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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43화 (143/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43.

중앙의 사회자 모습이 사라졌다. 끝났나 싶어 나도 일어서려는 때 갑자기 우리 앞의 화면이 반짝이며 뭔가가 날아왔다. 반투명한 편지 봉투 모양 홀로그램이 반짝였다.

“이게 뭐지?”

손을 뻗자 봉투가 열리며 글자가 나타났다.

「안녕. 의진. 오랜만이야. 그때 만들어 준 제초 포션 유용하게 썼어. - V - 」

편지에 가느다랗게 연결된 실을 따라가자 손을 흔드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저 헌터….’

녹스에선 의뢰 정보만 전달받았기에 이렇게 의뢰인의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포션이 마음에 들었다니!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자 그때부터 온 사방에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어떻게 성좌를 둘이나 가지게 됐지?」

「성좌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 우리와 따로 만남을 갖지 않겠나? 시간당 큰 거 한 장씩 주지.」

「태제헌은 어디 있어?」

「성좌를 가진 증거를 보여줘!」

「개인적인 번호를 알려 줄래? 따로 연락하고 싶어.」

메시지가 쌓이다 못해 우리 앞의 화면을 가득 채웠다. 하나를 끄면 세 배로 증식하는 메시지들 탓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당황해 성산하를 불렀다.

“야, 야 이거 어떻게…….”

성산하가 미간을 찌푸린 채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팔을 툭 치자 성산하가 흠칫 놀라 나를 돌아봤다.

“어, 의진아 답장하는 방법은…….”

“답장은 무슨, 이거 어떻게 끄냐고.”

“끄려고?”

오히려 놀란 듯 되묻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 같으면 먼저 나서서 처리했을 놈이 왜 이러지? 혹시나 싶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왜, 안 좋은 거야? 끄면 안 돼? 설마 저거 다 답장해야 하는 건 아니지?”

“응할 필요 없어. 그보다도……. 네가 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뭘 원한다는…….”

뒤에 슬며시 따라온 성산하의 말에 뒤늦게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했다. 코웃음을 치며 앞의 빼곡한 메시지들을 흘겨봤다.

“손님도 아닌데 뭐 하러? 포션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 성좌 보고 그러는 거잖아. 이런 거 귀찮기만 하지.”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던 성산하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 오해해서 미안하군.”

“이제 가도 되는 거지?”

탑 보유국 회의가 끝나면 공방으로 가기로 했기에 엉덩이가 절로 들썩였다. 성산하가 테이블 가운데에 있던 마정석에 손을 올리자 푸른빛이 꺼지며 우리 주위를 두르고 있던 홀로그램 역시 사라졌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한서현이 함께 일어나 내게 명함을 건넸다.

“아까 인사를 제대로 못 드린 것 같아서. 에스퍼·가이드 센터 수사국 서울 지부장 한서현입니다.”

“포션 마스터 강의진이야.”

명함을 받고 악수를 하는데 한서현이 또다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런데 혹시 형제가…….”

“이만 가 보겠습니다. 2차 회의 때 뵙죠.”

끼어든 성산하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더 붙잡을 순 없는지 한서현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또다시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회의장을 벗어났다. 대기 중인 하얀 색 리무진에 올라타 빨리 출발하기를 재촉했다.

“바로 월계나루로 가는 거지?”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몰리고 있다는데.”

“그래? 우리 공방에 손님은?”

“가서 확인해.”

며칠 전 공방에 잠시 들렀을 때 봤던 멋진 거리가 생각났다. 거기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을 걸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렸다.

차는 한 시간가량을 달려 월계나루 인근에 진입했다. 잠깐 졸고 있던 내가 그걸 알아챌 수 있었던 건 차가 급정거를 하면서였다.

앞으로 쏠리는 몸을 잡아 준 성산하가 밖을 보며 혀를 찼다.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물었다.

“자 버렸네. 공방에 도착한 거야?”

“근처야. 벌써부터 정체가 심하네.”

성산하의 말에 밖을 내다보자 발 디딜 틈 없이 모여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도로 역시도 차로 꽉 막혀 옴짝달싹을 하지 못했다.

“뭐야? 죄다 월계나루 온 사람들이야?”

“정확히는 월계나루 동쪽의 새로운 거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지. 이제 보니 거리 이름도 따로 만들어야겠는걸.”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몰렸다니 기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차가 이렇게 막혀서야 해가 져도 도착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앞에서 이초가 투덜댔다.

“그러게 제가 공용 주차장 만들자고 했잖습니까…….”

“그냥 걸어서 가면 안 되겠지?”

“당연히 안 돼.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보호도 어려워.”

“……반지 같은 거 또 없냐?”

슬쩍 떠보자 성산하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누가 잃어버려서.”

“……씨발. 그거 태제헌이야.”

차가 거북이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꽉 막혔으면 대기하고 있는 차들 사이사이로 노점상인들이 돌아다니며 간식거리를 팔았다.

“솜사탕, 닭꼬치, 핫도그 있어요!”

“시원-한! 레몬에이드 팝니다! 1L 냉커피에 미숫가루도 있어요!”

차가 조금씩 나아가며 내가 아는 거리들이 나오자 더 버티기 힘들었다.

‘코앞에 내 공방이 있는데 못 간다니! 답답해 죽겠네.’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창문에 찰싹 붙어 밖만 내다보자 결국 성산하가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가고 싶어? 조금도 참지 못할 만큼?”

“당연하지. 계속 못 가니까 미칠 것 같아.”

“내가 가게 해 줄게. 이리 와.”

창문에 이마를 댄 채 퉁명스럽게 툴툴대던 중 들린 말에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성산하가 허공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흰 장갑 속에 잡힌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 적 있는 아이템이었다. 시간의 거울이었나.

성산하가 내게 팔찌를 건넸다.

“성좌 지도 탓에 S급들에겐 소용없겠지만, 짧은 거리는 괜찮겠지.”

“나보고 이걸 차라고?”

“응. 이번엔 미래로 선택해.”

어쨌든 차에서 내려 공방으로 데려다준다는 소리였다. 단숨에 팔찌를 끼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과거와 미래 중 어느 걸 선택하겠냔 소리에 미래를 선택했다. 팔찌에 새겨진 문양이 잠깐 빛났다 사라졌다.

“어때, 됐어?”

성산하와 이초, 청이와 운전기사까지 넷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묘한 침묵이 흘렀다.

“미래 선택한 거 맞아?”

“응. 왜? 너무 늙었어? 설마 수염도 났냐?”

턱을 더듬는데 청이가 묘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조금 큰 것 같긴 한데 그다지…….”

“애티가 조금 사라지긴 했는데 그게 그거라…. 아이템을 착용한 이유가 없는데요. 그냥 과거를 선택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초의 말에 성산하가 깊은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아……. 분명 십 년 이상일 텐데.”

유리창에 얼굴을 비쳐 보자 이초와 청이의 말대로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다 팔찌를 빼 버렸다. 다시 착용하고 이번엔 과거를 선택하자 성산하와 차 내부가 쑤욱 하고 거대해졌다. 아, 내가 작아진 거구나.

몸만 작아지고 옷은 그대로라 헐렁거리는 옷소매를 흔들며 물었다.

“옷은 어떻게 하지?”

***

다행히 이초가 조카 선물하려고 사 놓은 옷이 트렁크에 있어 나체로 로브만 걸치고 돌아다니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성산하를 올려다봤다. 놈은 전처럼 머리 색과 눈 색이 바뀐 모습이었다. 그런데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다른 능력이 더 있는 듯했다.

“준비 다됐어!”

내 부름에 돌아본 성산하가 날 보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한숨과 함께 눈을 뜬 성산하가 손을 내밀었다. 눈앞에서 팔랑이는 장갑을 바라보는데 머리 위로 놈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손잡아.”

“뭐? 싫어! 내가 왜?”

“너무 작아서 잃어버릴 것 같…, 아니다.”

주위를 빼곡이 메운 사람들을 둘러본 성산하가 나를 번쩍 들어 안았다. 한순간에 훅 높아지는 시선에 발버둥 쳤다.

“씨발 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설에 주위 사람들이 놀라 수군댔다. 성산하가 웃으며 속삭였다.

“조용히 해야지. 사람들 놀라잖아.”

“너, 너 돌아가면 두고 보자.”

피식 웃은 성산하가 발을 옮겼다.

사실 사람이 원체 많아 뭐가 다를까 싶었는데 성산하가 발을 옮길 때마다 앞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놈에게 매미처럼 매달린 탓에 고개가 뒤를 향한 내겐 웅성거리고 수군대는 시선들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수백 개의 눈빛들을 마주치는 게 민망해 짧아진 팔에 걸린 팔찌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려지는 팔찌라니.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거람. 그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눈을 빛냈다.

‘잠깐, 어려지는 팔찌면, 우리 사나도 볼 수 있는 거잖아?’

기발한 생각에 고개를 번쩍 들자 성산하가 의아하게 물었다.

“왜, 불편해?”

“아니, 아니야. 편해.”

그때부터 돌아가면 어떻게 성산하에게 팔찌를 채울지 그것만 고민하며 발을 흔들었다.

분명 순순히 차려고 하진 않을 텐데. 약점을 잡아서……. 아니, 자는 동안 채워 버릴까? 그러려면 팔찌를 내가 가지고 있어야…….

“성산하. 나 팔찌 좀 빌려줘.”

“뭐에 쓰려고?”

“몰라도 돼. 심오한 이유가 있어.”

“안 돼. 돌아가자마자 반납해.”

“치사한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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