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파업 선언-129화 (129/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29.

‘임단이 성좌에 대해서 어떻게 아는 거지? 알고 있던 사람은 성산하가 유일했는데.’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승연이 혼자만 어벙한 표정인 걸 보니 그 외에는 모두 임단의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심지어 청이나 이초마저도!

당황한 내 귓가에 청이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S급들에게 내려진 파티 퀘스트 때문입니다.”

“파티 퀘스트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S급들이 받은 것은 일반적인 퀘스트들과 내용이 다릅니다. 모두 동일하게 ‘성좌를 보호하라’는 내용의 퀘스트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청이가 말을 고르려 입을 다문 사이 제로가 끼어들었다.

“그 타깃이 사장님으로 보입니다만.”

“나? 나라고?”

“네. 아-주 반짝반짝 빛납니다. 탐날 정도로.”

당황스러운 물음에 제로가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을 살피다 성산하를 쳐다봤다. 진짜냐는 무언의 물음에 성산하가 임단을 노려보며 까딱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사실이야.”

“대체 무슨 퀘스트길래?”

“……아직 정식 발표되기 전이지만 이번 파티 퀘스트는 탑 내부에서 진행되는 거야.”

“탑이라면, 설마 그 기둥 말하는 거야?”

“그래. 최근에 기둥 내부가 스테이지 형 던전으로 밝혀졌어. 생김새 때문인지 탑이라고 부르더군. 현재 밝혀지지 않은 퀘스트의 몬스터나 아이템들 모두 탑 내부에 서식하는 것들이야.”

“자, 잠깐. 그 퀘스트는 전 국민이,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다 받았다며? 그럼 죄다 그 던전에 들어가야 한단 얘기야?”

황당하게 묻자 임단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전 세계는 무슨, 파티 퀘스트를 받은 건 오직 탑이 생겨난 11개국뿐이야. 그리고 지금 세계인들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탑에 들어가서 네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게 먼저 아니야? 네가 죽어 버리면 우리 퀘스트도 자동으로 실패하는 거라구.”

“후후. 확실히 사장님의 역할이 중요하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파티 퀘스트의 보상을 기대하고 있거든요.”

“…보상이 뭔데?”

“글쎄요. 밝혀진 건 없지만 아마도 정상화지 않겠습니까? 저 아름다운 탑이 사라지고, 마른하늘에 운석이 떨어지거나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일이 없던 예전처럼요.”

“예전처럼…….”

이초가 제로의 말에 동의하며 답했다.

“맞습니다. 제로 님의 말처럼 퀘스트를 성공하면 탑이 사라질 거라는 관측이 현재로선 가장 설득력 강한 주장입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여러 징후도 있는 데다…… 무엇보다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요. 앞으로 탑이 있는 11개국은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쏟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변이 몬스터나 던전 재해같이 무언가 갑작스러운 변화와 함게 퀘스크가 발생할 경우엔 퀘스트를 해결하면 자연스럽게 이상 상태가 해결되곤 했으니 유례없던 대규모 파티 퀘스트를 해결하면 탑이 사라질 거란 추론도 근거가 없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해결되지 못한 상태였다.

“근데 그게 뭐? 나랑은 상관없잖아?”

“뭐…?”

“던전에 안 들어가면 되는 일 아니야? 나는 파티 퀘스트도 없다고.”

곳곳에서 허탈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성산하가 저도 모르게 새는 웃음을 누르며 말했다.

“아까 말했듯 이번 파티 퀘스트는 탑 내부에서 진행돼. 그런데 성좌가 엮였다는 건 너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탑에 들어갈 일이 생길 거란 소리야.”

“현실적으로 S급들이 따로 받은 퀘스트가 그렇게 쉽겠냐? 보호하란 게 끝이면 벙커에 음식이랑 함께 가둬서 어디 아무도 모르는 산이나 바다에 던져놓으면 되게?”

‘나도 S급인데 존나 뭐라 그러네…….’

대체 성좌가 뭐길래 이렇게 내게 얽혀 떨어지질 않는 건지. 양손에 새겨진 문양을 멀뚱히 바라보다 물었다.

“S급이 몇 명이지?”

“제작계를 제외하면 열여섯입니다.”

“제작계는 왜 빼는…! 아, 어차피 던전엔 못 가겠네.”

발끈해 묻다 혼자 깨닫고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야 임단이 퀘스트 운운하며 말을 꺼낸 이유를 이해했다. 임단과 임청, 제로와 성산하까지. 퀘스트를 받은 S급 열여섯 명 중 네 명이 당장 이 방 안에 있는 거다.

성산하가 모두-특히 임단을 향해-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성좌의 유지조차 없는 곳들은 처음부터 성좌가 될 씨앗을 찾아내야 한다더군. 우리야 보호해야 할 성좌가 있으니 상황이 훨씬 나은 편이지. 조만간 탑 보유국끼리 회의가 열릴 거야. 그때 주도권을 잡아야 하니 벌써부터 쓸데없이 힘 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매사 비협조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임단도 그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퉁명스럽게 날 흘겨본 임단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내게 은혜를 베푸는 척 말했다.

“내 뒤만 잘 따라다녀. 그럼 다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싫은데?”

“뭐? 방금 뭐라고….”

“난 내 용병들이 지켜 줄 거야. 넌 못 믿겠어. 뭐, 후미에 서서 잔챙이 처리라도 하던가.”

“뭐, 뭐? 이게…… 야!”

“얘기 끝났지? 난 간다-!”

청이가 임단을 잡아 말리는 사이 재빨리 2709호를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로 가려는데 뒤에서 뻗어진 손이 내 어깨를 잡아 세웠다. 성산하가 씩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잠깐 얘기 좀 할까? 둘이서.”

“어…!”

2907호 너머로는 임단의 스토커들이 깔려 있었기에 반대쪽 비상구 안으로 향했다. 밖을 확인한 성산하가 살짝 문을 닫자 들어오던 빛이 확연히 적어졌다. 좁은 공간에 마주하고 선 성산하를 빤히 바라봤다.

‘무슨 얘길 하자고 부른 거지? 역시 내 정체에 관한 얘기겠지……. 그럼 난 뭐라고 먼저 하지? 보육원 얘기는 좋은 기억이 아닐 테니까 나중에 해야겠다. 그럼 나 강의진이라고 말할까? 아니면 그냥 오랜만이라고…….’

성산하와 둘만 남자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많았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든간에 ‘사나’와 다시 인사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짧은 순간에 이것저것 고민하다 결국 선택한 것은 이름이었다.

“사…….”

“이번 회의에서.”

성산하와 동시에 입을 열고 그가 다른 걸 말한다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술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응?’ 하고 되묻는 성산하에게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너 먼저 말해. 뭔데?”

잠시 의아하게 쳐다보던 성산하는 더 묻지 않고 제 할 말을 했다.

“곧 열린다는 탑 보유국 회의에서 네 정체를 밝히는 게 어떨까 해. 강의진.”

“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방금 뭐라고, 내가 뭘 들은…….’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성산하가 분명히 나를 ‘강의진’이라고 불렀다.

물론 태제헌의 일로 다른 사람들까지 나를 강의진이라 추측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산하가 그를 모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나를 당황시킨 것은 성산하의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은 태도였다. 나를 강의진이라며 쫓아와 팼던 첫 만남부터 성산하의 정체가 사나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까지, 이런 담담한 상황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내가 강의진이라는 것을 알면, 적어도…….

‘뭘 기대한 거지?’

내 당황이 무언가에 대한 기대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몸에서 힘이 턱 풀렸다. 그런 내 표정을 뭐라고 해석한 건지 성산하가 걱정스러운 낯으로 말을 이었다.

“정체를 공개하는 것의 위험성을 모르지 않아.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그게 더 안전해.”

‘내가 본인이 사나라는 것을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 그래, 그렇다면 아무렇지 않은 척 대하는 것도 이해돼.’

“강의진?”

“…회의장에서 말하자는 건, 내 정체를 세상에 공표하자는 뜻이야?”

일단 지금은 성산하에게 맞춰 줄 생각에 고개를 들고 물었다. 눈이 마주치자 잠시 멈칫한 성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제헌도, 사이비 측도 널 노리는 이상 아예 드러내 움직이는 편이 안전해.”

“……잘 모르겠는데. 던전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땐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는 임단의 말처럼 숨어 지내는 게 차라리 안전한 거 아니야? 지금처럼.”

내가 강의진임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니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조용히 숨어 있는 게 안전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성산하의 반응이 생각과는 달랐다. 작게 한숨을 쉰 성산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숨을 수 없어.”

“무슨 소리야?”

“성좌 지도라는 게 활성화되었거든. 나와 같은 퀘스트를 받은 S급이라면 누구나 네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단 뜻이야. 그리고 S급 전투계라면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 하나 있잖아?”

“설마…….”

성산하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놀라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씨발, 왜 생각을 못했지? 태제헌 역시 S급이라는걸. 그럼 놈에게도 내가 어디 있는지 보이고, 번쩍번쩍 빛도 날 거란 말이잖아?

“씨발, 지도라니 이 무슨 좆같은…….”

황당해 중얼거리는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어디서 들었나 했더니, 전에 받았던 돌발 퀘스트의 보상이다!

「보상 : 메인 퀘스트 #5.5, 성좌 지도 활성화」

‘그게 내 보상이 아니었어?’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2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