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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45화 (145/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45.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바로 승연이와 머리를 맞대고 포션 품목에 대한 회의를 시작했다.

“일단 체력, 마나, 활력 포션 3종은 기본으로 넣고, 그 외에 뭐가 더 필요한가?”

“조사 결과 타 공방들은 상태 이상 해제나 버프 포션 등을 추가로 다루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걔네도 다 만들까?”

“하지만 의진 님 연구 일정을 고려하면 기본 3종만으로도 빠듯합니다.”

“조금 무리하지 뭐.”

“아, 안 돼요! 무리하시게 둘 수 없습니다……!”

승연이가 눈에 힘을 주고 단호히 외쳤다.

‘난 정말 괜찮은데…….’

고집스러운 표정에 더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포션에는 추가 옵션 붙으니까 일반 헌터들은 그걸로도 충분하겠지.”

본래 대부분의 장인급 제작자들은 주문 제작으로만 공방을 돌린다. 주문 제작이 의뢰 비용도 높고 재료까지 의뢰자가 모두 제공하기에 훨씬 편하고 이득이었으니까. 굳이 기본 포션을 만들 이유가 없는 거다. 하지만 처음 갖는 내 공방이니만큼 녹스에서처럼 모든 걸 주문 제작으로만 돌리기는 싫었다.

그러나 기본 포션들의 비중을 많이 올린대도 이 몸의 마나로 최대 만들 수 있는 양은 겨우 하급 포션 100개뿐이라 한계가 있었다.

포션을 마셔 가며 마나를 회복할 순 있지만 수지가 맞지 않다. 언제까지 하급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중급, 상급으로 갈수록 만들 수 있는 개수는 확연히 줄어들 텐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은 하나다. 마나 통 자체를 늘리는 것. 장비발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문제는 어디서 구하냐는 건데…….’

예전엔 말만 하면 태제헌이 다 가져다줬으니 이런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막상 구하려니 어딜 가야 하는지 가늠도 되질 않았다.

‘성산하한테 물어볼까…….’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고민하는데 앞에서 서류를 훑던 승연이가 말했다.

“안 변호사님께서 포션 의뢰서 샘플들을 여러 개 보내 주셨어요. 완벽해서 사이트에 이대로 공지를 올릴 생각인데 의뢰 우선 순위는 어떻게 정할까요?”

“처음 보고 새롭고 어려운 거면 다 좋아! 재료 수급 못 하면 무기한으로 밀릴 수 있다고도 말해 줘.”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미 발견된 레시피가 있는 포션은 받지 않을 생각이니 모두 거절해. 아니, 그냥 내가 쓸까?”

한 번 구인 글을 써 본 적 있어 자신이 있었다. 눈을 빛내며 묻자 승연이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이런 잡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의진 님께서는 중요한 일만 하세요!”

“정말 괜찮은데…….”

승연이가 후다닥 사무실 밖으로 도망갔다. 머리를 긁적이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아래서 짤랑 종이 울리더니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의진 님 계십니까?”

밖으로 나와 일 층을 내려다보자 품에 뭔가를 든 이초가 주위를 둘러보며 나를 찾고 있었다.

“의진 님- 계십니까? 의진 님!”

“이초? 무슨 일이야?”

“의진 님! 안녕하십니까.”

위를 올려다본 이초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무의식적으로 이초의 뒤를 확인했지만 성산하는 보이지 않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이초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길드장님께선 새벽에 잠깐 출국하셨습니다.”

“어디 갔는데?”

“잠깐 스위스요. 스위스는 오늘부터 헌터들이 던전 진입을 시작했거든요.”

“잠깐은 무슨…. 존나 돌아다니네.”

투덜대며 아래로 내려갔다. 소파로 안내하자 이초가 웃는 얼굴로 내게 들고 있던 상자를 건넸다.

“여기, 받으십시오.”

“이게 뭔데?”

“천랑의 개업 축하 선물입니다.”

싱글벙글한 이초의 얼굴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다 상자를 받아들었다. 자리에 앉아 가장 위의 덮개를 열자 눈부신 빛이 반사되어 내 눈을 찔렀다. 떨리는 손으로 상자 안에 들은 것을 꺼냈다. 팔뚝만 한 크기에 납작하게 생긴 것, 두께가 얇아 떨어질까 겁이 났다.

“이건 표지판이잖아!”

지금 내 공방의 정문 앞에도 표지판이 하나 걸려 있다. ‘6등급’이라는 끔찍한 단어가 적혀 있는 나무판자 말이다. 그러나 이건 달랐다.

같은 크기였지만 투명한 테두리에 내부는 얇고 빛나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었다. 재료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체적으로 은은한 빛을 내뿜는 표지판에는 심지어 마정석도 두어 개 박혀 있었다.

입을 헤벌리고 바라보자 이초가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겉은 크리스털이고 중앙은 월석을 얇게 저며 이어 붙인 것입니다. 다이아몬드처럼 강하면서 그 자체로도 마력을 담고 있다는 광물이죠.”

“그거 지하 던전에서만 채집 가능한 광물 아니야? 대장장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단 말을 들어본 적 있어.”

“맞습니다. 사실 천랑 소속 대장장이들이 눈물을 머금고 제작해 준 겁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표지판을 쓰다듬었다. 보기에도 아름다웠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위쪽에 음각된 글자였다. 통상 등급이 적혔어야 할 자리에 ‘포션 마스터 강의진’이라고 적혀 있었다. 등급에 구애받지 않는 마스터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아래의 공방 이름이 들어갈 자리는 역시나 비어 있었다.

“공방 이름은 다시 정하실 것 같아 자리를 비워 뒀습니다. 근처에 천랑 소속 장인이 있으니 말씀해 주시면 바로 불러 세공해 드리겠습니다.”

내 손에 들린 표지판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사실 등급이 올라가면 공방 이름을 정하기로 했지만 그간 바빠서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다. 꼭 이걸로 해야지라고 할 정도로 끌리는 이름도 없었고.

당장 생각나는 거라면 ‘포션 제국’, ‘카오스’, ‘가장 강한 포션이 있는 곳’ 등인데. 멋진 이름이긴 했지만 아름다운 엘프목이 드리운 푸른 잔디밭이 있는 공방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았다.

미지의 포션 레시피를 찾는 일보다 포션의 이름을 짓는 것이 항상 더 힘들었는데. 머리가 아팠다.

“이거 나중에 정해도 되는 거지?”

“근처에 공방을 낸 거라서 언제든지 상관없습니다만……. 공방 이름은 비워 두시게요? 있는 편이 나으실 텐데요.”

“응. 내 공방이니까 좀 더 고민해 봐야겠어. 어쨌든, 선물 고마워. 진짜 마음에 든다.”

공방 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손님들이 들어오는 정문에 있는 표지판의 존재를 새카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교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한 팔에 소중하게 껴안고 감사 인사를 하자 이초 역시 만족스럽게 웃었다.

“토지 문제도 해결 중입니다. 정부와 협회에 로비해서 땅을 국유재산으로 돌리고 있거든요. 선정된 공방들에게 조건부로 토지를 무기한 임대해 줄 계획이라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모여들 겁니다.”

“정말? 여기 중개소 사장 아저씨 따로 있는데.”

“미리 해결했죠. 이 공방 사장이 포션 마스터란 걸 알아채기 전에요. 파리만 날리는 공방을 비싼 값에 팔았다고 신나 하던데요?”

이초가 눈을 찡긋했다. 그러나 ‘파리만 날리는’이란 수식을 들어 버린 나는 빈정이 상해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놈을 어떻게 쫓아낼지만 고민하는데 이초가 표지판을 손짓하며 물었다.

“의진 님. 거기 마정석 보이십니까?”

“그건 또 왜.”

“월석과 마정석의 마력을 합쳐 견고한 보호 스킬을 새긴 겁니다. 밤에는 야광으로 자체 발광도 한다고요.”

“스킬을 새겼다고?”

이초의 말에 놀라 곧바로 표지판을 감정해 봤다. 그 말대로 공방 전반을 범위로 한 보호 스킬이 걸려 있었다. 실드와 비슷한 스킬은 누가 직접 걸었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이초가 떠난 후, 지하실에 있던 승연이와 정원을 관리하던 수철이도 함께 불러 새로운 표지판을 보여 줬다.

“포션 마, 마스터 강의진…….”

수철이 홀린 듯 표지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차례 감상을 마친 승연이가 설레는 얼굴로 작게 속삭였다.

“정말 설렙니다. 곧 정식으로 열게 된다고 하니…….”

“그거 준비는 다 됐어? 뭐더라, 예약 신청?”

“네. 하루 입장 인원 150명, 다섯 단계로 시간을 나누어 등록해 뒀어요. 내일 예매 사이트가 열리면 사전 신청이 시작되는데 그때 신청하신 사람들이 모래 첫 손님으로 오실 겁니다. 본인만 들어올 수 있도록 입장 시 바깥의 데스크에 각성 인증을 하게 되어 있고 부정 예약 방지를 위해…….”

무작정 문을 열면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조언을 따라 사전 신청을 받기로 했다. 이것에 관해서는 승연이에게 전적으로 맡긴 터라 모두 이해하진 못했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리 표지판 걸러 갈까?”

짧은 시간 우리 공방과 함께했던 나무 표지판이 떼어지고 그 자리에 화려하고 반짝이는 월석·수정 표지판이 걸렸다.

아치형 입구 바깥에 표지판을 끼워 넣는 순간 미약한 마력의 파동이 온 공방을 덮쳤다. 우리에게도 잠깐 느껴졌다 사라진 기운에 얼떨떨하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잔디밭을 지난 빛이 엘프목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밑동부터 두터운 줄기, 갈라진 가지와 무성한 이파리까지 훑고 지나간 빛은 가지 끝에서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부르르 몸체를 떠는 엘프목에도 변화가 생겼다. 무성하게 늘어진 가지 중간중간 파랗게 빛나는 잎사귀들이 생겨났으며 줄기는 한층 더 색이 짙어져 오래된 고목처럼 보였다.

“엘프목에게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뭔진 몰라도 한층 더 강해진 듯한 모습이 만족스러워 허리에 손을 얹고 공방 전경을 바라봤다. 내 공방, 이제 손님만 오면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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