전 같은 데 가는 거 아니야.”
“갈 건데요!”
“누나 절대 허락해 주지 마요. 승연이 너는?”
씩씩대는 백다혜의 솜방망이질을 무시하고 승연이를 돌아보자 역시나 예상했던 답이 나왔다.
“전 포션 제작 퀘스트입니다. 사실 호…. 사장님과 함께 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어떤 포션인지는 모르고?”
“네….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재료들이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라 아직 시도도 하지 못했습니다.”
“……특이하네.”
파티 퀘스트는 모든 파티원들이 같은 내용을 공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스킬에 따라 각자 받은 퀘스트 내용이 다르다니. 이것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왜 나만 파티 퀘스트를 받지 못한 걸까 고민해 봐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또 성좌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내심 짐작할 뿐.
곰곰이 생각하는데 저 멀리서 걸어오는 한서진과 눈이 마주쳤다. 이만 가자는 듯 입구 쪽에 선 한서진이 내게 손짓했다.
더 놀고 싶긴 했지만 하정이도 아까부터 아빠 품에 안겨 자고 있고 한서진에게 따로 부탁할 것도 있어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먼저 일어날게. 이따 저녁에 보자. 승연이 너는 방 옮기고.”
모두를 뒤로하고 카페를 빠져나온 나는 나란히 걷던 한서진에게 물었다.
“너도 파티 퀘스트 받았어?”
“네. 그새 들었나 봐요?”
“어떤 건데?”
“별거 아니에요. 몬스터 사냥. 가이드랑 합동으로 움직여야 해서 번거롭기만 하겠죠.”
“너도 이상한 몬스터 잡아야겠네? 다들 그게 뭔지 가늠도 못하고 있던데.”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선 한서진이 나를 돌아봤다.
“퀘스트에 대해선 협회에서 취합해 조사 중이에요. 아마 저와 관련된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우선적으로 명령 받는 쪽으로 지원 갈 거고요.”
“하긴, 그게 너희 스타일이지.”
역시 집단 생활은 싫다니까. 대충 고개를 주억이는데 한서진이 넌지시 물었다.
“형은요? 퀘스트 어떤 거 받았는지 말해 줄 수 있어요?”
“그게 있잖아, 나는…….”
별생각 없이 답하다 멈칫해 말끝을 흐렸다. 한서진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내포된 다른 의도가 읽혔기 때문이다.
‘가이드들이 대충 어떤 퀘스트 받은지 알고 있을 텐데. 나한테 묻는다는 건…….’
역시 한서진도 내가 주호현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거다. 미안한 상황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괜히 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난 퀘스트 없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야. 파티 퀘스트 받은 거 없던데.”
“어떻게 그런…….”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한서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방에 도착할 때까지 고민하는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구름이를 꺼내 풀어 둔 나는 어딘가로 연락하는 한서진에게 다가가 물었다.
“한서진. 나도 휴대폰 구해다 줘.”
“형은 대체 휴대폰을 몇 번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잃어버린 게 아니라 뺏긴 거야. 세상에 내 휴대폰 탐내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나도 미치겠다고. 여튼 오늘 사다 줄 수 있지?”
녹스에 있을 때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막상 나오고 나니 답답해 못 견디겠다. 이번에야말로 연승연에게 휴대폰으로 헌트로폴리스 설치해 달라고 해야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성산하에게 연락도 하고.
한껏 기대한 채 바라봤다. 근데 어째 한서진의 표정이 탐탁지 않았다.
“나중에요.”
“뭐? 하지만…….”
누군가에게 연락이 온 건지 작게 진동하는 휴대폰에 시선을 준 한서진이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도 알잖아요. 지금은 상황이 별로 안 좋다는 거.”
“…….”
“나중에, 모두 해결되면 형이 원하는 거 다 사다 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요.”
등을 돌려 나가려는 한서진의 옷자락을 급히 붙잡았다.
“잠깐, 그럼 이것만 알려 줘. 성산하는 어디 있어?”
“……글쎄요. 형 쓰러졌을 때도 한 번을 안 온 사람이라. 올 때 되면 오겠죠.”
날카로운 답만 남긴 채 한서진은 방을 나갔다. 복도 쪽에서 울리는 전화를 받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구름이가 혼자 남겨진 내게 다가와 다리에 몸을 비벼 댔다. 복슬복슬한 털을 쓰다듬으며 황당하게 중얼거렸다.
“왜 지랄이야….”
“메에에에-.”
***
“승연이 오면 이쪽 방 쓰라고 그럴까 저쪽 방 쓰라고 그럴까? 구름이 넌 어디가 좋아?”
“메에에에!”
“역시 내 양이야.”
조금의 고민도 없이 더 큰 방을 선택하는 구름이의 모습에 웃으며 뒤를 따르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승연이 왔나 보다.”
문으로 가려 하자 구름이가 문양 안으로 쏙 들어갔다. 승연이만 있을 땐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구름이가 갑자기 숨는 걸 보니 문밖엔 다른 사람도 함께인 듯했다.
문을 열자 쭈뼛거리는 승연이 뒤에 웃고 있는 제로와 눈이 마주쳤다.
“제로!”
“후후. 멀쩡해 보이시네요. 이렇게나 반겨 주실 줄은 예상 못했는데. 많이 걱정하셨나 봅니다?”
“녹스 한복판에서 그렇게 헤어졌는데 당연히 걱정했지. 둘이 같이 왔네?”
“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습니다…….”
“들어와.”
문을 활짝 열며 말하자 제로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저랑 누구 만나러 가실 생각 없으십니까?”
“누구?”
“임청 헌터요. 마침 일어났다기……. 어이쿠.”
“빨리 가자!”
제로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신발을 꿰어 신고 나갔다. 과장된 제스처를 하며 비켜 준 제로가 어깨를 으쓱했다.
승연이도 함께 청이가 있다는 방으로 내려갔다. 혹시 다치진 않았냐 묻자 마냥 즐겁진 않을 거라는 찝찝한 대답을 들은 터라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청이의 방이 있다는 층은 다른 곳들보다 유독 사람이 많이 보였다. 다들 할 일 없이 로비의 소파나 창가를 서성이는 걸 이상하게 바라보다 복도로 들어서는데 등 뒤로 따끔따끔 시선이 느껴졌다. 청이가 있다는 2709호 가까이 다가갔을 땐 결국 그들이 다가와 내 팔을 잡아 세웠다. 돌아보자 여러 명의 사람이 우리를 견제하듯 경계심 어린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천랑 길드원들은 물론 센터 에스퍼로 보이는 놈도 있고, 호텔 직원까지 다양했다.
“어디 가시는 거죠? 용건이 뭡니까.”
“친구 만나러 가는데.”
내 대답에 놈들이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푸하하, 웃기는 소리. 이쪽은 하나 빼고는 모두 빈방이거든요.”
“그럼 거기가 내 친구 방인가 보지.”
잡힌 팔을 털어 내고 등을 돌리자 놈들이 헐레벌떡 쫓아와 발을 동동 굴렀다.
“멈춰! 경비 부른다!”
“귀찮게 할 생각 마세요! 다들 질서 있게 예의 지키고 있잖아요!”
“호텔 복도에서 질서 있게 예의 지킬 일이 뭐 있는데?”
“그걸 지금 몰라서 묻는 거냐?”
정말 모르겠다. 머리를 긁적이다 냅다 2709호 벨을 눌렀다.
띵- 동-.
“안 돼!!”
새된 비명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러나 탄식을 흘리는 놈들의 얼굴에선 차마 숨기지 못한 설렘과 기대가 보였다. 지금까지 날 막던 행동과 모순되는 반응을 의아하게 지켜보는데 옆에 서 있던 제로가 한 발 뒤로 물러나 내 뒤에 숨음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누구세요.”
문이 열리고 나타난 사람은 청이가 아니었다. 작은 키에 턱선에서 끊어진 반듯한 단발, 고양이가 생각나는 끝이 치켜 올라간 커다란 눈에 작은 입술까지. 예전 성산하가 나오는 공익광고에서 본 적 있는 얼굴이다.
“허어억! 단 님이다….”
“너무 예뻐요. 오늘은 운이 좋네요. 저 멍청이 덕에 단 님 영접도 하고…….”
“왼쪽 눈썹 각도가 십 오도 각도로 기울어지셨네요. 저 사람을 보고 화가 나신 것 같아요.”
“세상에 귀여워라…….”
“역시… 감히 단 님의 방에 막무가내로 침입하더니 화를 부를 줄 알았어. 미남계가 다가 아니라고.”
뒤의 놈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를 빤히 쳐다본 임단의 입이 벌려지며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뱉어졌다.
“하아, 누군가 했더니. 넌 청이 다치게 한 주범이잖아?”
“뭐? 아니, 저기….”
“다신 청이 볼 생각 하지 말고 꺼져 줄래.”
어영부영하는 사이 닫히려는 문을 급히 잡아 세웠다. 임단의 새초롬한 눈이 문을 잡고 있는 내 손을 봤다.
“손가락 부러지고 싶냐? 놔.”
공격적인 어투에도 화가 나지 않는 건 청이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임단이 이렇게 화낼 정도라면, 청이가 얼마나 다쳤다는 거지?’
전투계 헌터가 진심으로 힘을 주면 내 힘 따위 무시하고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대로 놓을 순 없었다. 임단 머리 위로 비치는 방 안을 넘겨보며 물었다.
“청이는, 안에 있어? 괜찮아?”
“이제 그쪽이 신경 쓸 일 아니야.”
“신경 쓸 일 맞아. 나는 청이 고용한 사장이라고!”
“나는 청이 언니야! 좋은 말로 할 때 꺼져!”
임단이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점점 닫히는 문에 겨우 잡고 있던 손가락이 미끄러지는데 내 위로 흰 장갑 낀 손이 나타나 문을 멈춰 세웠다. 내 뒤를 본 임단의 얼굴이 와장창 구겨졌다.
“왜 이렇게 까칠해. 우리 사장님 상처받게.”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