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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44화 (144/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44.

뻥 뚫린 길을 통과해 드디어 입구에 다다랐다. 왜 이렇게 막히나 했더니, 앞에서 보안 검사를 실시 중이었다.

“공격 속성이 있는 A급 이상 아이템들은 모두 인벤토리에 넣어 주세요! 내부에서는 인벤토리를 사용할 시 최대 10초까지의 딜레이가 생깁니다.”

“이쪽에는 주차 공간이 없습니다! 도로에서 그대로 직진하시면 주차장이 나옵니다.”

“공격 속성이 있는 A급 이상 아이템들은 모두 인벤토리에 넣어 주세요!”

“무슨 검문까지 해요.”

“최소한의 보호를 위한 조치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보안 검사는 입구 중앙에 세워진 커다란 게이트 하나가 끝이었다. 말을 듣지 않은 누군가 A급 이상 장비를 소지한 채 들어가면 경보음이 울리는 식이었다.

장비를 목숨같이 생각하는 헌터들이었지만 제 인벤토리로의 보관이라 그런지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

“입구부터 검문을 할 줄은 몰랐네.”

“항상 용병과 함께 움직일 순 없잖아. 적어도 공방 근처에선 자유로울 수 있도록 입구부터 검색대를 설치했지. 다행히 예상보다 거리 규모가 커져서인지 지원 길드들도 많이 붙었고 사장들도 반기는 눈치야. 그래도 경계심은 놓지 마.”

“알았어.”

전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순 없지만 이게 어디냐. 공방으로 돌아가는 대로 장비 업그레이드를 하고 만일을 대비한 포션들도 가득 만들어 놓아야지. 그럼 한층 마음 편히 다닐 수 있을 테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검문대를 통과하지 않고 옆문으로 들어갔다. 성산하의 신분증 하나면 모든 게 해결이었다.

사람들을 겨우 헤치고 거리로 진입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생기 넘치는 거리는 며칠 전의 텅 비어 있던 곳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았다.

닫혀 있던 가게들은 모두 문을 열고 밝은 내부로 손님들을 이끌고 있었고 양손 가득히 쇼핑백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개중 사람이 너무 몰려 밖으로 줄을 세우는 공방에 절로 시선이 갔다.

‘내 공방은 줄이 더 길겠지?’

설레는 상상에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참지 못하고 이를 보이며 활짝 웃자 성산하가 말했다.

“우리가 회의 하는 사이 첫 번째 인터뷰와 네 복귀를 알리는 기사들이 나갔어. 다들 그걸 보고 찾아온 거야.”

내가 꿈꾸던 미래 그 자체였다. 모두의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 북적북적한 공방까지. 다들 내 공방에 찾아오는 게 당연하다. 포션 마스터의 공방이니까!

안으로 들어갈수록 주위에서 내 이름이 잦게 들려왔다.

“너 강의진 인터뷰 사진 봤어? 얼굴 미쳤어.”

“보긴 봤는데, 너무 기대하진 마. 헌폴에 강의진 실물 본 후기들 올라오고 있거든. 근데…….”

“정말? 별로래? 나도 보여 줘.”

“응. 목격담 몇 개랑 증거 사진 뜨는데……. 키도 생각보다 작고 얼굴도 그냥 그렇다던데.”

난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무슨 소리지?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덩달아 성산하까지 발을 멈췄다. 남자가 여자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 주고 있었는데 얼핏 몇 장의 사진들이 보였다. 화면을 내리던 여자가 아쉬운 한숨을 뱉었다.

“사진이랑 조금 다르긴 하네.”

“보정 엄청 했겠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보고 가고 싶은데……. 강의진 공방은 줄 어떻대?”

“거기 아예 입장도 안 된대. 사람 엄청 많아. 그냥 오늘은 커피나 마시고 돌아가자.”

평소라면 나 여기 있다고 아는 척했을 텐데! 지금은 애새끼 모습이라 나서지도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몸이 들썩거렸다. 피식 웃은 성산하가 더 단단히 몸을 받쳐 안더니 다른 손으론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작아져서 그런지 훨씬 거대하게 다가오는 손에 잠시 흠칫했지만 성산하라는 것을 알고 가만 위를 올려다봤다. 어느새 발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성산하와 눈이 마주쳤다.

“왜, 의진아? 끼어들고 싶어서 미치겠어?”

“아니? 잠깐 변했다고 진짜 애새낀 줄 아나……. 그나저나 빨리 안 가냐?”

“가야지.”

머지않아 공방 근처에 도착했지만 거리 자체가 사람들로 꽉 막혀 있었다. 뒷문을 통해 들어가기로 하고 발을 돌렸다. 그런데 내 공방 주위에 못 보던 집들이 생겨나 있었다.

‘새로 이사 왔나?’

조금씩 다르게 통일된 외관에 관심을 두고 살피는데 명패에 적힌 ‘백다인’, ‘백다혜’ 두 이름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이건.”

그 옆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하얀 누나 가족들, 데이지 상회 사장님과 진명이까지! 아는 사람들의 이름에 당황해 이리저리 바쁘게 주위를 둘러보는데 머리 위로 성산하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거리 조성하는 김에 몇 채 지어 봤어. 너만큼은 아니다만 다른 사람들도 안전한 상태는 아니니까. 곁에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네가 지어서 줬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내게 성산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랑의 후원이야.”

“후원?”

성산하 이 자식 그렇게 안 봤는데…… 벌써부터 나에게 줄을 대려고 하다니.

물론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세계 최초 유일무이의 S급 포션 마스터니까! 현명한 처사라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고민 중인 사안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되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성산하의 장갑 낀 손을 힐끔 바라봤다.

‘이번에야말로…….’

공방 뒷문 역시 정문만큼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그 꼴이 여간 가관이 아니었다.

“억, 으억!”

“그림자 은신! ……악!”

맨몸으로 돌진하는 놈, 땅을 파려는지 바닥에 칼을 꽂는 놈 등 여러 스킬들이 난무했다. 그리고 놈들은 뭔가에 막혀 울타리를 넘지 못하고 모두 날아갔다.

한발 떨어져 무관심한 눈으로 그 꼴을 지켜보던 성산하는 잠시 소강상태가 된 틈을 타 발을 옮겼다.

“어, 잠시만요! 그렇게 들어가면 아기 다쳐요!”

“저기요!!”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산하는 문고리를 잡았고, 문은 매우 부드럽게 열렸다. 뒤에서 얼빠져 쳐다보는 헌터들을 뒤로한 채 문을 닫은 성산하가 나를 땅에 내려 주며 혼잣말했다.

“……처음부터 엘프목을 주길 잘했지.”

엘프목의 능력은 나 역시 인정하는 바였다.

‘식물에 주는 영양제 같은 게 있던데, 만들어 보진 않았지만 제초제랑 공식은 비슷하지 않으려나.’

레시피를 고민하며 옆길을 따라 정원에 들어갔다. 이윽고 손에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던 수철이와 마주쳤다.

“오자마자 열심이네.”

내 말에 몸을 숙이고 있던 수철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들어왔지? 오늘 공방 안 여는데?”

“공방을 왜 안 열어?”

예상치 못한 말에 주위를 둘러보자 그제야 한적한 정원과 문이 닫힌 공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담벼락 밖으로만 빼곡했다. 엘프목 덕인지 시끄러운 소리가 넘어오진 않았지만……..

“야, 꼬맹아. 너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빨리 나가. 이렇게 함부로 들어오면 큰일 난…… 헙! 미, 미스틱!”

손을 털며 다가오던 수철이가 뒤따라 나온 성산하를 보고 얼어붙었다. 나와 성산하를 번갈아 보던 수철이의 눈이 튀어나갈 듯 크게 떠졌다.

“사, 사장님?”

“그래. 나다.”

“이게 무슨 일이세요? 이렇게 어려지다니, 무슨 저주라도 걸리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일단 들어가자.”

밖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흘깃 보고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내 방으로 들어가 팔찌를 빼자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내려오자 이미 말을 전한 건지 다들 로비에 모여 있었다. 성산하가 나를 보자마자 손을 까딱였다.

‘쳇, 까먹었을 줄 알았는데.’

성산하의 손에 팔찌를 던지듯 올리고 승연이에게 물었다.

“밖에 손님이 저렇게 많은데 왜 문 안 열었어? 나 기다린 거야?”

“그, 그게…. 포션이 없습니다.”

“포션이 없다니 그게 무슨…… 아.”

뒤늦게 승연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챘다. 오랫동안 공방을 비웠으니 포션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포션의 유통기한은 긴 편이지만 재료들은 그게 아니니까…….

“창고에 남은 게 조금 있긴 한데 준비가 안 된 상태라 의진 님과 상의 후 결정하려고 했습니다. 손님도 너무 많이 몰렸고요.”

“완전히 잊고 있었어. 재료도 채워야 하지?”

“네. 진명이가 오후 중에 물건 가져다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포션들을 주력으로 제조할지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주력? 그런 게 필요해? 그냥 다 만들면…….”

“감당 못할걸.”

툭 던진 성산하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내가 감당 못하는 포션은 없어.”

“마나는 한정적일 텐데. 저 많은 수를 감당할 수 있겠어?”

성산하를 따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담벼락에 좀비 떼처럼 들러붙은 인파가 보였다.

“손님이야 많으면 좋지. 저 정도쯤은 충분히…….”

“참고로 사전 신청한 인원 중 아직 5%도 오지 않았어. 앞으로는 서울 외의 지역에서도 찾아올 텐데.”

“…….”

머릿속으로 숫자들을 빠르게 계산했다. 주호현의 쥐똥만 한 마나와 조수 승연이, 따로 연구해야 하는 포션들의 목록과 그걸 제외하고 남은 시간까지…….

계산이 끝났다. 몸을 돌려 창문을 등진 채 팔짱을 꼈다.

“명색이 포션 마스터인데, 양보다는 질이지!”

“잘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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