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47.
한 번은 참을만 했다. 나를 보러 왔다며 선물까지 들고 찾아오는데 귀찮기는 해도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삼 일 내내 찾아온 인사들 탓에 방 하나는 선물들로 가득 찼고 승연이가 받은 명함은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아졌으며 기껏 만들어 놓은 포션은 단 하나도 나가지 않았다.
물론 포션을 사고 싶다는 놈들은 많았다. 마스터의 포션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당장 제작할 수 있는 양이 적다 보니 이왕이면 소장품 보다는 제대로 된 손님들에게 팔고 싶어 놈들의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견디다 못해 직접 공지를 쓸까 하던 때, 승연이에게 걸려 온 사이트 담당자의 전화에 놈들이 대체 어떻게 내 예약 명단을 장악했는지 밝혀졌다.
“웃돈을 주고 사고 있답니다. 현재 시세가 백 만원은 우습게 뛰어넘었다고…….”
“미친 새끼들 아니야? 입장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걸 돈 받고 판다고?”
“네…. 이럴 것을 대비해 예약한 본인의 각성 정보를 입력하고 들어올 수 있게 해 뒀는데 빈틈이 있었습니다. 예약을 받고 저희에게 예약자 데이터가 넘어오기 전 몇 시간의 틈에 명의 변경을 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 돈을 벌기 위해 티켓팅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 비겁한 수를 쓰다니! 나로선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일이라 그저 황당한 탄식만 나왔다. 며칠간 함께 시달린 승연이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 신청 전에 시스템을 손봐서 명의 변경이 되지 않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곧 경고문과 함께 공지도 올라갈 거예요.”
“다행이네. ……존나 어렵다.”
담당자의 발 빠른 조치로 다행히 다음날부터 곧바로 정상적인 손님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이사이 프락치들이 껴 있었지만 한 타임에 한 명 정도라 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갑자기 변한 시스템에 항의하러 찾아온 장사치들도 있었다. 그러나 엘프목의 솜씨로 담장도 넘지 못하고 쫓겨나고 그사이로 드디어 손님들이 입장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전에 놈들에게 시달린 탓에 막상 첫 손님을 마주했을 땐 그다지 긴장되지 않았다.
“안녕. 난 강의진이야.”
나만 졸졸 따라다니던 열 쌍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전에 부길드장이니, 본부장이니 하던 놈들과는 다르게 순진한 얼굴들이 꽤나 재미있었다. 그때 한 여자애가 더듬대며 소리쳤다.
“패, 팬이에요!”
“내 팬이라고?”
예상치 못한 외침에 되묻자 함께 있던 몇 명도 질세라 나서서 말했다.
“저도, 저도 팬입니다!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의진 님 포션으로 목숨 구한 적 있어요. 그때부터 팬이었어요. 항상 행복하세요!”
왠지 모르게 가슴이 간질거렸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지만 사장의 위엄을 지키려 애써 입술을 감쳐물었다. 하지만 새어 나가는 웃음을 아예 막을 순 없었다.
내 팬이라니! 다들 착한 성품에 영리한 사람들인 게 분명하다. 그러니 저렇게 이성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하지.
온갖 좋은 말들이 머리를 떠다녔지만 이상하게도 입 밖으로 나온 건 겨우 고마워, 한마디였다.
“고마워. ……마, 마음껏 둘러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든가.”
전에 찾아온 놈들은 30분이 지나면 칼같이 쫓아냈지만 손님들은 공방 문을 닫을 때까지 원하는 만큼 마음껏 놀다 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첫 번째 타임부터 점점 밀린 사람들로 인해 공방은 물론이거니와 정원까지 손님으로 가득했다.
각성한 지 겨우 한 달 되었다는 손님에게 포션을 골라 주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설렘 가득한 손님들의 얼굴과 사방에 떠다니는 포션의 향기,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까지. 내가 원하던 공방의 모습 그 자체였다.
***
첫날 신난다고 포션을 많이 팔아 댔다가 다음 날 물량이 부족해 급히 지하실로 내려가 포션을 만들기도 했고 ‘정산’이라는 것을 하는 방법을 몰라 가게 단말기와 씨름하다 새벽에 잠들기도 했다. 인벤토리만 믿고 아무 생각도 없던 우리가 공방 그림이 그려진 포장지를 주문한 것 역시 손에 들고 나가면서 포션을 깨트린 손님을 보고 난 이후였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공방 운영은 점점 자리를 잡아 갔다. 잠깐 들린 성산하와 송아 누나도 제대로 반겨 주지도 못할 정도로 바빴지만 무엇보다 재미있고 행복했다.
그리고 그사이 드디어 한국에 있는 두 개의 탑도 헌터들의 진입을 허락했다.
[탑에 입장한 지 오늘로 셋째 날, 각 대형 길드들의 메인 팀들이 경쟁하듯 엎치락뒤치락하며 탑을 주파하고 있는데요, 벌써 서울은 7층, 제주도는 10층까지 진입 완료했습니다. 한국은 탑을 보유한 다른 나라들보다 진입 시기가 늦었지만 11개의 나라 중 속도로는 첫 번째, 층수로는 네 번째로…….]
‘맞다, 탑에 대해서도 알아봤어야 했는데’
요새 너무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탑 내부 전경을 홀린 듯 바라봤다. 하늘에 천체가 뒤섞인 형태가 신비로웠다.
경쟁하듯 탑을 뚫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들의 모습이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아니, 사실 다른 세상 맞지. 난 이렇게 내 공방에서 연구하는 게 딱이라고. 이것만 없었어도…….’
손바닥에 희미한 카스토르 문양을 쳐다보는데 재료 상자를 들고 들어오던 진명이가 티브이를 보더니 아, 하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그거 아십니까? 오늘 도매상가 경매장에 신재료가 나왔습니다.”
“신재료라니?”
“탑에서 나온 겁니다. 중간에 낙오한 헌터들이 들고나온 아이템들이죠.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전혀 새로운 느낌입니다.”
“정말? 진명아 그럼 내일 구해다 줄 수 있어?”
진명이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늘 막 나온 거라 수량이 적은 데다 요즘 화제인 탑에서 나온 신재료라 경쟁이 붙어서요. 앞으로 재료는 계속 풀릴 테니 제가 괜찮은 물건 보이면 바로 수급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뭐, 당장 급한 것도 아니니까. 그럼 부탁한다. 진명아.”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명이가 순박하게 웃었다. 진명이가 가자마자 공방을 열 시간이 되었다.
수철이는 쉴 틈 없이 계산을 했고 승연이는 포션을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 역시 손님을 맞이하던 중이었다.
“그럼 전 냉 속성 포션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단 말이네요?”
“당연하지. 던전 환경 따라서 안 먹느니만 못한 경우도 있었을걸. 누나 7년 차라면서 너무 모르는 거 아니야? 장비 맞출 때도 고려하는 속성이잖아.”
“그러게요, 이제라도 사장님이 알려 줘서 다행이다.”
웃으며 답하는 모습에 바보 같다고 툴툴대려던 차 들려온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말이 돼? 내가 여기 어떻게 왔는데. 지하철 세 번을 갈아타고 왔어. 그런데 겨우 몇 개 들고 가라고?”
“저, 손님. 그렇게 대량으로는 팔 수 없습니다. 지방에서 오신 분들도 계시고 게다가 저희 포션 분량이 한정되어…….”
“오늘만 장사하고 말아? 창고에 재고 더 있을 거 아니야.”
수철이가 카운터에서 한 남자를 마주한 채 쩔쩔매고 있었다. 공방 내부가 시끄러운 탓에 조곤조곤하게 따지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했다.
‘뭐야 저 새끼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 잠깐만.”
“어? 아, 네…….”
다음 차례로 설명을 부탁하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아쉬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카운터로 가자 역시나 소란을 들었는지 승연이 역시 달려왔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수철이가 울상을 지었다. 남자는 손가락에 끼고 있던 카드를 휙 날리며 말했다. 수철이의 가슴팍에 맞은 카드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추가 옵션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안 좋은 거 주면 각오해. 하나씩 확인해 볼 테니까. 아, 그리고 100개 사니까 샘플도 100개 맞지? 힐링 포션, 마나 포션, 활력 포션 30개씩 개별 포장해 줘.”
“싫은데?”
“뭐, 뭐?”
분노해 고개를 들던 남자가 수철이의 목소리가 아닌 걸 깨닫고 뒤를 돌아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잠시 당황한 듯 보이던 남자가 태연한 척 웃었다.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은, 씨발. 나가.”
“뭐, 뭐라고요?”
“포션 안 팔 테니까 꺼지라고.”
공방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이쪽으로 쏠린 수십 명의 시선에 온통 얼굴이 붉어진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었다.
“지금 무슨 소립니까? 저도 합당한 절차를 통해 예약해서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멋대로 쫓아내려 하다니. 여기까지 온 제 시간과 교통비, 한밤중에 애써서 시간 내서 예약한 제 노력은 어떻게 보상하실 거죠?”
“내 공방에서 꺼지라고.”
“경찰 부르겠……! 이거 놔!!”
남자의 목덜미를 잡아 문 밖으로 질질 끌고 갔다. 버둥거리는 데도 힘이 없는 걸 보니 전투계가 아닌 듯했다. 서늘한 시선으로 질질 끌려오는 놈을 훑었다. 소매에 변색된 푸른 자국이 눈에 띄었다.
‘포션 메이커인가.’
“강의진이! 포션 마스터 강의진이 사람 팬다! 동영상 찍어 주세요! 포션 마스터 강의진이 손님을 폭행한다!”
“어머나…….”
“저 아저씨 왜 저래? 미쳤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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