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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39화 (139/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39.

“어, 어?”

“아무 것도. 왜, 무슨 일이지?”

당황해 굳어 버린 나 대신 저 혼자 침대에 앉아 있던 성산하가 아무렇지 않게 되물었다. 뻔뻔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는데 이초가 밖을 슬쩍 내다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승훈이에게 전화가 와서요. 공방 주위로 점점 사람들이 보이고 있답니다. 아마 의진 님이 왔다는 소문이 난 것 같은데. 사람이 더 몰리기 전에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뭐야, 벌써 돌아가? 거리도 차단하고 있잖아.”

“일반인들은 막았지만 주위 공방 관계자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 사이에 몰래 숨어들어 온 기자가 있을 수도 있고요, 모레 정식으로 복귀하기 전에 말이 새어 나가서 좋을 게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있겠다 버틸 수도 없었다. 이틀만 더 기다리면 된다는 말로 위로 삼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텔에 도착하니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로비에 앉아 웃고 있던 박무일이 날 발견하자마자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형님! 오랜만이십니다!”

“뭐야, 네가 여긴 웬일이야? 서진이랑 같이 왔어?”

방금 전까지 무일이 앉아 있던 자리를 돌아보는데 놈이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같이 오진 않았슴다. 서진인 내일 올 거예요.”

“그럼 넌 왜 왔는데?”

“저야 뭐…….”

말하던 박무일이 멈칫하더니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 그래? 너는 뭐 어쨌다고?”

“아…, 하하하. 아닙니다. 어우, 눈부셔라. 생각보다 더 신기하네요. 흠흠, 저도 센터 일로 왔죠. 호텔 경호 반절은 센터가 맡고 있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내 얼굴을 보며 눈부시다고 하는 박무일의 말에 얼굴을 긁적였다. 화장 좀 했다고 눈이 부실 정도인가.

‘평소랑 비슷한데 말이지.’

옆 유리창에 비치는 얼굴을 보다 저 멀리서 이초와 함께 다가오는 성산하를 보고 발을 돌렸다.

“이따 공방 사람들이랑 저녁 먹을 건데 오든가.”

“저녁엔 잠깐 나갔다 와야 해서 안 될 것 같은데. 다음에 서진이랑 같이 먹어요.”

제 마음대로 밖을 나다니는 박무일이 부럽게 느껴졌다. 마스터의 숙명이려니 생각하며 대충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든가. 공방으로 와.”

“……어디서든 보면 좋죠.”

박무일이 사람 좋게 웃었다.

***

호텔에서 떠나는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온 각성자들을 들썩인 이슈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영국의 탑이 열렸다는 소식이었다.

게이트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헌터들이 줄지어 탑 내부로 입장하고 각 나라의 특파원들이 게이트 앞으로 몰려갔다. 채널을 돌려도 어디서나 탑 주변과 게이트를 실시간 중계하는 뉴스가 나왔고 헌트로폴리스에는 새로운 정보들이 시시각각 번역되어 올라왔다.

나 역시 관심이 많았던 일이라 영국의 상황을 계속 보고 싶었지만 탑 보유국 회의가 당장 몇 시간 앞이라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성산하 역시 미리 준비를 위해 출발한 상태였다.

승연이나 백다인, 하얀과 정혁 역시도 한 달가량을 머무느라 늘어 버린 짐을 싸느라 분주한 가운데 나는 숙소에 앉아 또다시 스타일링을 받았다.

“오늘 스케줄은 공방 입장할 때까지니까 오후까지 지속될 정도로 잘 만져야 해.”

“중간에 들러서 수정하면 안 되나요?”

“그러잖아도 물어봤지. 그런데 시간이 없대. 회의장부터 기자한테 따라잡힐 거라던데.”

“회의 들어갈 때는 펜스 때문에 사진도 멀리서 찍잖아요. 공방 들어갈 때가 정말 문제인데. 그땐 사진도 많이 찍힐 거고. 그냥 텔레포트 열어 주지…….”

“의진 님. 오늘 웬만하면 얼굴이랑 머리에 손대시면 안 돼요? 달리거나 격한 움직임도 조심하시구요.”

“알았어.”

사실 그날 밤에 머리를 감을 때 굳은 머리카락이 너무 딱딱해서 기분이 이상하길래 오늘은 전에 머리에 뿌렸던 걸 생략하면 안 되냐고 물으려 했는데. 다들 심각해 보이길래 그냥 입을 다물었다.

머리를 맡기고 화장을 받으며 앞에서 동선 설명을 들었다.

“의진 님. 여기가 회의장 사진입니다. 이쪽에 펜스가 설치되어 기자단은 모두 펜스 뒤에 위치할 거고, 차는 큰 도로를 타고 들어가 서문으로 입장하게 될 겁니다. 회의장에서는 산하 님을 비롯해 여타 인사들이 함께할 것이며 경호 인력은 호텔에서부터…….”

여자가 말하는 동선은 자연스럽게 내 공방까지 이어졌다.

“며칠간은 준비했던 보도 자료만 풀며 상황을 지켜볼 거라 한동안 기자 회견이나 타 매체와의 인터뷰는 없을 겁니다. 첫 기사와 인터뷰는 의진 님이 회의장에 입장한 후 차례로 풀릴 거예요.”

“이해했어. 그럼 승연이랑 애들은 따로 만나?”

“혹시 모르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지인분들은 모두 저희 측에서 이동 도와드리기로 했어요. 아마 의진 님보다 먼저 도착해 계실 겁니다.”

이미 태제헌에게 한 번 협박을 당한 적이 있기에 승연이를 포함해 호텔에서 머문 사람들 모두 내 공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차질 없이 진행되기만 한다면 완벽한 계획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일링도 모두 마치고 나는 2층 카페에 앉아 청이를 기다렸다. 이상하게 회의장에 참석하길 꺼리는 제로 탓에 오늘은 청이만 내 용병 자격으로 회의장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임단과 호텔을 떠났던 청이라 며칠 만에 다시 만나는 날이었다.

‘올 수 있다는 걸 보면 잘 해결은 된 거겠지?’

그래도 청이의 가족이라 그런지 싫은 마음보다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조만간 여유가 생기면 임단에게 필요한 포션이 있는지 슬쩍 물어볼까.

머리를 긁적이려다 절-대 손대지 말라던 누나의 말이 기억나 슬쩍 다시 손을 내렸다.

‘돌아가서 일단 무기랑 방어구부터 구매해야겠어. 그리고 판매 방식도 고민 좀 해 봐야겠고, 재료 수급은…….’

공방 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넓은 통창 밖으로 보이는 탑과 두 개의 행성에 시선을 둔 채 사과주스를 홀짝이며 하나둘씩 머릿속으로 정리하는데 덩치 큰 놈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흘깃 시선을 돌리자 이쪽으로 쫄래쫄래 다가오는 박무일과 일행들이 보였다.

“형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반짝반짝 빛이 나시네요.”

“응. 어디 가냐?”

전과 달리 전투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꼭 어디 던전에라도 들어갈 것 같았다. 의아해 묻자 박무일이 머쓱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대기 중요.”

“어어.”

에스퍼들만의 일이 있나 보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일 보라며 손을 흔드는데 박무일이 털썩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그 일행들도 내가 앉은 소파를 둘러싸듯 자리했다. 묘한 구도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뭐냐?”

“네? 뭐가 말입니까, 형님?”

뜨끔한 표정의 박무일이 입꼬리를 죽 늘여 웃었다. 어색한 태도를 보자 황당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하냐고. 무일아.”

“…….”

“한서진 어딨어?”

“서진이 곧 올 겁니다.”

순순히 뱉는 말에 탄식이 흘렀다. 의도가 뭔진 몰라도 한서진 역시 엮여 있다는 소리였다. 마침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휴대폰을 꺼내 드니 성산하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나야.”

[지금 어디야?]

“2층 카페에 있어.”

[혼자? 임청은]

“청이는 아직이고 혼자는 아니야.”

박무일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에스퍼들이 호위하러 왔거든.”

건너편에서 나직한 욕설이 들렸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호텔로 갈 테니까. 그쪽에서 뭘 요구하든 절대 응하지 말고 거절…….]

성산하의 목소리가 들리던 와중 손에서 휴대폰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돌아보자 언제 왔는지 내 뒤에 선 한서진이 차가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가 구해다 준다고 했잖아요.”

“한서진.”

무언가 큰 소리가 들려왔지만 한서진은 가볍게 전화를 끊어 버리곤 휴대폰을 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 일련의 행동을 바라보니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한숨이 나왔다.

누나, 미안. 답답한 마음을 버티지 못하고 짜증스레 머리를 쓸어 넘겼다.

“또 씨발, 또라이 병 도졌네. 진짜 이러기냐?”

“…….”

어깨 위에 놓인 한서진의 손을 내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무일과 에스퍼들이 은근슬쩍 퇴로를 가로막았다. 저 멀리 천랑 헌터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지만 또한 에스퍼들 역시 우르르 튀어나와 그들 앞을 막아섰다. 그 틈으로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후다닥 우리가 있는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들고 있는 가방과 품에 안고 있는 무궁화 문양이 그려진 서류를 보자 머리가 지끈 아파 왔다.

“한서진, 너 설마.”

“미안해요. 나 형 포기 못하겠어.”

“씹…….”

“전처럼 힘든 일 없을 거예요. 형 묶어 두지도 않아. 그냥, 그냥 다시 주호현으로만 돌아와 줘요.”

한서진에게 팔을 잡힌 채 눈을 굴려 주위를 살폈다. 에스퍼가 뭐 이렇게 많은지, 퇴로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쓸 만한 포션도 가지고 있지 않고…….

‘인벤토리에 포션 하나가 없다니. 존나 해이해졌네 강의진.’

돌아가면 살상용, 도주용, 마취용으로 용도별로 구비해 놓아야지 다짐하며 성산하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데 나를 잡은 한서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곧 일반인 둘이 다가와 청천벽력같은 개소릴 했다.

“그, 그럼 가이딩 파장 일치 검사를 준비해야…….”

“주호현 가이드임이 확인된다면 곧바로 실종 선고 취소 후 신원 부활 절차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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