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46.
창고를 가득 채운 포션들을 뿌듯하게 바라봤다. 며칠간 승연이와 열과 성을 다해 만들어 낸 것들이다.
“내일이면 이것들이 다 팔린단 말이지…….”
“의진 님. 반절은 여유분으로 두고 나머지만 팔아야 합니다. 앞으로 매일 손님을 받을 텐데 저희가 만드는 포션의 수량은 한정되어 있으니, 구매 제한도 걸어 둬야 해요.”
“그렇네. 하긴 내일이 끝이 아니라 모래도, 그다음 날도 손님들은 계속 오니까!”
창고 문을 닫으며 시계를 확인했다. 곧 사전 예약 신청이 열리는 시간이었다.
“삼십 분 전이다. 이만 올라가자.”
손님이 얼마나 몰릴지도 궁금했고 예약하기까지의 과정도 한번 체험해 볼 겸 우리도 사전 예약 신청을 첫날만 해 보기로 했다. 마지막에 신청 완료 버튼만 누르지 않고 뒤로 나오면 되니까.
미리 아이디까지 만들 정도로 준비를 철저히 한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수다를 떨며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보관 기간이 긴 건 진명이한테 말해서 미리 받아 놓자. 자리야 많으니까.”
“네. 아, 그리고 진명이가 요즘… 히익, 의진 님!! 여, 여덟 시입니다!”
“뭐? 아까 분명 사십오 분이었…….”
시계를 보자 8시 2분이었다. 분명히 중간중간 시계 확인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흐른 건지. 부랴부랴 사이트를 검색해 들어가는데 하얀 페이지만 떴다.
“어? 뭐야, 이거.”
로그인 화면이 떠야 하는데 페이지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컴퓨터가 고장이 난 건가 싶어 몇 대 때리는데 승연이가 급히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네, 연승연입니……. 네? 사이트가 터졌다고요?”
“터지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승연이가 들고 있던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수록 승연이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만 갔다.
“하지만, 제가 분명 상황 설명드렸잖습니까. 사장님께서 모두 수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늘리겠다고 한 말만 믿고 계약한 건데 이제 와서 터졌다고만 하시면 어떻게…… 네? 사, 삼백만 명이요?”
다리에 힘이 풀린 승연이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 역시 언뜻 들은 숫자에 입이 떡 벌어졌다. 사람이 몰릴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큰 숫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들 어떻게 알았는지 퇴근한 수철이를 비롯해 다인 누나와 하얀 누나, 심지어 이초까지 이게 무슨 일이냐며 연락이 왔다.
승연이가 사이트 담당자와 고군분투하며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다. 내가 도울 방법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소파에 길게 누워 대체 150명씩 며칠을 받아야 삼백만 명을 다 만날 수 있을지를 계산하고 있을 때, 드디어 해결법을 찾았다. 삼백만 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는 각성자들이 일반인인 가족이나 지인, 심지어 돈을 주고 산 외국 계정까지 동원한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접속 국가를 한국으로 제한하고 입장 시 확인하기로 했던 각성자 정보를 예약할 때부터 등록하게 하자 사이트가 느리지만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고지했던 시간은 8시였는데 자정을 코앞에 두고서야 일이 해결됐다. 진이 빠진 승연이가 그대로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승연아 고생 많았다. 올라가서 자.”
“네에…. 조금만 이렇게 있다가요…….”
소파에 얼굴을 푹 묻은 모습을 보니 저러다 잘게 뻔했다. 내가 옮겨 주지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자게 뒀다.
“그래도 내일부턴 잘 진행될 테니 다행……입, 니…….”
말이 느려지더니 곧 새근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그를 들으며 컴퓨터 화면에 크게 띄워진 단어를 빤히 바라봤다.
「150석/매진」
내일 처음으로 보게 될, 내 첫 손님들이 기대됐다.
***
아직도 해롱해롱하는 승연이를 바라봤다. 눈을 부릅뜨고 졸음을 이겨 내려 하지만 잘될 리가 없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더니 졸릴 만도 했다. 혀를 차며 포션 하나를 던져 줬다. 얼결에 잡아 챈 승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의진 님? 이 포션은 왜…….”
“마셔. 약한 각성 효과 있는 피로 회복 포션이야.”
“가, 감사합니다!”
옆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자 수철이가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했는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에 단호히 등을 돌렸다.
“넌 안 돼. 지금 상태에서 저거 먹었다가는 힘 주체 못할걸. 사무실에 활력 포션 있으니까 그거 갖다 먹든가.”
“넵!”
수철이가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방 오픈 시간이 가까워졌다. 슬슬 손님들이 오기 시작하는지 담장 너머가 인파로 뒤덮였다. 첫 타임 손님이 저렇게 많을 리가 없으니 나머지는 구경꾼과 취재하러 온 사람들이겠지.
바로 앞에 손님들이 있다 생각 하니 조금 긴장되는 것 같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창문에 찰싹 붙어 손님들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사장으로서의 위엄을 지켜야 했기에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겨우 눌러 소파에 붙여놓았다.
인고의 십 분이 지나고 공방 오픈 일 분 전, 수철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진 님, 그, 그럼 공방 문 열겠습니다!!”
“응.”
공방 문을 활짝 연 수철이가 삐걱대며 정원을 가로질렀다. 정문을 개방하자 엄청난 환호성과 함께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강의진! 강의진!”
“인터뷰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150명 누구 코에 붙여! 인원 늘려 주세요!”
문이 열리자 막무가내로 침입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담장을 넘지 못하고 모두 날아가 버리고 수철이의 안내에 따라 예약을 마친 손님들이 정원으로 한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다들 차림새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내 착각인가……?’
너무 긴장해 그런 건가 싶어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똑같았다.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옷에 화려한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A급 이상일 것 같은 아이템들을 몸에 두른 놈들이 보통 각성자일 리 없었다. 게다가 앞에 있는 화려한 공작 같은 놈은…….
놈들에게 눈을 고정한 채 승연이에게 물었다.
“손님들은 랜덤이라고 하지 않았어? 왜 다들 한가락 하는 놈들 같지.”
“겨, 결과적으로 랜덤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예약 자체는 인터넷 속도에 따라 좌우되지 않을까요…? 클릭 속도나….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떻게…….”
승연이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말을 흐렸다. 첫 타임 열 명이 모두 들어오고 정문이 닫혔다. 가장 먼저 내게 다가온 화려한 차림의 남자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저 과장스러운 인사는 다시 봐도 적응이 안 됐다.
“안녕하세요. 의진 님. 저희 두 번째 만남인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잊을 리가 있나. ……프랑수아.”
“기뻐라, 영광입니다. 오늘 가장 처음으로 오려고 꽤나 노력했답니다. 후후후.”
프랑수아는 꽤나 잘 나가는 포션 메이커였다. 나와 추구하는 스타일이 달라 그다지 좋아하는 놈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수완 좋은 놈이었다. 그런데 이놈이 왜 내 공방에…….
내가 생각했던 상황과는 완전히 달랐다. 포션 추천해 달라는 신규 헌터에겐 스킬에 맞는 추가 옵션을 찾아 권해 주고, 재방문한 손님은 내 포션 덕분에 살았다고 감사를 표하는 그런 훈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생각했는데.
“하급 포션밖에 없는데 뭐 하러 온 거야?”
“마스터가 만든 포션에 급수가 대수인가요? 소장용으로도 완벽한걸요.”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포션을 사용하는 편이 더 좋았다. 승연이 몰래 무리해서 손님들에게 쥐여 줄 작은 포션 샘플들까지 여러 개 만들어 놨는데.
기대와는 다른 상황에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그런데 프랑수아가 인벤토리에서 금장이 화려한 상자를 꺼내 내게 건넸다.
“제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입니다. 고심해 고른 것이니 거절은 말아 주세요.”
“이건……!”
상자 안에는 구하기 힘든 S급 재료인 늙은 디어린의 뿔이 두 쌍 들어 있었다. 녹스 놈들도 젊은 디어린의 뿔을 가져오는 게 한계였는데, 이걸 왜 나한테?
놀라 바라보자 프랑수아가 어느새 손에 쥐고 있던 깃털 부채를 한 번에 펼치더니 입을 가리며 말했다.
“사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사실 제 능력으로는 다루지 못하는 재료라. 마스터의 손에선 어떻게 다시 태어날지 궁금하더군요.”
“잘 받을게. 뭐, 둘러보다 가든가.”
웃음 지은 프랑수아가 춤추듯 과장스러운 발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앞다퉈 몰려와 빈자리를 채웠다.
“의진 님! KQ부길드장 진진원입니다! 여기, 개업 선물로 KQ에서 준비한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의진 님. 바로 옆 블럭 이웃사촌인 석청 부띠끄에서 나왔습니다. 개업을 축하드리며 의상 한 벌 준비했습니다. 혹시 의진 님 마음에 드신다면 모델을 고려해 주십사…….”
“의진 님, 개업 축하드립니다! 저희도 선물이 있는데, 의진 님 번거롭지 않게 여기 살짝! 올려 두고 가겠습니다!”
“이번에 엘성 기업과 함께 출범한 공방 협회 신신화원 본부장 이현아입니다. 의진 님, 개업을 축하드리며…….”
내로라하는 사람들 틈에 낀 승연이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서로 마주친 시선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오늘 예정된 15번의 방문, 설마 죄다 이런 식이진 않겠지?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