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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37화 (137/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37.

날이 밝자마자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인터뷰와 촬영 준비를 위해 찾아왔다. 아침부터 잠에서 깨 움직이느라 하품이 끊이질 않았다.

“하아암…….”

어제 성산하와 대화를 하느라 방에 늦게 들어간 탓인지 잠이 부족했다. 이상한 콘셉트는 모두 취소되고 간단한 머리와 화장 정도만 한다고 했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군데군데서 터지는 잘생겼다는 작은 탄성들과 머리를 만지는 조심스러운 손길들이 나름대로 기분 좋았기에 결국 가만히 머리를 맡기다 꾸벅꾸벅 졸았다.

수많은 손길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고 드디어 스타일링이 모두 끝났다.

“다 됐습니다. 세 시간 동안 고생하셨어요.”

“세상에! 너무 귀… 잘생기셨다.”

머리를 만지던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 주자 가려져 있던 거울이 드러났다. 거울 속의 얼굴은 그곳에만 조명을 비춘 듯 화사했다. 윤기 도는 피부와 복숭앗빛 뺨, 바람에 흐트러진 마냥 자연스럽게 고정된 머리까지. 잘생긴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놀랄 것도 없었지만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어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속으로 감탄했다. 딱히 어떤 표정을 짓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느껴진다는 게 신기해 이리저리 만져 보다 머리 망가진다고 혼도 났다.

‘꼭 활력 포션 먹은 사람 같네.’

준비된 옷까지 갈아입고 호텔 내의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사진은 계속 찍을 겁니다. 자연스럽게 인터뷰에 집중해 주시면 됩니다. 너무 의식하진 마시고요.”

“응. 알았어.”

미리 기다리고 있던 인터뷰어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곧바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차분한 단발머리의 여자는 마치 원래 알던 사람처럼 말을 건네 생에 첫 인터뷰임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데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아요. 떨리진 않으시나요?”

응, 하고 말려다 이초가 읽으라고 줬던 책자를 기억해 내고는 답변을 쥐어짜 냈다.

“떨리진 않고 빨리 공방으로 가서 손님들을 만나고 싶어.”

“공방 노네임이라고 하셨죠? 외진 곳에 있던 작은 상점이 사실 포션 마스터 강의진의 것이었다니.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인데요. 그동안 정체를 왜 숨겼는지,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아직 나라는 걸 밝힐 준비가 되지 않았었어.”

“그렇군요. 공방에서 재미있던 에피소드 같은 게 있었다면 하나 말씀해 주시겠어요? 포션 마스터의 가게인 줄도 모르고 와서 구매한 행운의 손님들도 있었겠죠?”

해맑은 인터뷰어의 물음에 잠시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손님 없었는데.’

하지만 차마 내 입으로 손님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어 기억을 뒤지다 일리미탈을 떠올려 냈다.

단순한 포션이 아닌 타 길드들도 연관된 사안이라 한쪽에 서 있던 이초에게 말해도 되는 거냐고 먼저 물었는데 내가 만든 포션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해명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선뜻 허락해 주어 마음 놓고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메모하던 인터뷰어의 손이 빨라졌다.

“……래서 승연이랑 하얀 누나랑 같이 연구해서 해독제를 만들어 낸 거야.”

“정말 대단해요! 역시 포션 마스터는 다르네요. 이 기회에 오명을 씻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네요.”

“맞아.”

“대단한 명성을 가진 만큼 그를 욕심낸 사칭범도 등장했는데요. 그걸 처음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좆같았지 뭐….”

“의진 님!”

짭의진 얘기에 인터뷰 중이라는 것을 잊고 나도 모르게 본심이 흘러나왔다. 이초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급히 수습했다.

“미안. 그냥 내가 잘나서 그런 거라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중이야.”

“아, 하하. 네. 그렇군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인터뷰어의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데 뒤에서 사진작가가 소리쳤다.

“의진 님, 자세가 점점 내려갑니다. 자칫 오만하게 비칠 수 있어요.”

포션 마스터는 오만해야 하는 건데? 뭐가 문젠지 의아했지만 꾸물꾸물 허리를 세워 앉으며 다시 물었다.

“이러면 돼?”

“조금 더, 그리고 팔걸이에서 팔 내리시고요!”

무릎에 손을 올린 조신한 자세를 하고 나서야 사진작가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그사이 무언가 각오를 다진 듯이 보이는 인터뷰어가 준비한 종이를 빠르게 넘기며 짧은 질문들을 던졌다.

“이제 조금 빠르게 질문드릴 생각인데, 괜찮으실까요?”

“응.”

“의진 님을 포션 마스터까지 이를 수 있게 만든 가장 큰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타고난 재능?”

“의진 님께 가장 중요한 것은?”

“포션.”

“의진 님의 이상형은?”

“나.”

“포션 잘 만드는 비법은?”

“포션 마스터가 만들기.”

짧은 문답에도 메모하는 인터뷰어의 손은 계속 움직였다. 따로 녹음도 하는 것 같던데, 뭘 저렇게 열심히 적는지 궁금했지만 필기체로 휘갈겨 써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 조금 기다려도 되는데.”

“아니요.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살 붙여도 괜찮겠다 싶은 문장들이 떠올라서요. 배려 감사합니다. 다음 질문 들어갈게요.”

“응.”

“여태껏 포션 마스터 강의진의 포션은 구매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드디어 홀로서기를 해 의진 님만의 공방이 생겨났잖아요? 모든 헌터들이 의진 님의 포션을 구매하고 싶어 혈안이 될 텐데, 노네임 공방의 포션 판매가 어떻게 진행될지 저희에게만 몰래 귀띔해 주실 수 있나요?”

“공방으로 오면 살 수 있어. 포션 개발은 따로 의뢰하고.”

“공방 문은 열려 있다라, 앞으로는 의진 님을 자주 만나 뵐 수 있는 거겠네요?”

“당연하지. 우리 공방으로 놀러 와!”

이제야 제대로 된 공방 홍보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손님이 많이 올 거라고 생각하자 신이 나 웃으며 답하는데 옆에서 촤르르륵 하며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터뷰는 다 끝났어?”

내 물음에 인터뷰어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잘 써 드릴게요.”

인터뷰가 끝난 뒤로는 호텔 내에 준비된 장소로 가서 연출 사진을 찍었다. 별다를 것 없이 준비된 재료들을 가지고 힐링 포션을 제조하는 콘셉트였다. 그러나 내 움직임 하나하나에 터져 나오는 탄성들 탓에 난생처음으로 포션을 만들며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젓는 손짓이 남다르시네요!”

“정말 그냥 힐링 포션 맞나요?”

“……시끄러워. 방해된다고.”

“헉! 그럼 안 되죠! 모두 조용히 해 주세요! 의진 님께서 포션 제작에 집중하셔야 한답니다!”

“하아…….”

‘정말 제작 중이었다면 모두 쫓아냈을 텐데. 촬영만 아니었어도.’

인상을 찌푸렸지만 입가에 웃음은 왜인지 사라지지 않았다.

한창 찍다 보니 성산하의 말대로 오후가 되었다. 이곳저곳에서 수고했다는 인사가 들려오는 사이로 탄성이 터져 돌아보자 그곳엔 안으로 들어오는 성산하가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이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하 님. 오셨습니까.”

“다 끝났어?”

“네. 방금 다 끝났습니다.”

곧장 앉아 있던 내게로 다가온 성산하가 몸을 숙이더니 생글거리는 얼굴로 내 머릴 톡 건드렸다.

“귀엽네.”

“……개소리.”

짜증스레 머리를 헝클었지만 스프레이로 고정돼 딱딱한 상태라 생각만큼 흐트러지진 않았다. 그를 보며 킥킥대던 성산하가 내게 손을 뻗었다.

“이만 갈까.”

***

성산하, 이초와 함께 탄 차가 출발하자 우리 주위로 여러 대의 차가 따라붙어 경호했다. 보호 구역인 호텔을 나간다는 게 그제야 실감 났다.

“어디로 가는 거야?”

“천랑 본부로.”

천랑이라니? 처음 가 볼뿐더러 갑자기 그곳에 왜 데려가는지도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오랜만에 호텔을 벗어나 어딘가로 간다는 게 그저 좋았기에 더 묻지 않고 창문에 바짝 붙어 바깥만 구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랑 부지에 도착한 우리는 차에서 내려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금사로 꾸며진 새하얀 천랑 제복을 입고 있으니 꼭 신전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천랑 길드원들을 이렇게 한 번에 많이 보는 건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그 무리를 따라가다 성산하에게 잡혀 엘리베이터로 끌려갔다.

“체험 학습 왔어? 잘 따라와야지.”

“천랑은 처음이라. 그런데 제작계들도 저 제복 입어?”

“비슷하긴 한데, 조금 더 편한 유니폼. 관심 있어? 입게 해 줄 수 있는데.”

“천랑 들어올 생각 없거든.”

앞장선 이초를 따라 내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몇 번의 보안을 거치고 내려간 지하에는 심문실 비슷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지하에 뭐 이런 곳이 있냐? 대체 뭐 하는 곳…….”

새하얗고 투명한 방의 모습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유리창 건너편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왜인지 익숙한 얼굴에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초도 성산하도 말리지 않아 용기 내어 가까이 다가간 나는 쓰러진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놀라 소리쳤다.

“짭의진이잖아!”

“짭…의진? 하하, 속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었어?”

웃는 성산하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쓰러진 짭의진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려 유리창에 얼굴을 찰싹 붙였다.

‘원래 저렇게 생겼었나?’

처음 봤을 때 나와 착각했던 게 무색할 만큼 전혀 다른 생김새였다. 보면 볼수록 짭의진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어 이초를 돌아보며 말했다.

“안에 들어갈 순 없어?”

“네. 아직 심문 진행 중이라서요. 의진 님을 보면 비협조적으로 나올 게 분명합니다.”

얼굴이 다른데, 쟤 짭의진 확실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뚫어져라 보는데 성산하가 다가와 내 옆에 섰다.

“예상대로 사이비 소속이더군.”

“내가 말했잖아. 씨발. 이상한 새끼니까 믿지 말라고.”

“믿은 적 없었어. 알아볼 필요는 있었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 너 꽃다발도 갖다 바쳤잖아.”

“그래서 서운했어? 가짜인데 속은 것 같아서?”

“서운은 무슨, 너무 멍청해서 화가 났을 뿐이야.”

콧방귀 뀌며 말했지만 이상하게 성산하의 입가에 흡족한 웃음만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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