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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32화 (132/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32.

“나연이를 어떻게……. 일단 들어오세요!”

황급히 우리 모두를 방 안으로 밀어 넣은 이초가 복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이초가 처음 보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둘이 언제 만난 적 있습니까?”

“응. 예전에 센터에서 본 적 있어.”

무의식 중에 자연스럽게 기사님의 어깨에 올려진 이초의 손을 빤히 쳐다봤다. 그동안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이제 보니 이초의 네 번째 손가락에도 단순하지만 깔끔한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맞아. 그러고 보니 전에 기사님이 자기 결혼했다고 그랬었어. 그럼 설마…….’

놀라 이초를 보던 때에 제로가 선수 쳐 말했다.

“오나연. 천랑의 스파이입니다.”

“뭐? 기사님이 스파이라고?”

“센터에 잠입해 작업 친다고 들었던 게 마지막이었는데……. 두 분, 센터에서 만났나 보네요.”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나연이 조금 삐딱한 얼굴로 제로를 쳐다봤다.

“하아……. 이럴 때 보면 정보원이 누군지 모르겠다니까. 오랜만이에요, 제로. 언젠가 다시 마주칠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반갑진 않네요.”

“후후, 삼 년 만인가요? 결혼 축하드립니다. 축의금은 그때 빼 가신 던전 정보로 충분하셨겠습니다?”

“넉넉했죠. 그런데 원래 받아야 했을 걸 돌려받은 느낌이라 기쁘진 않던걸요? 먼저 비겁하게 빼 가신 건 당신이었잖아요.”

오나연의 말투가 점점 격양되자 이초가 어깨를 꾹 쥐며 말없이 그를 말렸다. 제로 역시 평소의 웃음기가 옅어진 얼굴인 걸 보니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둘의 사이가 영 좋지 않은 듯했다.

둘 사이에 낀 초가 내 눈치를 봤다. 눈이 마주친 김에 손을 뻗었다.

“휴대폰 받으러 왔어. 성산하가 여기로 오면 된다고 그러던데.”

“아, 휴대폰이요! 네. 준비해 두었습니다.”

초가 정신없는 얼굴로 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초가 자리를 비우고도 제로와 오나연의 말다툼은 계속 이어졌다.

“용병이 이득을 따라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만.”

“그 일로 천랑이 입은 피해가 어마어마한 건 알고 계시죠?”

“그게 어디 저만의 탓입니까? 삼 년이면 정보부의 무능을 인정할 줄 알았는데 아직 부족했나 봅니다.”

“지금 말 다했어요?”

“나연아. 진정해. …호현 님, 여깄습니다.”

이초가 다급히 오나연을 말렸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얘기 끝날 때까지 잠깐 기다릴까.’

옆에서 눈만 굴리며 눈치를 보는 승연이를 의자에 앉히고는 나도 싸우는 소리를 배경 삼아 익숙한 번호를 눌러 성산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225_10820_0000」

딱히 중요하게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아까 뱉은 말이 있기에, 그리고 또 휴대폰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겸 전화를 걸었을 뿐이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에선 성산하의 목소리 대신 이상한 음성 메시지가 돌아왔다.

[전화를 연결할 수 없습니다.]

싸늘한 한마디 뒤로는 잠시 동안 삐-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신호가 끊어졌다. 저 혼자 끊긴 전화를 바라봤다.

‘어라, 이상하다?’

성산하가 전화를 받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그때와는 자동 응답 멘트가 달랐다. 전화를 다시 걸어 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삐-]

고장이 났나……. 이초에게 말하기 전에 몇 번 다시 시도해 보는데 삐 소리가 계속 들리자 말싸움하던 놈들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오나연이 의아하게 물었다.

“호현…. 호현 씨? 뭐 해요? 어디 전화 걸어요?”

“응. 근데 이상해. 전화가 자꾸 끊겨.”

“끊기는 게 아니라 차단당한 것 같은데요.”

오나연의 말에 앞을 올려다봤다. 오나연이 친절한 얼굴로 주머니를 뒤지며 물었다.

“뭣하면 제 휴대폰 빌려줄 테니까 그걸로 걸어 볼래요?”

“차단이라니, 그게 뭔데?”

“네?”

“차단하면 뭔데? 내가 전화 못 거는 거야?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오나연이 당황해 멈칫한 사이 흘깃 내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번호를 훔쳐본 제로의 눈이 휘어졌다. 제로가 음흉한 속내가 드러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후후, 전화만 못 걸다뿐입니까? 문자도 보내지 못합니다. 차단을 당한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상대방에게 닿지 못해요. 허공에 소리치는 거나 다름없죠.”

“그런 걸 왜… 하는데?”

“친구나 연인, 지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차단’은……. 글쎄요.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습니다만 관계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연락할 방법을 아예 영영 소멸시켜 버렸으니.”

“성산하가…….”

성산하가 나를? 나를 ‘차단’했다고?

휴대폰에 이런 차가운 기능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미리 알았더라면 태제헌도 ‘차단’해 버리는 건데!-점점 강하게 느껴지는 모멸감에 까맣게 죽은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는데 보다 못한 이초가 황급히 소리쳤다.

“이 개새…….”

“제 잘못입니다! 번호가…. 어쨌든 제 실수입니다.”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자 머리를 짚은 이초가 깊은 한숨과 함께 변명했다.

“원래 길드장님 개인 번호로 연락하기 위해선 따로 허가가 필요합니다. 허가된 번호 외에는 다 차단이에요. 호현 님만 차단한 게 아니라요! 제가 휴대폰을 드리기 전에 따로 번호 등록을 해 뒀어야 했는데 정신이 없어 깜빡 잊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전화해도 다 받았는데? 승연이 걸로도 전화한 적 있어.”

“그거야 기다리셨…. 흠흠, 호현 님 편의를 위해 번호를 미리 수색해 등록해 뒀었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봤다. 말이 수색이지, 뒷조사했다는 거 아냐.

“이번 일은 단순한 해프닝일 뿐이니…….”

“나도 해 줘. 차단.”

“무슨 소리인지…. 누구를 말입니까?”

휴대폰을 내밀며 말하자 이초의 눈이 커다래졌다. 손을 흔들며 재촉했다.

“누구겠어? 성산하지. 당장 차단해 줘.”

“호현 님…….”

이초가 망했단 표정을 지었다.

결국 성산하 번호를 차단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휴대폰을 건네받는데, 그 옆에서 흥미롭게 구경하던 오나연과 눈이 마주쳤다. 오나연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호현 씨는 길드장님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뜬금없는 물음에 방 안의 모두가 오나연을 바라봤다. 시선을 느꼈는지 오나연이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아하하. 내가 괜한 걸 물어봤나? 사실 바로 어제 복귀해서 천랑 상황은 잘 모르거든요. 가이드인 호현 씨가 왜 여기 있는지도 궁금하네?”

기나긴 설명은 이초의 몫이었다.

내 정체를 밝히며 동시에 오나연과 이초가 부부라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그때 누나가 흘리듯 얘기했던 남편이 이초였다니. 심지어 바로 어제까지 센터에서 버스를 운전하다 복귀한 거라니!

“천랑은 왜 이렇게 프락치가 많은 거야?”

“없다고는 못하지만 그리 많은 편도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족족 의진 님께 걸려서 그렇죠.”

이초가 변명하며 중얼거렸다. ‘차단’ 사건 이후로 왜인지 울적한 모양새였다.

오나연이 갑자기 눈을 빛내며 짝 하고 박수를 쳤다.

“맞다! 안 그래도 우리 정보부 중에 녹스 담당하는 팀들이 따로 있었거든. 그런데 의진 씨는 아무리 파도 정보가 안 나온다고 앓는 소리를 얼마나 해 대던지.”

“정보부? 간도 크네. 아마 걸렸으면 태제헌한테 죽었을걸.”

“다행히 아직 모두 무사하답니다.”

“녹스에서 뭘 조사했는데?”

“정확히는 녹스가 아니라 의진 씨를 조사한 거야. 기억에 남는 실적이 하나 있었는데. 뭘 찾아내고 파티를 했다고……. 아! 옷 치수였다. 의진 씨 사이즈 알아냈다고 회식을 5차까지 달렸지 뭐야. 그전까진 하도 파도 정보가 안 나와서 유령인 줄 알았대.”

“옷 치수? 그딴 걸 알아서 뭘 하게?”

시큰둥하게 묻는데 아까부터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이초가 제 휴대폰을 꾹 쥐고 말했다.

“저, 의진 님. 산하 님께 계속 전화가 오는데요?”

“응. 받고 와.”

그냥 받으면 되는 걸 왜 허락을 맡지? 이상하게 생각하며 받고 오라 손을 내저었다. 이초가 난처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의진 님 일로 전화하시는 것 같은데, 직접 받으실 생각은 없으시고요?”

“당연하지. 난 성산하를 ‘차단’했다고.”

“네. 알겠습니다…….”

이초가 시무룩하게 일어나 다른 방으로 향했다.

그를 두고 셋이서 조금 떠들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다들 먼저 도착했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나연을 돌아봤다.

“누나는 점심 안 먹어?”

“오늘은 오랜만에 만난 남편이랑 점심 약속. 다음에 같이 먹자.”

눈을 찡긋하며 말하는 오나연의 모습에 진명이와 다인 누나가 겹쳐 보였다.

***

엘리베이터가 오길 기다리며 이초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던 오나연의 말을 되새겼다.

‘다 같이 먹으면 더 재밌을 텐데. 애인이면 뭐가 다른가?’

잘 모르겠다. 머리를 긁적이는데 저 멀리서 이초가 급히 달려왔다.

“의진 님!”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려다 다급히 부르는 목소리에 멈춰 섰다.

“급히 불러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괜찮아. 나연 누나 어제 왔다며.”

“스케줄을 잡아야 하는데 오늘 오후에 시간 되시나요?”

“스케줄이라니?”

의아하게 되묻자 이초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휙휙 넘기며 말했다.

“별 건 아닙니다. 의진 님 정체를 밝히기 전에 준비할 게 몇 가지 있어서요. 산하 님께서 간접적으로만 노출할 거라 하셨으니 최소한으로만 간단히 인터뷰 준비하고, 기사 사진과 뉴스에 송출될 영상들 촬영 조금 하셔야 하고……. 아, 그 전에 스타일링도 하셔야 하니 시간이 조금 촉박하네요.”

이초의 말을 가만히 듣다 물었다.

“네 말은 그럼……. 내가 티브이에 나온다는 거야?”

이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 바라보다 다급히 물었다.

“가면 안 쓰고? 얼굴 안 가리고? 밑에 S급 포션 마스터 강의진이라고 이름표도 붙여서?”

“당연하죠. 그뿐이겠습니까? 성좌의 주인이시니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송출될 겁니다. 번역가 서른 명도 이미 준비된 상태예요. 어디서 소문이 새어 나간 건지 벌써부터 의진 님에 대해 알아챈 이들이 몰래몰래 정보를 얻기 위해 연락도 하고 있는걸요.”

신이 나는 소리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그럼 오늘 오후에 시간…….”

“응! 돼! 무조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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