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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42화 (142/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42.

성산하는 미심쩍은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에스퍼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한발 물러나는데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지나친 에스퍼가 곧장 성산하에게 다가가 말했다.

“1부가 끝났습니다. 지금 들어오시면 된다고 합니다.”

“간다고 전해.”

고개를 끄덕인 에스퍼가 나가자마자 곧바로 성산하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야? 설마 회의 시작 했어?”

“한참 전에 시작했지.”

“뭐?”

도착하자마자 대기실로 안내해 태평하게 머리나 만지길래 혹시 미뤄졌나 했는데. 한참 전에 시작한 데다 1부까지 끝난 상태라니!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성산하가 허벅지를 잡아 눌러 앉혔다.

“빨리 가 봐야…….”

“어차피 탁상공론 중이라 재미없을걸.”

“재미가 아니라!! 나야 그렇다 쳐도 너는? 너는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대표라며.”

성산하는 태평하게 내 어깨에 묻은 머리카락이나 털며 고개를 저었다.

“회의는 기싸움일 뿐이야. 이미 중요한 건 모두 결정된 상태고, 설령 바뀔 게 있다 한들 물밑으로 작업하겠지.”

“그래도 우리만 늦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강의진’으로 참여하는 첫 공식적인 자리다. 보고 자란 건 태제헌뿐이라 걱정이 많았다. 그 새끼는 본보기라기엔 인성에 하자가 많은데.

불안한 얼굴을 본 성산하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답지 않게 귀엽긴. 긴장했어?”

“긴장은 무슨.”

“늦어도 돼. 강의진이잖아.”

성산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간질거리는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그래. 난 강의진이지.

어깨가 절로 펴졌다.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초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성산하의 귀에 속삭였다.

“산하 님. 방금 굉장한 실수를 한 것 같은데요. 의진 님껜 첫 경험일 텐데…….”

“뭐 어때. 귀엽기만 한데.”

성산하가 만지작대느라 헝클어진 머리를 마지막으로 손본 후 대기실을 나왔다. 성산하와 내가 앞장서고 그 뒤를 이초와 청이가 따랐다. 로비에 들어가기 전, 청이가 슬며시 가면을 썼다.

탁 트인 공간에 발을 들이자마자 눈도 뜨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플래시가 터졌다.

“으읏, 뭐야.”

나도 모르게 손으로 눈을 가리자 성산하가 고개 숙여 속삭였다.

“웃어. 지금 사진으로 속보 나갈 거야.”

“눈도 못 뜨겠는데 어떻게…….”

투덜대며 옆을 바라보자 빛을 그대로 직시한 채 그림같이 웃고 있는 성산하가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눈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태제헌과 함께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놈이 빡친다고 다 터트렸을 테니까.

플래시에 조금 익숙해졌는지 슬슬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색 벨트 바깥으로 출입증을 건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티브이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무언가 정해진 규칙 같은 게 있는지 다들 아무 말 없이 열심히 사진만 찍어 댔다. 셔터음 사이를 가로질러 겨우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다. 회의장에는 허락된 사람만 입장할 수 있기에 허가서가 없는 청이와 이초는 참관석으로 가야 했다.

“저희는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응. 끝나고 보자.”

둘이 옆 계단으로 올라가는 걸 본 후 나와 성산하는 커다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는 긴 복도가 펼쳐져 있었는데 조명 하나 없이 바닥에 박힌 마정석의 불빛만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공간을 가득 채우던 플래시와 셔터음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자 어두운 내부가 더욱 적막하게 느껴졌다. 복도 끝에 보이는 문을 향해 뚜벅뚜벅 걷던 중 어깨를 톡톡 치는 손길에 옆을 돌아보자 성산하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어둡지 않아?”

불이라도 켜려 하는 건가? 못 걸을 정도는 아닌데. 고개를 끄덕이자 웃음기 서린 목소리가 속삭였다.

“여기서 키스해도 아무도 못 볼 것 같은데.”

“…미친놈아.”

늦었으면서 저런 개소리나 태평하게 지껄이다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놈을 두고 앞서 나갔다. 뒤에서 여유롭게 따라오는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 끝에 있는 문을 활짝 열자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앞에 탁 트여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어라?”

탑 보유국 회의라기에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중앙에 커다랗게 위치한 원형 탁자에는 겨우 몇 명만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다들 지각인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회의장 위로 참관석이 있었다. 텅 빈 회의장에 비해 참관석에는 빼곡하게 사람들이 차 있었다. 청이와 이초 역시 그곳에 있었다. 내게 쏟아지는 시선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탁자에 앉아 있던 여자가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다.

‘저 사람, 분명 아는 얼굴인데.’

익숙한 얼굴에 머릿속을 뒤지며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런데 그 여자 역시 내 얼굴을 보고 멈칫하는 게 아닌가.

뒤늦게 도착한 성산하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여자를 보곤 의아하게 물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이랑 닮아서, 착각을 한 것 같네요. 딱 맞춰 왔어요. 이쪽이 포션 마스터 강의진이신가요? 저는 지부장…….”

“…TF 최고 책임자. 한서현?”

드디어 기억났다. 나도 모르게 뱉은 말에 한서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직책을 어떻게 아시죠?”

날카로운 물음에 뒤늦게 뜨끔했다. 기억해 낸 것이 후련해 먼저 말을 뱉어 버렸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내가 한서현을 본 건 부스 화면을 통해서였다. 그것도 가이딩 포션 거래를 하느라!

“어어, 나도 반가워.”

들킬까 싶어 냅다 한서현의 손을 잡아 흔들고 한 발 뒤로 피해 성산하를 앞에 내세웠다. 한서현의 끈질긴 시선이 따라왔지만 머리를 긁적이며 딴청을 피웠다.

“……90초 후 2부 시작이니까 준비하시는 게 좋겠어요. 대부분 예상했던 범위 내에서 결론 났고 이제 마무리 단계입니다.”

앞장서 가는 한서현의 뒤를 따라가는데 성산하가 고개 숙여 말했다.

“알레샤는 잠적 중이고 레굴루스는 부상 때문에 자리하지 못했어. 유일하게 성좌를 가진 네게 모두의 시선이 끌릴 거야.”

“…응.”

‘포션 마스터 강의진’이 아닌 하말과 카스토르를 소유한 대응자로 바라보는 눈이 많을 거란 소리였다.

잠깐 대기하라는 손짓에 멈춰 섰다. 성산하가 우리 발밑에 줄지어 박혀 빛을 내는 마정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라인 안으로 들어가면 네 모습도 그들에게 보이게 되는 거야.”

“신기하다. 그럼 지금 다 앉아 있다고?”

“그렇지.”

마정석을 매개로 어떤 스킬이 사용된 건지 궁금했다. 감정해 볼까 하는 생각에 슬쩍 무릎을 굽히려던 찰나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마정석으로 이어진 선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텅 비어 있던 자리엔 반투명의 푸르스름한 형체들이 가득했고 쉴 틈 없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다. 시선이 나와 성산하에게 향했다.

[미스틱이다.]

[저 어린 애가 포션 마스터라고?]

[성좌를 둘이나 가지고 있다길래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군.]

[최근 저자를 사칭하는 이슈도 있었지, 아마.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성좌를 노린 추종자들의 짓이었을 게 분명해.]

[유지를 잘 보호해야 할 텐데. 한국엔 탑이 두 개나 있잖아.]

자동으로 통역되어 들리는 말들 탓인지 꼭 티브이를 보는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처음 하는 경험에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사이 탁자 중앙에서 사회자로 보이는 여자의 인영이 나타났다.

[탑 보유국 회의 2부 시작하겠습니다. 2부부터는 한국에서 천랑 길드장 미스틱, 하말과 카스토르의 보유자이자 포션 마스터인 강의진 님께서 참석하셨습니다.]

[포션 마스터와 성좌들의 안전을 위해 늦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성산하의 웃음에 좌중이 술렁였다. 그 옆자리에 앉아 앞을 둘러봤다. 눈이 마주치자 대부분이 웃으며 눈짓했지만 개중 적개심을 보이는 이들도 많았다. 다양하게 생긴 외국인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들이 몇몇 보였다. 지나가다 들어 본 적 있을 정도로 유명한 헌터라든가 내게 포션 제작을 맡겼던 의뢰인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그럼 다음 의제는 타국 지원의 순위와 배분, 탑의 부산물에 특별 세율을 지정할지 여부입니다. 의견 있으신 분은……. 네, 말씀하세요.]

[동일한 수치의 배분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피해를 고려해 상정해야…….]

***

‘……언제 끝나.’

회의는 재미없었다. 알아듣지 못할 단어들이 난무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대충 의미를 알아듣긴 했지만 그마저도 애초에 관심 없는 내용이었다. 세금이니 분배니, 지원이니 하는 나조차 생각해 본 적 없는 규모의 액수들…….

졸지 않은 것은 순전히 옆에서 내 다리를 간지럽히는 성산하 탓이었다. 하지 말라며 발을 툭 쳤지만 성산하는 뻔뻔한 표정으로 제게 돌아오는 질문들에도 여유롭게 대답하며 손을 거두지 않았다. 참지 못해 다리를 차 복수하려 했는데 몸짓이 컸던 탓에 사회자가 나를 지목하며 발언하겠냐는 질문을 하는 바람에 이후로는 꼼짝없이 의자에 붙어 앉아 있었다.

다리에 뭐라 알아듣지 못할 글씨를 쓰는 손등을 콱 잡아챘다.

“재밌냐?”

이를 악물고 속삭이자 성산하가 돌아보지 않은 채 어깨만 으쓱였다. 더 이상 움직이지 말란 뜻에서 손등을 잡은 그대로 손을 깍지 껴 잡아 놈을 구속한 뒤 손에 힘을 주고 앞을 응시했다.

‘이러면 더 못 움직이겠지.’

놈을 제압한 게 만족스러워 웃는데 이상하게 성산하 역시 즐거운 듯한 웃음을 흘렸다. 뭐지? 내 착각인 건가.

[그럼 이상 1차 탑 보유국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드디어 끝이다 싶어 기지개를 켜며 몸을 길게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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